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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4)

상서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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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筮共違于人하면
[傳]皆逆이라
用靜하면하고 用作하면하리니다
[傳]安以守常則吉하고 動則凶이라
[疏]‘七稽’至‘之言’
○正義曰:‘稽疑’者, 言王者考正疑事. 當選擇知卜筮者而建立之, 以爲卜筮人, 注+謂立爲卜人筮人之官也. 旣立其官, 乃命以卜筮之職.
云卜兆有五, 曰雨兆, 如雨下也. 曰霽兆, 如雨止也. 曰雺兆, 氣蒙闇也. 曰圛兆, 氣落驛不連屬也.
曰克兆, 相交也. 筮卦有二重, 二體乃成一卦. 曰貞, 謂內卦也, 曰悔, 謂外卦也.
卜筮兆卦, 其法有七事, 其卜兆用五, 雨‧霽‧蒙‧驛‧克也. 其筮占用二, 貞與悔也.
卜筮皆就此七者, 推衍其變, 立是知卜筮人, 使作卜筮之官. 其卜筮必用三代之法,
三人占之, 若其所占不同, 而其善鈞者, 則從二人之言, 言以此法考正疑事也.
[疏]○傳‘龜曰’至‘立之’
○正義曰:‘龜曰卜 蓍曰筮’, 曲禮文也. 考正疑事, 當選擇知卜筮人而建立之.
建亦立也, 復言之耳. 鄭‧王皆以建‧立爲二, 言將考疑事, 選擇可立者, 立爲卜人筮人.
[疏]○傳‘兆相’至‘常法’
○正義曰:此上五者, 灼龜爲兆, 其璺拆形狀有五種, 是“卜兆之常法”也. 說文云 “霽, 雨止也.” ‘霽’似雨止, 則‘雨’似雨下.
鄭玄曰 “霽如雨止者, 雲在上也.” ‘雺’聲近蒙, 詩云 “零雨其.” 則濛是闇之義,
故以雺爲兆, 蒙是陰闇也. ‘圛’卽驛也, 故以爲兆. “氣落驛不連屬.” ‘落驛’, 希疏之意也.
‘雨’‧‘霽’旣相對, 則‘蒙’‧‘驛’亦相對, 故‘驛’爲落驛氣不連屬, 則‘雺’爲氣連蒙闇也.
王肅云 “‘圛’, 霍驛消減如雲陰, ‘雺’, 天氣下地不應, 闇冥也.” 其意如孔言.
鄭玄以‘圛’爲明, 言“色澤光明也.” “‘雺’者, 氣澤鬱鬱冥冥也.” 自以‘明’‧‘闇’相對, 異於孔也.
‘克’謂兆相交錯. 王肅云 “兆相侵入, 蓋兆爲二拆, 其拆相交也.” 鄭玄云 “克者, 如雨氣色相侵入.”
卜筮之事, 體用難明, 故先儒各以意說, 未知孰得其本. 今之用龜, 其兆橫者爲土, 立者爲木,
斜向徑者爲金, 背徑者爲火, 因兆而細曲者爲水, 不知與此五者同異如何. 此五兆不言‘一曰’‧‘二曰’者, 灼龜所遇, 無先後也.
[疏]○傳‘內卦’至‘曰悔’
○正義曰:僖十五年左傳云, 秦伯伐晉, 卜徒父筮之. 其卦遇蠱, 蠱卦巽下艮上,
說卦云, 巽爲風, 艮爲山. 其占云 “蠱之貞, 風也, 其悔, 山也.”
是內卦爲貞, 外卦爲悔也. 筮法爻從下起, 故以下體爲內, 上體爲外.
下體爲本, 因而重之, 故以下卦爲貞. 貞, 正也, 言下體是其正. 鄭玄云 “悔之言晦, 晦猶終也.”
晦是月之終, 故以爲終, 言上體是其終也. 下體言正, 以見上體不正, 上體言終, 以見下體爲始, 二名互相明也.
[疏]○傳‘立是’至‘三人’
○正義曰:此經 “卜五占用二衍忒”, 孔不爲傳, 鄭玄云 “‘卜五占用’ 謂雨‧霽‧蒙‧驛‧克也,
‘二衍忒’ 謂貞‧悔也.” 斷‘用’從上句, ‘二衍忒’者, 指謂筮事.
王肅云 “‘卜五’, 筮短龜長, 故卜多而筮少. ‘占用二’者, 以貞‧悔占六爻. ‘衍忒’者, 當推衍其爻義以極其意.”
‘卜五 占二’, 其義當如王解, 其‘衍忒’宜總謂卜筮, 皆當衍其義, 極其變, 非獨筮衍而卜否也.
傳言“立是知卜筮人, 使爲卜筮之事.”者, 言經之此文覆述上句 “立卜筮人”也.
言‘三人占’, 是占此卜筮, 法當有三人. 周禮 “太卜掌兆之法, .
掌三易之法, 一曰連山, 二曰歸藏, 三曰周易.” 杜子春以爲“玉兆, 帝顓頊之兆, 瓦兆, 帝堯之兆.”
又云 “連山, 虙犧. 歸藏, 黃帝.” 三兆三易皆非夏殷, 而孔意必以三代夏殷周法者, 以周禮指言‘一曰’‧‘二曰’, 不辯時代之名.
案考工記云, 夏曰世室, 殷曰重屋, 周曰明堂. 又禮記郊特牲云 “夏收, 殷冔(후), 周冕.”
皆以夏殷周三代相因, 明三易亦夏殷周相因之法. 子春之言, 孔所不取.
鄭玄易贊亦云 “夏曰連山, 殷曰歸藏.” 與孔同也. 所言三兆三易, 必是三代異法, 故傳以爲“夏殷周卜筮各.”
三代異法, 三法竝卜, 法有一人, 故三人也. “從二人之言”者, 二人爲善旣鈞, 故從衆也.
若三人之內賢智不等, 雖少從賢, 不從衆也. ‘善鈞從衆’, 成六年左傳文. 旣言“三法竝卜.” 嫌筮不然, 故又云 “卜筮各三人”也.
經惟言三占從二, 何知不一法而三占, 而知‘三法竝用’者, 金縢云 “乃卜三龜, 一習吉.”
儀禮士喪卜葬, 占者三人, 貴賤俱用三龜, 知卜筮竝用三代法也.
[疏]○傳‘將擧’至‘決之’
○正義曰:非有所擧, 則自不卜, 故云 “將擧事.” 事有疑, 則當卜筮.
人君先盡己心以謀慮之, 次及卿衆民, 人謀猶不能定, 然後問卜筮以決之. 故先言‘乃心’, 後言‘卜筮’也.
鄭玄云 “卿士, 六卿掌事者.” 然則‘謀及卿士’, 以卿爲首耳, 其大夫及士亦在焉. 以下惟言‘庶人’, 明大夫及士寄‘卿’文以見之矣.
周禮 “小司寇掌外朝之政, 以致萬民而詢焉. 一曰詢國危, 二曰詢國遷, 三曰詢立君.” 是有大疑而詢衆也.
又曰 “小司寇以敍進而問焉.” 是謀及之也. 大疑者, 不要是彼三詢, 其謀及則同也.
謀及庶人, 必是大事, 若小事不必詢於萬民, 或謀及庶人在官者耳.
小司寇又曰 “以三剌斷庶民獄訟之中, 一曰訊群臣, 二曰訊群吏, 三曰訊萬民.”
彼‘群臣’‧‘群吏’分而爲二, 此惟言‘卿士’者, 彼將斷獄, 令衆議然後行刑, 故臣與民爲三,
其人主待衆議而決之, 此則人主自疑, 故一人主爲一, 又總群臣爲一也.
[疏]○傳‘人心’至‘於吉’
○正義曰:人主與卿士庶民皆從, 是人心和順也. 此必臣民皆從, 乃問卜筮, 而進龜筮於上者, 尊神物, 故先言之.
不在‘汝則’之上者, 卜當有主, 故以人爲先, 下三事亦然. 改‘卜’言‘龜’者, ‘卜’是請問之意,
吉凶龜占, 兆告以人, 故改言‘龜’也. ‘筮’則本是蓍名, 故不須改也.
[疏]○傳‘動不’至‘吉’
○正義曰:物貴和同, 故大同之吉, 延及於後. 宣三年左傳稱“成王定鼎, 卜世三十, 卜年七百.” 是“後世遇吉.”
[疏]○傳‘三從’至‘擧事’
○正義曰:此與下二事, 皆是三從二逆, 除龜‧筮以外, 有汝與卿士‧庶民, 分三者各爲一從二逆, 嫌其貴賤有異, 從逆或殊,
故三者各以有一從爲主, 見其爲吉同也. 方論得吉, 以從者爲主, 故次言‘卿士從’, 下言‘庶民從’也.
以從爲主, 故退‘汝則’於下. 傳解其意, 卿士從者, “君臣不同”也, 庶民從者, “民與上異心”也.
解臣民與君異心, 得其筮之意也. 不言四從一逆者, 吉可知, 不假言之也.
四從之內, 雖龜筮相違, 亦爲吉, 以其從者多也. 若三從之內, 龜筮相違, 雖不如龜筮俱從, 猶勝下龜筮相違, 二從三逆.
必知然者, 以下傳云 “從三逆, 龜筮相違.” 旣計從之多少, 明從多則吉.
故杜預云 “龜筮同卿士之數者, 是龜筮雖靈, 不至越於人也.” 上言‘庶人’, 又言‘庶民’者, 嫌‘庶人’惟指在官者, 變‘人’言‘民’見其同也.
民人之賤, 得與卿士敵者, 貴者雖貴, 未必謀慮長, 故通以民爲一, 令與君臣等也.
[疏]○傳‘民與’至‘決之’
○正義曰:天子聖人, 庶民愚賤, 得爲識見同者, 但聖人生知, 不假卜筮, 垂敎作訓, 晦跡同凡,
且庶民旣衆, 以衆情可否, 亦得上敵於聖. 故老子云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是也.
[疏]○傳‘二從’至‘征伐’
○正義曰:此‘二從三逆’爲小吉, 故猶可擧事. ‘內’謂國內, “故可以祭祀冠婚.” ‘外’謂境外,
“故不可以出師征伐.” 征伐事大, 此非大吉故也. 此經 “龜從, 筮逆.” 其筮從, 龜逆, 爲吉亦同.
故傳言 “龜筮相違.” 見龜筮之智等也. 若龜筮智等, 而僖四年左傳云 “筮短龜長”者,
於時, 晉獻公, 欲以驪姬爲夫人, 卜旣不吉, 而更令筮之, 神靈不以實告.
筮而得吉, 必欲用之, 卜人欲令公舍筮從卜, 故曰 “筮短龜長.” 非是龜實長也.
易繫辭云 “蓍之德, 圓而神, 卦之德, 方以智, 神以知來, 智以藏往.”
然則知來藏往, 是爲極妙, 雖龜之長, 無以加此. 聖人演筮爲易, 所知豈是短乎.
明彼長短之說, 乃是有爲言耳. 此“二從三逆.” 以汝與龜爲二從耳.
卿士庶民, 課有一從, 亦是二從, 凶吉亦同, 故不復設文, 同可知也.
若然, 汝‧卿士‧庶民皆逆, 龜‧筮竝從, 則亦是二從三逆, 而經無文者, 若君與臣民皆逆, 本自不問卜矣, 何有龜從筮從之理也.
前三從之內, 龜筮旣從, 君與卿士庶民, 各有一從, 以配龜筮, 凡有三條.
若惟君與卿士從配龜, 爲一條, 或君與庶民從配龜, 又爲一條, 或卿士庶民從配龜, 又爲一條, 凡有三條.
若筮從龜逆, 其事亦然. 二從三逆, 君配龜從, 爲一條, 於經已具.
卿士配龜從, 爲二條, 庶民配龜從, 爲條. 若筮從龜逆, 以人配筮, 其事亦同.
案周禮筮人 “國之大事, 先筮而後卜.” 鄭玄云 “於筮之凶則止.” 何有筮逆龜從及龜筮俱違者.
崔靈恩以爲“筮用三代之占, 若三占之俱主凶, 則止不卜, 卽鄭注周禮 ‘筮凶則止.’是也.”
若三占二逆一從, 凶猶不決, 雖有筮逆, 猶得更卜, 故此有筮逆龜從之事.
或筮凶則止而不卜, 乃是鄭玄之意, 非是周禮經文, 未必孔之所取. 曲禮云 “卜筮不相襲.”
鄭云 “卜不吉則又筮, 筮不吉則又卜, 是謂瀆龜筮.” 周禮太卜小事筮, 大事卜, 應筮而又用卜, 應卜而又用筮.
及國之大事, 先筮後卜, 不吉之後, 更作卜筮, 如此之等, 是爲相襲. 皆據吉凶分明, 不可重爲卜筮,
若吉凶未決, 於事尙疑者, 則得更爲卜筮. 僖二十五年晉侯卜納王, 得阪泉之兆, 曰 “吾不堪也.”
公曰 “筮之.” 遇大有之睽. 又哀九年晉趙鞅卜救鄭, 遇水適火, 又筮之, 遇泰之需之類是也.
周禮旣先筮後卜, 而春秋時先卜後筮者, 不能依禮故也.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사람의 뜻을 어겼다면
모두 거역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하고, 움직이면 할 것입니다.
편안히 常道를 지키면 하고 움직이면 하다는 것이다.
의 [七稽]에서 [之言]까지
正義曰:‘稽疑’란 王者가 의심나는 일을 상고하여 바로잡음을 말한 것이다. 응당 거북점과 시초점을 칠 줄 아는 자를 골라서 그들을 세워 거북점과 시초점 치는 사람으로 삼는 것이니 注+그들을 세워서 卜人筮人의 관직으로 삼는 것을 이른다. 이미 그 관직을 세우고서 이에 卜筮의 직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卜兆에 다섯 가지가 있다.”라는 것은, 곧 ‘雨兆’는 비가 내린 것과 같은 현상이다. ‘霽兆’는 비가 그친 것과 같은 현상이다. ‘雺兆’는 蒙闇(어둠)한 현상이다. ‘圛兆’는 落驛(稀疎)하여 연속되지 않는 현상이다.
克兆’는 서로 교착된 현상이다. 筮卦에는 2重卦가 있으니, 2(上體下體)가 곧 1를 이룬다. ‘’은 內卦를 이르고, ‘’는 外卦를 이른다.
거북점과 시초점의 兆卦는 그 이 일곱 가지 일이 있는데, 그 거북점의 조짐은 다섯 가지를 쓰니 바로 이다. 그 시초점은 두 가지를 쓰니 바로 이다.
거북점과 시초점은 모두 이 일곱 가지에 입각하여 그 변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니, 이 거북점과 시초점을 칠 줄 아는 사람을 세워서 거북점과 시초점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삼게 한 것이다. 그 거북점과 시초점은 반드시 〈三代을 사용하고,
세 사람이 점을 쳐서 만일 그 점괘가 동일하지 않으나 그 의견이 동등하게 훌륭하여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경우는 두 사람의 의견을 따르니, 이 을 가지고 의심나는 일을 결정함을 말한 것이다.
의 [龜曰]에서 [立之]까지
正義曰:[龜曰卜 蓍曰筮] ≪禮記≫ 〈曲禮〉의 글이다. 의심나는 일을 결정할 때에는 마땅히 거북점과 시초점을 칠 줄 아는 사람을 골라서 세워야 한다.
’ 또한 의 뜻이니, 중복해서 말했을 뿐이다. 鄭玄王肅은 모두 ‘’과 ‘’을 둘로 보아 “장차 의심나는 일을 상고할 때에는 세울 만한 이를 골라 세워서 거북점 치는 사람과 시초점 치는 사람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 [兆相]에서 [常法]까지
正義曰:이 위의 다섯 가지는 거북껍질을 불로 지져 조짐을 만드는데 그 갈라진 형상에 다섯 종류가 있으니, 이것이 “卜兆常法이다.”란 것이다. ≪說文解字≫에 “‘’는 비가 그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는 비가 그친 듯한 것이라면 ‘’는 비가 내린 듯한 것이다.
鄭玄은 “‘는 비가 그친 것과 같다.’는 것은 구름 기색이 위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은 발음이 ‘(몽)’에 가깝다. ≪詩經≫ 〈豳風 東山〉에 “내리는 비 자욱하더니라.”고 하였으니. ‘’은 바로 (어둠)의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을 조짐으로 여긴 것이니, ‘’은 바로 陰闇의 뜻이다. ‘’은 곧 이기 때문에 조짐으로 여긴 것이다. “落驛하여 연속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 ‘落驛’은 稀疎의 뜻이다.
’‧‘’가 이미 서로 가 되었고, ‘’‧‘’ 또한 서로 가 된다. 그러므로 ‘’이 落驛하여 가 연속되지 않는 것이니, ‘’은 가 연하여 蒙闇한 것이다.
王肅은 “‘’은 霍驛(飛走하는 모양)하여 消減한 것이 마치 구름의 그늘과 같은 형태이고, ‘’은 하늘의 가 내려감에 땅이 응하지 아니하여 闇冥한 형태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孔安國의 말과 같다.
鄭玄은 ‘’을 의 뜻으로 여겨 “色澤光明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은 氣澤이 칙칙하고 어둑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과 ‘’을 서로 를 하였으니, 공안국과 다르게 풀이한 것이다.
’은 조짐의 상태가 이리저리 엇걸려 뒤섞인 것을 이른다. 王肅은 “조짐이 서로 침입한 것이니, 아마 조짐이 둘로 갈라져서 그 갈라진 것이 서로 교착된 상태리라.”고 하였고, 鄭玄은 “‘’은 비의 氣色이 서로 침입한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거북점과 시초점에 관한 일은 그 體用이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에 先儒들이 각각 뜻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그 누가 그 본의를 터득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거북을 이용함에 있어서는 그 조짐이 가로로 된 것은 ‘’의 형태로 여기고 곧장 선 것은 ‘’의 형태로 여기고,
비스듬히 경사진 것은 ‘’의 형태로 여기고, 등이 경사진 것은 ‘’의 형태로 여기고, 조짐으로 인하여 가늘게 굽은 것은 ‘’의 형태로 여기는데, 이 다섯 가지와 더불어 그 同異가 어떠한지는 모르겠다. 이 다섯 가지의 조짐에서 ‘一曰’‧‘二曰’을 말하지 않은 것은 거북껍질을 불로 지져서 만나는 현상이 선후가 없기 때문이다.
의 [內卦]에서 [曰悔]까지
正義曰:≪春秋左氏傳僖公 15년 조에 의하면, 나라 임금이 나라를 정벌하려고 할 때에 나라의 卜士徒父가 시초점을 쳐서 그 蠱卦가 뽑혔다고 한다. 蠱卦巽卦가 아래에 놓이고 艮卦가 위에 놓인 인데,
周易≫ 〈說卦傳〉에 “이 되고, 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 占辭에 “蠱卦이고, 그 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內卦이 되고, 外卦가 된 것이다. 筮法는 아래로 좇아 일어나기 때문에 下體內卦로 삼고, 上體外卦를 삼는 것이다.
下體가 근본이 되고 그것을 인하여 거듭하기 때문에 下卦으로 여긴다. ‘’은 의 뜻이니, 下體가 바로 그 임을 말한 것이다. 鄭玄은 “‘’는 란 말이니, 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믐은 바로 그 달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니, 上體가 바로 그 임을 말한 것이다. 下體에서 을 말하여 上體가 바르지 못함을 나타냈고, 上體에서 을 말하여 下體가 됨을 나타냈으니, 두 가지 이름이 상호적으로 밝혀졌다.
의 [立是]에서 [三人]까지
正義曰:이 의 “卜五占用二衍忒”에 대하여 孔安國을 달지 않았는데, 鄭玄은 “‘卜五占用’은 을 이르고,
二衍忒’은 를 이른다.”라고 하여 ‘’자에서 〈문장을〉 끊어 윗로 붙이고, ‘二衍忒’은 시초점 치는 일을 가리켜 말하였으며,
王肅은 “‘卜五’란 시초점은 불확실하고 거북점은 확실하기 때문에 거북점은 우수하고, 시초점은 열등한 것이다. ‘占用二’란 로써 6를 점치는 것이다. ‘衍忒’이란 응당 그 의 뜻을 推究하여 그 뜻을 모두 밝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卜五 占二’는 그 뜻이 응당 王肅의 풀이와 같아야 하고, 그 ‘衍忒’은 의당 거북점과 시초점을 총괄해서 이르는 것이니, 모두 마땅히 그 뜻을 추구하여 그 변함을 극도로 밝혀야 하기 때문에 유독 시초점만 추구하고 거북점은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에서 “이 거북점과 시초점 칠 줄 아는 사람을 세워서 거북점과 시초점 치는 일을 하게 한다.”라고 한 것은 의 이 글이 윗 의 “거북점을 치고 시초점을 치는 사람을 세운다.”는 것을 중복하여 기술함을 말한 것이다.
三人占’이란 말은 바로 이 거북점과 시초점을 칠 적에는 법에 응당 세 사람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周禮≫ 〈春官 大卜〉에 “大卜三兆을 관장하니, 첫째는 玉兆요, 둘째는 瓦兆요, 셋째는 原兆이다.
三易을 관장하니, 첫째는 ≪連山≫이요, 둘째는 ≪歸藏≫이요, 셋째는 ≪周易≫이다.”라고 하였다. 杜子春은 “玉兆帝顓頊요, 瓦兆帝堯요, 〈原兆有周이다.〉”라고 하고,
또 “≪連山≫은 虙犧이요. ≪歸藏≫은 黃帝이요, 〈≪周易≫은 神農이다.〉”라고 하였다. 三兆三易은 모두 나라와 나라의 것이 아니건만, 孔安國이 반드시 三代으로 여긴 것은 ≪周禮≫에서 ‘一曰’‧‘二曰’이라고만 가리켜 말하고 시대의 이름을 변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펴보건대, ≪周禮≫ 〈冬官考工記 匠人〉에는 “나라는 世室이라 하고, 나라는 重屋이라 하고, 나라는 明堂이라 했다.”라 하고, 또 ≪禮記≫ 〈郊特牲〉에는 “나라에서는 ‘’라는 을, 나라에서는 ‘’라는 을, 나라에서는 ‘’이라는 을 사용했다.”라고 하였다.
모두 三代가 서로 인습했기 때문에 三易가 서로 인습한 임을 밝힌 것이다. 杜子春의 말은 孔安國이 취하지 않은 것이다.
鄭玄의 ≪易贊≫에도 역시 “나라는 ≪連山≫, 나라는 ≪歸藏≫이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孔安國과 같은 것이다. 말한 바 ‘三兆三易’은 필시 三代을 다르게 한 것이기 때문에 에서 “의 거북점과 시초점이 각각 달랐다.”라고 하였다.
三代을 다르게 했기 때문에 三代의 법을 아울러 점을 친 것으로 여긴 것이니, 에 각각 한 사람을 두기 때문에 세 사람인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두 사람의 의견이 이미 훌륭하여 그 우열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이다.
만일 세 사람 중에 賢智가 동등하지 않으면 비록 소수라도 어진 사람을 따르고 여러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善鈞從衆’은 ≪春秋左氏傳成公 6년 조의 글이다. “三代의 법을 아울러 점을 쳤다.”라고 이미 말했으니, 시초점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혐의를 살까 싶었기 때문에 또 “거북점과 시초점에 각각 세 사람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에서는 오직 “세 사람이 점을 칠 경우, 두 사람의 말을 따른다.”라고만 말했을 뿐인데, 어떻게 一代의 법으로 세 번 점치지 않은 것임을 알고, 어떻게 三代의 법을 아울러 쓰는 것임을 알았는가는, 〈金縢〉에 “이에 세 거북에게 점을 쳐보니, 다 같이 할 것이라는 점괘가 거듭되었다.”라고 하였고,
儀禮≫ 〈士喪禮〉에서 장삿날을 두고 거북점을 칠 때에 점치는 세 사람은 貴賤 간에 모두 세 마리의 거북을 사용하였으므로, 거북점과 시초점에 아울러 三代을 썼다는 것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의 [將擧]에서 [決之]까지
正義曰:거행하는 바가 없으면 자연 거북점을 치지 않기 때문에 “장차 일을 거행하려면”이라고 한 것이다. 일에 의문점이 있으면 마땅히 거북점과 시초점을 쳐야 한다.
임금이 먼저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謀慮를 하고, 그 다음으로 卿士와 여러 백성들과도 謀慮를 할 것이며, 사람들의 謀慮가 오히려 능히 정해지지 못한 연후에 거북과 시초에게 물어서 결정한다. 그러므로 먼저 ‘乃心’을 말하고, 뒤에 ‘卜筮’를 말한 것이다.
鄭玄은 “卿士六卿으로 일을 관장한 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謀及卿士’는 으로 우두머리를 삼았을 뿐이니, 大夫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오직 ‘庶人’만을 말하였으니, 분명 大夫를 ‘’을 다룬 글에 붙여서 보인 것이다.
周禮≫ 〈秋官 小司寇〉에 “小司寇外朝의 정사를 관장하여 만백성까지 불러 물어보았다. 첫째는 나라의 위태로운 일을 물어보고, 둘째는 國都를 옮기는 일을 물어보고, 셋째는 임금을 세우는 일을 물어본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큰 의문이 있을 때에 대중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周禮≫에 또 이르기를 “小司寇는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서 왕의 질문을 받는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謀慮가 미쳐가는 순서이다. 큰 의문은 저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물어보는 것을 요하지 않으니, 그것은 謀慮가 미쳐가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謀慮庶人에게 미쳐가는 것은 반드시 큰 사안일 때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고, 작은 사안 같은 것은 만백성에게 꼭 물어보지 않고 혹 모려가 庶人으로 관직에 있는 자에게만 미쳐갈 뿐이다.
小司寇〉에 또 “세 번 묻는 방법으로 庶民에 대한 獄訟을 공정하게 단정하니, 첫째는 群臣에게 묻고, 둘째는 群吏에게 묻고, 셋째는 萬民에게 묻는다.”라고 하였다.
저기서는 ‘群臣’과 ‘群吏’를 나누어 둘로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오직 ‘卿士’만을 말하였으니, 그것은, 저기서는 장차 옥사를 단정하려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의논하게 한 연후에 을 행하기 때문에 신하와 백성을 셋으로 만든 다음,
그 임금이 여러 사람들의 의논을 기다려서 결정하였던 것이고, 여기서는 임금이 스스로 의심하기 때문에 임금이 하나가 되고, 또 群臣을 총합하여 하나로 만든 것이다.
의 [人心]에서 [於吉]까지
正義曰:임금 및 卿士庶民이 모두 따랐으니, 이는 人心和順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신하와 백성이 모두 따르자, 이에 거북과 시초에게 물은 것인데, 거북과 시초를 위에 올린 것은 神物을 높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말한 것이다.
汝則’의 위에 두지 않은 것은 점치는 데는 마땅히 주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우선으로 한 것이니, 아래의 세 가지 일도 역시 그런 것이다. ‘’을 고쳐 ‘’로 말한 것은 ‘’은 바로 請問하는 뜻이고,
吉凶은 거북으로 점을 치며 조짐은 사람을 가지고 고하기 때문에 ‘’로 고쳐서 말한 것이다. ‘’의 경우는 본시 시초의 이름이기 때문에 고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의 [動不]에서 [遇吉]까지
正義曰和同을 귀히 여기기 때문에 大同이 후세에 미치는 것이다. ≪春秋左氏傳宣公 3년 조에 “成王이 〈郟鄏(겹욕)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가〉 몇 나 갈 것인가를 점을 쳤더니 30가 갈 것으로 조짐이 나타나고, 몇 년이나 갈 것인가를 점을 쳤더니 700년이 갈 것으로 조짐이 나타났다.”라고 칭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後世함을 만난다.”라는 것이다.
의 [三從]에서 [擧事]까지
正義曰:이는 아래의 두 가지 일과 함께 모두가 셋은 따르고 둘은 거역한 것이니, 거북과 시초를 제외하면 당신 및 卿士庶民이 남는데, 셋으로 나눌 경우, 각각 하나는 따르고 둘은 거역한 셈이니, 그 貴賤의 신분이 달라서 따르고 거역하는 것이 혹 다를까 혐의하였다.
그러므로 세 가지를 각각 하나가 따르는 것을 위주로 해서 그 함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였다. 바야흐로 함을 얻는 것을 논함에 있어서는 따르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다음에는 ‘卿士가 따름’을 말하고, 아래에서는 ‘庶民이 따름’을 말하였다.
따르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汝則’을 아래로 물렸다. 에서 그 뜻을 풀이하되, 卿士가 따른 경우는 “君臣이 같지 않았다.”라고 하고, 庶民이 따른 경우는 “백성과 윗사람이 마음을 달리했다.”라고 하였다.
신하와 백성이 임금과 마음을 달리해서 점을 치게 된 뜻을 풀이한 것이다. 넷이 따르고 하나가 거역하는 경우를 말하지 않은 것은 함을 알 수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넷이 따른 안에는 비록 거북점과 시초점이 서로 어기더라도 또한 함이 되니, 따른 자가 많기 때문이다. 만일 세 가지가 따르는 경우 중에 거북점과 시초점이 서로 어긴다면, 비록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따르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래의 거북점과 시초점이 서로 어겨서 둘은 따르고 셋은 거역하는 것보다는 낫다.
반드시 그러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래 에 “둘이 따르고 셋이 거역한 것은 거북점과 시초점이 서로 어긴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따르는 쪽의 다소를 계산해서 따른 쪽이 많으면 하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杜預는 “거북점과 시초점이 卿士의 숫자와 같을 경우, 이는 거북점과 시초점이 아무리 신령스럽다 하더라도 사람을 뛰어넘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위에서는 ‘庶人’이라 말하고, 〈여기서는〉 또 ‘庶民’이라 말한 것은 ‘庶人’은 관직에 있는 자를 가리킨 것인가 하는 혐의를 할까 싶어 ‘’을 변경하여 ‘’으로 말해서 그 동일한 것임을 보였다.
民人의 천한 신분이 卿士와 더불어 대등하게 된 것은, 귀한 사람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반드시 謀慮가 심장하진 못하기 때문에 통틀어 으로 통일하여 君臣과 더불어 동등하게 한 것이다.
의 [民與]에서 [決之]까지
正義曰天子聖人이고, 庶民愚賤하지만 識見이 동등할 수 있는 것은, 다만 聖人은 나면서 를 알므로 卜筮를 빌리지 않고 교훈을 남기나 자취를 숨겨 범상한 사람과 동일한 것이며,
庶民은 이미 대중이거니와 가부에 대한 대중의 의견은 또한 위로 성인과 대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老子≫에 “聖人은 일정한 마음이 없고 백성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의 [二從]에서 [征伐]까지
正義曰:이는 ‘둘은 따르고 셋은 거역한 것’을 小吉로 삼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거행할 수 있는 것이다. ‘’는 나라 안을 이른다. 그러므로 “祭祀를 지내거나 冠禮婚禮는 행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는 국경 밖을 이른다.
그러므로 “군사를 내어 정벌하는 것은 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정벌은 일이 큰 것이고, 이는 大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에서 “거북점은 따르고 시초점은 거역했다.”라고 하였는데, 시초점이 따르고 거북점이 거역해도 한 것은 역시 같다.
그러므로 에서 “거북점과 시초점이 서로 어겼다.”라고 하여 거북과 시초의 지혜가 동등함을 보인 것이다. 거북과 시초의 지혜가 동등했는데도, ≪春秋左氏傳僖公 4년 조에서는 “시초점은 불확실한 것이고(맞는 확률이 낮고) 거북점은 확실한 것이다.(맞는 확률이 높다)”라고 한 것은,
이때에 獻公驪姬夫人으로 삼으려고 하면서 거북점을 쳐서 점괘가 이미 不吉하게 나오자, 다시 시초점을 치게 하니, 神靈이 사실대로 고하지 않았다.
시초점을 쳐서 吉卦를 얻자, 반드시 그 를 쓰려고 하니, 거북점 치는 사람이 僖公으로 하여금 시초점을 버리고 거북점을 따르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시초점은 불확실한 것이고 거북점은 확실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지, 거북점이 실제로 확실한 것만은 아니다.
周易≫ 〈繫辭傳 〉에 “시초의 은 둥글어 神妙하고 은 모나서 지혜로우며, 으로써 미래를 알고 지혜로써 지나간 일을 보관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미래를 알고 지나간 일을 보관하는 것이 바로 극도로 신묘한 것이니, 비록 거북점의 확실한 것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는 것이다. 聖人이 시초점을 연역하여 을 만들었는데, 아는 바가 어찌 불확실하였겠는가.
분명 저 확실하다느니, 불확실하다느니 하는 말은 곧 까닭이 있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여기의 “둘은 따르고 셋은 거역했다.”란 것은 당신과 거북 둘만이 따랐을 뿐이다.
卿士庶民이 각각 하나씩의 따를 몫이 있으니 역시 둘이 따른다면 凶吉 또한 같기 때문에 다시 例文을 설정하지 않아도 같은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卿士庶民은 모두 거역하고 거북점과 시초점은 아울러 따랐다면 역시 둘은 따르고 셋은 거역한 셈인데, 例文이 없는 것은, 만일 임금 및 신하와 백성이 모두 거역했다면 본래 스스로 점을 쳐보지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는 이치가 있겠는가.
앞에서 세 가지가 따르는 경우 중에 거북점과 시초점이 이미 따르고 임금 및 卿士庶民이 각각 하나씩 따를 몫이 있어서 거북점과 시초점에 배합하여 모두 3조목이 있게 된 것이다.
만일 임금 및 卿士가 따라서 거북점에 배합한 것이 1조목이 되고, 혹 임금 및 庶民이 따라서 거북점에 배합한 것이 또 1조목이 되고, 혹 卿士庶民이 따라서 거북점에 배합한 것이 또 1조목이 되면 모두 3조목이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시초점은 따르고 거북점은 거역한다면 그 일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둘은 따르고 셋은 거역한 것은 임금이 거북점의 따른 것과 배합한 것이 1조목이 되니, 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卿士가 거북점의 따른 것에 배합한 것이 2조목이 되고, 庶民이 거북점의 따른 것에 배합한 것이 3조목이 된다. 만일 시초점은 따르고 거북점은 거역했을 경우에 사람을 시초점에 배합하면 그 일도 역시 같은 것이다.
상고하건대, ≪周禮≫ 〈春官 筮人〉에 “나라에 큰일이 있을 경우는 먼저 시초점을 치고 뒤에 거북점을 친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은 “시초점을 쳤을 적에 凶卦가 뽑혔으면 그대로 끝낸다.”라고 하였으니, 시초점은 거역하고 거북점은 따르는 것, 및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어기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崔靈恩은 “시초점은 三代의 점을 사용하여 만일 三代의 점이 모두 凶卦가 뽑혔다면 그것으로 끝내고 거북점을 치지 않으니, 곧 鄭玄이 ≪周禮≫에 주를 달 때에 ‘시초점이 凶卦가 뽑혔으면 그대로 끝낸다.’라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일 三代의 점을 쳤을 때에 둘은 거역하고 하나는 따라서 흉한 일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면 비록 시초점이 거역해도 오히려 다시 거북점을 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시초점은 거역하고 거북점은 따르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다.
혹 시초점이 凶卦가 뽑혔어도 그대로 끝내고 거북점을 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鄭玄의 생각이지, 이 ≪周禮≫의 經文이 아니니, 반드시 孔安國의 취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禮記≫ 〈曲禮〉에 “거북점과 시초점을 서로 잇달아 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은 “거북점이 不吉하면 또 시초점을 치고, 시초점이 불길하면 또 거북점을 치는 것, 이를 일러 거북점과 시초점을 번독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周禮≫ 〈春官 太卜〉에 의하면, 작은 일에는 시초점을 치고, 큰일에는 거북점을 쳤는데, 시초점을 치고 또 거북점을 쳤으며, 거북점을 치고 또 시초점을 쳤다.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에는 먼저 시초점을 치고 뒤에 거북점을 쳤으며, 불길한 뒤에는 다시 거북점과 시초점을 쳤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 곧 서로 잇달아 치는 것이다. 모두 吉凶이 분명해야 거듭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지 않고,
만일 길흉이 결정되지 못하여 일에 오히려 의심스러운 것은 다시 거북점과 시초점을 칠 수 있는 것이다. ≪春秋左氏傳僖公 25년에 文公이 〈나라로 도망가 있는 나라〉 襄王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卜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였더니, 〈黃帝가〉 阪泉에서 〈싸울 때와 같은〉 조짐을 얻었는데, 〈文公이〉 말하기를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라고 하자,
〈복언이 말하기를 “나라의 예가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나라 왕은 옛날의 황제에 해당합니다.”라고 하였다.〉 文公은 “그렇다면 시초점을 쳐보라.”라고 했다. 〈그래서 시초점을 쳐서〉 大有卦睽卦로 변하는 를 만났다. 또 哀公 9년에 나라 趙鞅나라를 구원하는 일로 거북점을 쳐서 물[]이 불[]로 가는 점괘를 만났고, 또 시초점을 쳐서 泰卦需卦로 변하는 를 만난 따위가 이것이다.
周禮≫에서 이미 먼저 시초점을 치고 뒤에 거북점을 쳤는데, 春秋時代에 먼저 거북점을 치고 뒤에 시초점을 친 것은 에 의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蒙)[濛] : 저본에는 ‘蒙’으로 되어 있으나, ≪詩經≫에 의거하여 ‘濛’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也)[者] : 저본에는 ‘也’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者’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고치는 것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者’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一)[三]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一’이 ‘三’으로 되어 있으니,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一曰玉兆……三曰原兆 : 鄭玄의 注에 “玉兆는 금이 가고 틈이 있는 자국이 옥처럼 생긴 것이고, 瓦兆는 폭발로 파열된 자국이 기와처럼 생긴 것이고, 原兆는 터지고 찢어진 자국이 原田(들녘의 논밭)처럼 생긴 것이다.[玉兆璺罅如玉 瓦兆暴裂如瓦 原兆拆裂如原田]”라고 하였다.
역주5 (以)[異]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傳文 및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異’로 바로잡았다.
역주6 (主)[士]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살펴보건대 ‘主’는 ‘士’가 되어야 하니,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된 것이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士’로 바로잡았다.
역주7 (逢)[遇] : 저본에는 ‘逢’으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遇’로 바로잡았다.
역주8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宋板에는 ‘一’이 ‘二’로 되어 있으니,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9 : 經文에 庶民이 따른 셋이니, 二의 잘못인 듯하다.

상서정의(4)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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