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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1)

자치통감강목(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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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年(233)
十一年이라
魏靑龍元年이요 吳嘉禾二年이라
◑吳遣使하여 拜公孫淵爲燕王하다
公孫淵 遣校尉宿舒等하여 奉表稱臣於吳注+宿, 姓也.하니
吳主權 大悅하여 遣太常張彌 執金吾許晏等하여 將兵萬人하여 金寳珍貨 九錫備物하여 乘海授淵하고 封爲燕王하다
擧朝皆諫하여 以爲淵未可信이니 但可遣兵吏하여 護送其使而已라한대 不聽하다
張昭曰 淵 背魏懼討하여 遠來求援하니 非本志也 若淵改圖하여 欲自明於魏하면 兩使不反하리니 不亦取笑於天下乎잇가
反覆難昭하니 昭意彌切注+難, 去聲.이라 不能堪하여 案刀而怒曰 吳國士人 入宮則拜孤하고 出宮則拜君하니
孤之敬君 亦爲至矣로되 而數於衆中 折孤하니 孤常恐失計注+不念故舊而加刑, 是爲失計.하노라
昭熟視曰 臣雖知言不用이나 每竭愚忠者 誠以太后臨崩 呼老臣於牀下하여 顧命之言 故在耳라하고 因涕泣橫流注+故, 通作固.하니
擲刀於地하고 與之對泣이라이나 卒遣彌, 晏往하다 昭稱疾不朝한대 土塞其門하니 昭於內 以土封之하다
夏閏五月朔 日食하다
◑六月 魏洛陽宮鞠室注+鞠室者, 畫地爲域以蹴鞠, 因以名室.하다
◑公孫淵 斬吳使者하여 獻首於魏하니 魏封淵爲樂浪公하다
知吳遠難恃하고 乃斬張彌等首하여 傳送於魏注+傳, 直戀切.하니 魏拜淵大司馬하고 封樂浪公하다
吳主權 聞之하고 大怒曰 朕年六十 世事難易 靡所不嘗注+嘗, 試也.이로되 近爲鼠子所前却하니 令人氣踊如山注+呼淵曰鼠子, 憎賤之也. 前却, 謂稱臣以誘吳使使前, 旣又斬其使以却之也.이로다
不自截鼠子頭하여 以擲于海하면 無顔復臨萬國이로니 就令顚沛라도 不以爲恨注+顚沛, 僵仆也. 知其不可而欲興忿兵也.이리라
陸遜 上疏曰 陛下破操烏林하고 敗備西陵하고 禽羽荊州注+敗備西陵, 卽夷陵之戰.하시니 斯三虜者 當世雄傑이로되 而皆摧其鋒矣
方將蕩平華夏하여 總一大猷注+猷, 道也.어시늘 今乃不忍小忿하사 而輕萬乘之重하고 違垂堂之戒하시니 此臣之所惑也注+千金之子, 坐不垂堂, 以喩權不當自越海而加兵於遼東.니이다
臣聞行萬里者 不中道而輟足이요 圖四海者 不懷細而害大注+輟, 止也.라하니
今彊寇在境하고 荒服未庭이어늘 乃遠惜遼東之衆與馬하여 而捐江東萬安之業乎注+謂權所以遠惜遼東而不忍棄絶之者, 以其民衆與其地産馬也.잇가
僕射薛綜 尙書陸瑁 亦上疏曰 北寇與國 壤地連接하니 苟有間隙이면 應機而至 所以越海求馬於淵者 爲此故也어늘
而更棄本追末하고 捐近治遠하여 忿以改規하고 激以動衆하시니 斯乃猾虜所願聞이라 非大吳之至計也注+北寇‧猾虜, 皆謂魏也.니이다
且沓渚去淵 道里尙遠注+遼東郡, 有沓氏縣, 西南臨海渚.하니 今到其岸인댄 兵勢三分하여 使彊者進取하고 次當守船이요 又次運糧하리니 行人雖多 難得悉用이라
若淵狙詐하여 與北未絶이면 動衆之日 脣齒相濟注+此慮魏乘吳伐遼之間而南侵也.
若其不然이면 畏威遠迸하여 使天誅稽於朔野하고 山虜乘間而起하리니 恐非萬安之長慮也注+稽, 留也. 山虜, 謂丹陽‧豫章‧鄱陽‧廬陵‧新都等郡山越也. 乘間, 因空隙也.니이다
乃止하고 數遣人慰謝張昭로되 昭固不起 因出過其門하여 呼昭한대 昭辭疾篤이어늘
燒其門以恐之로되 昭亦不出이라 乃滅火하고 駐門良久하다 昭諸子 共扶昭起한대 載以還宮하여 深自克責하니 昭乃朝會하다
彌等 至襄平하니 欲圖之하여 乃先分散其吏兵하여 中使秦旦, 張群, 杜德, 黃彊等六十人 置玄菟注+襄平縣, 遼東郡治所, 淵所都也. 中使, 宦者. 吳書 “初張彌‧許晏等, 俱到襄平, 官屬從者四百許人, 淵欲圖彌‧晏, 先分人衆, 置遼東諸縣, 以中使秦旦‧張群‧杜德‧黃彊等及吏兵六十人, 置玄菟郡.러라
旦等 議曰 吾觀此郡컨대 形勢甚弱하니 焚其城郭하고 殺其長吏하여 爲國報恥然後 伏死하면 足以無恨注+爲, 去聲.이니
孰與偸生苟活하여 長爲囚虜乎리오하고 於是 陰相結約이러니 未發 爲人所告하니 旦等 皆走하다
群病 疽創著厀하여 不能前이라 乃推旦, 彊使前注+創, 與瘡同. 著, 陟略切. 推, 吐回切.하고 留守群하여 採菜果食之注+食, 讀曰러라
旦, 彊 行數日 得達句驪하여 因宣權詔於其王位宮注+高句麗國, 在遼東之東千里. 位宮, 漢高句麗王宮之曾孫也. 宮生而開目能視, 及長, 勇壯, 數犯漢邊. 位宮生墮地, 亦能開目視人, 句麗呼相似爲位, 以似其祖故, 名曰位宮.하니
位宮 卽使人迎群, 德하여 幷遣還吳하고 奉表稱臣하다 旦等 至吳 皆拜校尉하다
吳主權 自將攻魏新城이러니 不克하다
吳主權 出兵하여 欲圍新城이로되 以其遠水라하여 積二十餘日토록 不敢下船注+新城, 合肥新城也. 大船向岸, 船高岸卑, 故謂舍船就岸曰下船, 以自船而下也.하니
滿寵 謂諸將曰 孫權 得吾移城하고 必於衆中 有自大之言하리니 今來 雖不敢至 必當上岸耀兵하여 以示有餘라하고
乃潛遣步騎六千하여 伏肥水隱處注+處, 所也.러라 果上岸이어늘 伏軍 卒起擊之하여 斬首數百하니 或有赴水死者注+卒, 讀曰猝.러라
以馬忠爲庲降都督하다
庲降都督張翼 用法嚴하니 夷帥劉冑叛注+庲降, 音來絳, 地名. 水經注 “寧州建寧縣, 故庲降都督屯. 蜀後主建興三年, 分益州郡置之.”이라 丞相亮 以參軍馬忠으로 代翼하고 召翼令還하니
其人 謂翼호되 宜速卽罪注+其人, 謂召翼者也. 卽, 就也. 其人謂, 翼傳, 作群下咸謂.하라 翼曰 吾臨戰場하여 代人 未至하니 當運糧積穀하여 爲滅賊之資
豈可以黜退之故 而廢公家之務乎리오하고 於是 統攝不懈라가 代到乃發하니 因其資하여 破冑斬之하다


癸丑年(233)
나라(蜀漢) 後主 建興 11년이다
나라 明帝 曹叡 靑龍 원년이고, 나라 大帝 孫權 嘉禾 2년이다.
】 봄 정월에 靑龍나라 摩陂(마피)의 우물 안에 나타나니, 2월에 魏主 曹叡가 가서 구경하였다.注+이로부터 摩陂를 고쳐 龍陂라 하였다.
나라가 사자를 보내어 公孫淵燕王으로 임명하였다.
公孫淵校尉 宿舒 등을 나라에 보내서 表文을 올려 이라고 칭하니,注+宿이다.
吳主 孫權이 크게 기뻐하여 太常 張彌執金吾 許晏 등을 보내어 1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진귀한 금은보화와 九錫의 물건을 구비해서 바다를 건너가 공손연에게 주고 燕王으로 봉하였다.
朝廷의 신하들이 모두 하기를 “공손연을 믿을 수 없으니, 다만 군대와 관리를 보내어 그 사자를 호송하면 됩니다.”라고 하였으나, 孫權은 듣지 않았다.
張昭가 다음과 같이 하였다. “公孫淵나라를 배반하고는 토벌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멀리 우리에게 와서 구원을 청하니, 이는 그의 본래 뜻이 아닙니다. 만약 공손연이 생각을 바꾸어서 나라에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고자 한다면 張彌許晏 두 사신은 〈죽임을 당하여〉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천하에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孫權反覆하여 장소를 힐난하니, 장소의 뜻이 더욱 간절하였다.注+(힐난하다)은 去聲이다. 손권은 이를 참지 못하고 칼을 어루만지며 하여 다음과 같이 위협하였다. “나라의 人士들이 궁중에 들어오면 나에게 절하고 궁중을 나가면 그대에게 절한다.
내가 그대를 존경함 또한 지극한데도 그대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자주 나를 꺾으니, 내 항상 실책을 저질러 그대를 죽이게 될까 두렵노라.”注+옛 의리를 생각하지 않고 형벌을 가하면 이는 失計(失策)가 되는 것이다.
張昭孫權을 한동안 쳐다보고 말하기를 “은 비록 저의 말이 쓰이지 않을 줄을 알지만, 매번 어리석은 충성을 다하는 것은 진실로 太后께서 임종하실 적에 老臣을 침상 아래로 불러서 顧命하신 말씀이 여전히 귀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고는 인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니,注+와 통한다.
孫權은 칼을 땅에 던지고는 그와 마주 대하여 울었다. 그러나 손권은 끝내 張彌許晏遼東으로 보냈다. 장소가 병을 칭탁하고 조회하러 나오지 않자 손권이 흙으로 그의 문을 막으니, 장소는 안에서 흙을 쌓아 봉함하였다.
】 여름 윤5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 6월에 나라 洛陽宮 鞠室에 화재가 발생하였다.注+鞠室”은 땅에 금을 그어 구역을 만들어서 蹴鞠(축구의 일종)을 하였는데, 인하여 집의 이름을 鞠室이라 한 것이다.
公孫淵나라의 使者를 참수하여 그 首級나라에 바치니, 나라가 공손연을 봉하여 樂浪公으로 삼았다.
公孫淵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믿기 어려움을 알고는 마침내 張彌 등의 머리를 베어 그 首級을 파발마로 나라에 보내니,注+(파발)은 直戀이다. 나라에서는 공손연을 大司馬에 임명하고 樂浪公으로 봉하였다.
吳主 孫權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 나이 60세에 어렵고 쉬운 세상일을 겪지 않은 것이 없는데,注+은 시험하여 겪는 것이다. 근래 쥐새끼 같은 자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밀쳐지기도 하였으니, 사람(나)으로 하여금 憤氣가 산과 같이 일게 한다.注+公孫淵을 불러 쥐새끼라 한 것은 그를 미워하고 천하게 여긴 것이다. “前却”은 을 칭하여 나라 사신을 유인해서 앞으로 오게 하고 이윽고 또 그 사신을 참수하여 밀쳐냄을 말한 것이다.
내 직접 쥐새끼의 머리를 잘라 바다에 던지지 않으면 다시 萬國에 군림할 면목이 없을 것이니, 가령 내가 이 때문에 顚沛(전패)를 당하더라도 하지 않겠다.”注+顚沛”는 쓰러짐이다. 〈“就令顚沛 不以爲恨”은〉 孫權이 공격하여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忿兵(작은 일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여 출동한 군대)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陸遜이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하였다. “陛下께서는 劉備西陵에서 패퇴시키고 關羽荊州에서 사로잡으셨으니,注+敗備西陵”은 바로 이다. 이 세 적들은 당시의 영웅호걸로 알려진 인물인데 모두 그 銳鋒을 꺾으셨습니다.
장차 華夏(중국)를 평정하여 천하를 큰 에 통일하셔야 하는데,注+이다. 이제 마침내 작은 분노를 참지 못하시어 萬乘 천자의 소중함을 가벼이 하고 를 어기시니, 이는 이 의혹하는 바입니다.注+〈“違垂堂之戒”는〉 千金의 부잣집 아들은 의 귀퉁이에 앉지 않으니, 이로써 孫權이 스스로 바다를 건너가 遼東에 공격을 해서는 안 됨을 비유한 것이다.
이 들으니 ‘만 리 길을 가는 자는 중도에 발길을 멈추지 않고, 四海를 도모하는 자는 작은 것을 생각하여 큰 것을 해치지 않는다.’注+은 그침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강한 도적(나라)이 국경 앞에 있고 먼 오랑캐(公孫淵)가 귀부해오지 않는데, 마침내 멀리 있는 遼東의 백성과 말을 아까워하여 江東의 만 번 편안한 基業을 버리십니까.”注+〈“遠惜遼東衆之與馬”는〉 孫權이 멀리 遼東을 아까워하여 차마 버리고 끊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지역의 백성과 그곳에서 생산되는 말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僕射 薛綜尙書 陸瑁 또한 다음과 같이 上疏하였다. “북쪽 오랑캐(나라)와 우리나라는 국경이 連接하였으니, 만일 우리에게 빈틈이 생기면 저들은 기회를 틈타 쳐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바다를 건너가서 公孫淵에게 말을 구한 이유는 이 때문(나라의 騎兵을 물리치려 함)이었는데,
다시 근본을 버려 을 따르고 가까운 곳을 버려 먼 곳을 다스려서 분노 때문에 계획을 바꾸고 감정 때문에 군대를 동원하려 하시니, 이는 바로 교활한 오랑캐가 듣기를 원하는 바이고 우리 大吳의 지극한 계책이 아닙니다.注+北寇”와 “猾虜”는 모두 나라를 이른다.
는 공손연과 거리가 머니,注+遼東郡沓氏縣이 있으니, 서남쪽으로 바닷가에 임하였다. 가령 우리가 그 江岸에 이르려면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서 강한 병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 적을 공격하게 하고 다음은 선박을 지키게 하고 그 다음은 군량을 운반하게 해야 할 것이니, 출동하는 사람이 비록 많으나 다 전쟁에 동원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공손연이 속임수를 써서 북쪽 나라와 관계를 끊지 않으면 우리가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날에 저들은 입술과 이빨처럼 서로 구제할 것이요,注+脣齒相濟”는 나라에서 나라가 遼東을 정벌하는 틈을 타서 南侵을 할까 염려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공손연이 우리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멀리 도망해서 하늘(임금)의 토벌이 북방의 들에 지체하게 되고 산중의 오랑캐가 틈을 타서 일어나게 될 것이니, 이는 만 번 편안한 長久한 생각이 아닙니다.”注+는 지체함이다. “山虜”는 丹陽豫章, 鄱陽, 廬陵, 新都 등의 에 있는 山越을 이른다. “乘間”은 빈틈을 타고 쳐들어오는 것이다.
】 이에 孫權은 마침내 중지하였다. 손권이 자주 사람을 보내어 張昭를 위로하고 사과하였으나, 장소는 한사코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손권이 인하여 궁 밖으로 나가 장소의 집 문을 지나면서 그를 소리쳐 불렀으나, 장소는 병이 위독하다고 사양하였다.
손권은 그의 문에 불을 놓아 두렵게 하려 하였으나 장소가 여전히 나오지 않으니, 이에 불을 끄게 하고는 한동안 문에 머물러 있었다. 장소의 아들들이 함께 장소를 부축하여 일어나게 하자, 손권은 그를 수레에 태워 還宮해서 자신을 깊이 책망하니, 장소가 그제야 조회에 나왔다.
】 처음에 張彌 등이 襄平에 도착하자, 公孫淵은 이들을 도모하고자 해서 먼저 그 관리와 병사들을 분산시켜 中使秦旦, 張群, 杜德, 黃彊 등 60명을 玄菟(현도)에 留置하였다.注+襄平縣遼東郡治所이니, 公孫淵이 도읍한 곳이다. 中使는 환관이다. ≪三國志≫ 〈吳書〉에 “처음 張彌許晏 등이 함께 襄平에 이르니 수행하는 官屬이 4백여 명이었는데, 공손연은 장미와 허안을 도모하고자 해서 먼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나누어 遼東의 여러 留置하고, 中使秦旦, 張群, 杜德, 黃彊 등과 관리와 병사 60명을 玄菟郡에 유치했다.” 하였다.
진단 등이 의논하기를 “우리가 이 을 보건대 형세가 매우 약하니, 만약 이 城郭을 불태우고 이곳의 長吏를 살해하여 국가를 위해 치욕을 보복한 뒤에 죽으면 충분히 여한이 없을 것이다.注+(위하다)는 去聲이다.
어찌 생명을 도둑질하여 구차히 살아서 영원히 갇혀 있는 포로가 되는 것만 하겠는가.” 하고는 이에 은밀히 거사를 약속하였는데, 거사하기 전에 고발당하니 진단 등이 모두 달아났다.
】 이때에 張群은 무릎에 종기가 나서 전진할 수가 없었다. 이에 秦旦黃彊을 밀쳐내어 전진하게 하고注+(종기)은 과 같다. (붙다)은 陟略이다. (밀치다)는 吐回이다. 杜德이 남아 장군을 지키면서 채소와 과일을 채취하여 그에게 먹였다.注+(먹이다)는 로 읽는다.
진단과 황강이 길을 떠난 지 며칠 만에 高句麗에 도착하고 인하여 손권의 詔令을 그 왕 高位宮(東川王)에게 전달하니,注+高句麗國遼東의 동쪽 천 리 지점에 있다. 高位宮나라 때 高句麗王 高宮(太祖王)의 曾孫이다. 고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잘 보았는데, 장성하자 용감하고 건장하여 자주 나라 변경을 침범하였다. 고위궁 또한 태어나자마자 눈을 떠 사람을 보니, 고구려에서는 서로 비슷한 것을 불러 라 하였는바 그의 할아버지(고궁)와 유사하다 하여 이름을 位宮이라 한 것이다.
고위궁이 급히 사람을 시켜 장군과 두덕을 맞이해서 모두 나라로 돌려보내고, 표문을 올려 이라고 칭하였다. 진단 등이 나라에 도착하자 모두 校尉를 제수하였다.
吳主 孫權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 (새로 구축한 合肥城)을 공격하였는데, 이기지 못하였다.
吳主 孫權이 출병하여 新城을 포위하고자 하였으나, 강과 거리가 멀다 하여 20여 일 동안 감히 배에서 내리지 못하니,注+新城合肥新城이다. 큰 배가 江岸으로 향하면 배가 높고 강안이 낮으므로 배를 버리고 강안으로 나아가는 것을 下船이라 하니, 배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滿寵이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손권이 우리가 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과시하는 말이 있을 것이니, 이번에 감히 여기까지 오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江岸에 올라 군대의 위용을 과시해서 有餘함을 보일 것이다.”
만총은 마침내 은밀히 보병과 기병 6천 명을 보내서 肥水의 으늑한 곳에 매복하였다.注+는 처소이다. 孫權의 군대가 과연 江岸으로 올라오자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 기습 공격해서 수백 명을 참수하니, 吳軍 가운데 혹 물에 뛰어들어 죽은 자도 있었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馬忠庲降都督으로 삼았다.
庲降都督 張翼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니, 오랑캐의 우두머리 劉冑가 반란을 일으켰다.注+庲降은 음이 來絳이니 地名이다. ≪水經注≫에 “寧州 建寧縣은 옛날 庲降都督이 주둔하던 곳이다. 蜀漢 後主 建興 3년(225)에 益州郡을 나누어 설치했다.” 하였다. 丞相 諸葛亮參軍 馬忠으로 張翼을 대신하게 하고 장익을 불러 돌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장익에게 이르기를 “속히 돌아가 죄를 받아야 한다.”注+其人”은 張翼을 부른 자를 이른다. 은 나아감이다. “其人謂”는 ≪三國志≫ 〈蜀書 張翼傳〉에는 ‘여러 부하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群下咸謂]’로 되어 있다. 하였다. 장익이 말하기를 “내 전장에 임하여 교대하는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곡식을 운반하여 군량을 비축해서 을 멸망시킬 밑천으로 삼아야 한다.
어찌 퇴출을 당했다는 이유로 公家(국가)의 사무를 폐하겠는가.” 하고는 이에 단속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다가 마충이 도착하고서야 비로소 출발하였다. 마충은 그 물자를 이용하여 유주를 격파하여 참수하였다.


역주
역주1 靑龍見魏摩陂井中……魏主叡往觀之 : “龍을 구경하는 것을 쓰지 않는데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썼는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갔다고 쓴 것이다.[觀龍不書 此何以書 遠也 故特書往]” ≪書法≫
“용은 하늘에 있는 물건인데 우물 안에 나타났으니, 이는 아마도 뒤에 曹芳과 曹髦가 지위를 잃을 조짐일 것이다. 그런데 曹叡는 가서 구경하여 경계하고 살필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써서 비난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龍 在天之物 而見於井中 其殆芳髦失位之兆乎 叡往觀之 不知警省 故書以示譏]” ≪發明≫
역주2 曹操를……격파하고 : 赤壁大戰을 가리킨다.
역주3 夷陵의 전투 : 章武 2년(222) 蜀漢의 關羽가 呂蒙에게 죽임을 당하자, 昭烈帝가 吳나라를 공격하다가 夷陵에서 吳나라 장수 陸遜에게 火攻을 당하여 크게 패한 것을 이른다. 이릉은 三峽 지역에 있는 지명이다. 夷陵大戰은 猇亭大戰, 秭歸大戰이라 한다. 이 전투의 내용은 본서 187쪽에 보인다.
역주4 垂堂의 경계 : 위험한 곳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경계를 이른다. ≪漢書≫ 〈袁盎傳〉에 “千金의 부잣집 자식은 堂의 귀퉁이[垂堂]에 앉지 않는다.” 하였다.
역주5 沓渚 : ≪資治通鑑≫ 註에 “魏 明帝 景初 3년(239) 遼東 東沓縣의 관리와 백성들이 바다를 건너간다 하여, 이들을 齊郡의 경계에 살게 하고 新沓縣을 만드니, 이곳이 바로 沓渚이다.[魏明帝景初三年 以遙東東沓縣吏民過海 居齊郡界 爲新沓縣 卽沓渚]” 하였다.
역주6 (北)[其] : 저본에는 ‘北’으로 되어 있으나, ≪三國志≫ 〈吳書 吳主傳〉 裴松之 注에 의거하여 ‘其’로 바로잡았다.
역주7 (飮)[飤]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飤’로 바로잡았다.
역주8 新城 : 魏나라 滿寵이 合肥城을 옮길 것을 건의한 내용이 본서 312쪽에 보인다.

자치통감강목(11)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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