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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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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氏箋

云 箋 識也라하고 案鄭六藝論文인대 注詩宗毛爲主로대 其義若隱略이면 則更表明하고
如有不同이면 卽下己意하여 使可識別也라하다이나 此題 非毛公馬鄭王肅等題
相傳云 是로대 承用旣久하여 莫敢爲異라하다
又案周續之與雷次宗 同受慧遠法師詩義로대 而續之釋題 已如此하니 又恐非雷之題也 疑未敢明之하노라
【疏】正義曰:鄭氏名玄, 字康成, 北海高密人, 當後漢桓․靈之時, 注此書也.
不言名而言氏者, 漢承滅學之後, 典籍出於人, 各專命氏, 以顯其家之學,
故諸爲訓者皆云氏, 不言名. 由此而言, 毛氏爲傳, 亦應自載毛字, 但不必冠詩上耳.
不然, 獻王得之, 何知毛爲之也. 明其自言毛矣.
鄭於諸經, , 呂忱字林云 “箋者, 表也, 識也.” 鄭以毛學審備, 遵暢厥旨,
所以表明毛意, 記識其事. 故特稱爲箋. 餘經無所遵奉, 故謂之注. 注者, 著也, 言爲之解說, 使其義著明也.
【疏】漢初, 爲傳訓者, 皆與經別行. 之文, 不與經連, 故書公羊傳, 皆無經文.
藝文志云 “毛詩經二十九卷, 毛詩故訓傳三十卷.” 是毛爲詁訓, 亦與經別也.
爲周禮之注, 乃云 “欲省學者兩讀, 故具載本文.”
然則後漢以來, 始就經爲注, 未審此詩, 引經附傳, 是誰爲之.
其鄭之箋, 當元在經傳之下矣, 其毛詩經二十九卷, 不知倂何卷也.
自周南至鄭氏箋, 凡一十六字, 所題非一時也. 周南關雎, 至第一詩國風, 元是大師所題也.
詁訓, 毛自題之. 毛一字, 獻王加之. 鄭氏箋, 鄭自題之.


鄭氏箋

자림字林≫에 “은 ‘설명함’이고 ‘표시함’이다.” 하였고, 정현鄭玄의 ≪육예론六藝論≫의 글을 살펴보면 “≪≫에 를 낼 때 모전毛傳종주宗主로 삼았는데 만약 그 뜻이 은미하거나 소략하면 다시 설명하여 밝혔고,
만약 내 뜻과 다르면 나의 의견을 아래에 달아 표시하여 구별할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제목은 모공毛公마융馬融정현鄭玄왕숙王肅 등이 단 것이 아니다.
전하는 말에 “이것은 뇌차종雷次宗이 제목을 단 것인데 그대로 따른 지가 오래되어 감히 달리할 수가 없다.” 하였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니 주속지周續之뇌차종雷次宗혜원법사慧遠法師에게서 시의詩義동문수학同門受學하였는데 주속지周續之가 제목을 풀이하기를 이미 이처럼 하였으니, 아마도 뇌차종雷次宗이 제목을 단 것은 아닐 듯하다. 의심나는 점은 감히 밝히지 않고 그대로 둔다.
정의왈正義曰정씨鄭氏는 이름이 이고 강성康成이니, 북해北海고밀인高密人으로 후한後漢환제桓帝영제靈帝 때에 이 책을 주석注釋하였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를 말한 것은,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뒤를 이어 전적典籍민간民間에서 나왔으므로 명칭을 모두 각자 가문家門을 중시하여 명명命名하여 그 가문의 학문을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훈석訓釋을 한 모든 이들은 를 말하고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를 가지고 말하자면 모씨毛氏주석注釋을 할 적에 스스로 ‘’자를 기재하였겠지만 꼭 ‘’자의 앞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왕獻王이 그것을 얻고 어떻게 모씨毛氏주석注釋한 것임을 알았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를 말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현鄭玄이 여러 주석注釋하고 모두 ‘’라고 하고, ≪시경詩經≫에서는 ‘’이라 한 것은, 여침呂忱의 ≪자림字林≫에 “은 설명함이고 표시함이다.” 하였는데, 정현鄭玄모씨毛氏는 학문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 그 뜻을 따라 서술하였다.
이 때문에 모씨毛氏의 뜻을 설명하여 밝히고 그 일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특별히 ‘’이라 칭한 것이고, 다른 경전은 받들어 따를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라고 한 것이다. ‘’는 드러내는 것이니 그것을 해설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어 밝히는 것을 말한다.
나라 초기에 낸 주석注釋들은 모두 과는 별도로 전해졌다. 그리하여 삼전三傳의 글이 경문經文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석경石經에 기록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모두 경문經文이 없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모시毛詩≫는 이 29이고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이 30이다.” 하였으니, 이는 모씨毛氏고훈詁訓을 지은 당시에도 과 별도로 유통된 것이다.
마융馬融이 ≪주례周禮≫를 주석注釋하고서 “배우는 사람들이 주석注釋을 따로 읽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여 본문을 함께 싣는다.” 하였다.
그렇다면 후한後漢 이후에야 비로소 에다 주석注釋을 한 것이니, 이 ≪시경詩經≫은 에다 을 가져다 붙인 것을 누가 했는지 알 수 없다.
정현鄭玄은 본디 의 아래에 있었을 것이지만, 그 ≪모시毛詩≫의 29 중 어느 에 합쳐졌는지는 모른다.
주남周南’에서 ‘정씨전鄭氏箋’까지의 16동시同時에 붙여진 제목이 아니니, ‘주남관저周南關雎’에서 ‘제일시국풍第一詩國風’까지는 원래 태사太師가 제목을 붙인 것이고
고훈전詁訓傳’은 모씨毛氏가 스스로 제목을 붙인 것이며, ‘’ 한 글자는 헌왕獻王이 더한 것이고 ‘정씨전鄭氏箋’은 정현鄭玄이 스스로 제목을 붙인 것이다.


역주
역주1 字林云……疑未敢明之 : 陸德明, ≪經典釋文≫ 〈毛詩音義〉에 나온다.
역주2 字林 : 晉의 학자 呂忱이 지었다. ≪字林≫은 문자의 訓詁에 대해서 기록한 字解書로 모두 7권(12,824字가 수록되어 있다.)이다.
역주3 (長)[表]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表’로 번역하였다.
역주4 雷次宗 : 南朝 宋나라 南昌人으로 字는 仲倫이다. 젊어서 廬山에 들어가 승려 慧遠을 섬겼으며 篤志好學하였다. 三禮와 毛詩에 밝았으며 元嘉 중에 鷄籠山에 學館을 열어 놓고 학도를 모아 교수하였다.
역주5 (滅)[間]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間’으로 번역하였다.
역주6 (間)[門]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門’으로 번역하였다.
역주7 皆謂之注 此言箋者 : 鄭玄이 다른 경우에는 ‘三禮注’․‘周易注’라 하였는데 ‘箋’이라 한 것을 말한다.
역주8 三傳 : ≪春秋左氏傳≫․≪春秋公羊傳≫․≪春秋穀梁傳≫을 가리킨다.
역주9 石經 : 돌에 새긴 經書. 後漢 靈帝 때 蔡邕이 詔命을 받아 隸書體로 五經을 돌에 새겨 太學의 문 밖에 세웠다.
역주10 馬融 : 後漢 安帝 때의 학자로 字는 季長이고 벼슬은 議郞에 이르렀으며, ≪春秋三傳異同說≫을 짓고 ≪孝經≫, ≪論語≫, 三禮 등을 注釋하였다.
역주11 [傳]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傳’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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