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湯孫太甲이 爲王不義하여 久爲小人之行하니 伊尹이 放之桐이라
作其卽位하사 爰知小人之依하사 能保惠于庶民하시며 不敢侮鰥寡하시니
傳
[傳]在桐三年에 思集用光하여 起就王位하니 於是知小人之所依는 依仁政이라 故로 能安順於衆民하고 不敢侮慢惸獨이라
傳
[傳]太甲亦以知小人之依라 故로 得久年이라 此以德優劣과 立年多少로 爲先後라 故祖甲在下라 殷家亦祖其功이라 故로 稱祖라
疏
○正義曰:其在殷王祖甲,
, 伊尹廢諸桐. 起其卽王之位, 於是知小人之所依.
依於仁政, 乃能安順於衆民, 不敢侮鰥寡惸獨, 故祖甲之享有殷國三十有三年. 亦言不逸得長壽也.
疏
○正義曰:以文在‘高宗’之下, 世次顚倒, 故特辨之, 此祖甲是湯孫太甲也.
‘爲王不義’, 謂湯初崩, ‘久爲小人之行, 故伊尹放之於桐’, 言其廢而復興, 爲下‘作其卽位’起本也. 王肅亦以祖甲爲太甲.
鄭玄云 “祖甲, 武丁子帝甲也. 有兄祖庚賢, 武丁欲廢兄立弟, 祖甲以此爲不義, 逃於人間, 故云久爲小人.”
案殷本紀云 “武丁崩, 子祖庚立. 祖庚崩, 弟祖甲立. 是爲帝甲, 淫亂, 殷道復衰.”
國語說殷事云
則帝甲是淫亂之主, 起亡殷之源, 寧當與二宗齊名, 擧之以戒無逸.
武丁賢王, 祖庚復賢, 以武丁之明, 無容廢長立少. 祖庚之賢, 誰所傳說.
武丁廢子, 事出何書.
造此語, 是負武丁而誣祖甲也.
疏
○正義曰:‘在桐三年’, 太甲序文, ‘思集用光’, 詩大雅文. 彼‘集’作‘輯’, ‘輯’, 和也.
彼鄭言公劉之遷豳, “思在和其民人, 用光大其道.” 此傳之意, 蓋言太甲之在桐也, 思得安集其身, 用光顯王政, 故起卽王位, 於是知小人之依.
依於仁政, 故能施行政敎, 安順於衆民, 不敢侮慢惸獨. 鰥寡之類, 尤可憐愍, 故特言之.
疏
○正義曰:傳於中宗云 “以敬畏之故, 得壽考之福.” “高宗之爲政, 小大無怨, 故亦享國永年.”
於此云 “太甲亦以知小人之依, 故得久年.” 各順其文而爲之說, 其言行善而得長壽, 經意三王同也.
以其世次顚倒, 故解之云, “此以德優劣‧立年多少爲先後, 故祖甲在太戊‧武丁之下.
諸書皆言‘太甲’, 此言‘祖甲’者, 殷家亦祖其功, 故稱之‘祖甲’.” 與二宗爲類, 惟見此篇, 必言祖其功, 亦未知其然.
殷之先君有祖乙‧祖辛‧祖丁, 稱祖多矣, 或可號之爲祖, 未必祖其功而存其廟也.
祖甲에 있어서는 왕이 되어 의롭지 못하여 오랜 기간 小人의 행동을 하니,
傳
湯의 손자인 太甲이 王이 되어 의롭지 못하여 오랜 기간 小人의 행동을 하자, 伊尹이 그를 桐宮으로 내쳤다.
일어나 즉위하시자 이에 小民들의 의지하는 바를 아셔서 능히 庶民을 安順하게 해주었으며, 감히 鰥寡를 업신여기지 않으셨으니,
傳
3년 동안 桐宮에 있으면서 〈그 몸을〉 安集하여 〈王政을〉 光顯할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 王位에 나아가자 이에 小民들이 의지하는 바를 알았다. 仁政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衆民(庶民)을 安順하게 해주고, 감히 고독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오만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祖甲이 나라를 향유한 기간이 33년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傳
太甲 또한 小民들이 의지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나라를 누릴 수 있었다. 이는 德의 優劣과 재위 연도의 多少를 가지고 先後를 삼았기 때문에 祖甲이 맨 아래에 놓인 것이다. 殷나라에서도 역시 그 功이 있는 이를 祖로 표시했기 때문에 ‘祖’라 칭한 것이다.
疏
○正義曰:殷나라 王 祖甲에 있어서는 처음 할아버지의 喪을 당했을 때에는 言行을 한 바가 의롭지 못했고, 또한 王이 되었을 때에는 오랜 기간 小人의 행동을 하였으므로 伊尹이 桐宮에 유폐시켰었는데, 일어나 王의 자리에 올라서는 이에 小人(小民)의 의지하는 바를 알았다.
仁政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에 능히 衆民(庶民)을 安順하게 해주고, 감히 鰥寡‧惸獨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祖甲이 殷나라를 향유한 기간이 33년이나 되었다. 또한 안일하지 않음이 長壽를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疏
○正義曰:글이 ‘高宗’의 아래에 놓여있어 世次가 顚倒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변별을 한 것인데, 이 祖甲은 바로 湯임금의 손자인 太甲이다.
‘爲王不義’는 湯임금이 처음 승하[崩]했을 시점에 〈있는 일〉을 이르고, ‘久爲小人之行 故伊尹放之於桐(오랜 기간 小人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伊尹이 그를 桐宮으로 내쳤다.)’은 유폐되었다가 다시 일어남을 말한 것이니, 아래 ‘作其卽位’의 원인이 된 것이다. 王肅도 祖甲을 太甲으로 여겼다.
鄭玄은 “祖甲은 武丁의 아들 帝甲이다. 兄 祖庚이란 이가 있어 현명했건만, 武丁이 兄을 폐기하고 아우를 세우려고 하자, 祖甲이 이것을 불의로 여기고 민간으로 도피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小人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를 상고해 보면 “武丁이 승하[崩]하자 아들 祖庚이 즉위하였다. 祖庚이 승하하자 아우 祖甲이 즉위하였으니, 이가 바로 帝甲인데 淫亂하므로 殷나라 道가 다시 쇠퇴하였다.”라고 하였다.
≪國語≫ 〈周語 下〉에서 殷나라의 일을 설명하기를 “帝甲이 〈殷나라의 道를〉 어지럽혀 7代에 망했다.”라고 하였으니, 帝甲은 바로 淫亂한 군주로 殷나라를 망하게 한 근원을 일으켰으니, 어찌 二宗(中宗과 高宗)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두고 그를 들어서 안일함이 없도록 경계해서야 되겠는가.
武丁은 어진 王이고 祖庚은 다시 어질었으니, 武丁의 명철로써 큰아들을 폐기하고 작은 아들을 세운 일이 없었을 것이다. 祖庚이 어질었다는 것은 누가 전한 말인가.
武丁이 아들을 폐기했다는 것은 그 사실이 어떤 책에서 나왔는가. 망령스럽게 이런 말을 조작했으니, 이것은 武丁을 저버리고 祖甲을 속인 꼴이다.
疏
○正義曰:‘在桐三年’은 〈太甲〉 書序의 글이고, ‘思集用光’은 ≪詩經≫ 〈大雅 公劉〉의 글이다. 저 ≪詩經≫에는 ‘集’이 ‘輯’으로 되어 있는데, ‘輯’은 和의 뜻이다.
저 ≪詩經≫에서 鄭玄은 公劉가 豳으로 옮기는 데 대해 말하기를 “그 인민을 和輯하고 그 道를 光大할 것에 생각을 두었다.”라고 하였는데, 이 傳의 뜻은 아마 太甲이 桐宮에 있을 때에 그 몸을 安集하여 王政을 光顯할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 王位에 나아가자 이에 小民들이 의지하는 바를 알았다.
仁政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政敎를 시행하고 衆民(庶民)을 安順하게 해주며, 감히 고독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오만을 부리지 않았던 것으로 여긴 것이리라. 鰥寡의 類는 더욱 가련하고 민망하기 때문에 특별히 말하였던 것이다.
疏
○正義曰:傳은 中宗에 대해서는 “경건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壽考의 福을 얻었다.”라고 하고, 〈高宗에 대해서는〉 “高宗이 정사를 함에 있어서 작고 큰 것을 막론하고 원망을 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오랜 기간 나라를 향유하게 되었다.”라고 하고,
여기서는 “太甲 또한 小民들의 의지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나라를 누릴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각각 그 글에 따라서 설명을 하였는데, 그 言行이 착해서 長壽를 얻었다는 것이니 經의 뜻은 세 분 王이 동일하였다.
다만 그 世次가 顚倒되었기 때문에 풀이하기를 “이는 德의 優劣과 재위 연도의 多少를 가지고 先後로 삼았기 때문에 祖甲이 太戊와 武丁의 아래에 놓인 것이다.
여러 책에서 모두 ‘太甲’이라 말하였는데, 여기에서 ‘祖甲’이라 말한 것은 殷나라에서도 역시 그 功이 있는 이를 祖로 표시했기 때문에 ‘祖甲’이라 칭한 것이다.”라고 했을 뿐이다. 二宗(中宗과 高宗)과 더불어 類를 한 것은 오직 이 篇에서만 볼 수 있는데, 반드시 그 功을 ‘祖’로 표시했다고 말했으니, 또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殷나라의 先君 중에 祖乙‧祖辛‧祖丁이 있어 祖라 칭한 분이 많았으니, 혹 祖를 號로 할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꼭 그 功이 있는 이를 祖로 표시해서 그 사당을 존재시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