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신안臣按] 한漢나라 초기는 옛 성왕聖王의 시대와 멀지 않아 선진先秦의 옛 글과 말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으니, 이 말은 조조晁錯의 말이 아니라 옛사람이 남긴 말입니다. 무릇 인정人情에 바라는 것을 따르면 편안하고 어지럽히면 위태롭습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의 조정에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경계할 때 반드시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따르지 마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조조의 논설은 대체로 여기에 근본을 둔 것이지만 조조가 전개한 논설이 더욱 자세하고 남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요점을 종합한다면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무력武力을 남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은 백성들의 생명을 온전히 하는 것이며, 세금稅金을 독촉하지 않고 제멋대로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은 백성들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며, 가혹하고 어지러운 정사를 행하지 않는 것은 백성들의 거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장기간의 요역徭役이 필요한 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백성들의 힘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정사를 행하였으니 삼대三代의 임금이 ‘인정에 근본을 두었다.’는 것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한漢 문제文帝의
치세治世를 살펴보건대 비록 옛
성왕聖王의 치세에 모두 부합하지는 못하지만 너그럽고 인자하며 편안하고 조용하여 거의 〈옛 성왕의 치세에〉 가까웠으니 어찌 조조의 대책이 그 발단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漢 무제武帝는 모든 면에서 이와 반대로 하여 나라가 거의 위태롭고 어지러울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신이 이 때문에 조조의 논의에서 말을 가져와 쓴 것입니다.
漢 文帝 漢 武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