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侍中‧尙書令‧車騎將軍
이 自
時
로 寵任用事
注+文帝, 魏宰相司馬昭也. 封晉王, 後追諡爲帝. 賈充爲昭弑魏帝髦, 以成晉簒.러니 가 爲太子
에 充
이 頗有力
注+武帝, 司馬昭之子, 簒魏爲天子.이라 故益有寵於帝
러라
充
이 爲人
이 巧諂
하여 與
와 과 으로 相爲黨友
하니 朝野
가 惡之
하더라
泰始中
에 帝
가 問侍中
楷以方今得失
한대 對曰 陛下
가 受命
에 四海
가 承風
호대 所以未比德於堯‧舜者
는 但以賈充之徒
가 尙在朝爾
라
宜引天下賢人
하사 共弘政道
니 不宜示人以私
니이다 侍中
‧
이 皆與充不協
이러니
充이 欲解其近職하여 乃薦愷忠貞하니 宜在東宮이라한대 帝가 以愷爲太子少傅而侍中은 如故러라
會
하니 帝
가 以爲憂
어시늘 愷
가 曰 宜得威望重臣有智略者
하여 以鎭撫
니이다
帝
가 曰 誰可者
오 愷
가 因薦充
하고 純
이 亦稱之
한대 遂
하다
勗이 曰 是行이 辭之實難이라 獨有結婚太子라야 可不辭而留矣리니 勗이 請言之호리라
因謂馮紞曰 賈公
이 遠去
면 吾輩
가 失勢矣
라 가 婚尙未定
하니 何不勸帝納賈公之女乎
오 紞
이 亦然之
하더라
初
에 帝
가 將納
女
注+瓘, 晉三公.하여 爲太子妃
러니 充妻郭槐
가 賂
左右
하여 使后說帝
하여 求納其女
하고
荀顗等
이 皆稱
가 絶美
하고 且有才德
이라한대 帝
가 遂從之
하사 하시다
18-15-가
진晉나라의
시중侍中‧
상서령尙書令‧
거기장군 가충車騎將軍 賈充이
문제文帝 때부터 총애를 받아 중용되어 권력을 휘둘렀는데,
注+‘문제文帝’는 위魏나라의 재상 사마소司馬昭이다. 진왕晉王에 봉해졌으며, 사후에 문제文帝로 추시追諡되었다. 가충賈充이 사마소를 위하여 위魏나라 황제 조모曹髦를 시해하여 진晉나라의 찬탈을 이루어주었다. 무제武帝가 태자로 있을 때 가충이 공로가 컸기
注+‘무제武帝’는 사마소의 아들이다. 위魏나라를 찬탈하여 천자가 되었다. 때문에 무제에게 더욱 총애를 받았다.
가충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처리할 때 아첨에 능하여 태위 순의太尉 荀顗‧시중 순욱侍中 荀勗‧중서감 풍담中書監 馮紞과 당여가 되자 조야朝野가 미워하였다.
태시泰始 연간(265~274)에 무제武帝가 시중 배해裵楷에게 시정時政의 문제점을 묻자 배해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천명을 받으시자 사해가 감화되었지만 덕이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에 비견되지 못하는 것은 단지 가충賈充의 무리가 아직 조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의당 천하의 현인賢人을 초빙하여 그들과 함께 정사의 공도公道를 널리 펴셔야 할 것이니, 사도私道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중 임개侍中 任愷와 유순庾純이 모두 가충과 화목하지 못하였는데,
가충이 무제를 가까이 모시는 그들의 직임을 벗기고자 마침내 임개가 충성스럽고 곧으니 동궁을 보필하기에 알맞다고 추천하였다. 무제가 임개를 태자소부太子少傅로 삼았으나 시중의 직책은 그대로 맡도록 하였다.
그때 독발수기능禿髮樹機能이 진주秦州와 옹주雍州를 어지럽혔는데, 무제武帝가 이를 근심하자 임개任愷가 아뢰었다. “의당 위엄과 명망이 있는 중신重臣으로 지략이 있는 자를 찾아 이 지역들을 진무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누가 좋겠는가?” 임개가 이로 인해 가충賈充을 추천하고 유순庾純 역시 가충을 거론하자, 마침내 가충을 도독진량이주군사都督秦涼二州軍事로 삼았다.
가충이 장차 부임지로 떠나려 할 때 공경대신들이 석양정夕陽亭에서 전별연을 베풀었다. 가충이 은밀히 순욱荀勗에게 계책을 묻자
순욱이 말하였다. “이번 걸음은 사임하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오직 태자와 혼인을 맺는 것만이 사양하지 않고서도 경사京師에 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어 풍담馮紞에게 말하였다. “가공賈公께서 멀리 떠나시면 우리들이 세력을 잃게 됩니다. 태자가 아직 혼사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폐하에게 가공의 여식을 맞아들이라고 권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풍담 역시 옳게 여겼다.
당초에
무제武帝는
위관衛瓘의 여식을 맞이하여
注+‘위관衛瓘’은 진晉나라의 삼공三公이다. 태자비로 삼고자 하였는데,
가충賈充의 처
곽괴郭槐가
양楊황후의 주위 사람들에게 뇌물을 써서 양황후로 하여금 무제를 설득하여 자신의 여식을 태자비로 맞아줄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순의荀顗 등이 모두 가충의 여식이 절세미인일 뿐 아니라 재주와 덕이 있다고 칭찬하자, 무제가 마침내 이를 따라 가충을 그대로 경사에 남게 하고 다시 본래의 관직에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