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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5)

대학연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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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年 建言 灾異數見이라 恐必有非常之變이니 可遣大將軍하여 行邊兵敕武備하고 斬一郡守하여 以立威應變이라한대
然之하사 以問丞相하신대 對曰
動民以行이요 不以言하며 應天以實이요 不以文이니 下民細微라도 猶不可詐 況於上天神明而可欺哉
天之見異 所以敕戒人君하여 欲令覺悟反正이니 推誠行善하여 民心說이면 而天意解矣리니 謀動干戈하여 設爲權變 非應天之道也니이다


29-9-가5
이해에 식부궁息夫躬이 건의하여 말하였다. “재이가 자주 나타나기에 틀림없이 범상치 않은 변고가 생길 듯합니다. 대장군을 보내 변방의 군대를 순행하여 군비를 정비하고 군수郡守 한 사람을 참수하여 위엄을 세워서 변고에 대처하여야 합니다.”
애제哀帝가 이를 옳게 여겨 이를 승상丞相 왕가王嘉에게 묻자, 왕가가 대답하였다.
“백성을 감동시키는 것은 행동으로써 하고 말로써 하지 않으며,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은 실제로 하고 문식文飾으로 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하찮고 미천할지라도 오히려 속일 수 없는데, 더구나 신령스럽고 밝은 하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재이를 나타내는 것은 군주를 경계시켜 군주로 하여금 과오를 깨달아 바른 도리를 회복하게 하고자 해서이니, 진실한 마음을 미루어 을 행하여서 백성의 마음이 기뻐하게 되면 하늘의 뜻이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기를 획책하여 임기응변의 계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방법이 아닙니다.”


역주
역주1 29-9-가5 : 《漢書》 권45 〈蒯伍江息夫傳 息夫躬〉에 보인다. 이 일은 漢 哀帝 建平 4년(기원전 3)에 있었다. 같은 내용이 《資治通鑑》 권34 〈漢紀36 哀帝 中〉에도 보인다.
역주2 息夫躬 : ?~기원전 1. 西漢의 관료, 문학가이다. 자는 子微로, 河內 河陽 사람이다. 일찍이 博士弟子가 되어 《春秋》를 공부하였다. 哀帝 때 징소되어 待詔, 光祿大夫, 左曹給事中 등을 역임하였고, 宜陵侯에 봉해졌다. 참언을 잘하여 사람들이 그의 입을 두려워하여 그를 보면 눈을 돌렸다고 한다. 建平 4년(기원전 3)에 熒惑星이 心宿를 침범하고 角星이 河鼓의 자리에 출현하여 병란의 조짐이 있다고 하면서 변방의 군비를 강화하고 군수 한 명을 참수하여 이변에 대응할 것을 헌책하여 가납되었다. 이에 대해 丞相 王嘉와 董賢의 저지를 받았다. 이후 방책을 실시한 당일에 다시 일식이 발생하자, 元壽 원년(기원전 2)에 논핵되어 면직되었다가 다시 모함을 받아 투옥된 뒤 죽었다. 저술로는 〈絶命辭〉가 있다.
역주3 王嘉 : ?~기원전 2. 漢 成帝․哀帝 때의 대신이다. 자는 公仲으로, 平陵 사람이다. 돈후하고 소박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여 成帝 때 太中大夫가 되었고 京兆尹,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哀帝 建平 3년(기원전 4) 승상이 되었고 新甫侯에 봉해졌다. 애제가 董賢을 총애하여 侯로 봉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하옥되어 죽었다.

대학연의(5)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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