疏
[疏]正義曰:兌, 說也, 說卦曰“說萬物者, 莫說乎澤.” 以兌是象澤之卦, 故以兌爲名.
澤以潤生萬物, 所以萬物皆說. 施於人事, 猶人君以恩惠養民, 民无不說也.
惠施民說, 所以爲亨. 以說說物, 恐陷諂邪, 其利在於貞正. 故曰“兌, 亨, 利貞.”
注
[注]說而違剛則諂이요 剛而違說則暴니 剛中而柔外는 所以說以利貞也라 剛中故로 利貞이요 柔外故로 說亨이라
疏
外雖柔說, 而內德剛正, 則不畏邪諂. 內雖剛正, 而外迹柔說, 則不憂侵暴. 只爲剛中而柔外, 中外相濟, 故得說亨而利貞也.
疏
[疏]正義曰:廣明說義合於天人. 天爲剛德而有
, 是剛而不失其說也.
今說以利貞, 是上順乎天也. 人心說於惠澤, 能以惠澤說人, 是下應乎人也.
說以先民하면 民忘其勞하고 說以犯難하면 民忘其死하나니 說之大에 民勸矣哉인저
疏
[疏]正義曰:說以先民民忘其勞以下, 歎美說之所致, 亦申明應人之法,
先以說豫撫民, 然後使之從事, 則民皆竭力, 忘其從事之勞, 故曰“說以先民, 民忘其勞”也.
‘說以犯難 民忘其死’者, 先以說豫勞民, 然後使之犯難, 則民皆授命, 忘其犯難之死, 故曰“說以犯難, 民忘其死”也.
施說於人, 所致如此, 豈非說義之大, 能使民勸勉矣哉. 故曰“說之大, 民勸矣哉.”
疏
[疏]正義曰:‘麗澤 兌’者,
兩澤相連, 潤說之盛, 故曰“麗澤, 兌”也.
‘君子以朋友講習’者, 同門曰朋, 同志曰友, 朋友聚居, 講習道義, 相說之盛, 莫過於此也. 故君子象之, 以朋友講習也.
注
[注]
居兌之初
하여 應不在一
하여 无所黨係
하니 和兌之謂也
라 說不在諂
하니 履斯而行
이면 未見有疑之者
하니 吉其宜矣
라
疏
[疏]正義曰:初九居兌之初, 應不在一, 无所私說, 說之和也. 說物以和, 何往不吉, 故曰“和兌, 吉”也.
注
[注]說不失中하여 有孚者也니 失位而說은 孚吉이라야 乃悔亡也라
疏
[疏]正義曰:九二說不失中, 有信者也, 說而有信, 則吉從之, 故曰“孚兌, 吉”也.
然履失其位, 有信而吉, 乃得亡悔, 故曰“孚兌, 吉, 悔亡”也.
疏
[疏]正義曰:‘信志也’者, 失位而得吉, 是其志信也.
注
[注]以陰柔之質로 履非其位하여 來求說者也니 非正而求說은 邪佞者也라
疏
[疏]正義曰:
而以不正來說, 佞邪之道, 故曰“來兌, 凶”也.
疏
[疏]正義曰:‘位不當’者, 由位不當, 所以致凶也.
注
[注]商은 商量裁制之謂也라 介는 隔也라 三爲佞說하니 將近至尊이라
故로 四以剛德으로 裁而隔之하여 匡內制外하니 是以未寧也라 處於幾近하여 閑邪介疾하니 宜其有喜也라
疏
[疏]正義曰:‘商兌未寧’者, 商, 商量裁制之謂也. 夫佞邪之人, 國之疾也, 三爲佞說, 將近至尊.
故四以剛德, 裁而隔之, 使三不得進, 匡內制外, 未遑寧處, 故曰“商兌未寧.”
疏
[疏]正義曰:‘有慶’者, 四能匡內制外, 介疾除邪, 此之爲喜, 乃爲至尊所善, 天下蒙賴, 故言“有慶”也.
注
[注]比於上六하여 而與相得하니 處尊正之位하여 不說信乎陽하고 而說信乎陰은 孚于剝之義也라 剝之爲義는 小人道長之謂라
疏
九五, 處尊正之位, 下无其應, 比於上六, 與之相得, 是說信於小人, 故曰“孚于剝.” 信而成剝, 危之道也, 故曰“有厲.”
注
[注]以正當之位로 信於小人而疏君子라 故로 曰 位正當也라하니라
注
[注]以夫陰質로 最處說後하니 靜退者也라 故로 必見引然後에 乃說也라
疏
[疏]正義曰:‘未光也’者, 雖免躁求之凶, 亦有後時之失, 所以經无吉文, 以其道未光故也.
疏
正義曰:‘兌’는 기뻐함이니, 〈說卦傳〉에 “萬物을 기쁘게 하는 것은 못[澤]보다 더 기쁜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兌卦는 못을 형상한 卦이다. 그러므로 ‘兌’로 卦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못은 만물을 적셔주어 자라게 하니, 이 때문에 萬物이 모두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의 일에 베풀면 人君이 은혜를 가지고 백성을 길러주어서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이 기뻐함은 형통함이 되는 이유이다. 기쁨으로써 남을 기쁘게 하면 아첨함과 간사함에 빠질까 염려되므로 그 이로움이 貞正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兌는 형통하니,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兌는 기뻐함이니, 剛이 中에 있고 柔가 밖에 있어서 기뻐하되 貞함이 이롭다.
注
기뻐하면서 剛함을 어기면 아첨이고 剛하면서 기쁨을 어기면 포악함이니, 剛이 中에 있고 밖이 유순함은 기뻐하되 貞함이 이로운 까닭이다. 剛이 中에 있으므로 貞함이 이롭고, 柔가 밖에 있으므로 기뻐하여 형통한 것이다.
疏
正義曰:[兌 說也] 卦의 이름을 訓한 것이다.
[剛中而柔外 說以利貞] 이는 九二와 九五가 剛으로서 中에 있고 上六과 六三이 柔로서 밖에 처함을 가지고 ‘兌는 형통하니 貞함이 이로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밖이 비록 유순하고 기뻐하나 안의 德이 剛正하면 간사함과 아첨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이 비록 剛正하나 밖의 자취가 부드럽고 기뻐하면 침해하고 포악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다만 剛이 中에 있고 柔가 밖에 있기 때문에 中과 밖이 서로 구제함이 된다. 그러므로 ‘기뻐하되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疏
正義曰:기뻐하는 뜻이 하늘과 사람에 부합함을 넓혀 밝힌 것이다. 하늘은 剛한 德이 되는데 柔로 다스림이 있으니, 이는 剛하면서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기뻐하되 貞함이 이로움은 위로 하늘에 순한 것이요, 人心이 惠澤을 기뻐하니 능히 혜택으로써 남을 기쁘게 함은 이는 아래로 사람에 應하는 것이다.
기쁨으로써 백성에게 먼저 하면 백성들이 수고로움을 잊고, 기쁨으로써 難을 범하면 백성들이 그 죽음을 잊나니, 기쁨이 큼에 백성들이 권면되도다.”
疏
正義曰:‘說以先民 民忘其勞’ 이하는 기쁨이 이루는 바[所致]를 탄미한 것이고, 또한 사람에게 應하는 법을 거듭 밝힌 것인바,
먼저 기쁨으로써 백성을 어루만진 뒤에 그들로 하여금 일을 따르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 그 일을 따르는 수고로움을 잊게 된다. 그러므로 “기쁨으로써 백성에게 먼저 하면 백성들이 수고로움을 잊는다.”라고 한 것이다.
[說以犯難 民忘其死] 먼저 기쁨으로써 백성들을 위로한 뒤에 그들로 하여금 難을 犯하게 하면 백성들이 모두 목숨을 바쳐서 難을 犯하는 죽음을 잊게 된다. 그러므로 “기쁨으로써 難을 범하면 백성들이 그 죽음을 잊는다.”라고 한 것이다.
기쁨을 남에게 베풀면 그 이루는 바가 이와 같으니, 어찌 기쁨의 뜻이 큰 것이 아니겠는가. 능히 백성들로 하여금 권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쁨이 큼에 백성들이 권면되도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連해 있는 못이 兌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朋友간에 講習한다.”
注
麗는 連과 같으니, 기쁨을 베푸는 盛함이 이보다 더 盛한 것이 없다.
疏
正義曰:[麗澤 兌] ‘麗’는 連과 같으니, 두 못이 서로 連해 있음은 적셔주고 기쁘게 함이 盛한 것이다. 그러므로 “連해 있는 못이 兌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朋友講習] 同門을 ‘朋’이라 하고 同志를 ‘友’라 하니, 朋友가 모여 거처하면서 道義를 講習함은 서로 기뻐함의 盛함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것을 본받아서 붕우간에 講習하는 것이다.
注
兌의 처음에 거하여 應이 한곳에 있지 않아서 黨에 매여 있는 바가 없으니, 和하여 기뻐함을 이른다. 기쁨이 아첨에 있지 않으니, 이것을 밟고서 가면 의심하는 자가 있음을 보지 못할 것이니, 吉함이 당연하다.
疏
正義曰:初九가 兌의 처음에 거하여 應이 한곳에 있지 않아서 사사로이 기뻐하는 바가 없으니, 기뻐하여 和한 것이다. 남을 기쁘게 하기를 和로써 하면 어디로 간들 吉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和하여 기뻐함이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和兌의 吉함은 행함에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行未疑] 기뻐함이 아첨이 되지 않으니, 이것을 밟고서 가면 의심하는 자를 보지 못하니, 이 때문에 吉함을 얻는 것이다.
九二는 信實한 기쁨이니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어진다.
注
기뻐하면서 中을 잃지 않아서 信實함이 있는 자이니, 正位를 잃고 기뻐함은 신실하여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九二가 기뻐하면서 中을 잃지 않아서 信實함이 있는 자이니, 기뻐하면서 신실함이 있으면 吉함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신실한 기쁨이니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밟은 것이 正位를 잃었으니, 신실함이 있어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信實한 기쁨이니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어진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孚兌의 吉함은 뜻이 信實한 것이다.”
疏
正義曰:[信志也] 正位를 잃었으나 吉함을 얻었으니, 이는 뜻이 信實한 것이다.
注
陰柔의 자질로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와서 기쁨을 구하는 자이니, 바르지 않으면서 기쁨을 구함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이다.
疏
正義曰:六三은 陽의 자리인데, 陰이 와서 여기에 거하였으니, 이는 나와서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서 기뻐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不正함으로써 와서 기뻐함은 아첨하고 간사한 道이다. 그러므로 “와서 기뻐함이니, 凶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來兌의 凶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位不當]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에 연유하니, 이 때문에 흉함을 이룬 것이다.
九四는 기뻐함을 헤아려 편안하지 못하니, 병을 막으면 기쁨이 있으리라.
注
‘商’은 商量하여 裁制함을 이른다. ‘介’는 막음이다. 六三은 아첨하고 기뻐함이 되는데 장차 至尊(九五)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九四가 剛한 德을 가지고 裁制하여 막아서 안을 바로잡고 밖을 裁制하니, 이 때문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가까운 곳에 처하여 간사함을 막고 병을 차단하니, 그 기쁨이 있음이 당연하다.
疏
正義曰:[商兌未寧] ‘商’은 商量하여 裁制함을 이른다.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은 나라의 병이니, 六三은 아첨하고 기뻐함이 되는데 장차 至尊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九四가 剛한 德을 가지고 裁制하여 막아서 六三으로 하여금 나오지 못하게 하여 안을 바로잡고 밖을 裁制해서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헤아리고 기뻐하여 편안하지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거처가 至尊에 가까워 간사함을 막고 병을 막으면 기쁨이 있음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병을 막으면 기쁨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九四의 기쁨은 福慶이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有慶] 九四가 능히 안을 바로잡고 밖을 裁制하여 병을 막아 간사함을 제거하니, 이것의 기쁨은 바로 至尊이 좋게 여기는 바가 되어서 天下가 그 혜택을 입는다. 그러므로 “福慶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九五는 剝(소인)을 믿으니, 위태로움이 있다.
注
上六과 가까이 있어서 서로 뜻이 맞으니, 높고 바른 자리에 처하여 陽을 기뻐하고 믿지 않고서 陰을 기뻐하고 믿음은 剝을 믿는 뜻이다. 剝의 뜻은 小人의 道가 자람을 이른다.
疏
正義曰:[剝] 小人의 道가 자라서 君子의 正道를 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소인을 일러 ‘剝’이라 한 것이다.
九五가 높고 바른 자리에 처하여 아래에 應이 없고 上六에 가까이 있어 上六과 더불어 서로 뜻이 맞으니, 이는 소인을 기뻐하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剝을 믿는다.”라고 한 것이다. 믿어서 剝을 이룸은 위태로운 道이다. 그러므로 “위태로움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剝을 믿음’은 자리가 바르고 합당한 것이다.”
注
바르고 합당한 자리로서 小人을 믿고 君子를 소원히 한다. 그러므로 “자리가 바르고 합당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位正當] 바르고 합당한 자리로서 마땅히 君子를 신임해야 하는데 小人을 믿는다. 그러므로 바르고 합당한 자리를 가지고 책망한 것이다.
注
陰의 자질로 기뻐함의 가장 뒤에 처하였으니, 고요히 물러가는 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끌어줌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기뻐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上六이 陰柔의 자질로 兌의 맨 뒤에 있으니, 이는 스스로 고요히 물러가는 자여서 스스로 나와 기쁨을 구하는 六三과는 같지 않으니, 반드시 타인이 이끌어준 뒤에야 비로소 기뻐한다. 그러므로 “이끌어주어야 기뻐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上六이 이끌어주어야 기뻐함은 光明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
正義曰:[未光也] 비록 조급히 구하는 凶함을 면하였으나 또한 때에 뒤늦은 실수가 있으니, 이 때문에 經文에 吉하다는 글이 없는 것인바, 그 道가 光明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