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9-23-나3(안按)
[신안臣按] ‘양심養心’은 그 마음을 함양하는 것을 이릅니다. ‘존存’은 그 본심本心을 잃지 않는 것을 이른다. 욕심이 많으면 그 마음을 해치니 어떻게 함양하겠으며, 욕심으로써 해치면 그 마음을 상실하게 되니 어떻게 보존하겠습니까.
옛날에 한漢 무제武帝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리이리 하고자 하노라.”라고 하자, 급암汲黯이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푸시니, 어떻게 요순堯舜의 정치를 본받고자 하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고, 무제는 아름다운 소리와 여색女色, 정벌征伐, 형명刑名, 재화와 이익, 신선을 좋아하였으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으면 부정한 생각이 어지럽게 일어나 본심이 흔들리게 되는데 요임금과 순임금을 본받아서 인의를 베풀고자 하더라도 될 수 있겠습니까.
原注
주돈이周敦頤가 말하기를 “성인聖人을 배워서 될 수 있는가? 배워서 될 수 있다. 핵심적인 방법이 있는가? 순일純一함이 핵심적인 방법이 되니, 순일함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에는 마음이 비고 동할 때에는 정직하다. 고요할 때 마음이 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달하며, 동할 때에 정직하면 공정해지고 공정하면 넓어진다. 밝고 통달하고 공정하고 넓으면 거의 성인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을 배우는 데 뜻을 둔 자는 반드시 욕심을 적게 하는 데로부터 이를 확충하여 욕심이 없는 데 이른 뒤에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욕심이 많은데도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모른다면, 이제 곧 한漢 무제武帝와 같은 부류인데, 멀리 요堯임금과 순舜임금과 동렬이 되고자 하는 것은 신이 감히 아는 바가 아닙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이 점을 지극히 생각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