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尙書正義(6)

상서정의(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상서정의(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王曰 嗚呼 三事曁大夫 敬爾有官하며 亂爾有政하여
[傳]歎而勅之하되 公卿已下 各敬居汝所有之官하며 治汝所有之職하라
以佑乃辟하고 永康兆民하면 萬邦 惟無斁이리라
[傳]言當敬治官政하여 以助汝君하고 長安天下兆民하면 則天下萬國 惟乃無厭我周德이리라
[疏]傳‘爲德’至‘可爲’
○正義曰:爲德者自得於己, 直道而行, 無所經營, 於心逸豫, 功成則譽顯, 而名益美也.
爲僞者行違其方, 枉道求進, 思念欺巧, 於心勞苦, 詐窮則道屈, 而事日益拙也. 以此故, 僞不可爲. 申說“無載爾僞”也.
王既伐東夷하니 肅慎來賀
[傳]海東諸夷 駒麗, 扶餘, 馯之屬이라 武王克商하고 皆通道焉이라
成王即政而叛하니 王伐而服之 肅慎氏來賀
○肅慎 馬本 作息慎云北夷也라하니라
說文作貉하여 北方豸種이라하고 孔子曰 라하니라
王俾榮伯하니 作賄肅慎之命이라
[傳]榮 國名이니 同姓諸侯 爲卿大夫 王使之爲命書하여 以幣賄賜肅慎之이라
○俾 馬本作辯이라
[疏]‘成王’至‘之命’
○正義曰:成王即政之初, 東夷背叛, 成王既伐而服之,
東北遠夷, 其國有名肅慎氏者, 以王戰勝, 遠來朝賀,
王賜以財賄, 使榮國之伯爲策書, 以命肅慎之夷, 嘉其慶賀, 慰其勞苦之意, 史敍其事, 作賄肅慎之命名篇也.
[疏]○傳‘海東’至‘來賀’
○正義曰:成王伐淮夷, 滅徐․奄, 指言其國之名.
此傳言‘東夷’, 非徒淮水之上夷也, 故以爲“海東諸夷, 駒麗․扶餘․馯貊之屬”, 此皆於孔君之時有此名也.
周禮職方氏 四夷之名․八蠻․九貉, 鄭玄云 “北方曰貉”,
又云 “東北夷也.”漢書有高駒麗․扶餘․韓, 無此馯, 馯即彼韓也, 音同而字異爾.
多方云 “王來自奄.” 奄在後滅, 言滅奄即來, 必非滅奄之後, 更伐東夷.
夷在海東, 路遠, 又不得先伐遠夷, 後來滅奄, 此云 “成王既伐東夷”, 不知何時伐之.
魯語云 “武王克商, 遂通道於九夷․八蠻, 於是肅慎氏來賀, 貢楛矢.” 則武王之時, 東夷服也.
成王即政, 奄與淮夷近者尙叛, 明知遠夷亦叛. 蓋成王親伐淮夷而滅之, 又使偏師伐東夷而服之.
君統臣功, 故言王伐, 不是成王親自伐也. 肅慎之於中國, 又遠於所伐諸夷, 見諸夷既服, 故懼而來賀也.
[疏]○傳‘榮國’至‘夷亡’
○正義曰:晉語云 “文王諏於蔡․原, 訪於辛․尹, 重之以周․召․畢․榮.”
於文王之時, 名次畢公之下, 則是大臣也.
未知此時榮伯, 是彼榮公以否, 或是其子孫也.
‘同姓諸侯’, 相傳爲然. 注國語者亦云 榮․周同姓.
不知時爲何官, 故竝云 “卿大夫.” ‘王使榮伯’, 明使之有所作.
史錄其篇, 名爲賄肅慎之命, 明是王使之爲命書, 以幣賜肅慎氏之夷也.
周公在豐
[傳]致政老歸
將沒하면 欲葬成周
[傳]己所營作이니 示終始念之
하니 成王 葬于畢하여
[傳]不敢臣周公이라 使近文武之墓 ○近 附近之近이라
告周公이러니 作亳姑
[傳]周公徙奄君於亳姑하니 因告柩以葬畢之義하고 及奄君已定亳姑하니라 言所遷之功成이러니이라
[疏]‘周公’至‘亳姑’
○正義曰:周公既致政於王, 歸在豐邑, 將沒, 遺言欲得葬於成周,
以成周是己所營, 示己終始念之, 故欲葬焉. 及公薨, 成王葬於畢, 以文武之墓在畢, 示己不敢臣周公, 使近文武之墓.
王以葬畢之義, 告周公之柩, 又周公徙奄君於亳姑, 因言亳姑功成, 史敍其事, 作亳姑之篇.
案帝王世紀云 “文武葬於畢.” 畢在杜南, 晉書地道記亦云 “畢在杜南”, 與畢陌別, 俱在長安西北.
[疏]○傳‘致政老歸’
○正義曰:周公既還政成王, 成王又留爲太師, 今言“周公在豐”, 則是去離王朝, 又致太師之政, 告老歸於豐, 如伊尹之告歸也.
成王封伯禽於魯, 以爲周公後. 公老不歸魯而在豐者, 文十三年公羊傳云 “周公曷爲不之魯. 欲天下之一乎周也.”
何休云 “周公聖人, 德至重, 功至大, 東征則西國怨, 西征則東國怨.
嫌之魯, 恐天下迴心趣向之. 故封伯禽, 命使遙供養, 死則奔喪爲主, 所以一天下之心于周室.”
是言周公不歸魯之意也. 歸豐者, 蓋以先王之都, 欲近其宗廟故也.
[疏]○傳‘周公’至‘成亡’
○正義曰:序說葬周公之事, 其篇乃名亳姑, 篇名與序不相允會. 其篇既亡, 不知所道, 故傳原其意而爲之說.
, 序言“成王既踐奄, 將遷其君於亳姑”者, 是周公之意.
今告周公之柩以葬畢之義, 乃用‘亳姑’爲篇名, 必是告葬之時, 竝言及奄君已定於亳姑, 言周公所遷之功成, 故以名篇也.


왕은 말씀하였다. “아, 삼사三事(상임常任준인準人상백常伯)와 대부大夫들아. 너희들이 소유한 벼슬을 경건하게 지키며, 너희들이 소유한 정사를 잘 다스려서,
탄식하고 나서 경계하되, 공경公卿 이하는 각각 너희들이 소유한 관직을 경건히 지키며, 너희들이 소유한 직사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 임금을 돕고 길이 조민兆民을 편안케 하면 만방萬邦의 〈백성들이 우리 나라의 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응당 관정官政을 경건히 다스려서 너희 임금을 돕고 길이 천하의 조민兆民을 편안케 하면 천하만국天下萬國의 〈백성들이〉 우리 나라의 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의 [爲德]에서 [可爲]까지
정의왈正義曰을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에 얻어서 정직한 도리로 행하는 것이니, 경영하는 바가 없어 마음이 편안하여 이 이루어지면 영예令譽가 나타나서 이름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거짓을 하는 것은 행동이 그 방법을 어겨 굽은 도리로 진출을 구하는 것이니, 속이고 간교한 짓을 생각하여 마음이 고달프며 속임수가 다하면 도리가 굽어서 일이 날로 더욱 졸렬해진다. 이렇기 때문에 거짓은 해서는 안 된다. “너의 거짓을 종사하지 말도록 하라.”는 말을 거듭 설명한 것이다.
성왕成王이 이미 동이東夷를 정벌하니, 숙신씨肅慎氏가 와서 축하하였다.
동이東夷는〉 해동海東제이諸夷이니, 구려駒麗부여扶餘한맥馯貊의 등속이다. 무왕武王나라를 쳐서 승리하고 모두 길을 통하였다.
성왕成王이 친정함에 그들이 배반하자, 성왕成王이 정벌하여 복종시켰다. 그러므로 숙신씨肅慎氏가 와서 축하한 것이다.
숙신肅慎마본馬本에 ‘북이北夷이다.”라고 하였다.
’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으로 만들어서 “북방北方치종豸種이다.”라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이란 말은 을 말하니 ‘’은 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영백榮伯으로 하여금 〈명서命書를 지어 숙신씨를 위로하게 하니, 사관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회숙신지명賄肅慎之命〉을 지었다.
’은 나라 이름이니, 〈영백榮伯은〉 동성제후同姓諸侯로서 경대부卿大夫가 되었다. 이 그로 하여금 〈명서命書〉를 지어 폐회幣賄肅慎의 오랑캐에게 준 내용을 담게 한 것인데, 망실되었다.
○‘’는 마본馬本에 ‘’으로 되어 있다.
서서書序의 [성왕成王]에서 [지명之命]까지
정의왈正義曰성왕成王의 친정 초기에 동이東夷가 배반하자 성왕成王이 이미 그를 쳐서 복종시켰는데,
동북東北의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랑캐로서 그 나라들 중에 ‘숙신씨肅慎氏’란 이름을 가진 나라가 있어 전승戰勝했다 하여 멀리 와서 조하朝賀하므로,
이 그에게 재회財賄를 하사하고 영국榮國백작伯爵으로 하여금 책서策書를 지어 숙신肅慎의 오랑캐를 임명하게 하여 그의 경하慶賀를 가상히 여기고 그의 노고한 성의를 위로하였다. 사관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회숙신지명賄肅慎之命〉을 지었기 때문에 편명을 한 것이다.
의 [해동海東]에서 [내하來賀]까지
정의왈正義曰성왕成王회이淮夷를 치고 을 멸했으므로 그 나라들의 이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여기의 에서 말한 ‘동이東夷’는 단지 회수淮水의 위에 있는 오랑캐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동제이海東諸夷구려駒麗부여扶餘한맥馯貊 등속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모두 공군孔君(공안국孔安國)의 시대에 이런 명칭들이 있었던 것이다.
주례周禮≫ 〈직방씨職方氏〉에 있는 사이四夷의 이름과 팔만八蠻구맥九貉에 대하여 정현鄭玄은 “북방北方을 ‘’이라 한다.”라 하고,
또한 “동북東北의 오랑캐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에는 고구려高駒麗부여扶餘이 있고 여기의 일 것인데, 은 같고 글자는 다를 뿐이다.
다방多方〉에서 “으로부터 왔다.”라고 한 것은 이 뒤에 있어 멸하므로 을 멸하고 즉시 온 점을 말한 것이지, 반드시 을 멸한 뒤에 다시 동이東夷를 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이東夷해동海東에 있어 길이 멂으로 또한 멀리 있는 동이東夷를 먼저 치고 뒤에 와서 을 멸할 수는 없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말한 “성왕成王이 이미 동이東夷를 쳤다.”라고 한 것은 어느 때에 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무왕武王나라를 쳐 승리하고 나서 드디어 구이九夷팔만八蠻에 길을 통하자, 이에 숙신씨肅慎氏가 와서 경하하고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을 바쳤다.”라고 하였으니, 무왕武王의 시대에 동이東夷가 복종하였던 것이다.
성왕成王이 친정했을 때에 가까이 있는 회이淮夷도 오히려 배반하였거늘, 멀리 있는 오랑캐 또한 배반했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아마 성왕成王이 친히 회이淮夷를 쳐서 멸하고 또한 편사偏師로 하여금 동이東夷를 쳐서 복종시켰을 것이다.
임금이 신하의 공을 총괄하기 때문에 이 쳤다고 말한 것이지, 성왕成王이 친히 스스로 친 것은 아니었다. 숙신肅慎중국中國에 있어서 또한 정벌된 여러 오랑캐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여러 오랑캐가 이미 복종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한 나머지 와서 경하한 것이었으리라.
의 [영국榮國]에서 [夷亡]까지
정의왈正義曰:≪국어國語≫ 〈진어晉語〉에 “문왕文王이 〈태사太史인〉 채공蔡公원공原公에게 물어보았고, 〈또한 태사太史인〉 신갑辛甲윤일尹佚에게도 물어보았으며, 거듭 주공周公소공召公필공畢公영공榮公으로 〈들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문왕文王의 때에 〈영공榮公의〉 이름이 필공畢公의 아래에 놓여있었으니, 바로 대신大臣이었다.
이때의 영백榮伯이 바로 저 영공榮公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자손이었을 것이다.
동성제후同姓諸侯는 서로 전하여 그렇게 한다. ≪국어國語≫에 를 단 자도 또한 영공榮公주공周公동성同姓이라 하였다.
이때에 무슨 벼슬을 했는지는 〈공안국이〉 몰랐기 때문에 아울러 “경대부卿大夫였다.”라고 하였다. ‘왕사영백王使榮伯’이라 하였으니, 분명 그로 하여금 짓게 한 바가 있었다.
사관史官이 그 을 기록하여 〈회숙신지명賄肅慎之命〉이라 명명하였으니, 분명 이 그로 하여금 〈명서命書〉를 짓게 해서 폐회幣賄숙신肅慎의 오랑캐에게 주었던 것이다.
주공周公풍읍豐邑에 있을 때에
정사를 돌려주고 연로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장차 죽으면 성주成周에 묻히고 싶어 하였다.
자기가 조성한 곳이니, 시종일관 유념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작고하니, 성왕成王 땅에 장사 지내려고 하여
감히 주공周公을 신하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묘소에 가깝게 하도록 한 것이다. 은 ‘부근附近’의 이다.
주공周公의 〈널에 대고〉 고하였는데, 〈사관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박고亳姑〉를 지었다.
주공周公나라 임금을 박고亳姑에 옮겼으니, 따라서 주공周公의 널에 대고 땅에 장사 지낼 뜻을 고하고, 아울러 나라 임금이 이미 박고亳姑에 정착되었음을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곧 천사遷徙의 공이 이루어진 내용을 말한 것이었는데, 망실되었다.
서서書序의 [주공周公]에서 [박고亳姑]까지
정의왈正義曰주공周公이 이미 정사를 에게 돌려주고 풍읍豐邑으로 돌아와 있다가 장차 죽으려고 할 적에 유언遺言하여 성주成周에 묻히고자 하였으니,
성주成周는 바로 자기가 경영한 곳이기 때문에 자신이 시종일관 유념한다는 뜻을 보이고자 해서 그곳에 묻히려고 한 것이었다. 이 죽자 성왕成王 땅에 장사 지내려 하였는데,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묘소가 땅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감히 주공周公을 신하로 여기지 못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하여 문왕과 무왕의 묘소에 가깝게 하도록 한 것이다,
땅에 장사 지낼 뜻을 주공周公의 널에 대고 고하였고, 또한 주공周公나라 임금을 박고亳姑로 옮겼기 때문에, 따라서 박고亳姑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였는데, 사관史官이 그 일을 서술하여 〈박고亳姑〉의 을 지은 것이다.
상고하건대, ≪제왕세기帝王世紀≫에 “문왕文王무왕武王 땅에 매장되었다.”라고 하였는데, 땅은 두남杜南에 있고, ≪진서晉書≫ 〈지도기地道記〉에도 역시 “ 땅은 두남杜南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필맥畢陌과는 구별되지만 다같이 장안長安 서북西北에 있는 셈이다.
의 [致政老歸]
정의왈正義曰주공周公은 이미 성왕成王에게 정사를 돌려주고, 성왕成王은 또 주공을 만류하여 태사太師를 삼았지만, 지금 “주공周公풍읍豐邑에 있었다.”라고 말하였은즉 이는 왕조王朝를 떠나가는 동시에 또 태사太師의 직사를 돌려주고 연로함을 이유로 퇴직을 청하여 풍읍豐邑으로 돌아가기를 마치 이윤伊尹이 작별하고 돌아가듯이 하였던 것이다.
성왕成王백금伯禽나라에 봉하여 주공周公의 후계자로 삼았다. 은 연로해서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풍읍豐邑에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문공文公 13년 조에서 “주공周公은 왜 나라로 가지 않았을까? 천하를 나라로 통하고자 해서였다.”라고 하였고,
하휴何休는 “주공周公성인聖人인지라, 이 지극히 중후하고 이 지극히 커서 동쪽으로 치면 서쪽 나라가 원망을 하고 서쪽으로 치면 동쪽 나라가 원망을 하였다.
나라로 가는 것을 혐의쩍게 여기는 이유는 천하 사람이 마음을 돌려 향해 올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금伯禽을 봉하여 멀리서 〈주공周公을〉 공양供養하고 〈주공周公이〉 죽으면 분상奔喪하여 상주喪主가 되도록 명하였으니, 천하의 민심이 주실周室로 귀일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주공周公나라로 돌아가지 않은 뜻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풍읍豐邑으로 돌아간 것은 아마 선왕先王의 도읍이기 때문에 그 종묘宗廟를 가까이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의 [주공周公]에서 [成亡]까지
정의왈正義曰서서書序에서는 주공周公을 장사 지낸 일을 말하고, 그 은 곧 ‘박고亳姑’라고 명명하였으니, 편명篇名서서書序가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 그 이 이미 망실되어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기 때문에 공전孔傳에서 그 뜻을 추구해서 말한 것이다.
은 장차 박고亳姑로 옮기려고 한 일을 적었고, 서서書序는 “성왕成王이 이미 나라를 멸하고 장차 그 임금을 박고亳姑로 옮기려 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주공周公의 뜻이었다.
지금 주공周公의 널에 대고 땅에 장사 지낸다는 뜻을 고하고 이에 ‘박고亳姑’를 가지고 편명篇名을 하였으니, 필시 장사 지낼 일을 고할 때에 아울러 나라 임금이 이미 박고亳姑에 정착한 일을 언급하였는데, 주공周公이 옮긴 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으로 편명을 한 점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武)[成] : 저본에는 ‘武’로 되어 있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汲古閣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成’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貌)[貊] : 저본에는 ‘貌’로 되어 있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에 의거하여 ‘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貉之言……惡也 : 現行本 ≪說文解字≫에는 “貉之爲言 惡也”로 되어 있다.
역주4 (來賀)[夷亡] : 저본에는 ‘來賀’로 되어 있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 및 疏의 標題語에 의거하여 ‘夷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斥)[幷] : 저본에는 ‘斥’으로 되어 있으나, 宋兩浙東路茶鹽司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上篇將遷亳姑 : 上篇은 〈蔡仲之命〉을 가리키고, 蒲姑․薄姑․亳姑는 같은 지명이다.

상서정의(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