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신안臣按] 서려西旅가 ‘오獒’라는 개를 헌상하자 무왕武王이 그 개를 받기 전에 소공召公이 이미 글을 지어 무왕에게 경계하였으니, 옛날 대신大臣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았던 것은 모두 잘못이 드러나기 전에 한 것이며 이미 드러나기를 기다린 후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명철한 왕王이 자신의 덕을 공경하고 삼가는 게 어찌 사방의 오랑캐들이 자신에게 빈복賓服하기를 바라서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빈복하여 공상貢上한 것은 바로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헌상한 것이 의복, 음식, 그릇, 용구用具에 불과할 뿐이었으며 다른 완호물玩好物은 없었습니다.
무왕이 이에 그 물건을 이성異姓의 제후에게 하사하여 덕으로 이룩한 것임을 보여서 그들이 맡은 직분을 폐하는 일이 없게 하고, 보옥寶玉의 경우에는 동성同姓의 제후국에 나누어주어 친족을 친히 하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물건으로 물건을 보지 않고 덕으로 물건을 보아서 그 하사품을 받은 사람은 감히 소홀히 여기고 가벼이 여기는 일이 없이 저마다 그 덕에 힘쓰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原注
무릇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공경하므로, 공경하면 친압하고 업신여기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군자를 친압하고 업신여기면 군자는 그러한 사람을 떠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다할 수 없으며, 소인(백성)을 친압하고 업신여기면 소인은 그 사람을 원망하기 때문에 그 힘을 다할 수 없습니다.
소공召公이 덕을 삼가라고 먼저 말하고, 이 대목에 이르러 또 친압하고 업신여기는 것을 가지고 경계로 삼았으니, 이는 공경하지 않는 것이 바로 덕을 망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이 사람을 유혹하는 것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들어오기에, 눈이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고 귀가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만약 마음에 주관하는 바가 있지 않으면 도리어 귀와 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귀와 눈으로 하여금 마음에게 명령을 듣게 한 뒤에야 옳을 것입니다.
마음이 그 직분을 얻으면 모든 법도가 바르게 되니, 이는 관官이 적임자를 얻어야 모든 일이 잘 수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原注
“사람을 희롱하고 친압하면 덕을 잃게 된다.[玩人喪德]”라는 것은 바로 앞에서 이른바 “친압하고 업신여긴다.[압모狎侮]”라는 것이고,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뜻을 잃게 된다.[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것은 바로 앞에서 이른바 “눈과 귀의 노예가 된다.[役耳目]”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희롱하고 친압하면 사람을 희롱할 거리로 삼아 가볍고 하찮게 여겨 업신여기고 무시하게 되므로 그 덕을 잃지 않는 자가 없게 되고,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사물을 희롱할 거리로 삼아 방종하고 음란하게 되므로 그 뜻을 잃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 뜻을 편안하게[영寧] 하겠습니까? ‘도道’일 뿐입니다.
‘도’는 인심人心의 올바른 이치입니다. ‘도’로써 마음을 함양하면 물욕이 일지 않고 즐거우면서 평안한 법이니, 이것을 ‘영寧’이라고 이릅니다. 허다한 말이 서로 내 앞에 이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도’가 저울추와 같은 구실을 하기에,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지 아닌지를 이치로써 판단하면 비록 편벽하고 방탕하며 간사하고 도피하는 것일지라도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原注
순舜임금이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專一하게 지켜야 한다.[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라는 말로 우禹에게 일러주고, 이 말을 이어서 말하기를 “근거 없는 말을 듣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내면과 외면이 서로 함양되는 방법이니, 소공의 뜻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유익한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 하려 들지 않고 오로지 무익한 것을 하기 때문에 심지心志가 분산되어 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며, 유용한 물건에 대해서는 대부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오로지 쓸모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징수하는 것이 많아져서 백성들이 풍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근본을 알고 실지에 힘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原注
공업工業과 상업商業의 교묘함이 농사農事와 잠상蠶桑의 질박함만 못하고 금수錦繡의 사치스러움이 포백布帛의 따뜻함만 못하니, 유추하여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소사小駟가 끄는 수레를 타서
진晉나라 군대가 그 때문에 패한 것은 자기 지역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注+晉 惠公이 秦나라 사람과 전투를 벌이면서 小駟가 끄는 수레를 탔는데 그 소사는 鄭나라에서 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혜공이 패배하여 秦나라에 사로잡혔다. 이 일이 《春秋左氏傳》에 보인다. 흰 이리가
주周나라로 들어오고 나서
황복荒服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은
주周 목왕穆王이 진기한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注+周 穆王이 犬戎을 정벌하여 흰 이리와 흰 사슴을 얻어 돌아오자, 荒服이 마침내 周나라로 찾아오지 않았다. 이 일이 《國語》에 보인다.
천리마를 물리친 것은
한漢 문제文帝에게 법도가 있었기 때문이며,
注+이 일이 뒤 권에 보인다. 투압鬪鴨에 쓸 오리를 요구한 것은
위魏나라가 오래가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注+魏 文帝가 脫喪을 하기 전에, 孫權에게 사자를 보내 鬪鴨(오리끼리 붙이는 싸움)에 쓸 오리를 요구하였다. 이 일이 《三國志》에 보인다.
제齊나라가 직경 1치 되는 구슬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단자檀子를 보배로 여기니 적이 이 때문에 두려워하였으며, 초楚나라가 백형白珩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관사보觀射父를 보배로 여기니 나라가 이 때문에 강성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후세의 일로 소공의 말이 어느 것 하나 징험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소공이 성현聖賢인 이유일 것입니다.
原注
편篇이 끝나갈 때에 또 탄식하고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혹여 태만하지 마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앞에서 덕을 삼가라고 말한 것은 업신여기지 않기를 바란 것이고, 여기서 근면함을 말한 것은 태만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니, 삼가는 것은 업신여기는 것의 반대이고, 근면함은 태만함의 반대입니다.
임금이 능히 삼가서 업신여기지 않으며 능히 근면하여 태만하지 않으면 그 일이 다 끝을 맺을 것입니다.
행실은 덕을 쌓는 것이며 은미함은 거대한 것을 쌓는 것이니, 한 가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온전한 덕에 누累가 되며 은미한 것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기면 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산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하였으니, 9인仞 높이의 산을 만드는 공이 한 삼태기 흙에서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년의 왕업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