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此敍諸侯見新王之事. 王出畢門, 在應門之內, 立於中庭.
太保召公爲西伯, 率西方諸侯, 入應門左, 立於門內之西廂也.
太師畢公爲東伯, 率東方諸侯, 入應門右, 立於門內之東廂也.
諸侯皆布陳一乘四匹之黃馬朱鬛, 以爲見新王之庭實.
諸侯爲王之賓, 共使一人少前進, 舉奉圭兼幣之辭, 言曰 “一二天子之臣, -在外爲蕃衛者-, 敢執土壤所有, 奠之於庭.”
既爲此言, 乃皆再拜稽首, 用盡禮致敬, 以正王爲天子也.
康王先爲太子, 以義嗣先人明德, 不以在喪爲嫌, 答諸侯之拜, 以示受其圭幣, 與之爲主也.
疏
○正義曰:二公率領諸侯, 知其“爲二伯, 各率其所掌諸侯.”曲禮所謂‘職方’者, 此之義也.
王肅云 “畢公代周公爲東伯, 故率東方諸侯.” 然則畢公是太師也.
當太師之名, 在太保之上, 此先言太保者, 於時太保領冢宰, 相王室, 任重, 故先言西方. 若使東伯任重, 亦當先言東方.
北面, 以東爲右, 西爲左, 入左入右, 隨其方爲位. 嫌東西相向, 故云“皆北面.” 將拜王, 明北面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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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諸侯朝見天子, 必獻國之所有, 以表忠敬之心, 故“諸侯皆陳四黃馬朱鬛以爲庭實.” 言實之於王庭也.
四馬曰‘乘’, 言‘乘黃’, 正是馬色黃矣. ‘黃’下言‘朱’, ‘朱’非馬色.
定十年左傳云 “宋公子地有白馬四. 公嬖向魋, 魋欲之. 公取而朱其尾․鬛以與之.”
於時諸侯其數必眾, 眾國皆陳四馬, 則非王庭所容. 諸侯各有所獻, 必當少陳之也.
鄭玄云 “六幣所以享也, 五等諸侯, 享天子用壁, 享后用琮. 用圭璋者, 二王之後也.”
此云 皆陳馬者, 下云 “奉圭兼幣”, 幣即馬是也, 圭是
馬之物.
鄭云 “此幣圭以馬, 蓋舉王者之後以言耳. 諸侯當璧以帛, 亦有庭實.”
然則此陳馬者, 是二王之後, 享王物也. 獨取此物, 以總表諸侯之意, 故云諸侯皆陳馬也.
圭亦享王之物, 下言‘奉圭’, 此不陳圭者, 圭奉以(文)[致]命, 不陳之也.
案覲禮諸侯享天子, “
” 此用乘黃者, 因喪禮而行朝, 故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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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天子於諸侯有不純臣之義, 故以諸侯爲賓. ‘稱’, 訓舉也.
‘舉奉圭兼幣之辭’, 以圭幣奉王而爲之作辭. 辭出一人之口而言‘一二’者, 見諸侯同爲此意, 意非一人也.
鄭玄云 “釋辭者一人, 其餘奠幣拜者稽首而已.”是也. 言‘衛’者, 諸侯之在四方, 皆爲天子蕃衛, 故曰‘臣衛’.
此時成王始崩, 即得有諸侯在京師者, 來朝而遇國喪, 遂因見新王也.
諸侯享天子, 其物甚眾, 非徒圭馬而已. 皆是土地所有, 故云 “敢執壤地所出而奠贄”也. 然‘舉奉圭兼幣’, 乃是享禮.
凡享禮, 則每一國事畢, 乃更餘國復入, 其朝則侯氏總入, 故鄭玄注曲禮云 “
, 受享於廟.” 是朝與享別.
此既諸侯總入而得有庭實享禮者, 以新朝嗣王, 因行享禮, 故鄭注云 “朝兼享禮也, 與常禮不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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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이는 제후諸侯들이 새 왕王을 뵙는 일을 서술한 것이다. 왕王이 필문畢門을 나가 응문應門의 안에 있어 중정中庭에 섰다.
태보太保 소공召公은 서백西伯이 되어 서방西方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리고 응문應門으로 들어와서 왼쪽에 서고, -문 안의 서쪽 사랑채에 섰다.-
태사太師 필공畢公은 동백東伯이 되어 동방東方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리고 응문應門으로 들어와서 오른쪽에 서서 -문 안의 동쪽 사랑채에 섰다.-
제후諸侯들이 모두 수레 한 채, 네 필의 누런 말로 갈기에 붉은색을 칠한 것을 진열하여 새 왕을 뵙는 정실庭實로 삼았다.
제후諸侯들이 왕王의 빈賓이 되어, 함께 한 사람을 시켜서 조금 앞으로 나아가 받든 규圭와 폐백을 곁들여서 들어 올리며 아뢰기를 “한두 명 천자天子의 신하는 -밖에 있어 번위蕃衛가 된 자- 감히 토양土壤에서 나온 것(토산물土産物)을 가지고 와서 뜰에 진열해 드립니다.”라고 하게 한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 말을 하고는 이에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예禮를 다하고 공경을 다해서 왕王이 천자天子가 됨을 정당화한 것이다.
강왕康王이 먼저 태자太子가 되고 의義로써 선인先人의 명덕明德을 이었으므로 상중에 있는 것을 혐의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제후諸侯들의 절에 답하여 그 규圭와 폐백을 받아 주군主君이 됨을 허여한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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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두 공公이 제후諸侯들을 거느렸기 때문에 “〈두 공公이〉 두 백伯이 되어 각각 그 관장한 제후들을 거느렸다.”는 점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이른바 ‘직방職方’이란 것이 이 뜻이다.
왕숙王肅은 “필공畢公이 주공周公을 대신해서 동백東伯이 되었기 때문에 동방東方의 제후諸侯를 거느렸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필공畢公이 바로 태사太師였던 것이다.
응당 태사太師의 이름이 태보太保의 위에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 먼저 태보太保를 말한 것은 이때에 태보太保가 총재冢宰를 겸임하고 왕실王室을 도와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먼저 서방西方을 말한 것이다. 만일 동백東伯이 책임이 무거웠다면 또한 응당 먼저 동방東方을 말했을 것이다.
북면北面은 동쪽을 오른쪽으로 삼고 서쪽을 왼쪽으로 삼으니, 〈응문應門으로〉 들어와 왼쪽에 서고 들어와 오른쪽에 선 것은 그 방위에 따라 자리를 정한 것이다. 동쪽과 서쪽이 서로 마주 본다는 오해를 살까 싶기 때문에 “모두 북면을 했다.”라고 한 것이다. 장차 왕王에게 절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면北面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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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제후諸侯가 천자天子를 조현朝見할 때에는 반드시 그 나라가 소유한 물건을 바쳐서 충경忠敬의 마음을 표하기 때문에 “제후諸侯들이 모두 네 필의 누런 말로 갈기가 붉은 것을 진열하여 정실庭實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왕王의 뜰에 가득 채움을 말한 것이다.
네 필의 말을 ‘승乘’이라 하는데, ‘승황乘黃’이라 말함은 정히 이 말의 색깔이 누런 것이다. ‘황黃’ 아래에서 ‘주朱’를 말하였는데, ‘주朱’는 말의 색깔이 아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0년 조에 “송宋나라 공자公子인 지地에게 백마白馬 4필이 있었는데, 송宋 경공景公이 사랑하는 상퇴向魋가 그 말을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경공景公은 그 말을 취해다가 꼬리와 갈기에 붉은색을 칠해서 상퇴向魋에게 넘겨주었다.”라고 하였으니,
옛사람은 붉은 갈기를 귀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朱’는 그 꼬리와 갈기에 붉은색을 칠한 것임을 〈공안국은〉 알았던 것이다.
이때에 제후諸侯는 그 수효가 반드시 여럿이었을 것인데, 여러 나라가 모두 네 필의 말을 진열한다면 왕王의 뜰이 다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제후諸侯들은 각각 드리는 바가 있을 터이니, 반드시 적게 진열해야 되었을 것이다.
살펴보면, ≪주례周禮≫ 〈추관秋官 소행인小行人〉에 “여섯 가지 폐백을 함께 사용하니, 규圭는 말[마馬]과 함께 사용하고, 장璋은 가죽과 함께 사용하고, 벽璧은 비단과 함께 사용하고,
종琮은 무늬 있는 비단과 함께 사용하고, 호琥는 수놓은 비단과 함께 사용하고, 황璜은 보黼무늬를 수놓은 비단과 함께 사용한다. 이 여섯 가지 물건은 제후諸侯들과 우호를 다지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여섯 가지 폐백은 향례享禮를 위한 것인데, 5등급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향례를 드릴 때에는 벽壁을 사용하고 향례를 드린 뒤에는 종琮을 사용한다. 규圭와 장璋을 사용하는 이는 두 분 왕王(하우夏禹와 은탕殷湯)의 후손들이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의 저 말과 같은 것은 제후諸侯들이 천자天子에게 향례를 드릴 때에 오직 두 분 왕王의 후손만이 말[마馬]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여기서 “모두 말을 진열했다.”는 것은 아래에서 말한 “받든 규圭와 폐백을 곁들였다.”란 폐백이 곧 말[마馬]이 이것이었으니, 규圭는 바로 말을 전달하는 물건이었다.
정현鄭玄은 “이 폐백에서 규圭는 말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은 아마 왕자王者의 후손을 들어서 말했을 뿐이리라. 제후諸侯는 응당 벽璧을 비단과 함께 사용했을 터이므로 또한 정실庭實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을 진열한 것은 바로 두 분 왕王의 후손이 왕王에게 향례를 드리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유독 이 물건만을 취하여 제후諸侯라는 뜻을 총괄하여 표시하였기 때문에 “제후諸侯가 모두 말을 진열했다.”라고 한 것이다.
규圭 또한 왕王에게 향례를 드리는 물건인데, 아래에서는 ‘봉규奉圭’라 말하고, 여기서는 규圭를 진열하지 않은 것은, 규圭는 받들어 명령만을 전달했을 뿐, 진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의례儀禮≫ 〈근례覲禮〉에서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향례를 하는 것을 살펴보면, “필마匹馬 중에서 뛰어난 놈을 뽑아서 〈앞잡이를 세우니,〉 아홉 필 말이 그를 따랐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승황乘黃’을 쓴 것은 상례喪禮로 인하여 조회를 행하였기 때문에 생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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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천자天子는 제후諸侯에 대하여 순전한 신하로 삼지 않는 의의가 있기 때문에 제후諸侯를 빈賓으로 삼은 것이다. ‘칭稱’은 거舉(들다)의 뜻으로 풀이한다.
‘규圭와 폐백을 왕王에게 받들어 올리면서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한둘’이라 말한 것은 제후諸侯들이 다 같이 이런 뜻을 가졌음을 보인 것이지, 뜻이 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정현鄭玄은 “말을 하는 이는 한 사람이고, 그 나머지 폐백을 드리고 절하는 자들은 머리만 조아렸을 뿐이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위衛’라 말한 것은 사방에 있는 제후가 모두 천자天子의 번위蕃衛이기 때문에 ‘신위臣衛’라 말한 것이다.
이때에 성왕成王이 갓 승하하였기 때문에 경사京師에 있는 제후諸侯들이 조회하러 와서 국상國喪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새 왕王을 뵙게 된 것이다.
제후諸侯가 천자天子에게 향례를 드릴 때에는 그 물건이 매우 많아, 비단 규圭․마馬뿐이 아니었다. 모두가 바로 토지土地의 소유이기 때문에 “감히 토지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폐백을 드린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받든 규圭와 폐백을 곁들어 든 것’은 바로 향례享禮이다.
무릇 향례享禮는 매양 일국一國의 일이 끝날 때마다 나머지 나라가 다시 들어오게 되므로 그 조회는 후씨侯氏가 다 들어오기 때문에 정현鄭玄이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주注를 달기를 “봄에는 조정에서 폐백을 받고, 묘당廟堂에서 향례를 받는다.”라고 하였으니, 이 조회와 향례는 구별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제후諸侯들이 모두 들어와서 정실庭實과 향례享禮가 있게 된 것이니, 사왕嗣王에게 새로 조회하고 인하여 향례享禮를 행했기 때문에 정현鄭玄의 주注에 “조회하고 향례享禮를 곁들인 것이니, 상례常禮와는 다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