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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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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7-9-나(按)
按 此詩 凡四章이니 章首 必曰我徂東山․慆慆不歸․我來自東․零雨其濛者 序其久戍思歸之情하며 閔其歸塗陰雨之苦也
我之在東 嘗不曰歸而未可以歸 故其心 念西而悲러니 今既歸矣 裳衣之敝 制而新之하니 願今以往으로 勿復從事於行陳之間 可也
彼蜎蜎者蠋 則在桑野而敦然獨宿者 亦在車下라하니 因道所見而興士之獨處也
原注
言果臝之施于宇․伊威在室․蠨蛸在戶․町畽鹿場․熠燿宵行하니
蓋未歸之時 遐想其室空無人하여 荒涼岑寂而蔓生之實 延焉하며 小蟲 綴焉하며 野鹿 游焉하니 固非可畏之物이로되 不能不動其懷歸之情也
原注
三章 言天之欲雨也 鸛則鳴于垤이어늘 婦則歎于室하니 蓋以夫之在行遇雨 念之而하니 愛之至也
熏鼠하니 以我之征人 行且遂至 潔除以待하니 望之切也 顧見苦瓜 繫于薪上하고 因感其夫 匏繫於外하여 我之不見 今三年矣라하니 觸物興懷하여 無一念之不在也
原注
四章 言倉庚于飛․鮮明其羽하니 嫁娶之時也 之子于歸․其馬皇駁 有文彩也 母爲結 送其行也
九十其儀 儀之多也 新婚之喜 固可嘉矣어든 舊有 相見而喜 又何如耶아하니 蓋男女居室 人之至情이라
原注
故一章 言其獨宿하고 三章 敘其久别而四章 又以婚之新舊終焉하니 序詩者 曰 君子之於人 라하니 可謂得詩之本指矣로다
詩之言我 皆周公述歸士之辭 士之蘊於其心而不能言者 周公 盡發之於言하시니 遐想其時 上下交孚하여 歡欣感激 有不能自已者
原注
後世征戍頻繁하여 民病于役則有爲詩以刺者하니라하며 라하며
曰 王事靡 오하며라하니 以父子不相保而怨也
오하며 曰 終朝采藍호라 이라하니 以夫婦不相保而怨也
原注
與采薇․東山之辭 大抵略同하나 然采薇․東山 序戍者之情也 陟岵諸 戍者或其家人其情也 得失之相去 顧不遠哉
原注
今之世 兵農 雖分而竝邊之民 往往 或從征役하며 或任轉輸하여 饑渴疲勞之 戚嗟愁苦之態 往往有甚於古者호대 自將帥․守牧 未聞有過而問之者어든 況得上徹於九重之邃乎잇가


原注
[신안臣按] 이 시는 모두 4장입니다. 매 장의 첫머리에 반드시 “내 동산東山에 정벌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였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때 내리는 비 부슬부슬하였네.”라고 말한 것은 오랫동안 수자리 살며 귀향歸鄕을 그리는 정을 서술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는 고초를 안타깝게 여긴 것입니다.
‘내가 동쪽에 있을 때 일찍이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서쪽을 생각하며 슬펐었는데, 이제 이미 돌아오게 되어 다 해진 옷을 다시 만들어 새로 입게 되었으니 지금 이후로는 더 이상 군대의 대오에 종사하지 말아도 되기를 희망한다.
저 꿈틀거리는 뽕나무벌레는 뽕나무들에 있고 외로이 홀로 잠드는 자가 또한 병거兵車 아래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돌아오는 길에 본 광경을 통해 병사가 홀로 거처하는 모습을 흥기한 것입니다.
原注
다음 장에서는 “하눌타리 덩굴은 지붕 아래까지 늘어져 있고 쥐며느리는 방 안에 출몰하며, 거미는 방문에 거미줄 치고 밭두둑은 사슴들 놀이터 되며, 반딧불이는 밤에 날아다닐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을 때 자신의 집이 비어서 사람이 없어 황량하고 적막하여 집에 덩굴 열매가 뻗어 있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며 들의 사슴이 노닐 것을 멀리서 상상해본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그 돌아가기를 그리는 심정을 동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原注
3장에서는 “하늘이 비를 내리려고 하니 물새는 개밋둑 위에서 우는데 아내는 집 안에서 탄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생각하고 탄식을 한 것이니, 애정이 지극한 것입니다.
‘집 안을 청소하고 쥐구멍을 막았으니 수자리 살러 간 나의 남편이 이제 곧 마침내 이를 것이기에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린다.’고 하였으니, 돌아오기를 고대함이 절실한 것입니다. 여주가 섶 위에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로 인해 ‘남편이 객지에 머물러 내가 보지 못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니, 보는 사물을 따라 심정을 흥기하여 한시도 남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原注
4장에서는 “쌍쌍이 나는 꾀꼬리가 그 깃이 선명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시집가고 장가갈 때를 말한 것입니다. ‘이 아가씨 시집가는데 황색과 적백색 말을 타고 간다.’고 한 것은 문채가 있는 것이며, ‘어머니가 수건을 매준다.’는 것은 그 시집가는 것을 전송한 것이며,
‘그 위의威儀가 아홉이며 열이다.’는 것은 위의가 많은 것을 말합니다. ‘신혼의 기쁨도 참으로 아름다운데 이미 아내가 있는 자가 아내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또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라는 것입니다.
原注
그러므로 1장에서는 홀로 자는 것을 말하고, 3장에서는 오랫동안 이별해 있는 것을 기술하였으며, 4장에서는 또 신혼新婚구혼舊婚을 가지고 마친 것입니다. 이 시의 내용을 서술한 자가 “군자가 백성들에 대해 그 심정을 서술하고 그 수고로움을 애달프게 여긴 것은 백성들이 기뻐한 이유이다.”라고 하였으니, 시의 본뜻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나’라고 말한 것은 모두 주공周公이 돌아가는 병사를 기술한 말입니다. 병사가 자기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고 말로 하지 못한 것을 주공이 모두 말로 드러내었으니, 멀리 그 당시를 생각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신뢰하여 기뻐하고 감격한 것이 절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었습니다.
原注
후세에는 수자리 살러 가는 일이 빈번하여 백성들이 수역戍役에 동원되는 것을 괴로워하니 시를 지어 풍자諷刺한 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 우리 아들 수역 가서 밤낮으로 쉬지 못하리라.’라고 하시겠지.”라고 하고, “어머니께서는 ‘아, 우리 막내 수역 가서 밤낮으로 자지 못하리라.’라고 하시겠지.”라고 하였으며,
왕사王事를 견고히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찰기장․메기장을 심지 못하니 우리 부모 무엇을 믿으실까.”라고 하였으며,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보전해주지 못하여 원망한 시 구절들입니다.
“뿔 장식 베개 찬란하며 비단 이불이 곱도다. 내 아름다운 분은 여기에 없으니 누구와 더불어 아침을 맞을까.”라고 하였으며, “아침내 쪽을 캤으나 앞치마 하나에도 차지 못하네. 오월에 돌아온다 약속했는데 유월이 되어도 보지 못하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부가 서로 보전해주지 못하여 원망한 시 구절들입니다.
原注
“높고 험한 바위여 참으로 높기만 하다. 산천이 아득히 머니 참으로 수고롭도다.”라고 하였으며, “외뿔소 아니며 범이 아닌데 어찌 저 광야를 가게 하는가. 불쌍한 우리 병사들 조석朝夕으로 겨를이 없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장수가 수자리 부역 가서 그 괴로움 때문에 원망하는 시 구절들입니다.
이 시 구절들은 〈채미采薇〉․〈동산東山〉의 내용과 대체로 같기는 하나, 〈채미〉와 〈동산〉은 윗사람이 수자리 살러 간 자의 심정을 읊은 것이고, 〈척호陟岵〉 이하의 시들은 수자리 살러 간 자나 그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심정을 읊은 것입니다. 그 핍진한 차이가 어찌 현격하지 않겠습니까.
原注
지금 세상에는 군인과 농부가 비록 분리되어 있기는 하나, 국경 부근의 백성들은 종종 정역征役에 종사하기도 하고 물자 운반을 맡기도 하여 그 굶주리고 목 타며 지치고 힘든 정상과 슬퍼하고 탄식하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종종 옛날보다 더 심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수와 지방관 중에 이들에게 들러 안부를 묻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더구나 위로 깊은 구중궁궐에까지 통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금 이것을 이 편에 열기한 것은 어질고 밝은 임금이 문왕文王주공周公이 우려했던 점을 생각하여 깊은 궁정에 처할 때에 변경 고을 사이에 친림親臨한 것처럼 하여 백성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처럼 돌아보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 역시 윗사람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을 것이니, ‘기쁘게 하여 백성들을 부리면 백성들이 자신의 죽음도 잊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 거의 가까울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不’로 되어 있다.
역주2 : 대전본에는 ‘涂(도)’, 사고본에는 ‘塗’로 되어 있다.
역주3 : 대전본에는 ‘草’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4 : 사고본에는 ‘嘆’으로 되어 있다.
역주5 : 사고본에는 ‘埽’로 되어 있다.
역주6 : 사고본에는 ‘褵(리)’로 되어 있다.
역주7 室家 : 사고본에는 ‘家室’로 되어 있다.
역주8 : 사고본에는 ‘敘’로 되어 있다.
역주9 君子……說也 : 《詩經》 〈毛序〉에 보인다.
역주10 父曰……無已 : 《詩經》 〈魏風 陟岵〉에 보인다. ‘척호’는 ‘민둥산에 오르다’라는 뜻으로, 〈척호〉는 부역 가서 민둥산에 올라 가족이 자신을 그리워할 것을 생각하며 읊은 시이다. 〈毛序〉에 “〈척호〉는 효자가 부역을 가서 부모를 생각한 시이다. 나라가 좁아 자주 침삭을 당하여 대국에 사역되자 부모형제가 이산되어 이 시를 지은 것이다.[孝子行役 思念父母也 國迫而數侵削 役乎大國 父母兄弟離散 而作是詩也]”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3장이며 한 장이 6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1장 제3구와 제4구이다.
역주11 母曰……無寐 : 《詩經》 〈魏風 陟岵〉의 제2장 제3구와 제4구에 보인다.
역주12 : 509본에는 ‘鹽’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王事……何怙 : 《詩經》 〈唐風 鴇羽〉에 보인다. ‘보우’는 ‘너새의 깃’이라는 뜻으로, 〈보우〉는 본래 편안함을 좋아하는 백성들이 고생스러운 征役에 종사하게 된 것을 본래 나무에 앉지 않는 너새가 본성과 달리 나무에 앉아 있는 것에 비유한 시이다. 〈毛序〉에 “〈보우〉는 세상을 풍자한 시이다. 昭公 후에 큰 혼란이 5대에 이어지자 군자가 아래로 정역에 종사하여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되어 이 시를 지은 것이다.[刺時也 昭公之後 大亂五世 君子下從征役 不得養其父母 而作是詩也]”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3장이며 한 장이 7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1장 제3구부터 제5구까지이다.
역주14 哀哀……劬勞 : 《詩經》 〈小雅 蓼莪〉에 보인다. ‘육아’는 ‘길고 큰 아름다운 쑥’이라는 뜻으로, 〈육아〉는 좋은 쑥이라고 여겼는데 나쁜 쑥이었다는 비유를 통해, 부모가 자신을 낳을 때는 효자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이제 자신이 征役을 와서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한 시이다. 〈毛序〉에 “〈육아〉는 幽王을 풍자한 시이다. 백성들이 수고로워 효자가 봉양을 끝마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刺幽王也 民人勞苦 孝子不得終養爾]”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6장이다. 네 장은 4구, 두 장은 8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1장과 제2장의 제3구부터 제4구까지이다.
역주15 : 저본에는 ‘朝’로 되어 있으나, 조선 태조 李旦의 피휘이므로 바로잡았다. 대전본․사고본에는 ‘旦’으로 되어 있다.
역주16 角枕……獨旦 : 《詩經》 〈唐風 葛生〉에 보인다. ‘갈생’은 ‘칡이 자라다’라는 뜻으로, 〈갈생〉은 부인이 칡이 자라 가시나무에 덮인 것을 보고 남편이 부역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탄식한 시이다.
역주17 : 대전본에는 ‘能’으로 되어 있다. 〈毛序〉에 “〈갈생〉은 晉나라 獻公을 풍자한 시이다. 헌공이 침공과 전쟁을 좋아하자 국인들이 죽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刺晉獻公也 好攻戰 則國人多喪矣]”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5장이며 한 장에 4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3장이다.
역주18 : 대전본․사고본에는 ‘䄡(첨)’으로 되어 있다.
역주19 五日爲期 : ‘五日’은 鄭玄의 箋에 따르면 ‘五月之日’, 즉 5월의 어느 날이다. 뒤의 ‘六日’ 역시 ‘六月之日’이다. 《毛詩注疏 小雅 采綠 鄭玄箋》
역주20 終朝……不詹 : 《詩經》 〈小雅 采綠〉에 보인다. ‘채록’은 ‘王芻 풀을 캐다’라는 뜻으로, 〈채록〉은 부인이 풀을 캐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은 시이다. 〈毛序〉에 “〈채록〉은 오랫동안 이별해 있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유왕 때 오랜 이별을 원망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刺怨曠也 幽王之時多怨曠者也]”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4장이며 한 장에 4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2장이다.
역주21 漸漸……勞矣 : 《詩經》 〈小雅 漸漸之石〉에 보인다. ‘삼삼지석’은 ‘높고 험한 바위’라는 뜻으로, 〈삼삼지석〉은 장수가 험준한 지역에 출정하여 고생하는 심정을 읊은 시이다. 〈毛序〉에 “〈삼삼지석〉은 제후국이 幽王을 풍자한 시이다. 戎狄이 배반하고 荊나라와 舒나라가 조회 오지 않자 마침내 장수에게 명하여 동쪽으로 정벌하게 하니, 부역이 오래되어 밖에서 고통을 받았으므로 이 시를 지은 것이다.[下國刺幽王也 戎狄叛之 荆舒不至 乃命將率東征 役久病於外 故作是詩也]”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3장이며 한 장에 6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1장 제1구부터 제4구까지이다.
역주22 匪兕……不暇 : 《詩經》 〈小雅 何草不黃〉에 보인다. ‘하초불황’은 ‘어느 풀인들 누렇게 쇠지 않으리오.’라는 뜻으로, 〈하초불황〉은 周나라 왕실이 망하려 하면서 征役이 그치지 않자 부역 가는 자들이 그 괴로움을 읊은 시이다. 〈毛序〉에 “〈하초불황〉은 제후국이 幽王을 풍자한 시이다. 사방의 이민족이 교대로 침범하고 중원의 나라가 배반하여 무력을 사용하는 일이 그치지 않으니 백성 보기를 금수처럼 하였다. 군자가 이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下國刺幽王也 四夷交侵 中國背叛 用兵不息 視民如禽獸 君子憂之 故作是詩也]”라고 하였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모두 4장이며 한 장에 4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본의 구절은 이 가운데 제3장이다.
역주23 : 대전본에는 없다.
역주24 : 대전본에는 ‘戍’로 되어 있다.
역주25 : 대전본․사고본에는 ‘殃’으로 되어 있다.
역주26 : 509본에는 ‘으로’로 되어 있다.
역주27 說以……其死 : 27-9-가 참조.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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