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問 開元治道
가 最盛
하니 何致而然
고 宰相
이 對曰
이 卽位
하사 得
․
하시니 此二人
이 蚤夜
에 孜孜
하여 納君於道
하더니
璟이 嘗手寫尙書無逸하여 爲圖以獻하여 勸帝出入觀省하여 以自戒러니
其後
暗
이어늘 乃代以山水圖
하시고 稍怠于勤
이어시늘 左右
가 不復箴規
하고 姦臣
이 日用事
하여 以至于敗
하시니
30-8-가
당唐 목종穆宗이 질문하였다. “개원開元(713~741) 때 치세治世의 도道가 가장 융성했으니,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가?” 재상 최식崔植이 대답하였다.
“현종玄宗께서 즉위하여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을 얻으니, 이 두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써서 군주를 도리로 이끌었습니다.
송경이 한번은 《상서尙書》 〈무일無逸〉을 손수 베껴 쓰고 그림으로 그려서 현종께 바친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종께서 출입할 때마다 보고 살펴서 스스로를 경계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무일〉 그림이 더럽고 칙칙해지자 마침내 산수도山水圖로 교체하였으며, 현종玄宗께서 정무에 근면했던 데에서 차츰 나태해지자 근신近臣이 더 이상 경계하고 간하지 않고서 간신姦臣들이 날마다 권력을 휘둘러 실패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를
감계鑑戒로 삼으소서. 그렇게 하시면 천하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唐 玄宗 姚崇 宋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