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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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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簡兮 刺不用賢也 衛之賢者 仕於伶官하니 皆可以承事王者也
간혜簡兮〉는 현자賢者를 등용하지 않음을 풍자한 것이다. 나라의 현자가 〈천직賤職인〉 악관樂官에 있으니 〈이들은〉 모두 왕을 받들어 섬길 만한 사람들이었다.
【箋】伶官 樂官也 伶氏世掌樂官而善焉이라 故後世多號樂官爲伶官이라
영관伶官악관樂官이다. 영씨伶氏가 대대로 악관을 맡아 〈일을〉 잘하였다. 그리하여 후세에 대부분 악관을 영관이라 하였다.
○簡 或作蕳이나 是草名이니 非也
은 간혹 ‘’으로 쓰지만 이는 풀의 이름이니 잘못이다.
【疏】‘簡兮(三章章六句)’至‘王者’
의 [간혜簡兮]에서 [왕자王者]까지
○正義曰:作簡兮詩者, 刺不能用賢也. 衛之賢者, 仕於伶官之賤職, 其德皆可以承事王者, 堪爲王臣, 故刺之.
정의왈正義曰:〈간혜簡兮를 지은 것은 현자를 잘 등용하지 못함을 풍자한 것이다. 나라의 현자가 악관 같은 천직에 있었으나 그들의 덕이 모두 왕을 받들어 섬겨 왕의 신하가 될 만한 사람이었으므로 풍자한 것이다.
伶官者, 樂官之摠名. 經言‘公庭萬舞’, 卽此仕於伶官, 在舞職者也.
영관伶官’은 악관의 총칭이다. 에서 ‘조정의 뜰에서 만무萬舞를 추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악관으로 벼슬하여 춤추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다.
周禮掌舞之官, 有舞師․籥師․旄人․韎師也, 云 “凡野舞則皆敎之” 不敎, 下傳曰 ‘敎國子弟’, 則非舞師也.
주례周禮≫에 춤을 담당하는 관리로는 무사舞師약사籥師모인旄人매사韎師가 있고, ≪주례周禮≫ 〈지관 사도地官 司徒〉의 무사舞師에 “야인으로서 춤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가르친다.”라고 하니, 국자國子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래 에 ‘교국자제敎國子弟’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무사舞師는 아니다.
籥師 “掌敎國子舞羽”, 則不敎, 經言 ‘公庭萬舞’, 則非籥師也.
주례周禮≫ 〈춘관 종백春官 宗伯〉의 약사籥師에 “국자國子에게 꿩 깃과 취약吹籥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다.”라고 하니, 만무萬舞를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에서 ‘공정만무公庭萬舞’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약사籥師는 아니다.
, 皆敎夷樂, 非萬舞, 又不敎國子, 且夷狄之樂, 諸侯所無, 非賢者所得爲也.
모인旄人매사韎師는 모두 오랑캐의 음악을 가르쳤으니 만무萬舞가 아니고, 또 국자國子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랑캐의 음악은 제후에게는 없으니 〈의〉 현자가 담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疏】唯大司樂云 “以樂敎國子” 樂師云 “以敎國子” 其用人, 則大司樂, 中大夫二人, 樂師, 下大夫四人․上士八人․下士十有六人.
주례周禮≫ 〈춘관 대사악春官 大司樂〉에 “으로 국자國子를 가르친다.”라고 하고, 〈춘관 악사春官 樂師〉에 “국자에게 소무小舞를 가르친다.”라고 하였는데, 소요되는 인원으로 대사악大司樂중대부中大夫 2인이고, 악사樂師하대부下大夫 4인․상사上士 8인․하사下士 16인이다.
此乃天子之官也, 諸侯之禮, 亡其官屬, 不可得而知. 燕禮注云 “于天子爲樂師也” 則諸侯有樂正之屬乎.
이는 바로 천자에게 속한 관직이니, 제후의 에는 그러한 관속이 없으므로 알 수 없다.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악정樂正천자天子에게는 악사樂師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제후에게는 악정樂正의 관속이 있었을 것이다.
首章傳曰 “非但在四方, 親在宗廟․” 二章傳曰 “祭有畀者, 惠下之道.”
수장首章에 “사방에서만 추는 것이 아니고, 친히 종묘와 조정의 뜰에서도 추었다.”라고 하고, 2에 “제사의 남은 음식을 에게 내려준 것은 아래에 은혜를 베푸는 도이다.”라고 하였는데,
禮記云 “翟者, 樂吏之賤者也” 則此賢者身在舞位, 在賤吏之列, 必非樂正也.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악리樂吏 중에 천한 자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현자가 몸소 춤추는 대오에 있고 천한 관리의 대열에 있는 것이니, 반드시 악정樂正은 아니다.
又刺衛不用賢, 而箋云‘擇人’, 擇人則君所置用, 又非也. 若府史, 則官長所自辟除, 非君所擇也.
나라가 현자를 쓰지 못함을 풍자한 것인데 에 ‘사람을 간택한다.’라고 하였으니, 사람을 간택한다는 것은 군주가 임용하여 쓰는 사람이고 부사府史도 아니다. 부사府史로 말하면 관장이 스스로 초빙하여 관직을 줄 수 있고 군주가 간택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疏】祭統曰 “尸飮九, 以, 獻士.” 下言祭之末, 乃賜之一爵, 又非士也, 蓋爲樂正之屬.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시동尸童이 아홉 번을 마시면 〈주인이〉 산작을 에게 내린다.” 하였는데, 아래(2)에 제사가 끝날 무렵 마침내 그에게 한 잔을 하사하였음을 말하였으니, 도 아닌 것이니 아마도 악정樂正의 관속일 것이다.
祭廟․敎國子, 皆在舞位則爲舞人也, 若周官旄人舞者衆寡無數, 韎師舞者十有六人之類也.
종묘에 제사하는 자와 국자國子를 가르치는 자는 모두 춤추는 대열에 있으면 무인舞人이니, 그렇다면 춤추는 사람으로 ≪주례周禮≫ 〈춘관 모인春官 旄人〉에 ‘무자舞者는 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한 것과 〈매사韎師〉의 ‘무자舞者는 16인이다.’라고 한 것과 같은 부류일 것이다.
周官司樂․樂師, 其下無舞人, 此蓋諸侯官而有之. 然則此非府史, 而言樂吏者, 以賤故以吏言之,
주례周禮≫ 〈춘관春官〉에 사악司樂악사樂師는 그 아래에 춤추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아마도 제후諸侯의 관속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가 아닌데도 악리樂吏라고 한 것이니, 낮은 자리이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故韗․胞․閽․寺, 悉非府史, 皆以吏言之也. 言 ‘皆可以’者, 見不用者非一, 或在其餘賤職, 故言皆也.
그리하여 가 모두 가 아닌데도 모두 라 한 것이다. ‘개가이皆可以’라 한 것은 현자賢者로서 쓰이지 않은 사람이 석인碩人 한 사람만이 아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천한 직위에 있음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라 한 것이다.
時周室卑微, 非能用賢, 而言 ‘可以承事王者’, 見碩人德大, 堪爲王臣, 而衛不用, 非要周室所能任也.
당시 나라 왕실이 약해져서 현자를 등용할 수 없었는데 ‘가이승사왕자可以承事王者’라 한 것은, 석인碩人의 큰 덕이 을 받들어 섬길 만한데도 나라가 쓰지 못함을 보인 것이지 나라 왕실이 등용할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仕於伶官’, 首章是也. 二章言 ‘多才多藝’, 卒章言 ‘宜爲王臣’, 是可以承事王者之事也.
사어영관仕於伶官’은 수장首章이 이것이다. 2의 〈에서〉 ‘재주와 기예가 많다.’라고 한 것과 끝장의 ‘마땅히 왕의 신하가 될 만하다.’라고 한 것은 ‘가이승사왕자可以承事王者’의 사실이다.
【疏】箋‘伶官’至‘爲伶官’
의 [영관伶官]에서 [위령관爲伶官]까지
○正義曰:左傳鍾儀對晉侯曰 “伶人也. 使與之琴, 操南音.” 周語曰 “周景王鍾成, 伶人告
정의왈正義曰:≪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성공成公 9년에 “나라의 종의鍾儀진후晉侯에게 ‘저는 영인伶人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진후가〉 그에게 거문고를 주게 하니 그가 남방南方의 음악을 연주하였다.”라고 하고,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주 경왕周 景王이 완성되자 영인伶人이 음의 조화로움을 고했다.”라고 하고,
魯語云 “伶簫詠歌及.” 此云‘仕於伶官’, ‘以伶氏世掌樂官而善焉, 故後世多號樂官爲伶官’.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영인伶人시가詩歌를 퉁소로 연주하여 소아 녹명小雅 鹿鳴의 세 편에까지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어영관仕於伶官’이니, ‘영씨伶氏가 대대로 악관을 맡아 잘하였다. 그리하여 후세에 대부분 악관을 영관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呂氏春秋及律歷志云 “黃帝使伶倫氏, 自大夏之西, 崐崘之陰, 取竹, 斷兩節間而吹之,
여씨춘추呂氏春秋≫와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황제黃帝영륜씨伶倫氏에게 대하大夏의 서쪽으로부터 곤륜崐崘의 북쪽에 이르도록 대나무를 취하여 두 마디를 잘라 불어 황종黃鍾궁음宮音을 삼게 하였다.”라고 하고,
周語 “景王鑄, 而問於伶州鳩” 是伶氏世掌樂官.
주어周語〉에 “경왕景王무역無射을 주조하고 악관 주구州鳩에게 물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영씨伶氏가 대대로 음악을 맡은 관리인 것이다.
簡兮簡兮 方將萬舞로다
크고 훤칠한 사람 사방에서 만무를 추네
【傳】簡 大也 四方也 行也 以干羽爲萬舞하여 用之宗廟山川이라 故言於四方이라
은 ‘큼’이고 은 ‘사방四方’이며 은 ‘행함’이다. 방패와 깃을 가지고 만무萬舞를 추어 종묘와 산천의 제사에 사용한다. 그리하여 사방을 말한 것이다.
【箋】箋云 簡이요 且也 擇兮擇兮者 爲且祭祀當萬舞也 萬舞
전운箋云은 ‘선발함’이고 은 ‘장차’이다. 사람을 고르고 고른 것은 장차 제사에 만무萬舞를 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무萬舞는 ‘간무干舞’이다.
日之方中인데 在前上處로다
해는 막 중천인데 앞줄 맨 앞자리에 있네
【傳】敎國子弟 以日中爲期
국자제國子弟를 교육하는 것은 정오正午를 기준으로 삼는다.
【箋】箋云 在前上處者 在前列上頭也 周禮 大胥掌學士之版하여 以待致諸子 入學하여 라하다
전운箋云:‘재전상처在前上處’는 앞줄의 맨 앞자리에 있는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 대서春官 大胥〉에 “대서大胥가 학생들의 호적을 관리하여 자제들의 취학을 대비한다. 봄에 입학하여 사채舍采합무合舞를 한다.”라고 하였다.
○舍音釋이니 下篇舍軷同이라
의 음은 ‘석’이니 하편下篇의 ‘석발舍軷’도 같다.
碩人俁俁 公庭萬舞로다
큰 덕을 지닌 훤칠한 이 궁전 뜰에서 만무萬舞를 추네
【傳】碩人 大德也 俁俁 容貌大也 萬舞 非但在四方이요 親在宗廟公庭이라
석인碩人은 큰 덕을 지닌 자이고 우우俁俁는 용모가 큰 것이다. 만무萬舞는 사방에서만 추는 것이 아니고 친히 종묘나 궁전의 뜰에서도 춘다.
○俁 韓詩扈扈하니 云美貌
는 ≪한시韓詩≫에 ‘호호扈扈’로 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모습을 말한다.
【疏】‘簡兮’至‘萬舞’
의 [간혜簡兮]에서 [만무萬舞]까지
○毛以爲 “言衛不用賢, 有大德之人兮, 大德之人兮, 祭山川之時, 乃使之於四方, 行在萬舞之位.
모형毛亨은 “나라가 현자賢者를 등용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니, 큰 덕을 소유한 사람이여. 큰 덕을 소유한 사람이여! 산천에 제사할 때에 마침내 그에게 사방으로 가게 하여 만무萬舞를 추는 자리에서 춤추게 하였다.
又至於日之方中, 敎國子弟習樂之時, 又使之在舞位之前行而處上頭, 親爲舞事以敎之.
또 정오에 이르러 국자제國子弟에게 음악을 익히는 것을 교육할 때에 이르러서 또 그에게 춤추는 자리 앞줄의 맨 앞자리에 있게 하여 친히 춤을 추어 가르치게 하였다.
此賢者旣有大德, 復容貌美大俁俁然, 而君又使之在宗廟․公庭, 親爲萬舞, 是大失其所也.”
현자賢者가 큰 덕을 지녔고 게다가 용모가 아름답고 훤칠한데도 군주가 그에게 종묘와 궁전의 뜰에서 친히 만무萬舞를 추게 하니, 이는 인재가 제자리를 크게 잃은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爲 “衛君擇人兮擇人兮, 爲有方且祭祀之時, 使之當爲萬舞. 又日之方中, 仲春之時, 使之在前列上頭, 而敎國子弟習樂.
정현鄭玄은 “위군衛君이 사람을 고르고 고른 것은 사방에서 제사를 지낼 일이 있을 때에 그에게 만무萬舞를 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일지방중日之方中중춘仲春에 그에게 앞줄의 맨 앞자리에서 국자제國子弟에게 음악을 익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爲此賤事, 不當用賢, 而使大德之人容貌俁俁然者, 於祭祀之時, 親在宗廟․公庭而萬舞.” 言擇大德之人, 使爲樂吏, 是不用賢也.
이 일은 천한 일이니 현자賢者를 써서는 안 되는데도 용모가 훤칠한 큰 덕을 지닌 이로 하여금 제사를 지낼 때에 몸소 종묘와 궁전의 뜰에서 만무萬舞를 추게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니, 큰 덕을 지닌 사람을 선발하여 악리樂吏로 삼은 것이 바로 현자賢者를 제대로 쓰지 못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傳‘以干羽’至‘四方’
의 [이간우以干羽]에서 [사방四方]까지
○正義曰:萬, 舞名也. 謂之萬者, 云 “象武王以萬人定天下, 民樂之, 故名之耳.”
정의왈正義曰은 춤의 명칭이다. ‘’이라 한 것은, 하휴何休가 “무왕武王만인萬人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형상하였다. 그리하여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商頌曰 “萬舞有奕” 殷亦以武定天下, 蓋象湯之伐桀也.
상송 나商頌 那〉에 “만무萬舞가 질서정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나라도 무력武力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이는 임금이 을 정벌함을 형상한 것이다.
何休指解周舞, 故以武王言之, 萬舞之名, 未必始自武王也. 以萬者, 舞之摠名, 干戚與羽籥皆是, 故云‘以干羽爲萬舞
하휴何休나라의 춤을 가리켜 풀이하였기 때문에 무왕武王으로 말한 것이지, ‘만무萬舞’의 명칭이 반드시 무왕武王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은 춤의 총칭이니 방패와 도끼, 깃과 피리로 추는 춤이 모두 이것이다. 그리하여 ‘이간우위만무以干羽爲萬舞라 한 것이다.
以祭山川宗廟’. 宜干羽竝有, 故云‘用之宗廟․山川’. 由山川在外, 故云‘於四方’, 解所以言四方之意也.
산천과 종묘에 제사할 때에는 의당 방패와 깃으로 추는 춤이 모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용지종묘산천用之宗廟山川’이라 한 것인데 산천山川이 밖에 있으므로 ‘어사방於四方’이라 한 것이니, 사방이라 말한 뜻을 풀이한 것이다.
【疏】周禮, 舞師敎羽舞, 帥而舞四方之祭祀, 敎兵舞, 帥而舞山川之祭祀, 則山川與四方別.
주례周禮≫ 〈지관地官〉에 “무사舞師우무羽舞를 가르쳐 춤추는 무리를 거느리고 사방의 제사에 춤을 추고, 병무兵舞를 가르쳐 춤추는 무리를 거느리고 산천의 제사에 춤을 춘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산천과 사방은 구별된다.
此言山川而云四方者, 以周禮言 “天子法四方爲四望.”
여기에서 산천을 말하면서 사방을 말한 것은, ≪주례周禮≫ 〈지관地官〉에 “천자天子사방四方에 법이 되어 사방의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故注云 “四方之祭祀, 謂四望也.” 大司樂注云 “四望, 謂.” 然則除此以外, 乃是山川也, 故山川與四方別舞.
그리하여 에 “사방의 제사를 사망四望이라 한다.”라고 하고, ≪주례周禮≫ 〈춘관 대사악春官 大司樂〉의 에 “사망四望은 5악과 4진과 4독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밖의 것이 바로 산천山川이다. 그리하여 산천과 사방에 춤을 달리한 것이다.
諸侯之祭山川, 其在封內則祭之, 非其地則不祭, 無嶽瀆之異, 唯祭山川而已, 故以山川對宗廟在內爲四方也.
그런데 제후가 산천에 제사함은 산천이 영지領地의 안에 있으면 제사하고, 영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제사하지 않으니, 의 구분이 없어 오직 산천에만 제사 지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산천을 종묘와 영지의 안과 대비하여 사방이라 한 것이다.
此傳干羽爲萬舞, 宗廟山川同用之, 而樂師注云 “宗廟以人, 山川以干.” 皆非羽舞, 宗廟山川又不同.
은 방패와 깃으로 추는 춤을 만무萬舞라 하여 종묘와 산천에서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주례周禮≫ 〈춘관 악사春官 樂師〉의 에는 “종묘宗廟에는 소매로 춤을 추고 산천에는 방패로 춤을 춘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깃으로 추는 춤이 아니고 또 종묘와 산천이 다르다.
此得同者, 天子之禮大, 故可爲之節文, 別祀別舞, 諸侯, 唯有時王之樂, 少, 其舞可以同也.
羽舞(≪新定三禮圖≫)羽舞(≪新定三禮圖≫)
그런데 여기에서 같을 수 있는 것은, 천자의 예수禮數는 방대하기 때문에 예의와 법도를 만들어 제사와 춤을 다르게 할 수 있지만, 제후諸侯는 당시 군주의 음악이 있고 예수가 적어 그 춤을 같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疏】箋‘簡擇’至‘干舞’
○正義曰:以下云‘公言錫爵’, 當祭末, 則‘公庭萬舞’, 是祭時.
정의왈正義曰:아래 장에서 ‘이 한 잔 술을 내리네.’라고 한 것은 제사의 끝에 해당되니, 그렇다면 ‘공정만무公庭萬舞’는 제사할 때이다.
此方論擇人爲萬舞, 故爲且祭祀也, 傳亦以此推之, 故用之宗廟山川爲祭也.
여기에서는 사람을 간택하여 ‘만무萬舞’를 추게 한 것을 막 말하였기 때문에 장차 제사하려는 것이 되고, 도 이것으로 미루었기 때문에 ‘용지종묘산천用之宗廟山川’이 제사가 된다.
知萬舞爲干舞, 不兼羽籥者, 以春秋云 “” 別文. 公羊傳曰 “籥者何, 籥舞, 萬者何, 干舞.”
만무萬舞간무干舞이고 우무羽舞약무籥舞를 겸하지 않음을 안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 8년에 “만무萬舞를 들이고 약무籥舞를 내보냈다.”라고 하여 말을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선공宣公 8년에 “이란 무엇인가? 약무籥舞이고, 이란 무엇인가? 간무干舞이다.”라고 하였으니,
言干則有戚矣, 禮記云 “朱干玉戚, 冕而舞大武.” 言籥則有羽矣, 籥師曰 “敎國子舞羽吹籥”
을 말했으면 이 있으니,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붉은 방패와 옥도끼로 면복을 입고서 ‘대무大武’에 맞추어 춤을 춘다.”라고 한 것이고, 을 말했으면 가 있으니, ≪주례周禮≫ 〈춘관 약사春官 籥師〉에 “국자제國子弟에게 깃으로 춤추고 피리를 부는 것을 가르친다.”라고 한 것이다.
羽․籥相配之物, 則羽爲籥舞, 不得爲萬也. 以干戚武事, 故以萬言之, 羽․籥文事, 故指體言籥耳.
은 서로 짝하는 물건이니, 그렇다면 약무籥舞를 추는 것이니 만무萬舞가 될 수 없다. 방패와 도끼는 무사武事이기 때문에 으로 말한 것이고 깃과 피리는 문사文事이기 때문에 실물을 가리켜 이라 한 것이다.
【疏】是以, 文王世子云 “春夏學干戈, 秋冬學羽籥.” 注云 “干戈, 萬舞, 象武也, 羽籥, 籥舞, 象文也.” 是干羽之異也.
이 때문에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봄과 여름에는 방패와 창으로 춤추는 것을 배우고, 가을과 겨울에는 깃과 피리로 춤추는 것을 배운다.”라고 하였는데, 에 “간과干戈만무萬舞이니 를 형상한 것이고, 우약羽籥약무籥舞이니 을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우무羽舞약무籥舞가 다른 것이다.
且此萬舞幷兼羽籥, 則碩人故能籥舞也. 下二章, 論碩人之才藝, 無爲復言 ‘左手執籥 右手秉翟’也, 明此言干戚舞, 下說羽籥舞也.
그리고 이 만무萬舞우무羽舞약무籥舞를 아울러 겸한 것으로 말하면 석인碩人은 본래 약무籥舞에 능한 것인데, 아래 2에서는 석인碩人재예才藝를 말하면서 거듭 ‘좌수집약 우수병적左手執籥 右手秉翟’을 말하지 않았으니, 분명 이 장은 간척干戚으로 추는 춤을 말하고 아래 장은 우약羽籥으로 추는 춤을 말한 것이다.
以此知萬舞唯干, 無羽也. 孫毓亦云 “萬舞, 干戚也, 羽舞, 翟之舞也.” 傳‘以干羽爲萬舞’, 失之矣.
이것으로 만무萬舞는 방패만을 쓰고 깃을 씀이 없음을 안 것이다. 손육孫毓도 “만무萬舞는 방패와 도끼로 추는 것이고, 우무羽舞는 꿩의 깃으로 추는 춤이다.”라고 하였으니, 의 ‘방패와 깃을 가지고 만무萬舞를 춘다.’는 것은 잘못이다.
【疏】傳‘敎國’至‘爲期’
의 [교국敎國]에서 [위기爲期]까지
○正義曰:知敎國子弟者, 以言‘在前上處’, 在前列上頭, 唯敎者爲然.
정의왈正義曰국자제國子弟를 가르친 것을 안 것은 ‘재전상처在前上處’를 말하였으니, 앞줄의 맨 앞자리에 있음은 가르치는 사람만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祭祀之禮, 旦明而行事, 非至日之方中, 始在前上處也, 此旣爲樂官, 明其所敎者國子也.
제사祭祀의 예는 날이 밝을 무렵에 지내니 정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앞줄의 맨 앞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사람이 악관이고 보면 분명 가르치는 대상이 국자제國子弟인 것이다.
國子, 謂諸侯․大夫․士之適子. 言弟, 容諸侯之庶子, 於適子爲弟,
국자國子’는 제후諸侯대부大夫적자適子를 말한다. ‘’를 말한 것은 제후의 서자를 허용한 것이니, 적자에게는 아우가 된다.
故王制云 “王太子․王子․群后之太子․卿大夫元士之適子” 彼雖天子之法, 推此諸侯, 亦有庶子在國學, 故言國子弟也.
그리하여 ≪예기禮記≫ 〈왕제王制〉에서 “왕태자王太子왕자王子, 제후의 태자太子, 경대부卿大夫원사元士적자適子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비록 천자天子이지만 이를 제후에 미루어보면 서자도 국학에서 공부하였으므로 ‘국자제國子弟’라 한 것이다.
傳言‘日中爲期’, 則謂一日之中, 非春秋日夜中也. 若春秋, 爲期也,
에서 말한 ‘일중위기日中爲期’는 정오正午를 말한 것이지 춘분과 추분이 아니다. 만약 춘분과 추분이라면 ‘위기爲期’를 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故王肅云 “敎國子弟, 以日中爲期, 欲其徧至” 是也.
그리하여 왕숙王肅이 “국자제國子弟를 가르치되 정오를 기준으로 한 것은 두루 이르게 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箋‘在前’至‘合舞’
의 [재전在前]에서 [합무合舞]까지
○正義曰:公羊傳曰 “諸侯四佾, 則舞者爲四列.” 使此碩人, 居前列上頭, 所以敎國子諸子學舞者, 令法於己也.
정의왈正義曰:≪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제후諸侯사일四佾이니 그렇다면 춤추는 사람이 4열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석인碩人으로 하여금 앞줄의 맨 앞자리에 서게 한 것이니, 국자國子제자諸子로 춤을 배우려는 자를 가르쳐서 자기를 법으로 삼게 한 것이다.
周禮者, 皆春官大胥職文也. 彼注云 “學士, 謂卿大夫諸子學舞者. 版, 籍也.
주례周禮≫라고 한 것은 모두 〈춘관 대서직春官 大胥職〉의 글이다. 그 에 “학사學士는 경대부의 제자諸子로 춤을 배우려는 사람을 말한다. 호적戶籍이다.
大胥主此版籍, 以待當召聚學舞者卿大夫之諸子, 則案此籍以召之.”
대서大胥가 이 호적을 주관하여 춤을 배우려는 경대부의 제자諸子를 불러 모아야 할 때를 기다려서 이 호적을 살펴보고 그들을 부른다.”라고 하였고,
又云 “春, 入學”者, 注云 “春始以學士入學宮而學之 , 等其進退, 使應節奏.
또 “춘 입학春 入學”이라 한 것은, 에 “봄에 처음으로 학사學士가 학궁에 입학하여 합무合舞를 배운 것이니, 진퇴進退의 동작을 똑같이 하여 박자에 맞게 하였다.
月令, 仲春之月, 命樂正習舞. 入學者, 必釋菜以禮先師, 謂蘋藻之屬也.” 此賢者, 非爲大胥也.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춘仲春이 되면 악정樂正에게 춤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입학入學한 자들은 반드시 석채례를 하여 선사先師에게 예를 행했으니 빈조蘋藻의 등속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현자는 대서大胥가 아니다.
引此者以證此‘日之方中’, 卽彼‘春 入學’, 是矣, 謂二月日夜中也. 尙書云 “” 左傳曰 “” 皆與此同也.
이 글을 인용하여 ‘일지방중日之方中’은 바로 ≪주례周禮≫의 ‘춘 입학春 入學’이 이것임을 증명하였으니, 2월의 춘분을 말한 것이다. ≪상서尙書≫ 〈요전堯典〉에 “일중성조日中星鳥”라고 한 것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29년에 “마일중이출馬日中而出”이라고 한 것이 모두 이와 같다.
【疏】傳‘碩人’至‘公庭’
의 [석인碩人]에서 [공정公庭]까지
○正義曰:碩者, 美大之稱, 故諸言碩人者, 傳皆以爲大德. 唯白華碩人, 傳不訓此, 及考槃傳意類之, 則亦爲大德也,
정의왈正義曰은 ‘아름답고 훌륭함’의 호칭이다. 그리하여 석인碩人을 말한 모든 경우에는 에서 모두 대덕大德이라 한 것이다. 오직 〈소아 백화小雅 白華〉의 석인碩人만은 에서 이것을 를 내지 않았으나, 〈위풍 고반衛風 考槃의 뜻으로 유추하면 이 또한 대덕大德이 된다.
故王肅云 “碩人謂申后.” 此刺不用賢, 則箋意亦以碩人爲大德.
그리하여 왕숙王肅이 “석인碩人은 〈유왕幽王인〉 신후申后를 말한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자賢者를 쓰지 못함을 풍자한 것이니, 그렇다면 여기 의 뜻도 석인碩人대덕大德으로 여긴 것이다.
其餘則隨義而釋, 不與此同, 故白華碩人, 爲妖大之人, 謂褒姒也. 碩旣爲大德, 故俁俁爲容貌大也.
이 나머지는 뜻에 따라 주석하여 이와 같지 않다. 그리하여 〈백화白華〉의 에서 석인碩人을 ‘매우 요사스러운 사람이니 포사褒姒를 말한다.’고 한 것이다. 대덕大德이 되기 때문에 우우俁俁는 용모가 훤칠함이 된다.
上亦敎國子, 此直云‘非但在四方’, 不竝言敎國子者, 以‘在前上處’文無舞, 故據萬舞言也.
위의 에서 또한 ‘교국자敎國子’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다만 ‘비단재사방非但在四方’이라 하고 ‘교국자敎國子’를 함께 말하지 않은 것은 ‘재전상처在前上處’의 글에 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무萬舞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
有力如虎 執轡如組로다
힘은 범 같고 말고삐 잡으면 베를 짜는듯
【傳】組 織組也 武力比於虎 可以御亂이요 御衆有文章 言能治衆호대 動於近하여 成於遠也
’는 베를 짜는 것이다. 무력武力을 범에 견준 것은 난을 막을 만함을 말한 것이고, 대중을 거느림에 법도가 있는 것은 대중을 다스리되 가까운 이를 감동시켜 먼 곳에서 이룰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箋】箋云 碩人有御亂御衆之德하여 可任爲王臣이라
전운箋云석인碩人이 난을 막아내고 대중을 거느리는 덕을 지녀 왕의 신하가 될 만한 것이다.
左手執籥하고 右手秉翟이라
왼손엔 피리 잡고 오른손엔 꿩 깃 잡았네
【傳】籥 六孔이요 翟羽也
은 구멍이 여섯 개이고, 은 꿩의 깃이다.
【箋】箋云 碩人多才多藝하고 又能籥舞 言文武道備
전운箋云석인碩人이 다재다능하고 또 ‘약무籥舞’에도 능하니, 문무文武의 도가 갖추어졌음을 말한 것이다.
○籥 以竹爲之하고 長三尺이니 執之以舞 鄭注禮云 三孔이라하여늘 郭璞同云 形似笛而小 廣雅云 七孔이라
은 대나무로 만들고 길이가 3척인데 들고서 춤을 춘다. 정현鄭玄의 ≪주례周禮에 “구멍이 세 개이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이 똑같이 “모양은 피리와 비슷하나 작다.”라고 하였다. ≪광아廣雅≫에는 “구멍이 일곱 개이다.”라고 하였다.
赫如渥赭어늘 公言錫爵이라
붉은색 바른 듯 얼굴 붉은데 공께서 술 한 잔을 내리시네
【傳】赫 赤貌 祭有畀煇胞翟閽寺者 惠下之道 見惠不過一이라
은 ‘붉은 모습’이고 은 ‘흠뻑 젖는 것’이다. 제사에 에게 하사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인애仁愛하는 도리인데, 내리는 은혜가 일산一散에 불과함을 나타낸 것이다.
【箋】箋云 碩人容色赫然하여 如厚傅丹이라 君徒賜其一爵而已 不知其賢而進用之 受五升이라
전운箋云석인碩人의 얼굴빛이 붉어 붉은색을 짙게 바른 듯하였다. 군주가 일작一爵만을 내렸을 뿐이니, 이는 그의 어짊을 알지 못하고 등용한 것이다. 은 다섯 되들이 술잔이다.
【疏】‘有力’至‘錫爵’
의 [유력有力]에서 [석작錫爵]까지
○正義曰:言碩人旣有武力比如虎, 可以能御亂矣, 又有文德, 能治民, 如御馬之執轡, 使之有文章, 如織組矣.
정의왈正義曰석인碩人무력武力을 지닌 것이 범에 견줄 만하여 난을 막을 수 있고, 또 문덕文德을 지녀 백성을 다스리기를 말고삐를 잡은 듯이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법도가 있게 함이 천을 짜는 것과 같았다.
以御者, 執轡於此, 使馬騁於彼, 織組者, 摠紕於此, 而成文於彼, 皆動於近, 成於遠.
말을 모는 사람은 이쪽에서 고삐를 잡아 저쪽에 있는 말을 달려가게 하고, 천을 짜는 사람은 이쪽에서 짜서 저쪽에서 문채를 이루니, 모두 가까운 이를 감동시켜 먼 곳에서 이룰 수 있음을 말하여
以興碩人能治衆施化, 於己而有文章, 在民亦動於近, 成於遠矣.
석인碩人이 대중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자기에게는 법도가 있게 하고 백성에게 있어서도 가까운 이를 감동시켜 먼 곳에서 이룰 수 있음을 한 것이다.
碩人旣有御衆御亂之德, 又有多才多藝之伎, 能左手執管籥, 右手秉翟羽而舞, 復能爲文舞矣.
석인碩人이 대중을 다스리고 난을 막을 덕을 지니고, 또 다재다능한 기예를 지녀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손에는 꿩 깃을 잡고서 춤을 추어 다시 문무文舞를 출 수 있었다.
且其顔色赫然而赤, 如厚漬之丹赭. 德能容貌若是, 而君不用, 至於祭祀之末, 公唯言賜一爵而己, 是不用賢人也.
또 그 안색이 몹시 붉어 붉은색의 흙과 같았다. 그의 덕과 능력, 용모가 이와 같은데도 인군이 등용하지 못하고 제사가 끝나갈 무렵에 이 다만 한 잔의 술을 내릴 뿐이니, 이는 현자賢者를 쓰지 못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傳‘組織’至‘於遠’
의 [조직組織]에서 [어원於遠]까지
○正義曰:以義取動近成遠, 故知爲織組, 非直如組也. 武力比於虎, 故可以御亂也.
정의왈正義曰:가까운 이를 감동시켜 먼 곳에서 이룬 뜻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천을 짜는 것이 됨을 안 것이니 인끈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 무력武力이 범과 견줄 만하므로 난을 막을 수 있다.
御, 治也, 謂有侵伐之亂, 武力可以治之. 又言‘御衆有文章’者, 御衆似執轡, 有文章似織組.
는 ‘다스림’이니,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아 난이 있을 때에 무력으로 다스릴 수 있음을 말한다. 또 ‘어중유문장御衆有文章’이라 한 것은 대중을 다스리기를 말고삐를 잡은 듯이 하여 법도가 있는 것이 천을 짜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又云言‘能治衆 動於近 成於遠’者, 又摠解御衆有文章之事也.
또 ‘능치중 동어근能治衆 動於近 성어원成於遠’이라 한 것은 대중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는 일을 총괄하여 풀이한 것이다.
【疏】以執轡及於如組與治衆, 三者皆動於近成於遠也. 此治民似執轡, 執轡又似織組, 轉相如,
집비執轡를 ‘여조如組’와 ‘치중治衆’에까지 미치게 한 것은 세 가지 모두가 가까운 이를 감동시켜 먼 곳에서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말고삐를 잡은 것과 비슷하고, 말고삐를 잡은 것이 천을 짜는 것과 같아서 이리저리 봐도 서로 같다.
故經直云‘執轡如組’, 以喩御衆有文章也. 大叔于田云 ‘執轡如組’, 謂段之能御車, 以御車似織組.
그리하여 에서 곧장 ‘집비여조執轡如組’만을 말하여 대중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정풍 대숙우전鄭風 大叔于田〉에서 말한 ‘집비여조執轡如組’는 공숙단共叔段이 수레를 모는 데 능하여 수레를 모는 것이 천을 짜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知此不然者, 以彼說段之田獵之伎, 故知爲實御, 此碩大堪爲王臣, 言‘有力如虎’, 是武也,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안 것은, 〈정풍 대숙우전鄭風 大叔于田〉에서는 공숙단共叔段의 사냥하는 기예를 말하였으므로 실제로 말을 모는 것이 됨을 알 수 있고, 여기에서는 대덕大德이 있는 사람이 왕의 신하가 될 만하여 ‘유력여호有力如虎’라 하였으니, 이는 씩씩하기 때문이다.
故知‘執轡如組’比其文德, 不宜但爲御矣.
그리하여 ‘집비여조執轡如組’를 그의 문덕文德에 대비시킨 것이지 단지 말을 모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마땅치 않음을 안 것이다.
【疏】傳‘籥 六孔 翟 翟羽’
의 [약 육공籥 六孔 적 적우翟 翟羽]
○正義曰:釋樂云 “大籥謂之産.” 郭璞曰 “籥如笛, 三孔而短小.” 廣雅云 “七孔.”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악釋樂〉에 “대약大籥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은 피리와 같은데 구멍이 세 개이고 짧으며 작다.”라고 하고, ≪광아廣雅≫에는 “구멍이 일곱 개이다.”라고 하였으며,
鄭於周禮笙師及少儀․明堂位注, 皆云 “籥如笛, 三孔” 此傳云‘六孔’, 與鄭不同, 蓋以無正文, 故不復改.
정현鄭玄이 ≪주례周禮≫ 〈춘관 생사春官 笙師〉, ≪예기禮記≫의 〈소의少儀〉와 〈명당위明堂位〉의 에서 모두 “은 피리와 같은데 구멍이 세 개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에서는 구멍이 여섯 개라고 하여 정현鄭玄과 같지 않으니, 이는 정문正文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고치지 않은 듯하다.
傳‘翟 翟羽’, 謂雉之羽也, 故異義 “公羊說‘樂萬舞, 以鴻羽, 取其勁輕, 一擧千里’, 詩毛說‘萬以翟羽’, 韓詩說‘以夷狄大鳥羽’,
의 ‘적 적우翟 翟羽’는 꿩의 깃을 말한다. 그리하여 ≪오경이의五經異議≫에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기러기 깃으로 만무萬舞를 추는 것은 깃털이 강하고 가벼워 한 번 날아오르면 천리를 나는 것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고, ≪시경詩經≫에서는 모형毛亨이 ‘만무萬舞는 꿩 깃을 가지고 춘다.’라고 하며, ≪한시韓詩≫에서는 ‘이적夷狄은 큰 새의 깃을 가지고 춘다.’라고 하였다.
謹案詩云 ‘右手秉翟’, 爾雅說‘翟, 鳥名, 雉屬也.’ 知翟, 羽舞也.”
삼가 살펴보니 ≪시경詩經≫에서는 ‘우수병적右手秉翟’이라 하고, ≪이아爾雅≫에서는 ‘은 새의 이름이니 꿩의 부류이다.’라고 하였으니, ‘우무羽舞’임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箋‘碩人’至‘道備’
의 [석인碩人]에서 [도비道備]까지
○正義曰:籥雖吹器, 舞時與羽竝執, 故得舞名. 是以賓之初筵云 “籥舞笙鼓” 公羊傳曰 “籥者何, 籥舞”是也.
정의왈正義曰은 비록 부는 악기지만 춤을 출 때에 깃과 함께 잡는다. 그리하여 춤의 명칭을 얻었다. 이 때문에 〈소아 빈지초연小雅 賓之初筵〉에 “을 잡고 춤을 추며, 생황 불고 북을 치네.”라고 하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은 무엇인가? 약무籥舞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首章云‘公庭萬舞’, 是能武舞, 今又說其籥舞, 是又能爲文舞也. 碩人有多才多藝, 又能爲此籥舞, 言文武備也.
수장首章에서 말한 ‘공정만무公庭萬舞’는 무무武舞에 능한 것이고, 지금 또 약무籥舞를 말했으니, 이는 또 문무文舞를 잘 춘 것이다. 석인碩人이 다재다능하고 또 이 약무籥舞를 잘 출 수 있으니 문무를 겸비했음을 말한 것이다.
言其能而已, 非謂碩人實爲之也. 何者, 此章主美其文德, 不論其在職之事.
이는 그가 잘 할 수 있음을 말했을 뿐이고, 실제로 석인碩人이 그것을 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어째서인가. 이 석인碩人의 문덕을 주로 찬미한 것이지 그가 직임에 있을 때의 일을 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疏】傳‘渥厚’至‘一散’
의 [악후渥厚]에서 [일산一散]까지
○正義曰:渥者, 浸潤之名, 故信南山曰 “益之以霡霂, 旣優旣渥”是也.
정의왈正義曰은 점점 젖어드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다. 그리하여 〈소아 신남산小雅 信南山〉에 “이슬비로써 더하니 흠뻑 적시었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故此及終南皆云 “渥, 厚漬也” 言漬之人厚則有光澤, 故以興顔色之潤.
그리하여 이 편과 〈진풍 종남秦風 終南〉에 모두 “은 흠뻑 젖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람에게 젖어듦이 넉넉하면 광택이 난다. 그리하여 이것으로 안색이 윤택함을 한 것이다.
是以, 終南箋云 “如厚漬之丹, 言赤而澤” 是也. 定本“渥 厚也” 無漬字. ‘祭有畀韗․胞․翟․閽․寺者 惠下之道’, 皆祭統文.
이 때문에 〈종남終南〉의 에 “흠뻑 젖은 붉은색과 같으니 붉으면서 윤택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정본定本에는 “악 후야渥 厚也”라고 하여 ‘가 없다. ‘제유비운祭有畀韗사자 혜하지도寺者 惠下之道’는 모두 ≪예기禮記≫ 〈제통祭統〉의 글이다.
彼又云 “畀之爲言與也, 能以其餘, 畀於下也. 煇者, 甲吏之賤者, 胞者, 肉吏之賤者, 翟者, 樂吏之賤者, 閽者, 守門之賤者.”
제통祭統〉에 또 “는 주는 것이니 그 남은 음식을 아래에 내려준 것이다. 갑리甲吏 중의 천한 자이고, 육리肉吏 중의 천한 자이며, 악리樂吏 중의 천한 자이고, 은 문지기 중의 천한 자이다.”라고 하였는데,
注云 “煇, 周禮作韗, 蓋謂磔皮革之官.” 周禮韗人爲鼓, 鮑人爲甲, 禮記是諸侯兼官, 故韗爲甲吏也.
에 “은 ≪주례周禮≫에 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피혁을 자르는 관리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주례周禮≫에서는 운인韗人은 북을 만들고 포인鮑人은 갑옷을 만드는데, ≪예기禮記≫는 제후諸侯의 경우로 관직을 겸하므로 ‘’을 갑리甲吏라 한 것이다.
胞, 卽周禮庖人, 故注云 “庖之言苞也, 裹肉曰苞苴, 其職供王之膳羞.” 是肉吏是也, 其官次於韗人.
는 바로 ≪주례周禮≫의 ‘포인庖人’이다. 그리하여 에 “의 뜻은 ‘’이다. 고기를 싸는 것을 ‘포저苞苴’라 하니, 직책이 왕에게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육리肉吏가 이것이다. 관직은 운인韗人보다 아래이다.
【疏】周禮韗人亡. 庖人, 中士四人, 下士八人. 閽人, 王宮每門四人. 寺人, 王之五人.
주례周禮≫에는 운인韗人이 없다. 포인庖人중사中士가 4명이고 하사下士가 8명이다. 혼인閽人은 왕궁의 문마다 4명이다. 시인寺人왕후王后의 침전에 5명이다.
以庖人類之, 則皆非府․史, , 又非士. 庖人於天子爲士, 於諸侯故亦非士.
포인庖人으로 유추하면 모두 가 아니어서 술잔을 올릴 위치에 있지 않으니 그렇다면 도 아니다. 포인庖人천자天子에게는 이지만, 제후諸侯에 있어서이므로 역시 가 아니다.
引之證此碩人亦樂吏, 故於祭末乃是賜也. 知此亦是樂吏者, 以經云 ‘錫爵’, 若士, 則尸飮九而獻之, 不得旣祭乃賜之, 故知在惠下之中.
이를 인용하여 이 석인碩人악리樂吏이기 때문에 제사가 끝났을 때에야 술을 하사함을 증명한 것이다. 이 석인碩人악리樂吏임을 안 것은 에 ‘석작錫爵’이라 하였기 때문이니, 만약 라면 시동이 아홉 번을 마시고 나면 인군이 술잔을 올리니 제사가 끝난 뒤에는 올릴 수 없다. 그리하여 ‘혜하惠下’의 안에 포함됨을 안 것이다.
經云 ‘爵’, 傳言 ‘散’者, 禮器云 “禮有以小爲貴者, 貴者獻以爵, 賤者獻以散.”
이라 하고, 이라 한 것은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에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으니, 귀한 자에게 으로 올리고 천한 자에게 으로 올린다.”라고 하고,
祭統云 “尸飮九, 以散爵獻士.” 士猶以散獻爵, 賤無過散, 故知不過一散. 散謂之爵, 爵摠名也.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시동이 아홉 번을 마시고 나면 산작散爵으로 에게 올린다.”라고 하였으니, 에게도 오히려 으로 술을 올린다면 천자賤者을 넘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일산一散을 넘지 않음을 안 것이다. 이라 한 것은 이 총괄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山有榛이요 隰有苓이라
산에는 개암나무 습지에는 감초가 있네
【傳】榛 木名이라 下濕曰隰이라 大苦
은 나무 이름이다. 낮고 습한 곳을 이라 한다. 은 감초이다.
【箋】箋云 榛也苓也 生各得其所 以言碩人處非其位
전운箋云:개암나무와 감초가 각기 제 자랄 곳에서 자라니, 이것으로 석인碩人이 알맞은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榛 本亦作蓁하니 子可食이라 本草云 甘草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열매는 먹을 수 있다. 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감초甘草라 하였다.
云誰之思 西方美人이로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라네
【箋】箋云 我誰思乎 思周室之賢者 以其宜薦碩人하여 與在王位
전운箋云:내가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주실周室의 현자를 그리워하니, 응당 석인을 천거하여 함께 왕실의 관직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로다
저 미인이여 서방에 있을 미인이로세
【傳】乃宜在王室이라
바로 왕실에 있어야 한다.
【箋】箋云 彼美人 謂碩人也
전운箋云피미인彼美人석인碩人을 말한다.
【疏】‘山有’至‘人兮’
의 [산유山有]에서 [인혜人兮]까지
○正義曰:山之有榛木, 隰之有苓草, 各得其所, 以興衛之有碩人而在賤職, 可謂處非其位, 乃榛苓之不如.
정의왈正義曰에 개암나무가 있고 습지에 감초가 있는 것은 각기 알맞은 곳을 얻은 것이다. 이로써 나라에 석인碩人이 있는데 천직賤職에 있으니 알맞은 자리가 아닌 곳에 있어 도리어 개암나무와 감초만도 못하다고 말할 만함을 흥한 것이다.
碩人旣不寵用, 故令我云 誰思之乎, 思西方周室之美人. 若得彼美人, 當薦此碩人, 使在王朝也.
석인碩人이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방 주실西方 周室현자賢者를 생각한다. 만약 저 현자賢者를 만날 수 있다면 당연히 이 석인碩人을 천거하여 왕의 조정에 있게 할 것이다.
彼美好之碩人兮, 乃宜在王朝爲西方之人兮, 但無人薦之耳.
저 훌륭한 석인碩人이 마침내 왕의 조정에 있어 왕실의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데, 다만 아무도 천거하는 이가 없을 뿐이다.’라고 말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疏】傳‘榛 木名 苓 大苦’
의 [진 목명榛 木名 영 대고苓 大苦]
○正義曰:陸機云 “栗屬, 其子小, 似子, 表皮黑, 味如栗.” 是也.
정의왈正義曰육기陸機가 “은 밤의 종류로 열매는 작고 상수리와 비슷하니 껍질은 검고 맛은 밤과 같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榛字或作蓁, 蓋一木也. 釋草云 “蘦, 大苦.” 孫炎曰 “本草云 ‘蘦, 今甘草’ 是也.
은 혹 으로 쓰기도 하는데 모두 같은 나무이다.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이니 대고大苦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은 지금의 감초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蔓延生, 葉似荷, 靑黃. 其莖赤, 有節, 節有枝相當. 或云蘦似地黃.”
넝쿨로 자라고 잎은 과 같으며 청황색靑黃色이다. 그 줄기는 붉고 마디가 있으며 마디에는 대칭을 이루는 가지가 있다. 어떤 이는 지황地黃과 비슷하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疏】箋‘彼美人謂碩人’
의 [피미인위석인彼美人謂碩人]
○正義曰:上言西方之美人, 謂周室之賢人. 以薦此碩人, 故知彼美人謂碩人.
정의왈正義曰:위에 말한 서방西方미인美人 왕실의 현자賢者를 말한다. 이 석인碩人을 천거하기 때문에 ‘피미인彼美人’은 석인碩人을 말한 것임을 안 것이다.
西方之人謂宜爲西方之人, 故傳曰‘乃宜在王位’, 言宜在王朝之位, 爲王臣也.
서방지인西方之人’은 응당 주 왕실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하여 에 ‘내의재왕위乃宜在王位’라 하였으니, 주왕周王 조정의 관직에 있어 왕의 신하가 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簡兮三章이니 章六句
간혜簡兮〉는 3이니 마다 6이다.
역주
역주1 舞師 : 兵舞․帗舞․羽舞․皇舞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野人으로 춤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교육하였으며, 小祭祀에는 춤을 추지 않았다 ≪周禮 地官 司徒≫
역주2 國子 : 공경대부의 자제를 일컫는 말로 國子弟라고도 한다.
역주3 吹籥 : 단소처럼 생긴 대로 만든 관악기로 구멍이 세 개인 것을 말한다.
역주4 萬舞 : 춤의 總名으로, 武舞는 干과 戚을 사용하는데 이를 干舞라 하고, 文舞는 피리[籥]와 꿩 깃[翟羽]을 사용하는데 이를 籥舞라 하였다. 宗廟나 山川에 제사 지낼 때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였다.
역주5 旄人 : 散樂과 夷樂의 춤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사방의 춤추는 사람이 여기에 속했으며, 제사와 빈객의 일에 燕樂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周禮 春官 宗伯≫
역주6 韎師 : 靺鞨의 음악을 교육하는 것을 담당하였으며, 제사에는 관속을 이끌고 춤을 추었으며, 大饗에도 그와 같이 하였다. ≪周禮 春官 宗伯≫
역주7 小舞 : 나이가 어렸을 때 익히는 각종 춤을 통틀어서 말한다.
역주8 樂正 : 樂官의 우두머리를 지칭한다. ≪儀禮≫ 〈鄕射禮〉의 疏에 “大司樂과 樂師가 있으니 천자의 관리이고, 樂正은 제후와 대부, 士의 관리로 천자의 大司樂에 해당한다.[有大司樂 樂師 天子之官 此樂正者 諸侯及大夫士之官 當天子大司樂]” 하였다.
역주9 公庭 : 朝廷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역주10 韗胞翟閽寺 : 韗는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고, 胞는 고기를 취급하는 사람이며, 翟은 음악을 맡은 사람이고, 閽과 寺는 문의 파수를 맡는 천한 관리이다. ≪禮記 祭統≫
역주11 府史 : ≪周禮≫ 〈天官 冢宰〉의 序官에 보이는데, 府는 창고를 담당하고 史는 문서를 담당하는 小吏이다.
역주12 散爵 : 5되들이 술동이를 말한다.
역주13 (縣)[和]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和’로 번역하였다.
역주14 鹿鳴之三 : ≪詩經≫ 小雅 鹿鳴之什의 10편 가운데 제3편까지인 〈鹿鳴〉, 〈四牡〉, 〈皇皇者華〉를 말한다.
역주15 爲黃鍾之宮 : 黃鍾은 12律의 기준 음이고 宮은 5音의 기준 음이니, 곧 宮商角徵羽의 기준 음을 삼은 것을 말한다. 12律은 黃鍾․太簇․姑洗․㽔賓․夷則․無射(역)인 陽律과 大呂․夾鍾․仲呂․林鍾․南呂․應鍾인 陰呂이다.
역주16 無射 : 周 景王이 주조한 鐘의 이름이다.
역주17 (羽)[舞]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舞’로 번역하였다. 干舞는 방패를 가지고 추는 武舞이다.
역주18 舍采 : 釋菜와 같은 뜻으로, 옛날에 학자들이 입학하면서 先聖과 先師에게 마름풀 등을 예물로 바치는 것을 이른다.
역주19 合舞 : 춤출 때 동작을 똑같이 하여 절주에 응하는 것이다.
역주20 (在)[作] : ≪毛詩傳箋通釋≫에 따라 ‘作’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1 何休 : 後漢 靈帝 때의 학자로 ≪春秋公羊解詁≫를 지었다.
역주22 五嶽 : 다섯 靈山으로, 泰山․華山․衡山․恒山․嵩山을 말한다.
역주23 四鎭 : 사방을 진압하는 네 개의 큰 산으로, 揚州의 會稽山, 靑州의 沂山, 幽州의 醫無閭山, 冀州의 霍山을 말한다.
역주24 四瀆 : 네 개의 큰 물로 揚子江․黃河․淮水․濟水를 말한다.
역주25 禮數 :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상응하는 예의와 격식을 말한다.
역주26 萬入去籥 : 소리가 나지 않는 萬舞를 들이고, 소리가 나는 籥舞를 내보낸 것이다. 이는 예가 아닌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니, 萬舞는 干舞이지 籥舞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禮記≫ 〈檀弓 下〉에 “仲遂가 垂에서 죽어 壬午日에 오히려 繹祭를 지내는데, 萬舞는 들이고 籥舞를 내보냈다. 孔子가 ‘禮가 아니다. 卿이 죽으면 繹祭를 지내지 않는다.’[仲遂卒于垂 壬午 猶繹 萬入去籥 仲尼曰 非禮也 卿卒不繹]”라고 하였다.
역주27 (言不當)[不當言] : 孫毓의 교감기에 따라 ‘不當言’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8 合舞 : 合舞는 춤출 때 동작을 똑같이 하여 가락에 응하는 것을 말하며, 봄에 태학에 들어와 석채례를 행할 때 추는 춤이다. ≪周禮 春官 大胥≫
역주29 日中星鳥 : 춘분의 별자리가 남방 朱雀의 일곱 별자리임을 말한다. 日中은 춘분을 가리킨다.
역주30 馬日中而出 : 말은 춘분에 내보내고 추분에 마구간을 수리하여 들인다는 말이니, 日中은 춘분과 추분을 가리킨다.
역주31 (漬) : 교감기에 따라 ‘漬’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32 : 다섯 되들이 술잔이다. 散을 쓰는 것은 천한 자에게 베푸는 예이다. ≪禮記≫ 〈禮器〉에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으니, 宗廟의 祭祀에 귀한 자에게는 爵으로써 올리고 천한 자에게는 散으로써 올린다.[有以小爲貴者 宗廟之祭 貴者獻以爵 賤者獻以散]”라고 하였다.
역주33 正內 : 王后의 路寢(寢殿)을 말한다. ≪周禮≫의 注疏에 “〈寺人이〉 正內에 다섯 사람이라 한 것은 后妃의 路寢에 두는 것을 말하니, 왕의 路寢이라면 內라 할 수 없다. 后宮의 노침이기 때문에 內로 말한 것이다.[正內五人者 謂在后之路寢耳 若王之路寢 不得稱內 以后宮故 以內言之]” 하였다.
역주34 不在獻 : 술잔을 올리는 위치에 있지 않음을 말한다. ≪禮記≫ 〈祭統〉에 “시동이 다섯 번을 마시면 인군이 옥잔을 씻어서 卿에게 술을 올리고, 시동이 일곱 번을 마시면 인군이 瑤爵으로써 大夫에게 올리고, 시동이 아홉 번을 마시면 인군이 散爵으로써 士와 여러 有司에게 올리되 모두 年齒를 따르니, 이것은 尊卑의 등급을 밝히는 것이다.[尸飮五 君洗玉爵 獻卿 尸飮七 以瑤爵 獻大夫 尸飮九 以散爵 獻士及群有司 皆以齒 明尊卑之等也]” 하였다.
역주35 (柿)[橡]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橡’으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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