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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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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羔羊 鵲巢之功致也 召南之國 化文王之政하여 在位皆節儉正直하여 德如羔羊也
고양羔羊〉은 〈작소鵲巢〉의 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읊은 시이다. 소남召南의 나라가 문왕文王의 정사에 교화되어 지위에 있는 자들이 모두 근검절약하고 정직하여 고양羔羊과 같았다.
【箋】鵲巢之君 積行累功하여 以致此羔羊之化하여 在位卿大夫 競相切化하니 皆如此羔羊之人이라
작소鵲巢〉의 인군人君선행善行을 쌓고 을 세워 이 〈고양羔羊〉의 교화를 이루어서 지위에 있는 경대부卿大夫들이 다투어 서로 좋은 교화로 갈고 닦으니, 모두 이 이 〈고양羔羊〉의 사람과 같은 것이다.
【疏】‘羔羊(三章章四句)’至‘羔羊’
의 [고양羔羊]에서 [고양羔羊]까지
○正義曰:作羔羊詩者, 言鵲巢之功所致也. 召南之國, 化文王之政, 故在位之卿大夫, 皆居身節儉, 爲行正直, 德如羔羊.
정의왈正義曰:〈고양羔羊〉의 를 지은 것은 〈작소鵲巢〉의 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소남召南의 나라가 문왕文王의 정사에 교화되었으므로 지위에 있는 경대부卿大夫들이 모두 몸가짐은 근검절약하고, 행동은 정직하여 고양羔羊과 같았다.
然大夫有德, 由君之功, 是鵲巢之功所致也. 定本‘致’上無‘所’字. 言‘南’者, 摠謂六州也, 以篇在召南, 故連言召耳.
그러나 대부大夫에게 이 있음은 인군人君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이것은 〈작소鵲巢〉의 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정본定本에는 ‘’자 위에 ‘’자가 없다. ‘’은 6를 총괄하여 말한 것이고, 소남召南에 있으므로 를 붙여서 말한 것이다.
云‘德如羔羊’者, 麟趾序云 “如麟趾之時.” 騶虞序云 “仁如騶虞.” 皆如其經, 則此德如羔羊, 亦如經中之羔羊也.
덕여고양德如羔羊’은 〈주남 인지周南 麟趾〉의 에서 “인지麟趾의 때와 같다.”라고 하고, 〈소남 추우召南 騶虞〉의 에서 “어짊이 추우騶虞와 같다.”라고 한 것은 모두 그 과 같은 것이니, 그렇다면 여기의 ‘덕여고양德如羔羊’도 속의 고양羔羊과 같은 것이다.
【疏】經陳大夫爲裘用羔羊之皮, 此云德如羔羊者, 詩人因事託意, 見在位者裘得其制, 德稱其服,
에서 대부大夫가 갖옷을 만듦에 고양羔羊의 가죽을 사용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고양羔羊과 같다고 한 것은 시인詩人이 일로 인하여 뜻을 가탁하여 지위에 있는 자의 갖옷이 법도에 알맞고, 이 의복에 걸맞음을 드러낸 것이다.
故說羔羊之裘, 以明在位之德. 敍達其意, 故云如羔羊焉. 不然則衣服多矣, 何以獨言羔羊裘.
그리하여 고양羔羊의 갖옷을 말하여 지위에 있는 자의 을 밝힌 것이다. 에서 그 뜻을 말하고자 하였으므로 고양羔羊과 같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복衣服의 종류가 많은데 어찌 유독 고양羔羊의 갖옷만을 말하였겠는가.
【疏】宗伯注云 “羔, 取其群而不失其類.” 士相見注云 “羔, 取其群而不黨.”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의 에서 “염소를 폐백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와 잘 어울려 무리를 잃지 않음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의례儀禮≫ 〈사상견례士相見禮〉의 에서 “염소를 폐백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 짓되 편당하지 않음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公羊傳何休云 “羔, 取其贄之不鳴, 殺之不號, 乳必跪而受之, 死義生禮者, 此羔羊之德也.”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하휴 주何休 注에 “염소를 폐백으로 사용하는 것은 폐백으로 사용해도 울지 않으며, 죽여도 부르짖지 않으며, 젖을 먹을 때는 꿇어앉아 먹으니, 를 위해 죽고 를 위해 사는 것을 취한 것이니, 이것이 고양羔羊이다.”라고 하였으니,
然則今大夫亦能群不失類, 行不阿黨, 死義生禮, 故皆節儉正直, 是德如羔羊也.
그렇다면 이제 대부大夫도 무리와 잘 어울려 무리를 잃지 않고, 행함에 아첨하지 않고, 를 위해 죽고 를 위해 산다. 그리하여 모두 근검절약하고 정직하니, 이것이 고양羔羊과 같은 것이다.
【疏】毛以儉素由於心, 服制形於外, 章首二句言裘得其制, 是節儉也, 無私存於情, 得失表於行, 下二句言行可蹤迹, 是正直也.
모형毛亨은 ‘검소함은 마음에서 나오고, 의복의 제도는 밖에서 드러나니, 의 처음 두 에서 갖옷이 법도에 알맞았다고 한 것은 절검節儉이고, 사사로운 이 없으면 득과 실은 행동에서 드러나니, 아래 두 에서 행동이 본보기가 될 만하다고 한 것은 정직正直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退食爲節儉, 自公爲正直, 羔裘言德能稱之, 委蛇者, 自得之貌, 皆亦節儉正直之事也.
정현鄭玄퇴식退食은 ‘절검節儉’이고, 자공自公은 ‘정직正直’이니, 고구羔裘이 걸맞음을 말한 것이고, 위이委蛇는 여유로운 모습이니, 모두 역시 절검정직節儉正直의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經先言羔羊, 以服乃行事, 故先說其皮, 序後言羔羊, 擧其成功乃可以化物, 各自爲文, 勢之便也.
에서 먼저 고양羔羊을 말한 것은 의복을 갖추어야 일을 행하기 때문에 먼저 그 가죽을 말한 것이고, 에서 고양羔羊을 뒤에 말한 것은 공을 이룬 것을 거론하여야 을 교화할 수 있으니, 제각기 글이 되어 문세文勢가 편하기 때문이다.
【疏】箋‘鵲巢’至‘之人’
의 [작소鵲巢]에서 [지인之人]까지
○正義曰:以篇首有鵲巢以比國君, 故云‘鵲巢之君’也.
정의왈正義曰의 첫 머리에 ‘작소鵲巢’를 두어 인군人君에 견주었기 때문에 ‘작소지군鵲巢之君’이라 한 것이다.
上言‘積行累功 以致爵位’, 則化及南國, 亦積行累功而致之, 故言‘積行累功’ 以釋鵲巢之功所致之意.
앞에서 ‘선행善行을 오래 쌓고 을 거듭 세워 작위爵位를 얻었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교화가 남국南國에 미친 것도 선행善行을 오래 쌓고 을 거듭 세워서 이룬 것이다. 그리하여 ‘적행루공積行累功’을 말하여 〈작소鵲巢〉의 공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을 풀이한 것이다.
言由國君積行累功, 以化天下, 故天下化之, 皆如羔羊, 以致此羔羊之化也.
인군人君선행善行을 오래 쌓고 을 거듭 세운 것으로 말미암아 천하天下를 교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天下가 교화되어 모두 고양羔羊과 같아 이 〈고양羔羊〉의 교화를 이룬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知在位是卿大夫者, 以經陳羔裘, 卿大夫之服, 故傳曰‘大夫羔裘以居’, 是也.
지위에 있는 자가 경대부卿大夫임을 안 것은 에서 말한 염소 갖옷이 대부大夫의 복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에서 ‘대부고구이거大夫羔裘以居’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言‘競相切化’, 謂競相切磋以善化, ‘皆如羔羊之人’, 謂人德如羔羊也.
경상절화競相切化’는 다투어 서로 갈고 닦아 교화를 잘하는 것을 이르고, ‘개여고양지인皆如羔羊之人’은 사람들의 고양羔羊과 같음을 말한다.
羔羊之皮 素絲五紽로다
작은 염소 가죽 갖옷에 흰 실로 다섯 곳 장식하였네
【傳】小曰羔 大曰羊이라 白也 數也 古者 素絲以英裘하니 不失其制 大夫羔裘以居
작은 염소를 라 하고, 큰 염소를 이라 한다. 는 흰색이고, 는 수효이다. 옛날에 흰 실로 갖옷을 장식하였으니 그 제도를 잃지 않은 것이다. 대부大夫는 작은 염소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생활하였다.
退食自公하니 委蛇委蛇로다
퇴청하여 식사하니 의젓하여 본받을 만하네
【傳】公 公門也 委蛇 行可從迹也
은 조정의 이다. 위이委蛇는 행동이 본보기가 될 만하다는 것이다.
【箋】箋云 退食 謂減膳也 從也 從於公 謂正直順於事也
전운箋云퇴식退食은 음식을 줄이는 것을 이른다. 는 따름이니, 을 따른다는 것은 정직하고 사리에 맞는 것을 이른다.
委蛇 委曲自得之貌 節儉而順하여 心志定이라 故可自得也
위이委蛇는 의젓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니, 근검절약하고 사리에 맞아 심지心志가 안정되었으므로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讀此兩句 當云委蛇委蛇어늘 沈讀作委委蛇蛇
○이 두 는 읽을 때 당연히 ‘위이위이委蛇委蛇’로 읽어야 하는데 심약沈約은 ‘위위이이委委蛇蛇’로 읽었다.
韓詩作逶迄하니 云公正貌 從迹 字亦作蹤하고 迹又作跡이라
한시韓詩≫에는 ‘위흘逶迄’로 되어 있는데, 공정한 모습을 말한다. 종적從跡자는 ‘’으로 쓰기도 하고, 자는 ‘’으로도 쓰기도 한다.
【疏】‘羔’至‘委蛇’
의 [고구羔裘]에서 [위이委蛇]까지
○毛以爲 召南大夫皆正直節儉, 言用羔羊之皮以爲裘, 縫殺得制, 素絲爲英飾, 其紽數有五.
모형毛亨은 ‘소남召南대부大夫가 모두 정직하고 검소하여, 고양羔羊의 가죽을 사용하여 갖옷을 만듦에 바느질이 법도에 알맞았고, 흰 실로 장식하니 그 올 수가 다섯 올이다.
旣外服羔羊之裘, 內有羔羊之德, 故退朝而食, 從公門入私門, 布德施行, 皆委蛇然, 動而有法, 可使人蹤迹而效之.
외면에는 고양羔羊의 갖옷을 입고, 내면에는 고양羔羊을 지녔다. 그리하여 퇴청하여 밥을 먹음에 공문公門으로부터 사문私門으로 들어오고, 을 널리 베풀어 시행함에 모두 의젓하니 행동에 법도가 있어 사람들이 자취를 따라서 본받을 만하였다. 한 것’이라고 여겼다.
言其行服相稱, 內外得宜. 此章言羔羊之皮, 卒章言羔羊之縫, 互見其用皮爲裘, 縫殺得制也.
그 행동과 의복이 서로 걸맞고, 내면과 외면이 마땅함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이 에서 고양羔羊의 가죽을 말하였고, 마지막 에서 고양羔羊의 꿰맨 곳을 말하였으니, 가죽을 이용하여 갖옷을 만든 것과 바느질한 것이 법도에 알맞음을 번갈아 드러낸 것이다.
○鄭唯下二句爲異, 言大夫減退膳食順從於事, 心志自得委蛇然.
정현鄭玄은 아래 두 를 다르게 보아 대부大夫가 음식을 줄이고 사리에 알맞게 처신하니 심지心志가 저절로 여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疏】傳‘小曰羔’至‘以居’
의 [소왈고小曰羔]부터 [이거以居]까지
○正義曰:小羔大羊, 對文爲異. 此說大夫之裘, 宜直言羔而已, 兼言羊者, 以羔亦是羊,
정의왈正義曰:작은 염소는 ‘’이고 큰 염소는 ‘’이다 한 것은 〈대문對文이니,〉 대문對文이면 이 뜻이 다르다. 여기의 대부大夫의 갖옷을 말함이니 만을 말하면 되는데, 까지 겸하여 말한 것은 이기 때문이다.
故連言以協句, 傳以羔羊竝言, 故以大小釋之. 此言‘紽 數’, 下言‘總 數’, 謂紽․總之數有五, 非訓紽․總爲數也.
그리하여 붙여서 말하여 운을 맞춘 것이고, 을 아울러 말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서 ‘타 수紽 數’라고 하고 아래에서 ‘총 수總 數’라고 한 것은 의 수가 5임을 말한 것이지 의 뜻이 라고 한 것은 아니다.
二章傳云‘緎 縫’者, 釋訓云 “緎, 羔羊之縫.” 孫炎曰 “緎之界緎.” 然則縫合羔羊皮爲裘.
2에서 ‘역 봉緎 縫’이라 한 것은 ≪이아爾雅≫ 〈석훈釋訓〉에서 “고양羔羊의 가죽을 꿰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은 경계를 꿰맨 솔기를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고양羔羊의 가죽을 꿰매 붙여 갖옷을 만든 것이다.
縫卽皮之界緎, 因名裘縫. 云緎五, 緎旣爲縫, 則五紽․五總, 亦爲縫也. 視之見其五, 故皆云五焉.
은 바로 가죽의 경계를 꿰맨 솔기이므로, 인하여 갖옷을 꿰맨다고 이름한 것이다. 이 5라 하였고, 은 꿰맨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오타五紽오총五總도 꿰맨 것이 된다. 살펴보아 그것이 5인 것을 보았으므로 모두 5라고 한 것이다.
傳於首章先言‘紽 數’者, 以經云‘五紽’, 先解五之意, 故紽數有五也.
1에서 먼저 ‘타 수紽 數’라고 한 것은 에서 ‘오타五紽’라고 하여 먼저 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 5인 것이다.
首章旣解其數, 故二章解其體, 言‘緎 縫’也, 且因爾雅之文.
1에서 그 를 풀이하였으므로, 2에서 그 모습을 풀이하여 ‘역 봉緎 縫’이라 한 것이니, ≪이아爾雅≫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爾雅獨解緎者, 蓋擧中言之, 二章旣解其體, 恐人以爲紽自數也, 緎自縫也,
이아爾雅≫에서 만을 풀이한 것은 가운데 을 들어 말한 것이고, 2에서 그 모습을 풀이하였지만, 사람들이 는 본래 이고 은 본래 꿰맨 것이라고 여길까 염려되었다.
故於卒章, 又言總數有五, 以明緎數亦五. 緎言縫, 則紽․總, 亦縫可知, 傳互言也.
그리하여 마지막 에서 또 총수總數가 5임을 말하여 역수緎數도 5임을 밝힌 것이다. 을 꿰맨 것이라 하였으면 도 꿰맨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에서 번갈아 바꾸어 말한 것이다.
【疏】古者素絲所以得英裘者, 織素絲爲組紃, 以英飾裘之縫中, 淸人傳曰 “矛有英飾.” 閟宮傳云 “朱英爲飾.” 則此英亦爲飾可知.
옛날에 흰 실로 갖옷을 장식한 것은 흰 실을 짜서 끈을 만들어 갖옷의 꿰맨 곳에 장식한 것이니, 〈정풍 청인鄭風 淸人〉의 에 “창에 장식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노송 비궁魯頌 閟宮〉의 에 “주영朱英은 장식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도 장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素絲爲飾, 組紃耳, 若爲線, 則所以縫裘, 非飾也,
흰 실로 장식하는 것은 끈뿐인데, 만약 바느질한 것이라면 갖옷을 꿰맨 것이지 장식한 것은 아니다.
故干旄曰 “素絲組之.” 傳曰 “總以素絲而成組也.” 紃亦組之類, 則素絲可以爲組紃矣.
그리하여 〈용풍 간모鄘風 干旄〉에서 “흰 실로 끈을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흰 실을 땋아서 끈을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도 끈의 종류이니 그렇다면 흰 실로 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旣云素絲, 卽云五紽․五緎, 是裘縫明矣, 又明素絲爲組紃, 而施於縫中,
흰 실이라 하고, 바로 오타五紽오역五緎이라 하였으니, 갖옷의 꿰맨 솔기가 분명하고, 또 흰 실로 끈을 만들어 솔기에 단 것이 분명하다.
故下雜記注云 “紃施諸縫, 若今之絛.” 是有組紃而施於縫中之驗.
그리하여 ≪예기禮記≫ 〈잡기 하雜記 下〉의 에서 “은 솔기에 단 것이니, 지금의 끈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끈을 가지고 솔기에 달았다는 증거이다.
【疏】傳知素絲不爲線而得爲飾者, 若線, 則凡衣皆用, 非可美, 故‘素絲以英裘’, 非線也.
에서 흰 실로 바느질하지 않고 장식한 것임을 안 것은 바느질한 것이라면 의복에 모두 사용하니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소사이영구素絲以英裘’는 바느질한 것이 아니다.
言‘大夫羔裘以居’者, 由大夫服之以居, 故詩人見而稱之也, 謂居於朝廷, 非居於家也.
대부고구이거大夫羔裘以居’는 대부大夫가 갖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시인詩人이 보고서 일컬은 것이니, 조정朝廷에 있는 것을 말한 것이지 집에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論語曰 “狐貉之厚以居.” 注云 “在家所以接賓客.” 則在家不服羔裘矣.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두터운 여우와 담비 가죽옷을 입고 집에서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집에서 빈객賓客을 접대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집에 있을 때는 염소 갖옷을 입지 않은 것이다.
論語注又云 “緇衣羔裘, 諸侯視朝之服. 卿大夫朝服亦羔裘, 唯豹袪與君異耳.” 明此爲朝服之裘, 非居家也.
논어論語≫의 에서 또 “검은 비단 옷과 염소 갖옷은 제후諸侯가 조회하는 복장이다. 대부大夫조복朝服도 염소 갖옷인데, 표범 가죽 소매를 다는 것만이 인군人君과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분명 조복朝服으로 사용하는 갖옷이지 집에 있을 때의 복장이 아니다.
【疏】傳‘公公’至‘從迹’
의 [공공公公]에서 [종적從跡]까지
○正義曰:傳以言退者, 自朝之辭, 故知公謂公門, 少儀云 “.” 是也.
정의왈正義曰에서 ‘退’는 조정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로 여기었다. 그리하여 이 조정의 임을 안 것이니, ≪예기禮記≫ 〈소의少儀〉에서 “조정朝廷에서 나오는 것을 退라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行可蹤迹’者, 謂出言立行, 有始有終, 可蹤迹倣效也.
행가종적行可蹤迹’은 말과 행동이 처음부터 끝가지 한결같아 자취를 쫓아 본받을 만한 것을 이른다.
【疏】箋‘退食’至‘之貌’
의 [퇴식退食]에서 [지모之貌]까지
○正義曰:減膳食者, 大夫常膳日特豚, 朔月少牢, 今爲節儉減之也.
정의왈正義曰:음식을 줄인다는 것은 대부大夫의 평상시 음식은 날마다 특돈特豚(돼지 한 마리)을 사용하고, 삭월朔月(초하루)에는 소뢰少牢(양과 돼지)를 사용하는데 지금은 절약을 위해 줄이는 것이다.
王肅云 “自減膳食, .” 孫毓云 “自非天災, 無減膳之制.”
왕숙王肅은 “스스로 음식을 줄이는 것에 대해 성인聖人께서 아랫사람의 예를 침해한다는 나무람이 있었다.”라고 하고, 손육孫毓은 “본래 천재天災가 아니면 음식을 줄이는 법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所以得減膳食者, 以序云節儉, 明其減於常禮, 經言退食, 是‘減膳’可知.
여기서 음식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절검節儉이 분명 상례常禮보다 줄인 것이기 때문이니, 에서 말한 ‘퇴식退食’이 ‘감선減膳’임을 알 수 있다.
禮者, 苦人之奢, 制其中法, 若車服之文物, 祭祀之犧牲, 不可逼下. 是故此論羔裘, 美其得制.
는 사람들이 분수보다 지나칠까 염려하여 법도에 맞게 정한 것이니, 수레와 의복의 제도와 제사祭祀희생犧牲 같은 것은 아랫사람의 예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여기서 염소 가죽을 논하면서 법도에 맞았다고 찬미한 것이다.
至於奉養己食, 容得減退, 故, , 前史以爲美談.
자신의 음식 봉양은 줄일 수 있다. 그리하여 조돈趙盾이 물고기 죽을 먹은 것과 공손홍公孫弘이 껍질만 겨우 벗긴 거친 밥을 먹은 것을 역사서에서 미담으로 여긴 것이다.
經云自公, 鄭訓自爲從, 公爲事, 故云‘從於公謂正直順於事也’.
의 ‘자공自公’을 정현鄭玄이고 라고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종어공 위정직순어사야從於公 謂正直順於事也’라고 한 것이다.
委曲自得者, 心志旣定, 擧無不中, 神氣自若, 事事皆然, 故云 “委蛇 委曲自得之貌也.” 宋本‘退謂減膳’, 更無食字.
위곡자득委曲自得’은 심지心志가 안정되어 거동이 법도에 맞지 않음이 없고, 정신精神이 태연하여 일마다 모두 그러하다. 그리하여 “위이 위곡자득지모야委蛇 委曲自得之貌也”라고 한 것이다. 송본宋本에는 ‘퇴위감선退謂減膳’이라 하여 다시 ‘’자가 없다.
羔羊之革이여 素絲五緎이로다
작은 염소 가죽 갖옷에 다섯 개 흰 실 장식 솔기에 달았네
【傳】革 猶皮也 縫也
와 같다. 은 솔기이다.
○緎 孫炎云 緎 縫之界域이라하고이라하고 爾雅云 緎 羔裘之縫也라하니라 一本 作緎猶縫也라하다
손염孫炎이 “은 꿰맨 경계이다.”라고 하고, “은 솔기이다.”라고 하였으며, ≪이아爾雅≫ 〈석훈釋訓〉에서는 “은 염소 가죽 갖옷의 솔기이다.”라고 하였다. 〈‘역 봉야緎 縫也’는〉 ‘역유봉야緎猶縫也’로 되어 있는 도 있다.
【疏】傳‘革猶皮’
의 [혁유피革猶皮]
○正義曰:, 故掌皮云 “秋斂皮, 冬斂革.” 異時斂之, 明其別也, 許氏說文曰 “獸皮治去其毛曰革.” 革, 更也.
정의왈正義曰대문對文이면 은 뜻이 다르다. 그리하여 ≪주례周禮≫ 〈천관 장피天官 掌皮〉에 “가을에 를 거두고 겨울에 을 거둔다.”라고 하였으니, 철을 달리하여 거둔 것은 다름을 밝힌 것이고,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제거한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은 바꾼 것이다.
對文言之異, , 司裘曰 “大喪飾皮車”, 謂革輅也,
대문對文이면 의 뜻이 다르나, 산문散文이면 이 통하니, ≪주례周禮≫ 〈천관 사구天官 司裘〉에 “대상大喪에는 로 장식한 수레를 쓴다.”라고 하였으니, 혁로革輅를 말한 것이다.
去毛得稱皮, 明是有毛得稱革, 故攻皮之工, 有函․鮑․韗․韋․裘, 是皮革通言也. 此以爲裘, 明非去毛, 故云革猶皮也.
털을 제거한 것을 라고 하였으면 털이 있는 것을 이라 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가죽을 가공하는 공인工人에 갑옷 만드는 공인 함工人 函, 을 다루는 갖바치인 , 북을 만드는 공인 운工人 韗, 가죽을 다루는 공인 위工人 韋, 갖옷을 만드는 갖바치 가 있으니, 이것이 이 통용되는 말이다. 여기서 라고 한 것은 분명 털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혁유피革猶皮’라고 한 것이다.
【疏】依月令, 孟冬始裘, 天子祭天則大裘而冕,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의하면 맹동孟冬에 비로소 갖옷을 입는데,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에는 대구大裘를 입고 면류관冕旒冠을 쓴다.
故司服云 “王祀昊天上帝, 則服大裘而冕, 祀五帝亦如之.” 鄭注“大裘, 黑羔裘.” 是也.
그리하여 ≪주례周禮≫ 〈사복司服〉에 “왕이 하늘의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대구大裘를 입고 면류관冕旒冠을 쓰며, 오제五帝에게 제사 지낼 때에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대구大裘는 검은 염소 갖옷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亦同黑羔裘, 知者, 司裘職云 “掌爲大裘, 以供王祀天之服.” 更不別言袞冕已下之裘, 明六冕與爵弁同用黑羔裘.
오면복五冕服구면복裘冕服도 똑같이 검은 염소 갖옷이니, 이를 안 것은 ≪주례周禮≫ 〈사구직司裘職〉에 “대구大裘 만드는 것을 관장하니, 이 하늘에 제사祭祀하는 의복을 바친다.”라고 하고, 다시 곤면복袞冕服 이하의 갖옷을 구별하여 말하지 않았으니, 육면六冕작변爵弁에 모두 검은 염소 갖옷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疏】若天子視朝及諸侯朝天子, 皆以狐白裘,
천자天子가 조회를 보거나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조회하는 경우는 모두 흰 여우 갖옷을 입는다.
知者, 以玉藻云 “君衣狐白裘, 錦衣以.” 又秦詩曰 “君子至止 錦衣狐裘”, 以裘象衣色, 皮弁服白布衣故也.
이를 안 것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인군人君은 흰 여우 갖옷을 입고 그 위에 비단옷을 석의裼衣로 입는다.”라고 하고, 또 〈진풍 종남秦風 終南〉에 “군자君子 이르니 비단 옷에 여우 갖옷 입었네.”라고 하여, 갖옷으로 옷의 색을 맞추어 피변복皮弁服백포의白布衣를 입기 때문이다.
其卿大夫在朝及聘問亦衣狐白裘, 知者, 玉藻云 “士不衣狐白.” 故也.
대부大夫가 조정에 있을 때나 빙문聘問할 때도 흰 여우 갖옷을 입었으니, 이를 안 것은 〈옥조玉藻〉에서 “는 흰 여우 갖옷을 입지 못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其裼蓋用素衣, 知者, 以鄭注玉藻云 “非諸侯則不用素錦爲裼.”故也. 士則麛裘靑豻褎, 以狐白之外, 唯麑裘素也.
석의裼衣에는 흰옷을 사용하였으니, 이를 안 것은 〈옥조玉藻〉의 정현 주鄭玄 注에 “제후諸侯가 아니면 흰 비단 석의裼衣를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는 푸른 들개 가죽 소매에 어린 사슴 갖옷을 입으니, 흰 여우 갖옷 외에는 사슴 갖옷만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其諸侯視朝及卿大夫等同用黑羔裘, 以玉藻云 “羔裘緇衣以裼之.” 又鄭注論語云 “緇衣羔裘, 諸侯視朝之服.”是也.
제후諸侯가 조회 볼 때와 대부大夫 등이 모두 검은 염소 갖옷을 입으니, 〈옥조玉藻〉에서 “검은 염소 갖옷에는 검은 비단 옷을 석의裼衣로 입는다.”라고 하고, ≪논어論語≫의 정현 주鄭玄 注에서 “검은 비단 옷에 검은 염소 갖옷은 제후諸侯가 조회하는 복장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若諸侯, 君臣用麑裘, 知者, 鄭注論語云 “素衣麑裘, 諸侯視(朝)[朔]之服.” 其臣則靑豻褎, 絞衣爲裼.
제후諸侯시삭視朔할 때에는 인군人君과 신하가 어린 사슴 갖옷을 입으니, 이를 안 것은 ≪논어論語≫의 정현 주鄭玄 注에 “흰 옷에 어린 사슴 갖옷은 제후諸侯시삭視朔을 할 때의 복장이다.”라고 하였으니, 신하는 푸른 들개 가죽 소매에 초록색의 옷을 석의裼衣로 입은 것이다.
若兵事, 旣用韎韋, 衣則用黃衣狐裘及貍裘, 象衣色故也.
군사의 일에는 적색 가죽의 군복을 사용하고, 윗옷은 누런 옷에 여우 갖옷과 살쾡이 갖옷을 입으니 옷의 색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又襄四年傳云 “, 敗我於狐駘.” 又定九年傳云 是也.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4년에 “여우 갖옷을 입은 장흘臧紇이 우리를 호태狐駘에서 패하게 하였다.”라고 하고,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정공定公 9년에 “하얀 두건을 쓰고 살쾡이 갖옷을 입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若天子以下, 田獵則羔裘, 緇衣以裼之, 知者, 司服云 “凡田冠弁服.” 注云 “冠弁, 委貌.” 則諸侯朝服故也.
천자天子 이하가 사냥하는 경우에는 염소 갖옷에 검은 비단 옷을 석의裼衣로 입는다. 이를 안 것은 ≪주례周禮≫ 〈사복직司服職〉에서 “모든 사냥에서 관변복冠弁服을 입는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관변冠弁위모관委貌冠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관변복冠弁服제후諸侯조복朝服이기 때문이다.
其天子諸侯燕居, 同服玄端, 則亦同服羔裘矣.
천자天子제후諸侯가 한가하게 지낼 적에는 모두 현단복玄端服을 입으니, 그렇다면 또한 동일하게 염소 갖옷을 입는다.
凡裘, 人君則用全, 其臣則褎飾爲異, 故唐詩云 “羔裘豹袪”, 鄭云 “卿大夫之服.” 是也.
갖옷에 있어서 인군人君은 옷 전체에 가죽을 사용하였으나, 신하는 소매에만 가죽으로 장식을 하여 다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당풍 고구唐風 羔裘〉에서 “염소 갖옷에 표범 가죽 소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경대부卿大夫의 복장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若崔靈恩等, 以天子諸侯朝祭之服, 先著明衣, 又加中衣, 又加裘, 裘外又加裼衣, 裼之上乃加朝祭之服,
최영은崔靈恩 등은 천자天子제후諸侯가 조회하거나 제사할 때의 복장은 먼저 명의明衣를 입고, 중의中衣를 더 입으며, 그 위에 갖옷을 입고, 갖옷 위에 석의裼衣를 더 입고, 석의裼衣 위에 조복이나 제복을 입는 것으로 여기었으며,
其二劉等, 則以玉藻云 “君衣狐白裘, 錦衣以裼之.” 又云 “以帛裏布, 非禮也.”
유현劉炫유작劉焯 등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에서 “인군人君은 흰 여우 갖옷을 입는데, 비단 옷을 석의裼衣로 입는다.”라고 하고, 또 〈옥조玉藻〉에서 “비단옷을 포의布衣 안에 입는 것은 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鄭注云 “冕服中衣用素, 朝服中衣用布.” 若皮弁服之下, 卽次錦衣爲裼, 便是以帛裏布, 故知中衣在裼衣之上明矣.
정현鄭玄에서 “면복冕服중의中衣는 흰 명주를 사용하고, 조복朝服중의中衣를 사용한다.”라고 하였으니, 〈조복朝服에 입는〉 피변복皮弁服 아래에 바로 순서대로 비단 옷을 석의裼衣로 입은 것이니, 이것이 비단옷을 포의布衣 안에 입은 것이다. 그리하여 중의中衣석의裼衣 위에 입었음이 분명함을 안 것이다.
【疏】又以司服職云 “王祀昊天上帝, 則服大裘而冕.” 以下冕不復云裘,
또 ≪주례周禮≫ 〈사복직司服職〉에서 “왕이 하늘의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낼 때에 대구大裘를 입고 면류관冕旒冠을 쓴다.”라고 하고, 이하의 면복冕服에서 다시 갖옷을 말하지 않았으며,
司裘職云 “掌爲大裘, 以供王祀天之服.” 亦不別言袞冕以下之裘, 明六冕與爵弁同用大裘之羔裘矣.
주례周禮≫ 〈사구직司裘職〉에서 “대구大裘를 만드는 것을 관장하니, 이 하늘에 제사祭祀하는 의복을 제공한다.”라고 하고, 또 별도로 곤면복袞冕服 이하의 갖옷을 말하지 않았으니, 육면六冕작변爵弁에 모두 대구大裘의 염소 갖옷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案玉藻云 “君子狐靑裘豹褎, 玄綃衣以裼之.” 注云 “君子大夫士狐靑裘, 蓋玄衣之裘.”
예기禮記≫ 〈옥조玉藻〉를 살펴보면 “군자君子는 표범 가죽 소매에 푸른 여우 갖옷을 입는데, 검은 비단 옷을 석의裼衣로 입는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대부大夫군자君子가 입는 푸른 여우 갖옷은 검은 옷의 〈석의裼衣를 갖추어 입은〉 갖옷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然袞冕與衣玄知不用狐靑裘者, 以司裘職云 “季秋獻, 以待頒賜.” 注云 “功裘, 人功微麤, 謂狐靑麛裘之屬.”
그러나 곤면袞冕과 검은 옷에는 푸른 여우 갖옷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사구직司裘職〉에 “계추季秋공구功裘를 바쳐 반사頒賜에 대비한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공구功裘는 만드는 공력이 적게 든 거친 갖옷으로, 푸른 여우 갖옷과 어린 사슴 갖옷의 종류를 말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鄭以‘功裘以待頒賜’, 大夫士, 明非冕服之裘矣.
정현鄭玄은 ‘공구功裘반사頒賜에 대비한다.’는 것은 분명 대부大夫가 입는 옷이니, 면복冕服의 갖옷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委蛇委蛇하니 自公退食이로다
의젓하여 본받을 만하니 퇴청하여 식사하시네
【箋】箋云 自公退食 猶退食自公이라
전운箋云자공퇴식自公退食은 ‘퇴식자공退食自公’의 뜻과 같다.
羔羊之縫이여 素絲五總이로다
작은 염소 가죽 갖옷 솔기에 다섯 개 흰 실 장식 달았네
【傳】縫 言縫殺之 大小得其制 數也
은 주름잡아 꿰맬 적에 크기가 법도에 알맞음을 말한 것이다. 이다.
委蛇委蛇하니 退食自公이로다
의젓하여 본받을 만하니 퇴청하여 식사하시네
羔羊三章이니 章四句
고양羔羊〉은 3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裘)[羊] : 저본에는 ‘裘’로 되어 있으나, 經文의 ‘羔羊之皮’의 원문에 근거하여 ‘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爲)[云]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云’으로 번역하였다.
역주3 (維)[唯] : 저본에는 ‘維’로 되어 있으나, 盧宣旬의 摘錄本에 “維는 마땅히 唯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唯’로 바로잡았다.
역주4 朝廷曰退 : ≪禮記正義≫ 〈少儀〉의 疏에서 “朝廷曰退는 朝廷에서 헤어져 돌아오려고 하는 것을 ‘退’라고 하는 것이다. 人君과 가까이 하는 것을 ‘進’이라 하고, 사저로 돌아오면 인군과 멀어지므로 ‘退’라고 한 것이다.[朝廷曰退者 謂於朝廷之中 若欲散還 則稱曰退 以近君爲進 還私遠君 故稱退]”라고 하였다.
역주5 聖人有逼下之譏 : 孔子가 晏平仲이 祭需를 줄여서 아랫사람의 禮를 침해하였다고 나무란 내용이다. ≪禮記≫ 〈雜記〉에서 孔子가 晏平仲은 선조의 제사에서 절약하여 돼지 다리고기가 籩豆를 덮지 않게 하였으니, 이는 아랫사람의 禮를 침해한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6 趙盾食魚飧 : 趙盾이 재상임에도 간소하게 물고기 죽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春秋公羊傳≫ 宣公 6년에 靈公이 자객을 시켜 趙盾을 죽이려 하였는데, 자객이 趙盾을 보고 卿임에도 검소하게 물고기 죽을 먹으니, 죽이지 못하겠다며 도리어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고 한다.
역주7 公孫弘脫粟之飯 : 재상 公孫弘이 검소하게 거친 밥을 먹었다는 내용으로, ≪史記≫ 〈平津侯主父列傳〉에 漢의 丞相 公孫弘은 “丞相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베 이불을 덮고, 껍질만 벗기고 쓿지 않은 거친 밥을 먹었으며 고기반찬은 한 가지를 넘지 않았고, 친구나 친한 빈객에게 모두 奉祿을 나누어주어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位在丞相而爲布被 脫粟之飯 不過一肉 故人所善賓客皆分奉祿以給之 無有所餘]”고 하였다.
역주8 對文則皮革異 : 對文은 수사법의 한 종류로 글자의 수가 같고 뜻이 대조되는 글자나 구절을 짝지어가며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다. 여기서 皮와 革을 相對하여 쓴 것이라면 뜻이 다르다는 것이다.
역주9 散文則皮革通 : 散文은 글자의 숫자나 운율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문체 이름으로, 六朝 이후에 韻文과 구별하여 운율을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쓴 것을 散文이라고 불렀다. 산문에서 ‘皮’와 ‘革’을 붙여서 사용한 경우는 같은 뜻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역주10 五冕之裘 : ≪周禮≫ 〈司服〉에서 말하는 冕服인 裘冕․袞冕․鷩冕․毳冕․希冕․玄冕 가운데 裘冕을 지칭한다. 鄭玄은 注에서 “冕服은 여섯 종류인데 다섯 가지 冕服이라 한 것은 大裘의 冕服에는 旒가 없기 때문에 합쳐서 헤아리지 않은 것이다.[冕服有六 而言五者 大裘之冕 蓋無旒 不聯數也]”고 하였다.
역주11 裼之 : 裼衣를 입는 것을 말한다. 裼衣는 갖옷 위에 걸쳐 갖옷이 드러나게 입는 소매 없는 옷이다. ≪禮記≫ 〈玉藻〉에서 “갖옷에 석의를 입는 것은 갖옷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것이다.[裘之裼也 見美也]”라고 하였다.
역주12 視朔 : 천자와 제후가 매달 초하루 아침에 祖廟에 제사를 지내고 정사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鄭玄은 “天子가 諸侯에게 朔歷(책력)을 내려주면 諸侯가 그것을 祖廟에 보관하였다가 초하루 아침이 되면 祖廟에 이르러 고유제를 지내고 그 朔歷을 받아 시행하였다.[天子頒朔於諸侯 諸侯藏之祖廟 至朔祖於廟 告而受行之]”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視朔’은 公이 朔歷을 받은 것을 사당에 고하고 바로 그달의 정사를 듣고 살피는 것이니, 이것이 직접 朔을 고하는 것이다.[視朔者 公旣告廟受朔 卽聽視此朔之政 是其親告朔也]”라고 하였다. ≪論語注疏 3卷≫
역주13 (朝)[朔]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朔’으로 번역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14 臧之狐裘 : 魯나라 대부 臧紇이 조회할 때나 聘問할 때 입는 大夫의 복식인 여우 갖옷을 차려입고 싸움에 임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5 晳幘而衣貍製 : 齊나라 大夫 東郭書가 전투에서 살쾡이 갖옷에 흰 두건을 썼음을 말한 것이다. 服虔은 “貍製는 살쾡이 갖옷이다.[貍製 貍裘]”라고 하였다.
역주16 功裘 : 卿과 大夫가 입는 갖옷으로 天子가 입는 良裘의 다음가는 옷이다. 良裘는 품질이 가장 좋은 갖옷이라는 뜻이고, 功裘는 공력을 들인 옷이라는 주석도 있고, 功이 있는 자에게 하사하는 옷이라는 주석도 있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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