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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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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及庸蜀羌髳微盧彭濮人
[傳]八國 皆蠻夷戎狄으로 屬文王者國名이라 在西蜀叟하고
髳‧微 在巴蜀하고 盧‧彭 在西北하고 庸‧濮 在江漢之南하니라
[疏]傳‘八國’至‘之南’
○正義曰:九州之外, 四夷大名, 則東夷‧西戎‧南蠻‧北狄, 其在當方, 或南有戎而西有夷,
此八國竝非華夏, 故大判言之, “皆蠻夷戎狄, 屬文王者國名”也. 此八國, 皆西南夷也.
文王國在於西, 故西南夷先屬焉. 大劉以蜀是蜀郡, 顯然可知, 孔不說,
又退庸就濮解之, 故以次先解羌. 云“羌在西蜀叟.”者, 漢世西南之夷, 蜀名爲大, 故傳據蜀而說.
左思蜀都賦云 “之豪, 時來時往.” 是蜀都分爲三, 羌在其西, 故云 “西蜀叟.”
叟者, 蜀夷之別名, 故後漢書 “興平元年, 馬騰‧劉範, 謀誅李傕, 益州牧劉焉遣叟兵五千人助之.” 是蜀夷有名叟者也.
“髳‧微在巴蜀”者, 巴在蜀之東偏, 漢之巴郡所治江州縣也. “盧‧彭在西北”者, 在東蜀之西北也.
文十八年左傳稱 “庸與百濮伐楚, 楚遂滅庸.” 是庸‧濮江漢之南.


의 사람들아.
이들 여덟 나라는 모두 으로 文王에 속한 나라 이름이다. 西蜀叟에 위치해 있었고,
巴蜀에 위치해 있었고, 은 서쪽‧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江漢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의 [八國]에서 [之南]까지
正義曰九州 밖에 있었던 사방 오랑캐의 總稱東夷西戎南蠻北狄으로 그들은 각각 해당 방위에 처해 있었지만, 더러는 남쪽에 이 있기도 하고 서쪽에 가 있기도 하였다.
이들 여덟 나라는 모두 華夏(중국)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나누어서 말하기를 “모두 으로 文王에 속한 나라의 이름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이 여덟 나라는 모두 서쪽‧남쪽의 오랑캐들이었다.
文王의 나라가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쪽‧남쪽의 오랑캐가 먼저 귀속한 것이다. 大劉(劉焯)가 蜀郡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孔安國이 설명하지 않았고,
또 ‘’을 물려 ‘’ 앞으로 보내서 풀이하였기 때문에 차례대로 ‘’을 풀이하기를 “西蜀叟에 위치해 있었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漢代의 서쪽‧남쪽 오랑캐들이었는데, ‘’이란 이름이 크게 알려졌기 때문에 孔傳은 ‘’에 의거해서 설명한 것이다.
左思의 〈蜀都賦〉에 “三蜀의 호걸들이 수시로 왕래했다.”라고 하였으니, 이 蜀都가 나뉘어 셋이 되었는데, 이 그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西蜀叟’라고 한 것이다.
’란 것은 蜀夷의 딴 이름이기 때문에 ≪後漢書≫에 “興平 元年馬騰劉範李傕의 주벌을 도모할 때 益州牧 劉焉叟兵 5천 명을 보내 도왔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蜀夷 중에 ‘’란 이름을 가진 종족이 있었던 것이다.
巴蜀에 위치해 있었다.”라고 한 ‘’는 곧 의 동쪽에 있었으니, 漢代巴郡이 다스리던 江州縣이었다. “은 서쪽‧북쪽에 위치해 있었다.”라고 한 것은 東蜀의 서쪽‧북쪽에 있었다.
春秋左氏傳文公 18년 조에서 “百濮과 함께 나라를 치니, 나라가 결국 을 멸망시켰다.”라고 칭한 이 江漢의 남쪽에 있었다.


역주
역주1 三蜀 : 본래 하나의 蜀國이었던 것이 漢나라의 高祖와 武帝 시대를 거치면서 蜀郡‧廣漢‧犍爲로 나뉘어졌다.
역주2 (西)[在] : 저본에는 ‘西’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西’가 ‘在’로 되어 있으니, 고치는 것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在’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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