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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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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9-18-나(按)
按 古之君子 以禮樂爲治身心之本이라 故斯須不可去之 致者 極其至之謂也 樂之音 和平中正이라 故致此以治心則易直子諒 油然而生하여 自不能已
生則樂 善端之萌 自然悅豫也 樂則安 樂之然後 安也 安則久 安之然後 能久也 久則天 渾然天成하여 無所作爲也 天則神 變化無方하여 不可度思也
天雖이나 人自信之 以其不忒也 神雖不怒 人自畏之 以其不測也 生․樂․久․安
原注
禮以恭儉退으로 爲本而有節文度數之詳이라 故致此以治身則自然莊敬이요 莊敬則自然嚴威 夫禮樂 一也
然以禮治身 至於嚴威而止 不若樂之治心 能至于天且神이니 何也 蓋天者 自然之謂 治身而至于嚴威則亦自然矣 其效 未嘗不同也
但樂之於人 能變化其氣質하며 消融其查滓 故禮以順之於外而樂以和之於中하나니
表裏交養之功而養於中者 實爲之主이라
原注
記禮者 推明其效 亦若是其至也하고 於是 又言 身心 無主則邪慝 易乗하나니 中心 斯須而不和樂則鄙詐 入之하고 外貌 斯須而不莊敬則嫚易 入之라하니
善惡之相爲消長 如水火然이라 此盛則彼衰也 鄙詐易嫚 皆非本有而謂之心者 和樂 不存則鄙詐 入而爲之主하고 莊敬 不立則易嫚 入而爲之主
夫旣爲主於內 非心而何 猶汙泥非水也로되 撓而濁之 是亦水矣 禮樂之所以不可斯須去身也니이다


原注
[신안臣按] 옛날의 군자는 예악禮樂을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근본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이를 떼어놓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라는 것은 그 지극함을 완전히 다한다는 말입니다. 의 소리는 조화롭고 온화하며 치우치지 않고 바릅니다. 그러므로 의 이치를 지극히 하여 마음을 수양하면 온화하고 정직하며 자애롭고 신실한 마음이 무럭무럭 생겨나서 저절로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겨나면 즐겁게 된다.’라는 것은 선한 단서의 싹이 자연히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즐거우면 편안하게 된다.’라는 것은 이를 즐거워한 뒤에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편안하면 오래하게 된다.’라는 것은 이를 편안히 여기게 된 뒤에 오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하면 자연스럽게 된다.’라는 것은 온전히 자연스러움이 이루어져서 인위적人爲的으로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우면 신묘하게 되는 것은 변화에 일정한 방향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되면 비록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이를 믿는다.’라는 것은 그것이 어그러짐이 없기 때문이고, ‘신묘하게 되면 비록 노여워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이를 두려워한다.’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겨나고 즐겁고 오래하고 편안한 것은 맹자가 말한 선인善人신인信人미인美人대인大人과 같으니 자연스럽고 신묘한 데 이르면 대인이면서 저절로 변화하게 됩니다.
原注
는 공손하고 검소하며 물러나고 사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예의의 규정과 품목의 수량에 대한 세부 사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의 이치를 지극히 하여 몸을 수양하면 저절로 엄숙하고 공경하게 되고, 엄숙하고 공경하면 저절로 위엄이 있게 되니 저 예와 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를 가지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위엄이 있는 데 그칠 뿐이어서 악과 같이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신묘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어째서이겠습니까? ‘자연스러움[]’은 저절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몸을 수양하여 위엄이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 또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니, 그 효과가 같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악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기질을 변화하며 그 찌꺼기를 없애기 때문에 예가 외면에서 이를 순히 하고 악이 내면에서 이를 화합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면과 내면을 같이 함양涵養하는 공부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함양하는 것이 진실로 그 주인이 되기 때문에 성인 문하의 가르침에 확립하는 것은 예로써 하지만 이루는 것은 악으로 한 것입니다.
原注
예를 기록한 사람이 그 효험을 미루어 밝히기를 또한 이와 같이 지극히 하였고, 여기에서 또 “몸과 마음이 주인이 없으면 야비하고 간사한 마음이 쉽게 파고든다. 속마음이 잠시라도 화평하고 즐겁지 않으면 야비하고 거짓된 마음이 이를 파고들고, 겉모습이 잠시라도 엄숙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경솔하고 태만한 마음이 이를 파고든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악善惡이 서로 잦아들고 자라남이 물과 불이 그러한 것과 같기에 이것이 왕성하면 저것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야비하고 거짓되며 경솔하고 태만한 마음이 모두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닌데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평하고 즐거운 마음이 있지 않으면 야비하고 거짓된 마음이 파고들어 그 주인이 되고, 엄숙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서지 않으면 경솔하고 태만한 마음이 파고들어 그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면에 주인이 되었다면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흙탕은 물이 아니지만 뒤섞어 탁하게 만들면 이것도 물인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예악禮樂을 잠시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何’로 되어 있다.
역주2 孟子……之矣 : 《孟子》 〈盡心 下〉 제25장에 보인다. 齊나라 사람 浩生不害가 맹자에게 樂正子에 대해 묻자 맹자가 善人이며 信人이라고 평가하고, 이에 대해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善人이라고 하고, 善을 자기 몸에 소유한 사람을 信人이라고 하고, 선을 내면에 충실히 쌓은 사람을 美人이라고 하고, 선을 내면에 충실히 쌓아 외면에 드러나 빛이 나는 사람을 大人이라고 하고, 대인이면서 저절로 변화하는 사람을 聖人이라고 하고, 성스러워서 알 수 없는 것을 神人이라고 한다.[曰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充實之謂美 充實而有光輝之謂大 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라고 설명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3 : 대전본․사고본에는 ‘遜’으로 되어 있다. 대전본의 경우, 宋 神宗의 부친 趙允讓의 피휘이다.
역주4 聖門……以樂 : 《論語》 〈泰伯〉 제8장에 孔子가 “詩에서 善心을 일으키고, 禮에서 확립하며, 樂에서 이루는 것이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고 한 말이 보인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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