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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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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誥 第九
孔氏 傳 孔穎達 疏
武王崩 三監及淮夷叛하니라
[傳]이라 淮夷徐奄之屬 皆叛周
○監 視也
周公 相成王하여 將黜殷 作大誥
[傳]相 謂攝政이라 絶也 將以誅叛者之義 大誥天下
[疏]‘武王’至‘大誥’
○正義曰:武王旣崩, 管叔‧蔡叔與紂子武庚三人監殷民者, 又及淮夷共叛.
周公相成王, 攝王政, 將欲東征, 黜退殷君武庚之命, 以誅叛之義, 大誥天下, 史敍其事, 作大誥.
[疏]○傳‘三監’至‘叛周’
○正義曰:知‘三監’是管‧蔡‧商者, 以序上下相顧爲文. 此言“三監及淮夷叛.” 總擧諸叛之人也.
下云 “成王旣黜殷命, 殺武庚, 命微子啓代殷後.” 又言“成王旣伐管叔‧蔡叔, 以殷餘民封康叔.”
此序言三監叛, 將征之, 下篇之序, 歷言伐得三人, 足知下文管叔‧蔡叔‧武庚, 卽此‘三監’之謂, 知‘三監’是“管‧蔡‧商”也.
漢書地理志云 “周旣滅殷, 分其畿內爲三國, 詩 風 邶‧鄘‧衛是也.
邶以封紂子武庚, 鄘管叔尹之, 衛蔡叔尹之, 以監殷民, 謂之三監.” 先儒多同此說, 惟鄭玄以三監爲管‧蔡‧霍, 獨爲異耳.
謂之‘監’者, 當以殷之畿內, 被紂化日久, 未可以建諸侯, 且使三人監此殷民, 未是封建之也.
三人雖有其分, 互相監領, 不必獨主一方也. 史記衛世家云 “武王克殷, 封紂子武庚爲諸侯, 奉其先祀,
爲武庚未集, 恐有賊心, 乃令其弟管叔‧蔡叔傅相之.” 是言輔相武庚, 共監殷人, 故稱‘監’也.
序惟言“淮夷叛.” 傳言“淮夷徐奄之屬, 共叛周.”者, 以下序文云 “成王東伐淮夷, 遂踐奄, 作成王政.”
又云 “成王旣黜殷命, 滅淮夷, 作周官.” 又云 “魯侯伯禽宅曲阜, 徐夷竝興, 作費誓.”
彼三序者, 一時之事, 皆在周公歸政之後也. 多方篇, 數此諸國之罪云 “至于再, 至于三.”
得不以武王初崩已叛, 成王卽政又叛, 謂此爲再三也. 以此知“淮夷叛”者, 徐奄之屬, 皆叛也.
[疏]○傳‘相謂’至‘天下’
○正義曰:君奭序云 “召公爲保, 周公爲師, 相成王爲左右.” 於時成王爲天子, 自知政事, 二公爲臣輔助之,
此言“相成王”者, 有異於彼, 故辨之“相謂攝政.” 攝政者, 敎由公出, 不復關白成王耳, 仍以成王爲王, 故稱‘成王’.
鄭玄云 “黜, 貶退也.” ‘黜’實退名, 但此‘黜’乃殺其身, 絶其爵, 故以‘黜’爲絶也.
周公此行普伐諸叛, 獨言黜殷命者, 定四年左傳云 則此叛武庚爲主,
且顧微子之序, 故特言“黜殷命”也. “以誅叛者之義, 大誥天下.” 經皆是也.
大誥
[傳]陳大道以誥天下하니 遂以名篇이라
○誥 本亦作𢍎
[疏]‘大誥’
○正義曰:此陳伐叛之義, 以大誥天下, 而兵凶戰危, 非衆所欲, 故言煩重.
其自殷勤, 多止而更端, 故數言‘王曰’. 大意皆是陳說武庚之罪, 自言己之不能,
言己當繼父祖之功, 須去叛逆之賊, 人心旣從, 卜之又吉, 往伐無有不克, 勸人勉力用心.
此時武王初崩, 屬有此亂, 周公以臣伐君, 天下未察其志, 親弟猶尙致惑, 何況疏賤者乎. 周公慮其有向背之意, 故殷勤告之.
陳壽云 “皐陶之謨, 略而雅, 周公之誥, 煩而悉, 何則. 皐陶與舜禹共談, 周公與群下矢誓也.” 其意或亦然乎.
但君奭‧康誥, 乃與召公‧康叔語也. 其辭亦甚委悉, 抑亦當時設言, 自好煩復也.
管蔡導武庚爲亂, 此篇略於管蔡者, 猶難以伐弟爲言, 故專說武庚罪耳.


武王崩御하심에 三監淮夷가 반역하였다.
三監’은 管叔蔡叔이다. 淮夷徐戎나라 등속이 모두 나라에 반역하였다.
○‘’은 의 뜻이다.
周公成王을 도와 장차 나라 임금 武庚黜退(끊음)하려고 할 때에 〈반역자를 주살할 뜻으로 크게 천하에 고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大誥〉를 지었다.
’은 攝政을 이른다. ‘’은 의 뜻이다. 장차 반역한 자들을 주살할 뜻을 가지고 천하에 크게 고한 것이다.
書序의 [武王]에서 [大誥]까지
正義曰武王이 이미 붕어하심에 管叔蔡叔의 아들 武庚 등 세 사람으로서 나라 백성들을 감시하는 자와 淮夷가 함께 반역하였다.
周公成王을 도와 의 정사를 섭행하고, 장차 東征하여 나라 임금 武庚黜退하려고 할 때에 叛逆者를 주살할 뜻으로 크게 天下에 고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大誥〉를 지었다.
의 [三監]에서 [叛周]까지
正義曰:‘三監’이 바로 管叔蔡叔(武庚)이란 점을 〈공안국이〉 알았던 것은 書序에서 위아래를 서로 고려해서 문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三監淮夷가 반역했다.”라고 한 것은 여러 반역자를 총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아래에서 “成王이 이미 나라의 을 퇴출시키고 武庚을 죽이셨으며, 微子啓를 명하여 〈武庚을〉 대신해서 나라의 뒤를 삼았다.”라고 말하였고, 또 “成王이 이미 管叔蔡叔을 토벌하시고 나라의 餘民으로 康叔을 봉하셨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書序에서는 三監이 반역하니 장차 정벌할 것을 말하였고, 아랫書序에서는 세 사람을 쳐서 획득한 것을 내리 말하였으니, 아랫글의 管叔蔡叔武庚이 곧 여기의 ‘三監’을 이른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三監’이 바로 管叔蔡叔(武庚)이란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漢書≫ 〈地理志〉에 “나라가 이미 나라를 멸하고 그 畿內를 나누어 세 나라로 삼았으니, ≪詩經國風에서 말한 가 이것이다.
의 아들 武庚을 봉해주었고, 管叔이 맡고 蔡叔이 맡아서 나라의 백성들을 감시하였으니, 이를 일러 ‘三監’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先儒는 대부분 이 말과 같이 주장하였는데, 오직 鄭玄만이 ‘三監’을 管叔蔡叔霍叔으로 삼아 다른 견해를 보였을 뿐이다.
’이라 이른 것은, 응당 나라의 畿內에게 동화된 지 워낙 오래여서 諸侯를 세울 수 없거니와, 또한 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나라의 백성들을 감시하게 한 것은 封建을 한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은 비록 분담한 책임은 가졌지만, 상호적으로 監領한 것이지, 꼭 단독으로 한 지방을 주관한 것은 아니었다. ≪史記≫ 〈衛世家〉에 “武王나라를 쳐서 승리한 다음, 의 아들 武庚을 봉해 諸侯로 삼아서 그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는데,
武庚이 순히 따르지 않으므로 혹여 賊心을 가질까 염려해서 곧 그 아우 管叔蔡叔으로 하여금 돕도록 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武庚輔相하여 함께 나라 사람들을 감시함을 말하기 때문에 ‘’이라 칭한 것이다.
書序에서는 오직 “淮夷가 반역했다.”라고만 말하였는데, 에서는 “淮夷徐戎奄國의 등속이 함께 나라에 반역했다.”라고 한 것은, 아래 序文에서 “成王이 동쪽으로 淮夷를 정벌하고 드디어 奄國을 멸하여 〈그 백성들을 이사시키고서 誥命의 말을 지어 淮夷를 평정하고 奄國의 백성을 이주하는 政令을 말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成王政〉을 지었다.”라고 하고,
또 “成王이 이미 나라의 을 퇴출하고, 淮夷를 멸하니 〈이에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다. 淮夷를 멸하고 으로 돌아와 신하들에게 號令하여 주나라가 관직을 설치하고 나누어 인재를 등용하는 법을 말하였는데,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周官〉을 지었다.”라고 하고, 또 “魯侯 伯禽曲阜에 거주하고, 徐戎淮夷가 아울러 일어나므로 〈魯侯가 당시 方伯으로서 제후들을 거느리고 정벌할 때 땅에 이르러 士衆에게 誓戒하였는데, 史官이 그 誓戒하는 말을 기록하여〉 〈費誓〉를 지었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저 세 序文은 한때의 일로 모두 周公이 정무에 복귀한 뒤에 있었던 일을 다룬 것이다. 〈多方〉편에서 이 여러 나라의 죄를 세어 들추기를 “두 번에 이르고 세 번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니,
武王이 막 승하했을 때에 이미 반역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成王親政을 시작했을 때[卽政] 또 반역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再三’이라 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공안국은〉 “淮夷가 반역했다.”는 것은, 徐戎奄國의 등속이 모두 반역하였다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의 [相謂]에서 [天下]까지
正義曰:〈君奭〉의 書序에 “召公太保가 되고 周公太師가 되어 成王을 도와 右大臣이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때에 成王天子가 되어 스스로 정사를 할 줄 알고 두 은 신하가 되어 그를 도왔던 것이니,
여기서 말한 “成王을 도왔다.”라고 한 것은 저기의 경우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攝政을 이른다.”라고 변별한 것이다. ‘攝政’이란 政敎周公으로부터 나오고 다시 成王에게 사뢰지 않는 것일 뿐이고, 그대로 成王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成王’이라 칭한 것이다.
鄭玄은 “‘’은 貶退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 실제로 退(퇴출)의 명칭인데, 다만 이 ‘’이 바로 그 몸을 죽이고 그 벼슬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을 의 뜻으로 여긴 것이다.
周公이 이번 걸음에 널리 모든 반역자를 정벌하였는데, 유독 “나라의 을 퇴출했다.”라고만 말한 것은, ≪春秋左氏傳定公 4년 조에 “管叔蔡叔나라 〈유민들을〉 계도하여 나라 王室을 어지럽혔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반역은 武庚이 주도한 것이고,
또한 〈微子〉의 書序를 고려했기 때문에 다만 “나라의 을 퇴출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반역자를 주살한다는 뜻을 가지고 천하에 크게 고했다.”라고 한 것은 의 뜻이 모두 이러하기 때문이었다.
大道를 베풀어서 천하에 고하니, 드디어 을 명명하게 된 것이다.
는 어떤 에는 또한 ‘𢍎’로 되어 있다.
篇題의 [大誥]
正義曰:이는 반역자들을 정벌하겠다는 뜻을 베풀어서 크게 천하에 고한 것인데, 병기는 흉한 것이고 전쟁은 위험한 일이라, 대중이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타이르는 말이 자꾸 번거롭고 중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은근히 하는 말들은 〈맥락이〉 많이 끊어지고 말꼬리를 이리저리 바꾸기 때문에 ‘王曰’을 자주 말하게 되었다. 대강의 뜻은 모두 武庚의 죄를 떠벌려 말한 것인데, 스스로 자신의 불능한 점을 말하고 나서,
마땅히 父祖의 공을 계승하여 모름지기 반역의 도적을 제거해야 하는데 인심이 이미 따르고 거북점을 쳐도 또한 길하므로 가서 정벌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힘을 쓰고 마음을 다하도록 권면하였다.
이때는 武王이 막 돌아가시어 금방 이 있게 된 시점인데, 周公이 신하로서 임금을 치게 되니, 천하 사람들은 그 뜻을 살피지 못하였다. 친아우도 오히려 의혹을 가지거늘, 하물며 소원한 자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周公은 인심의 向背를 가르는 뜻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에 은근히 고한 것이다.
陳壽는 “皐陶謨慮는 간략하면서 우아하고 周公誥戒는 번잡하면서 장황하니, 그것은 왜 그러는 것일까. 皐陶임금‧임금과 함께 담론을 펼치고, 周公은 많은 부하들과 誓戒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또한 그럴듯하다.
단, 〈君奭〉과 〈康誥〉는 召公康叔하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또한 매우 자세하였으니, 아마도 당시에는 말을 할 때에 스스로 번거롭고 중복되는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管叔蔡叔武庚을 개도하여 을 일으켰는데, 이 에서 管叔蔡叔에 대하여 간략하게 다룬 것은, 오히려 아우를 치는 것을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로지 武庚의 죄만을 말했을 뿐이다.


역주
역주1 三監管蔡商 : 林之奇는 “漢나라 孔氏가 ‘三監은 管叔‧蔡叔과 商이다.’라고 하였으나 ‘商’은 아마도 武庚을 가리킬 것이다. 管叔과 蔡叔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는데, 만일 ‘武庚’을 三監의 수에 끼어 넣는다면 武庚은 과연 무엇을 감독하는가. 그러므로 ‘三監’은 鄭康成의 說을 따라 管叔‧蔡叔‧霍叔을 꼽아야 할 줄로 안다.[漢孔氏曰 三監 管蔡商 商蓋指武庚也 使管叔監之 若以武庚預三監之數 則武庚果何所監哉 故知三監 從鄭康成之說謂管蔡霍也]”라고 하였다.(≪尙書全解≫)
역주2 管蔡啓商 惎間王室 : 杜注에는 “周公이 攝政하자 管叔과 蔡叔이 紂의 아들 祿父(武庚)를 開導하여 〈周나라의〉 王室을 어지럽혔다.[周公攝政 管叔蔡叔開道紂子祿父 以毒亂王室]”라고 풀이하였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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