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注疏(5)

상서정의(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惟三月 周公 初于新邑洛에서 하시다
[傳]周公致政明年三月 始於新邑洛에서 用王命告商王之衆士
[疏]‘惟三月’至‘王士’
○正義曰:惟成王卽政之明年三月, 周公初始於所造新邑之洛, 用成王之命, 告商王之衆士. 言周公親至成周, 告新來者.
[疏]○傳‘周公’至‘衆士’
○正義曰:以洛誥之文, 成周與洛邑同時成也. 王以周公攝政七年十二月來至新邑, 明年卽政,
此篇繼王居洛之後, 故知是“致政明年之三月”也. 成周南臨洛水, 故云 “新邑洛.”
周公旣以致政在王都, 故‘新邑’, 成周. 以成王之命, 告商王之衆士.
鄭云 “成王元年三月, 周公自王城初往成周之邑, 用成王命, 告殷之衆士以撫安之.” 是也.


3월에 周公이 처음으로 새로 세운 도읍인 洛邑에서 商王들에게 고하셨다.
周公이 정권을 돌려준 이듬해 3월에 비로소 새로 세운 도읍인 洛邑에서 王命을 써서 商王의 여러 들에게 고하였다는 것이다.
의 [惟三月]에서 [王士]까지
正義曰成王이 집정한 이듬해 3월에 周公이 비로소 새로 세운 도읍인 洛邑에서 成王을 써서 商王의 여러 들에게 고하였다. 周公이 친히 成周에 이르러서 새로 온 자들에게 고하였다는 말이다.
의 [周公]에서 [衆士]까지
正義曰:〈洛誥〉의 글로 보면 成周洛邑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周公攝政한 7년 12월에 새로 세운 도읍에 와 이르렀고 이듬해에 집정하였으니,
洛邑에 거주한 뒤를 이은 것이기 때문에 〈孔安國은〉 이것이 “정권을 돌려준 이듬해 3월”임을 알았던 것이다. 成周는 남쪽으로 洛水에 임해있기 때문에 “新邑洛”이라고 한 것이다.
周公이 이미 정권을 돌려주고 王都에 있었기 때문에 ‘新邑’이 바로 成周이다. 成王을 가지고 商王의 여러 들에게 고한 것이다.
鄭玄이 “成王 원년 3월에 周公王城으로부터 처음 成周에 가서 成王으로 나라의 여러 들에게 고하여 어루만져 안정시켰다.”란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用告商王士 : 王安石은 “殷나라 백성들이 成周로 옮긴 것은 舊長이 다스린 곳을 따르기 때문에 먼저 그들에게 고한 것이다.[殷民遷于成周 從舊長所治 故先告之]”라고 하였다.
역주2 王士 : 兪樾(≪群經平議≫)은 ‘王臣’‧‘王人’‧‘王官’처럼 連文으로 보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