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成王이 生於深宮而遽處人上이라 周公이 深爲之懼하사 故以此言警之하시니
若以始勤終逸로 釋之면 是乾健之體가 有時而息矣니 後世에 漸不克終之患이 未必非此論이 啓之也라
相厥小人以下는 蓋引閭里近事明之也라 乃逸者는 縱逸自恣也요 乃諺者는 縱逸則所習者가 下라 委巷謠諺을 常誦於口也요 旣誕者는 長惡不悛하여 遂至於誕妄也라
若非誕妄則必訕侮其父母曰 昔之人이 無聞知라하여 自以爲黠而反以老成爲愚也하나니
原注
[신안臣按] 여조겸呂祖謙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법이다. 「안일하지 않음」은 하늘의 덕이요 또한 임금의 덕이다. 「군자가 안일하지 않음을 처소로 삼는 것」에 대하여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잠깐 근면했다가 금세 게을러진다. 이는 안일하지 않은 때도 있기는 하나 잠깐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그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지 못한 것이니, 「안일하지 않음을 처소로 삼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군자만이 안일하지 않음을 처소로 삼아서,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벗어날 수 없고 길짐승이 숲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이 한다.
선망羨望해서 하기도 하고 힘써서 행하기도 하면 모두 「안일하지 않음을 처소로 삼는 것」이 아니니, ‘건乾이 굳건하여 쉬지 않는’ 본체와 비교했을 때 별개인 것과 같다.
原注
‘먼저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알고 나서야 안일하면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우려하고 근면한 것으로 시작하여 안일하고 즐거운 것으로 끝내자는 논의가 아니다.
이는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자세히 겪고 나서야 안일함에 처하면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을 깊이 알게 됨을 말한 것이니, 「의지하는 것」은 백성들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일찍이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알지 못하고서 마침내 안일함에 처하게 되면, 궁실 하나를 지으며 역사役事 하나를 일으킬 때 그것을 쉬운 것처럼 보아 백성들 가운데 제명에 죽지 못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原注
성왕成王이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 대번에 만인의 윗자리에 처하게 되었으므로, 주공周公이 그를 위하여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러한 말로 성왕을 경계시킨 것이다.
만약 처음에는 근면했다가 결국에는 안일하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이는 건乾의 굳건한 본체가 때에 따라 그치는 것이니, 후세에 점차 제대로 끝을 마치지 못하는 근심은 이러한 논의가 열어준 것이 아니라고 기필할 수 없다.
「그 백성들을 살펴보건대[相厥小人]」 이하는 대체로 민간의 비근卑近한 일을 끌어 와서 밝힌 것이다. 「안일한 것[乃逸]」은 방종하고 안일하여 제멋대로 구는 것이고, 「비루한 말을 하는 것[乃諺]」은 방종하고 안일하면 익히는 것이 하찮기에 민간의 노래와 비루한 말을 항상 입으로 외우는 것이며, 「망언을 하는 것[旣誕]」은 악惡을 키우고 고치지 않아 마침내 망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만약 망언을 하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제 부모를 비웃고 업신여겨 말하기를 ‘예전 사람들은 듣고 아는 것이 없다.’라고 하여 스스로 영리하다고 여겨서 도리어 노성老成한 것을 어리석다고 여기게 된다.
原注
유유劉裕가 농사꾼 집안 출신으로 떨쳐 일어나 강동江東을 차지했는데, 한두 대 제위帝位가 전해진 뒤에 그의 자손이 유유의 의복과 기물을 보고 도리어 비웃으며 말하기를 ‘농사꾼 영감이 이렇게까지 하다니 또한 지나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예전 사람들은 듣고 아는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중등의 자질을 갖추었던 성왕의 입장에서, 만약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득세하여 낮이나 밤이나 성왕을 선동하고 미혹시켜 해쳤더라면, 성왕이 후직后稷과 공류公劉를 「농사꾼 영감」으로 여기지 않았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신은 생각건대, 그 아들이 농사의 고생스러움을 모르고 대번에 안일함에 처했으므로 망언을 하여 제 부모를 업신여긴 것이니, 나머지는 여조겸이 남김없이 설명하였습니다.
原注
여조겸이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는 주공周公이 안일하지 않았던 임금을 들어서 성왕成王에게 고할 때 탄식하고 나서 「제가 들으니」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그 말이 유래한 바가 있기에 성왕이 경청하기를 바란 것이다.
장엄하면 신중하게 되고 공손하면 자신을 낮추게 되며, 공경하면 엄숙하고 장중하게 되고 두려워하면 삼가고 두려워하게 되니, 이를 통합하여 말하면 「경敬」일 다름이다.
「천명으로 스스로를 검속하는 것[天命自度]」은 중종中宗이 항상 천명으로 스스로를 단속했음을 말한 것이다.
하늘의 명이 마음에 보존되어 천하에 유행하며 침祲과 상象에 나타나는 법이니, 안으로 도심道心의 은미함을 체득하고 밖으로 천하의 공변됨을 보며, 우러러 침과 상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 비교, 검증하고 성찰하여 그 법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 이른바 「천명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이다.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자라난 변괴로 인하여 중종이 수양하고 반성하였으니, 이는 천명으로 스스로를 검속하는 하나의 단서일 뿐이다.
백성을 다스림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방탕하고 안일하지 않아야 하니,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이치이다. 이미 천명을 두려워하면 틀림없이 백성들을 감히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니, 중종의 「경」은 그러하였다.
原注
중종의 재위 기간이 75년이었던 까닭은 어째서인가? 오로지 공경했기에 장수한 것이다. 고요함을 위주로 하면 장구하면서 넓고 두터워지며, 스스로 힘쓰면 견실堅實하고 정통精通해지며, 마음을 간직하고 보존하면 혈기血氣가 궤도를 따라서 어지러워지지 않고, 심신을 단속하면 정신이 내적으로 지켜져서 들뜨지 않게 된다.
검속하고 잘 다스려서, 해치는 허물을 제거하는 것은 또 말에 달린 것이 아니니, 이것들이 모두 경敬의 방법이자 장수의 이치이다. 이로부터 아래로 문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수를 누리고 해가 된 게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치가 아님이 없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인仁한 사람은 장수한다.’라고 하였다. 「인」은 그 본체이고 「경」은 그 공효이니, 「안일하지 않음」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원망하는 때가 없으면,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망의 근원이 없게 될 것이다.
고종高宗이 장수했던 이유는 진실로 중종中宗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재위 기간이 59년이었음을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혹시라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라는 구절 다음에 언급하였다.
이는 백성들의 기운이 크게 조화로워 선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이 또한 장수하는 이치이니, 또 이 뜻을 밝힘으로써 성왕을 깊이 권면한 것이다. 그 다음 장章에서 문왕이 만백성을 모두 화합하게 했음을 논한 것이 또한 이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