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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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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9-15-나(按)
按 此 自警之詩也 人之常情 祗敬於群居者하고 兢畏於獨處者하니
況人君之尊 臨朝廷之上하여 接對士大夫 儼如朋友則和柔顔色하여 防遠過失 雖庸君이나 猶或知勉이어니와
至於宮庭屋漏之中 蜵蜎蠖濩之地 無法家拂士之在側하고 有近習䙝御之旁環而能凛然自持하여 不媿屋漏者 雖明主라도 猶或難之
故武公 自謂 毋曰此非顯明之地而莫予見也라하여 當知鬼神之妙 無物不體하니 其至於是 有不可得而度者 況可有厭斁之意乎아하니
子思 作中庸 推明其說曰 라하니 嗚呼 武公 其聖賢之徒與니이다


原注
[신안臣按] 이는 무공武公이 스스로 경계하여 지은 시입니다. 사람의 일반적인 정리情理가 여럿이 있을 때에 공경하기는 쉽고 혼자 있을 때에 삼가고 두려워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물며 존귀한 군주가 조정의 위에 임하여 사대부士大夫를 대하는 것이 벗을 대할 때와 같이 엄정해야 할 때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안색을 온화하게 하고 유순히 하여 과실過失을 막고 멀리하는 것은 비록 용렬한 군주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러 힘쓸 줄 알 것입니다.
하지만 궁정의 방 서북쪽 구석과 구중궁궐로 말하면 곁에 법도를 지키며 대대로 벼슬하는 신하와 보필하는 현사賢士가 없고 주변에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친근하고 편한 신하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엄 있게 스스로 절조를 지켜 방 서북쪽 구석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비록 현명한 군주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러 어렵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무공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곳은 밝게 드러나 있는 곳이 아니라서 나를 보는 이가 없다.’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귀신의 오묘함은 어떤 물건이든 체현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귀신이 여기에 이르는 것을 헤아려 알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자사子思가 《중용中庸》을 지을 적에 이 말을 미루어 밝히기를 “은미함이 드러나는 법이니 성실함을 가릴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아! 무공武公성현聖賢의 무리일 것입니다.


역주
역주1 衛武公 : 기원전 852?~기원전 758(재위 기원전 812~기원전 758). 춘추시대 衛國의 11대 國君이다. 성은 姬이고, 이름은 和이다. 釐侯(희후)의 아들이자 共伯의 동생이다. 일찍이 희후의 총애를 받아 하사받은 재물로 무사를 양성하여 무력을 키웠다. 희후가 죽자, 즉위한 共伯을 습격하여 君位를 찬탈하였다. 즉위한 후에는 선조인 康叔의 정령을 시행하여 백성을 화목하고 안정되게 하였다. 기원전 771년에 犬戎이 西周의 국도인 鎬京을 침공하여 周 幽王을 죽이자, 勤王하여 平王을 도와 난을 평정하고 洛邑으로 東遷하였다. 그 공으로 작위가 侯爵에서 公爵으로 승격되었다.
역주2 微之……揜也 : 《中庸》 제16장에 보인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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