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신안臣按] 이 시는 모두 4장입니다. 매 장의 첫머리에 반드시 “내 동산東山에 정벌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였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때 내리는 비 부슬부슬하였네.”라고 말한 것은 오랫동안 수자리 살며 귀향歸鄕을 그리는 정을 서술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는 고초를 안타깝게 여긴 것입니다.
‘내가 동쪽에 있을 때 일찍이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서쪽을 생각하며 슬펐었는데, 이제 이미 돌아오게 되어 다 해진 옷을 다시 만들어 새로 입게 되었으니 지금 이후로는 더 이상 군대의 대오에 종사하지 말아도 되기를 희망한다.
저 꿈틀거리는 뽕나무벌레는 뽕나무들에 있고 외로이 홀로 잠드는 자가 또한 병거兵車 아래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돌아오는 길에 본 광경을 통해 병사가 홀로 거처하는 모습을 흥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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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하늘이 비를 내리려고 하니 물새는 개밋둑 위에서 우는데 아내는 집 안에서 탄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생각하고 탄식을 한 것이니, 애정이 지극한 것입니다.
‘집 안을 청소하고 쥐구멍을 막았으니 수자리 살러 간 나의 남편이 이제 곧 마침내 이를 것이기에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린다.’고 하였으니, 돌아오기를 고대함이 절실한 것입니다. 여주가 섶 위에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로 인해 ‘남편이 객지에 머물러 내가 보지 못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니, 보는 사물을 따라 심정을 흥기하여 한시도 남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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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는 “쌍쌍이 나는 꾀꼬리가 그 깃이 선명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시집가고 장가갈 때를 말한 것입니다. ‘이 아가씨 시집가는데 황색과 적백색 말을 타고 간다.’고 한 것은 문채가 있는 것이며, ‘어머니가 수건을 매준다.’는 것은 그 시집가는 것을 전송한 것이며,
‘그 위의威儀가 아홉이며 열이다.’는 것은 위의가 많은 것을 말합니다. ‘신혼의 기쁨도 참으로 아름다운데 이미 아내가 있는 자가 아내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또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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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1장에서는 홀로 자는 것을 말하고, 3장에서는 오랫동안 이별해 있는 것을 기술하였으며, 4장에서는 또 신혼新婚과 구혼舊婚을 가지고 마친 것입니다. 이 시의 내용을 서술한 자가 “군자가 백성들에 대해 그 심정을 서술하고 그 수고로움을 애달프게 여긴 것은 백성들이 기뻐한 이유이다.”라고 하였으니, 시의 본뜻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나’라고 말한 것은 모두 주공周公이 돌아가는 병사를 기술한 말입니다. 병사가 자기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고 말로 하지 못한 것을 주공이 모두 말로 드러내었으니, 멀리 그 당시를 생각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신뢰하여 기뻐하고 감격한 것이 절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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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는 수자리 살러 가는 일이 빈번하여 백성들이 수역戍役에 동원되는 것을 괴로워하니 시를 지어 풍자諷刺한 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 우리 아들 수역 가서 밤낮으로 쉬지 못하리라.’라고 하시겠지.”라고 하고, “어머니께서는 ‘아, 우리 막내 수역 가서 밤낮으로 자지 못하리라.’라고 하시겠지.”라고 하였으며,
“왕사王事를 견고히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찰기장․메기장을 심지 못하니 우리 부모 무엇을 믿으실까.”라고 하였으며,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보전해주지 못하여 원망한 시 구절들입니다.
“뿔 장식 베개 찬란하며 비단 이불이 곱도다. 내 아름다운 분은 여기에 없으니 누구와 더불어 아침을 맞을까.”라고 하였으며, “아침내 쪽을 캤으나 앞치마 하나에도 차지 못하네. 오월에 돌아온다 약속했는데 유월이 되어도 보지 못하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부가 서로 보전해주지 못하여 원망한 시 구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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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험한 바위여 참으로 높기만 하다. 산천이 아득히 머니 참으로 수고롭도다.”라고 하였으며, “외뿔소 아니며 범이 아닌데 어찌 저 광야를 가게 하는가. 불쌍한 우리 병사들 조석朝夕으로 겨를이 없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장수가 수자리 부역 가서 그 괴로움 때문에 원망하는 시 구절들입니다.
이 시 구절들은 〈채미采薇〉․〈동산東山〉의 내용과 대체로 같기는 하나, 〈채미〉와 〈동산〉은 윗사람이 수자리 살러 간 자의 심정을 읊은 것이고, 〈척호陟岵〉 이하의 시들은 수자리 살러 간 자나 그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심정을 읊은 것입니다. 그 핍진한 차이가 어찌 현격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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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에는 군인과 농부가 비록 분리되어 있기는 하나, 국경 부근의 백성들은 종종 정역征役에 종사하기도 하고 물자 운반을 맡기도 하여 그 굶주리고 목 타며 지치고 힘든 정상과 슬퍼하고 탄식하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종종 옛날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수와 지방관 중에 이들에게 들러 안부를 묻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더구나 위로 깊은 구중궁궐에까지 통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금 이것을 이 편에 열기한 것은 어질고 밝은 임금이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우려했던 점을 생각하여 깊은 궁정에 처할 때에 변경 고을 사이에 친림親臨한 것처럼 하여 백성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처럼 돌아보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 역시 윗사람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을 것이니, ‘기쁘게 하여 백성들을 부리면 백성들이 자신의 죽음도 잊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 거의 가까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