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臣按] 이 시는 아마도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가뭄을 근심하여 자신을 책망하는 말일 것입니다.
神魃
그 첫 장에 “은하수 반짝반짝하여 비가 내릴 징조가 있지 않으니 지금의 백성들이 무슨 죄라고 자주 기근饑饉의 곤액을 당하는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신에게 빌지 않은 신이 없다. 감히 희생을 아끼지 않았으며 규벽圭璧을 감히 아끼지 않았는데 신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말하기를 “가뭄이 이미 너무도 심하여 더위가 푹푹 찌는 듯하기에 교제郊祭부터 종묘宗廟까지 제사 지내는 것이 지극히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후직后稷보다 친한 신이 없는데도 구해주지 못하고 상제上帝보다 높은 신이 없는데도 굽어봐주지 않으니, 세상에 해를 주고 실패시켜서 백성이 그 해를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몸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原注
3장에 또 말하기를 “가뭄을 불러온 이유를 미루어 알 수 없기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거의 위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합니다. 주周나라가 여왕厲王 때부터 혼란해진 나머지 겨우 보존된 백성이 얼마 없는데, 지금 다시 가뭄을 거듭 내리니 장차 더 이상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4장에서는 말하기를 “가뭄이 심한데도 그치게 할 수 없으니 내가 장차 몸 둘 곳이 없을 것이다. 백성의 운명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돌봐주고 살펴주는 자 있지 않다. 제사에 참여하는 제후들과 경사들은 일찍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부모와 선조도 어찌 차마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原注
5장에 말하기를 “가뭄이 이미 심하기에 비록 산의 나무와 냇물이라고 하더라도 또한 마르고 말라버려서 나로 하여금 마음을 태우고 졸이게 하는데 제후들과 경사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기에 하늘이 이미 꾸지람을 보였다. 차라리 나로 하여금 도망가 왕위王位를 떠나 하늘에 사죄하게 하더라도 백성들이 그 폐해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5장 이하는 대체로 앞 장의 뜻을 거듭하여 반복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근심하는 마음과 몸을 편안히 하지 못하고 행실을 닦는 실제를 지금까지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흥中興의 성세盛世를 이룩한 이유일 것입니다.
역주
역주1厲王 :
?~기원전 828(재위 기원전 878~기원전 841). 西周의 제10대 국왕인 姬胡이다. 夷王의 아들이다. 재위 중에 奸臣 榮夷公을 卿士로 임용하여 國事를 주관하게 하고, 사치와 폭정을 자행하였다. 결국 기원전 841년에 國人의 暴動이 일어나자 鎬京을 탈출하여 彘(지금의 山西省 霍縣)로 달아났고, 周 定公과 召 穆公이 천자를 대신하여 함께 정무를 관리하는 ‘共和政’이 성립하였다. 이후 共和 14년(기원전 828)에 彘에서 죽었다. 그의 사후 아들인 宣王 姫静이 즉위하였으나 이후 주 왕실의 권위는 크게 약화되었고 국세도 쇠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