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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5)

상서정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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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曰 君奭 我聞하니 在昔成湯 旣受命이어시늘
[傳]已放桀하고 受命爲天子
伊尹 格于皇天하며
[傳]佐湯하여 功至大이니 謂致太平이라
在太甲하여는 時則有若保衡하며
[傳]太甲繼湯하고 時則有如此伊尹爲保衡하니 言天下所取安 所取平이라
在太戊하여는
[傳]太甲之孫이라
時則有若伊陟臣扈하여 格于上帝하며 乂王家하며
[傳]伊陟臣扈 率伊尹之職하여 使其君不隕祖業이라 至天之功不隕이라 巫咸治王家 言不及二臣이라
在祖乙하여는 時則有若巫賢하며
[傳]祖乙 殷家亦祖其功이라 賢臣有如此巫賢이라 咸子
[傳]高宗卽位 甘盤佐之하고 後有傅說이라
[疏]‘公曰君奭’至‘甘盤’
○正義曰:言“時有若”者, 言當其時有如此人也, 指謂如此伊尹‧甘盤, 非謂別有如此人也.
以湯是殷之始王, 故言‘在昔’‧‘旣受命’, 見其爲天子也. 以下‘在太甲’‧‘在武丁’, 亦言其爲天子之時, 有如此臣也.
成湯未爲天子, 已得伊尹, 言‘旣受命’者, 以功格皇天, 在受命之後, 故言‘旣受命’也. ‘皇天’之與‘上帝’, 俱是天也, 變其文爾.
其功至於天帝, 謂致太平而天下和之也. 保衡‧伊尹, 一人也, 異時而別號.
‘伊尹’之下, 已言‘格于皇天’, ‘保衡’之下, 不言‘格于皇天’, 從可知也.
伊陟‧臣扈, 言‘格于上帝’, 則其時亦致太平, 故與伊尹文異而事同. 巫咸‧巫賢‧甘盤, 蓋功劣於彼三人, 故無格天之言.
[疏]○傳‘尹摯’至‘太平’
○正義曰:伊尹名摯, 諸子傳記有其文. ‘功至大天’, 猶堯“格于上下”, 知其謂致太平也.
[疏]○傳‘太甲’至‘取平’
○正義曰:據太甲之篇及諸子傳記, 太甲大臣惟有伊尹, 知卽保衡也.
說命云 “昔先正保衡, 作我先王, 佑我烈祖, 格于皇天.” 商頌那祀成湯稱爲‘烈祖’,
‘烈祖’, 湯之號, 言保衡佐湯, 明保衡卽是伊尹也. 詩稱“實維阿衡, 實左右商王.”
鄭玄云 “阿, 倚, 衡, 平也, 伊尹, 湯所依倚而取平, 至太甲改曰保衡, 保, 安也, 言天下所取安, 所取平.
此皆三公之官, 當時爲之號也.” 孔以太甲云 “嗣王不惠於阿衡”, 則太甲亦曰阿衡, 與鄭異也.
[疏]○傳‘太甲之孫’
○正義曰:史記殷本紀云 “太甲崩, 子沃丁立. 崩, 弟太庚立. 崩, 子小甲立. 崩, 弟雍己立. 崩, 弟太戊立.”
是太戊爲太甲之孫, 太庚之子. 三代表云 “小甲, 太庚弟, 雍己‧太戊, 又是小甲弟.” 則太戊亦是沃丁弟, 太甲子.
本紀‧世表, 俱出馬遷, 必有一誤. 孔於咸乂序傳云 “太戊, 沃丁弟之子.” 是太戊爲太甲之孫也.
[疏]○傳‘伊陟’至‘二臣’
○正義曰:伊尹 “格于皇天”, 此伊陟‧臣扈云 “格于上帝”, 其事旣同, 如此二臣, 能率循伊尹之職, 輔佐其君,
使其君不隕祖業, 故至天之功, 亦不隕墜也. 夏社序云 “湯旣勝夏, 欲遷其社, 不可. 作夏社‧疑至‧臣扈.”
則湯初有臣扈, 已爲大臣矣, 不得至今仍在, 與伊尹之子同時立功. 蓋二人名同, 或兩字一誤也.
案春秋范武子光輔五君, 或臣扈事湯而又事太戊也. ‘格于上帝’之下, 乃言“巫咸乂王家.”
則巫咸亦是賢臣, 俱能紹治王家之事而已, 其功不得至天, 言不及彼二臣.
[疏]○傳‘祖乙’至‘巫氏’
○正義曰:殷本紀云 “中宗崩, 子仲丁立. 崩, 弟外壬立. 崩, 弟河亶甲立. 崩, 子祖乙立.” 則祖乙, 是太戊之孫也.
孔以其人稱‘祖’, 故云 “殷家亦祖其功.” 賢是咸子, 相傳云然. 父子俱稱爲‘巫’, 知‘巫’爲氏也.
[疏]○傳‘高宗’至‘傅說’
○正義曰:命篇高宗云 “台小子舊學于甘盤, 旣乃遯於荒野.”
高宗未立之前, 已有甘盤, 免喪不言, 乃求傅說, 明其卽位之初, 有甘盤佐之, 甘盤卒後有傅說.
計傅說當有大功, 此惟數六人, 不言傅說者, 周公意所不言, 未知其故.


이 말씀하였다. “君奭아! 나는 듣건대, 옛날 成湯이 이미 하늘의 을 받으셨거늘,
이미 을 추방하고 나서 천명을 받아 天子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伊尹 같은 이가 있어 〈成湯을 보필하여 그 治績이〉 皇天에 이르렀으며,
尹摯임금을 보좌하여 그 이 하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니, 곧 태평시대를 이룩한 것을 이른다.
太甲에 있어서는 이때에 保衡 같은 이가 있었으며,
太甲임금을 계승하고, 이때에는 이와 같은 伊尹保衡으로 있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天下가 안녕을 취한 점과 태평을 취한 점을 말한 것이다.
太戊에 있어서는
太甲의 손자이다.
이때에 伊陟臣扈 같은 이가 있어 〈이〉 上帝에 이르렀으며, 또 巫咸王家를 다스렸으며,
伊陟臣扈伊尹의 직무를 이어받아 그 임금으로 하여금 祖業을 떨어뜨리지 않게 했기 때문에 하늘에 이른 이 떨어지지 않았다. “巫咸王家를 다스렸다.”라는 것은 두 신하(伊陟臣扈)에게 미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祖乙에 있어서는 이때에 巫賢 같은 이가 있었으며,
祖乙’이라 한 것은 나라에서도 그 이 있는 이를 ‘’로 표시했기 때문이다. 이때에 어진 신하로서 이와 같은 巫賢이 있었다. 巫咸의 아들이다. 다.
武丁에 있어서는 이때에 甘盤 같은 이가 있었다고 한다.
高宗이 즉위함에 甘盤이 보좌하였고, 뒤에 傅說이 있었다.
의 [公曰君奭]에서 [甘盤]까지
正義曰:“時則有若”이라고 말한 것은 그때를 당하여 이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니 이와 같은 伊尹甘盤을 가리켜 이른 것이지, 따로 이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이른 것이 아니다.
임금은 나라의 始王이었기 때문에 ‘在昔’이라고 하고 ‘旣受命’이라고 말해서 그가 天子가 되었음을 보인 것이다. 아래의 ‘在太甲’‧‘在武丁’ 역시 그들이 天子가 되었을 때에 이와 같은 신하들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成湯은 아직 天子가 되기 전에 이미 伊尹을 얻었는데, ‘旣受命’이라고 말한 것은 皇天에 이른 것이 을 받은 뒤에 있었기 때문에 ‘旣受命’이라고 말한 것이다. ‘皇天’과 ‘上帝’는 다 같이 하늘인데 그 글을 변경했을 뿐이다.
天帝에 이르렀다는 것은 太平을 이룩하여 天下가 화평함을 이른 것이다. ‘保衡’과 ‘伊尹’은 한 사람인데, 때가 다름에 따라 호칭을 따로 한 것이다.
伊尹’의 아래에서 이미 ‘格于皇天’이라 말하였기 때문에 ‘保衡’의 아래에서 ‘格于皇天’이라 말하지 않은 것을 따라서 알 수 있다.
伊陟臣扈의 경우는 ‘格于上帝’라 말하였으니, 그 때에도 또한 太平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伊尹과 더불어 글은 다르고 일은 같았다. 巫咸巫賢甘盤의 경우는 아마 이 저 세 사람보다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에 이르렀다는 말이 없는 것이리라.
의 [尹摯]에서 [太平]까지
正義曰伊尹의 이름이 ‘’라는 것은 諸子傳記에 그에 대한 글이 많다. ‘功至大天’은 임금의 ‘格于上下’와 같기 때문에 太平을 이룩한 점을 이른 것임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의 [太甲]에서 [取平]까지
正義曰:〈太甲〉편 및 諸子傳記에 의거하면, 太甲大臣에는 오직 伊尹만이 있었기 때문에 〈伊尹이〉 곧 保衡이란 점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說命 〉에 “옛날 先正保衡이 우리 先王을 흥기시키고, 우리 烈祖를 도와서 〈그 이〉 皇天에 이르렀다.”라고 하였으며, ≪詩經≫ 〈商頌 〉에서 成湯에게 제사 지내며 ‘烈祖’라고 칭하였는데,
烈祖’는 임금의 이니, 保衡임금을 도왔다고 말한 것은 保衡이 바로 伊尹임을 밝힌 것이다. ≪詩經≫ 〈商頌 長發〉에 “진실로 阿衡商王을 좌우에서 도왔도다.”라고 칭하였는데,
鄭玄이 “‘’는 의 뜻이고 ‘’은 의 뜻이니, 임금이 伊尹에게 의지해서 형평을 취한 바였는데, 太甲에 와서 ‘保衡’이라고 고쳤으니, ‘’는 의 뜻으로 天下가 안녕을 취하는 바이고 형평을 취하는 바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모두 三公의 벼슬인데, 당시에 칭호를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孔安國은 “〈太甲〉에 ‘嗣王阿衡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 고 하였은즉 太甲도 또한 ‘阿衡’이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鄭玄과 다르다.
의 [太甲之孫]
正義曰:≪史記≫ 〈殷本紀〉에는 “太甲이 승하[]하자 아들 沃丁이 즉위하였다. 〈沃丁이〉 승하하자 아우 太庚이 즉위하였다. 〈太庚이〉 승하하자 아들 小甲이 즉위하였다. 〈小甲이〉 승하하자 아우 雍己가 즉위하였다. 〈雍己가〉 승하하자 아우 太戊가 즉위하였다.”라고 하였으니,
太戊太甲의 손자이자 太庚의 아들이다. 〈三代世表〉에는 “小甲太庚의 아우이고, 雍己太戊는 또 小甲의 아우이다.”라고 하였으니, 太戊 또한 沃丁의 아우이자 太甲의 아들이다.
殷本紀〉와 〈三代世表〉는 모두 司馬遷에게서 나왔으니, 반드시 어느 하나는 잘못일 것이다. 孔安國은 〈咸乂〉의 書序 에서 “太戊沃丁 아우의 아들이다.”라고 하였으니, 太戊太甲의 손자인 셈이다.
의 [伊陟]에서 [二臣]까지
正義曰伊尹에 대해서는 “格于皇天”이라고 하였고, 이 伊陟臣扈에 대해서는 “格于上帝”라고 하였으니, 이 일은 이미 같으나 이와 같은 두 신하는 능히 伊尹의 직무를 이어받아 임금을 보좌하여
그 임금으로 하여금 祖業을 떨어뜨리지 않게 했기 때문에 하늘에 이른 이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夏社〉의 書序에 “임금이 이미 나라를 쳐서 승리하고 나서 그 를 옮기려 하니, 불가한 일이라 해서 중지하였다. 〈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夏社〉‧〈疑至〉‧〈臣扈〉를 지었다.”라고 하였은즉,
임금의 즉위 초에 있던 臣扈는 이미 大臣이 되었으므로 지금까지 생존하여 伊尹의 아들과 더불어 동시에 공을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니, 아마 두 사람으로 이름이 같거나 혹 두 글자 중에 하나가 틀렸을 것이다.
春秋≫를 상고하면 范武子는 〈文公襄公靈公成公景公 등〉 다섯 임금을 보필하였으니, 혹시 臣扈임금을 섬기고 또 太戊를 섬겼는가 보다. ‘格于上帝’의 아래에서 “巫咸王家를 다스렸다.”라고 말하였으니,
巫咸도 역시 어진 신하로서 모두 王家의 일을 이어 잘 다스렸을 뿐, 그 공은 하늘에 이르지 못했으니, 저 두 신하에게 미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의 [祖乙]에서 [巫氏]까지
正義曰:〈殷本紀〉에 “中宗이 승하[]하자 아들 仲丁이 즉위하였다. 〈仲丁이〉 승하하자 아우 外壬이 즉위하였다. 〈外壬이〉 승하하자 아우 河亶甲이 즉위하였다. 〈河亶甲이〉 승하하자 아들 祖乙이 즉위하였다.”라고 하였으니, 祖乙은 바로 太戊의 손자이다.
孔安國은 그 사람을 ‘’라 칭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도 또한 그 공이 있는 이를 ‘’로 표시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이 바로 巫咸의 아들이란 것은 그렇게 서로 전한 것이다. 父子를 모두 ‘’라 칭하였으므로, ‘’가 ‘’라는 것을 〈孔安國은〉 알았던 것이다.
의 [高宗]에서 [傅說]까지
正義曰:〈說命〉편에서 高宗이 “나 小子는 옛날 甘盤에게 〈先王를〉 배우다가 이윽고 〈학업을 중단하고〉 荒野로 물러가 살았다.”라고 하였다.
高宗이 아직 즉위하기 전에 이미 甘盤이 있었거니와, 〈高宗은〉 탈상을 하고 나서도 〈정사에 대해〉 말씀하지 않다가 이에 傅說을 만나서 즉위 초에 甘盤이 있어 도와 준 사실을 밝혔으니, 甘盤이 죽은 뒤에 傅說이 있게 된 셈이다.
헤아려보면 傅說은 응당 큰 공이 있었을 텐데, 여기서 오직 여섯 사람만 꼽고 傅說을 말하지 않은 것은 周公이 의중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역주
역주1 時則有若 : 蔡傳은 ‘時’자 위에 句를 끊은 孔傳을 따랐고, 呂祖謙과 夏僎 등은 ‘時’자 아래에서 句를 끊었다.
역주2 尹摯 : ≪史記集解≫에는 ‘尹’이 ‘伊’로 되어 있다. 山井鼎에 의하면, 古本에 ‘伊尹’으로 되어 있던 것이 뒤에 ‘尹摯’로 고쳐졌다고 한다.
역주3 (夫)[天] : 저본에는 ‘夫’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天’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巫咸 : 王夫之는 “孔安國과 蔡沈은 모두 ‘巫’를 氏로 여겼는데, 상고하건대, 大夫에게 氏를 준 것은 周나라에서 시작되었고, 黃帝에서 殷나라에 이르기까지는 오직 族姓만을 나누고 氏를 드러내지 않았으니, ‘巫’는 벼슬이었다.[孔蔡皆以巫爲氏 按大夫賜氏 始於周 黃帝至殷 唯分族姓 而不以氏顯 巫官也]”라고 하였다.(≪尙書稗疏≫)
역주5 在武丁時則有若甘盤 : 呂祖謙(≪增修東萊書說≫)은 “周公이 召公을 만류하면서 유독 武丁 때에 甘盤 같은 이가 있는 것만 말하고, 傅說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 發源과 開端을 모두 甘盤이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周公留召公 獨曰在武丁時 則有若甘盤 不曰傅說者 葢發源開端 皆甘盤也]”라고 하였고, 袁仁(≪尙書砭蔡編≫)은 “蔡傳에서 蘇氏(蘇軾)가 ‘武丁 때에 있어서 傅說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 하늘에 배향된 군주에게 配食되지 않았기 때문인가.’라고 한 말을 인용했는데,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두 예전 신하들을 말하기 때문에 오직 甘盤만을 든 것이니, 文王이 太公을 말하지 않고 高宗이 傅說을 말하지 않은 것이 모두 동일한 뜻이다.[蔡引蘇氏謂在武丁時不言傅說 豈傅說不配食于配天之主乎 此說非也 此處皆說舊臣 故惟擧甘盤 文王不言太公 高宗不言傅說 皆一意也]”라고 하였다.
역주6 [則] : 저본에는 없으나, 經文 및 宋刊 單疏本에 의거하여 ‘則’을 보충하였다.
역주7 (名)[多] : 저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多’로 바로잡았다.
역주8 (孔)[說] : 저본에는 ‘孔’으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說’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5) 책은 2020.12.29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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