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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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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誓注+① 泰誓:周武王伐紂, 作此以誓衆士. 古人 有言曰 撫我則后注+② 撫我則后:后, 君也. 虐我則讎라하니 洪惟作威하나니 乃汝世讎니라


27-1-가
서경書經》 〈태서泰誓〉에注+〈泰誓〉는 周나라 武王이 紂를 정벌할 때 이 편을 지어서 군사들에게 告戒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사람이 한 말에 ‘나를 어루만져주면 임금이고注+‘后’는 ‘임금’이라는 뜻이다. 나를 학대하면 원수이다.’라고 하였다. 독부獨夫 가 크게 학정을 행하고 있으니 바로 너희들 대대로의 원수이다.”


역주
역주1 27-1-가 : 《書經》 〈商書 泰誓 中〉에 보인다. ‘泰’는 《史記》 권4 〈周本紀〉에는 ‘太’로 되어 있으며 ‘크다’라는 뜻이고, ‘誓’는 전쟁을 앞두고 군사들에게 경계하는 말이다. ‘태서’는 기원전 1048년에 周나라 武王이 商나라 紂王을 칠 때 盟津에서 제후들을 크게 모으고 告戒하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현행 《서경》은 모두 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편은 무왕이 黃河를 건너기 전에 한 말이고, 중편과 하편은 황하를 건넌 뒤에 한 말이다. 무왕은 73세로 文王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지 13년째 되던 해에 주왕이 왕자 比干을 죽이고 箕子를 감금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벌을 결심하여 주왕을 쳐서 천자가 되었으며, 재위 7년 만에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기》에는 무왕이 제후가 된 지 11년째 되던 해에 주왕을 쳤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설이 분분하다. 《사기》에 따르면 이때 무왕 측의 군대는 戎車 3백 대, 용사 3천 명, 甲士 4만 5천 명이었으며, 이때 집결한 제후는 8백 명으로 그 戰車는 4천 대였다. 주왕은 이에 대응하여 70만 명의 군사를 보내 이를 저지하게 하였으나 군사들이 전쟁할 의지가 없이 항복함으로 인해 패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역주2 獨夫受 : ‘獨夫’는 ‘一夫’라는 뜻이다. 《孟子》 〈梁惠王 下〉 제8장에 “仁을 해친 자를 賊이라 이르고, 義를 해친 자를 殘이라 이르며, 殘賊인 사람을 一夫라 이른다.[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朱熹의 주에 따르면 一夫는 “사람들이 배반하고 친척이 떠나가서 더 이상 그를 군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言衆叛親離 不復以爲君也]” ‘受’는 商나라 紂王의 이름이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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