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신안臣按] 이것은 상商나라 말기에 주왕紂王이 무도하여 이적夷狄이 차례로 침략해오자 당시 서백西伯이었던 문왕文王이 천자의 명에 따라 수역戍役에 파견하여 중국을 지키도록 한 것이니,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은 것이었지만 출정出征에 파견하는 시는 간곡하고 구슬픕니다.
‘들완두를 캐고 들완두를 캔다.’는 것은 들완두로 수역에 파견하는 시기를 삼은 것입니다. 들완두가 돋아날 때는 수자리 살러 가는 자가 처음 떠나는 때이며, 들완두가 부드러울 때는 수자리 살러 간 자가 수자리를 살고 있을 때이며, 들완두가 쇠했을 때는 수자리 살러 간 자가 돌아올 때이니, 시간이 오래 걸려 돌아오는 시기가 늦어짐을 차례로 읊은 것입니다.
‘실가室家 없이 〈먼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가는 자가 그 배우자와 이별함을 생각한 것입니다.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간 자가 그 기거를 편안히 하지 못함을 생각한 것입니다. ‘〈돌아갈 날 아득하여〉 걱정이 태산인데 배는 주리고 목까지 탄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간 자가 돌아갈 날이 아직 먼 것을 근심하고 또 굶주리고 목이 타는 괴로움까지 더함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의 수역 끝나지 않았으니 돌아가 안부를 묻게 할 자 없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간 자의 수역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돌아가 실가室家의 안부를 묻게 할 사람이 없음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랏일 견고히 하지 않을 수 없어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간 자가 나랏일에 수고로워 그 거처를 편안히 하지 못함을 생각한 것입니다. ‘마음의 근심은 병이 되도록 큰데도 우리의 출정 길은 돌아갈 날 없다.’는 것은 수자리 살러 간 자가 결사적으로 싸워 근심이 비록 병이 될 정도로 심한데도 이 임무가 돌아갈 기약이 없음을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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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에 또 말하기를 ‘옛날 내가 수역戍役 떠날 때엔 버들가지 한창 늘어졌다.’는 것은 봄이 한창일 때를 말한 것이고, ‘이제 내가 돌아올 때엔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는 것은 겨울의 끝자락을 말한 것입니다. 출정 길이 오래됨과 기갈의 해침을 마음속으로 몹시 슬퍼하는데도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수자리 살러 가는 자의 심정으로 속에 단단히 맺혀서 스스로 하소연할 수 없었던 것인데, 문왕文王이 마침내 그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말하여 노래로 읊음으로써 그 수고를 위로하여 마치 자신이 아프고 괴로운 것처럼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범조우范祖禹가 “〈채미采薇〉에서 선대의 왕들이 인도人道로 백성을 부렸음을 알 수 있다. 후세에 와서는 백성을 소나 양처럼 여길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어찌 옳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개선하는 장수를 위로하는 〈출거出車〉와 수역에서 돌아옴을 위로하는 〈체두杕杜〉가 대체로 이와 같으니 모두 다 수록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