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綱] 가을 8월에 吳나라가 皇子孫𩅦(손완)을 세워서 太子로 삼았다.注+𩅦은 烏關의 切이다. ≪三國志≫ 〈吳書三嗣主傳〉에 의하면 “吳主孫休는 네 아들의 이름자를 지었는데, 𩅦의 音은 湖水의 물굽이라고 할 때의 灣이다.”라 하였으니, 이전에는 이 음이 없었다.
綱
[綱] 겨울 10월에 姜維가 魏나라 洮陽을 정벌하여 승리하지 못하였다.
目
[目] 예전에 姜維가 군대를 출동하려 할 적에 車騎將軍廖化가 말하였다. “전쟁을 멈추지 아니하면 반드시 자신을 불태워 자멸한다는 것은 바로 伯約(강유)을 말하는 것이다.注+≪春秋左氏傳≫ 隱公 4년에 “魯나라 大夫衆仲이 말하였다. ‘戰爭은 불과 같으니, 그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을 태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伯約은 姜維의 字이다.
智謀는 적보다 출중하지 못하고 힘은 적보다 약한데 이를 사용함에 만족함이 없으니 어떻게 자신을 보존하겠는가.”注+〈“智不出敵而力少於寇”는〉 智謀를 비교하면 敵보다 뛰어나지 않고 힘을 비교하면 더욱 약소함을 말한 것이다. 厭(편안하다)은 於鹽의 切이다. 강유가 마침내 魏나라를 정벌해서 洮陽을 공격하였는데注+“洮陽”은 洮水의 북쪽이다. 洮水의 남쪽은 魏나라에서 郡縣을 설치하지 않아서 姜維가 洮水를 건너 공격한 것이다.鄧艾가 그들과 侯和에서 싸워 격파했다.注+≪水經註≫에 “洮水는 洮陽城을 지나고 또다시 동쪽으로 가서 共和山 남쪽을 지나는데 성곽이 사방 산 안에 있고 또다시 동으로 가서 迷和城 북쪽을 지난다.”라고 하였으니, 侯和는 곧 이 지역을 의미한다.
目
[目] 이때에 黃皓가 권력을 잡아 右大將軍閻宇와 친하게 지냈다. 〈황호가〉 姜維를 폐하여 염우를 세우려고 하였는데 강유가 이를 알고 後主에게 말하기를 “황호는 간교하고 방자하여 장차 국가를 패망하게 할 것이니 그를 죽이십시오.”라고 하니,
강유는 황호가 나무줄기에 가지와 잎이 붙은 것처럼 황제와 긴밀한 관계임을 알아차리고 말을 겸손히 하고 나왔다. 황제가 황호에게 칙서를 내려 강유를 찾아가 사과하게 하니, 강유는 이로 말미암아 의구심이 들어서注+이것은 姜維가 아직 洮陽으로 출병하기 이전의 일이다. 스스로 洮陽으로 되돌아가서 이어서 沓中 지역에 보리를 심기를 청하고 감히 成都로 돌아오지 못하였다.注+沓中은 여러 羌族 가운데에 있으니 곧 沙漒 지역이다.
[目] 嵇康은 문장과 언사가 뛰어나고 老子와 莊子에 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며 기이한 행동을 숭상하고 의협심이 강해서 阮籍, 완적의 조카 阮咸, 山濤, 向秀(상수), 王戎, 劉伶과 함께 벗하며 잘 지내면서 竹林七賢이라 불렀다.注+阮은 姓이다.
모두가 虛無를 숭상하고 禮法을 경멸하여, 술을 실컷 마시고 크게 취해서 세상일을 잊어버렸다.
완적은 步兵校尉가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한창 어떤 사람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대국하는 자가 그만둘 것을 청하였는데, 완적이 만류하면서 승패를 결정지었다.注+〈“與決賭”는〉 함께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윽고 술 두 말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 한 번 통곡을 하자 피를 몇 되나 토하고 비쩍 말라서 뼈를 세워놓은 것 같았으나 居喪 중에도 술을 마시는 것이 평일과 다르지 않았다.注+“骨立”은 심히 수척하여 몸의 살이 모두 사라져 오직 뼈만 서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目
[目] 司馬昭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司隷校尉何曾이 阮籍의 면전에 대고 꾸짖기를注+何曾은 何夔의 아들이다. 質은 질정한다는 뜻이니, 〈“面質”은〉 얼굴을 맞대고 정의로 꾸짖는 것이다. “卿은 감정대로 행동하고 예법을 어겨서 풍속을 파괴하는 사람이니 나쁜 풍조를 助長해서는 안 된다.”注+長(조장하다)은 知兩의 切이다.라고 하고,
이어서 사마소에게 말하기를 “公께서는 바야흐로 孝로 천하를 다스리시는데 완적이 服喪 중에도 公이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을 내버려두시니, 공께서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훈계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그를 사방 오랑캐들의 지역으로 물리쳐서 華夏 지역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사마소는 완적의 재주를 아껴서 늘 그를 옹호하였다.注+司馬昭가 九錫을 사양할 적에 阮籍이 公卿들을 위하여 勸進牋(나아가기를 청하는 글)을 지었는데 그 언사가 심히 청아하고 장중하였으므로 사마소가 그의 재주를 아꼈다.
目
[目] 阮咸은 본래 고모의 여종을 총애했는데 고모가 여종을 데리고 가버렸다. 완함이 한창 손님과 응대하고 있다가 급히 손님이 타고 온 말을 빌려 타고 쫓아가서 여종을 말에 태우고 돌아왔다.注+累는 포갠다는 뜻이니, 두 사람이 함께 말을 타는 것을 “累騎”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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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劉伶은 술을 매우 좋아해서 평상시 鹿車를 타고서 술 한 동이를 가지고 사람을 시켜 삽을 메고 따르게 하며 말하기를 “죽게 되면 바로 나를 묻어라.”注+“鹿車”는 수레가 작아서 겨우 사슴 한 마리 정도 실을 만한 것을 말한다. 荷(메다)는 上聲이니, 등에 진다는 뜻이다.라고 하니,
당시 사대부들이 모두 그를 賢明하다고 여겨 다투어 흠모하고 본받으면서 그를 放達하다고 하였다.注+“放達”은 玄虛하고 호방함을 曠達이라 함을 이른다. 一說에 “放達은 방탕하고 허탄하며 활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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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鍾會가 嵇康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찾아갔는데 혜강이 다리를 뻗고 앉아서 쇠를 두들기며 그에게 예를 차리지 않았다.注+踞는 倨와 통용한다. 鍛(단련하다)은 都玩의 切이니 小冶(가볍게 망치질하는 것)이다. 망치질할 뿐이고 녹이지 않으므로 小冶라고 한다. 嵇康은 성격이 정교해서 쇠를 단련하기를 좋아했다.
종회가 돌아가려 하자 혜강이 말하기를 “무엇을 듣고서 왔다가 무엇을 보고 돌아가는가?”라고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소문을 듣고 왔다가 본 것을 보고 간다.”라고 하고, 결국 이로 인하여 종회는 매우 앙심을 품게 되었다.
山濤가 吏部郞이 되어서 자신의 후임으로 혜강을 천거하였는데注+魏나라는 尙書郞이 23명이 있는데 吏部郞이 그 1명이다. 혜강이 산도에게 편지를 보내서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을 세속적인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고, 湯王이나 武王도 비루하게 생각한다.”라고 하니, 사마소는 이 말을 듣고 성을 내었다.注+商湯과 周武王이 革命을 하였는데, 嵇康이 비루하게 여겼으므로 司馬昭가 이를 듣고서 성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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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嵇康이 東平 사람 呂安과 잘 지냈는데, 呂安의 형 呂巽이, 여안이 불효한다고 무고하자, 혜강이 그렇지 않다고 증언하였다.注+爲(위하다)는 去聲이다.
鍾會가 이어서 참소하기를 “혜강이 일찍이 毌丘儉을 돕고자 하였고,注+〈“康甞欲助毌丘儉”은〉 毌丘儉이 叛亂을 일으켰을 때 嵇康이 돕고자 한 것을 말한다. 또 呂安과 함께 모두 세상에 성대한 명성이 있는데 말하는 것이 방탕하여 時俗을 해치며 교화를 어지럽히니 마땅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하니,
司馬昭가 마침내 여안과 혜강을 죽였다. 혜강이 일찍이 隠者인 孫登을 방문하였는데 손등이 말하기를 “그대는 재주는 많으나 견식이 적으니 지금 세상에서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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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魏나라가 鍾會를 都督關中軍事로 삼았다.
目
[目] 魏나라 司馬昭는 姜維가 자주 북쪽을 침략하는 것을 근심하고 있었는데, 官騎路遺가 자객이 되어서 蜀漢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注+官騎는
從事中郞荀勖이 말하기를注+從事中郞은 大將軍의 속관이다. 荀勖은 荀爽의 曾孫子이다. “明公께서는 천하를 주재하고 계시면서 마땅히 정의에 입각하여 반역한 자들을 정벌하셔야 하는데 자객으로 적을 제거하는 것은 四海에 본받도록 하는 방도가 아닙니다.”注+違는 떠나가고, 배반한다는 뜻이다. 貳는 두 마음을 품고 양쪽에 소속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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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司馬昭가 이 말이 옳다고 하며 마침내 크게 출동하여 蜀漢을 정벌하려고 하자 조정의 신하들은 대부분 불가하다고 하였는데, 오직 鍾會만이 이를 권하였다.
蜀漢의 戰士를 헤아려보면 9만 명인데 成都 지역에 수비하거나 다른 경계 지역을 대비하는 숫자가 4만 명을 밑돌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면 나머지 무리는 5만 명에 불과하다.
지금 姜維를 沓中에 묶어놓아 동쪽을 돌아볼 수 없게 하고注+다리를 묶는 것을 絆이라고 한다. 곧바로 駱谷을 향하여 나아가 그 빈 곳으로 나가서 漢中을 습격한다면
劉禪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변경의 성들이 밖에서 격파를 당하고 남녀 백성들이 안에서 동요할 것이니, 망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종회를 鎭西將軍으로 삼고 關中 지역을 감독하게 하니, 鄧艾는 蜀漢이 아직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고 누차 다른 의견을 펼쳤는데, 사마소가 사람을 보내서 유시하자 등애가 마침내 명령을 받들었다.
目
[目] 姜維가 표문을 올리기를 “左車騎將軍張翼과 右車騎將軍廖化를 파견하여 여러 군대를 감독하게 하고, 陽安의 關口와 陰平의 橋頭를 나누어 보호하여 미연에 방비해야 합니다.”注+이때 張翼은 左車騎將軍이었고, 廖化는 右車騎將軍이었다. 陽安의 關口는 생각건대 陽平關이다. 杜佑가 말하기를 “陰平의 橋頭는 文州의 경계에 있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黃皓는 鬼神과 무당의 말을 믿어 적군이 끝내 스스로 이르지 못할 것이라 여겨서 황제(後主)에게 아뢰고 그 일을 묵살하니 여러 신하들 중에는 아는 자가 없었다.注+致는 이른다는 뜻이고, 또 나아간다는 뜻이고 보낸다는 뜻이다.
역주
역주1姜維伐魏洮陽 不克 :
“諸葛亮이 魏나라를 정벌할 때에 6번 정벌에 여섯 번 그 관직을 기록하였다. 姜維도 여기에서 여섯 번 정벌하였으나 모두 관직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강유를 죄준 것이다. 힘을 헤아리지 않고 자주 백성들을 괴롭게 하였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진실로 허여할 수 없는 것이다.[亮之伐魏也 六伐六書其官 維於是亦六伐矣 皆不書官 何 罪維也 不量力而數勦民 綱目固不得而予之]” ≪書法≫ “姜維가 누차 魏나라를 정벌하여 한 치를 전진함에 한 자를 후퇴를 하는데도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당시에 지식이 있는 人士로 예컨대 譙周, 廖化 등이 모두 근심을 하였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 그것을 기록하고서 애초에 깎아내린 말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전쟁은 원수와 같은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니, 진실로 탐하고 분노하는 사욕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국가 역적을 놓아두고 문책하지 않는다면 비록 구차히 편안하게 되더라도 오히려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 점을 분명히 헤아리면 ≪春秋≫에서 乾時(齊나라 땅)의 전쟁에서 〈魯나라가〉 비록 패하였으나 영광스럽게 여겼으니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姜維屢擧伐魏 進寸退尺 而用兵不已 當時智識之士 如譙周廖化輩 皆爲之隱憂 然綱目書之 初無貶詞 何也 用兵以討讐賊 固非貪忿私慾之擧 若置國賊而不問 雖可苟安 猶爲深恥 明乎此 則知春秋乾(간)時之戰 雖敗猶榮 而討賊之義 無一日而可忘矣]” ≪發明≫ “春秋乾時之戰 雖敗猶榮”은 ≪春秋≫ 莊公 9년에 “8월 경신일에 魯나라 군대가 齊나라 군대와 乾時에서 전투를 하여 我軍이 大敗하였다.[八月庚申 及齊師戰于乾時 我師敗績]”라고 하였는데, 이때 齊나라는 無知가 齊 襄公을 시해하여 齊나라 公子들이 망명했다가 小白이 이미 귀국하여 임금으로 정해졌는데도 魯 莊公은 군대를 출동하여 오랫동안 전쟁을 하다가 마침내 大敗하여 돌아왔다. 魯나라가 乾時 전쟁에는 패배하였지만, 임금을 시해한 자를 토벌했다는 명분을 세운 것을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역주2(出)[也] :
저본에는 ‘出’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
역주3厭 於鹽切 :
平聲으로 ‘편안하다[安]’의 뜻인데, 본서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資治通鑑新注≫(陝西人民出版社, 1998)의 ‘만족하다[滿足]’를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5예전에……때에 :
예전에 孫休가 琅邪王에 책봉되어 琅邪에 있다가 會稽에 거처했던 일을 말한다.
역주6箕踞 :
두 다리를 키처럼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을 말하는데 예의를 차리지 않고 거만하게 앉는 것을 말한다.
역주7(推)[椎] :
저본에는 ‘推’로 되어 있으나, ≪說文繫傳≫의 ‘鍛’에 대한 설명에 의거하여 ‘椎’로 바로잡았다.
역주8騶騎 :
≪漢書≫ 顔師古 註에 “騶는 본래 마구간의 말을 모는 자이다. 뒤에 그들을 기병으로 삼았기 때문에 騶騎라 하였다.[騶 本廐之馭者 後又令爲騎 因謂騶騎耳]” 하였다. 또한 ≪資治通鑑≫ 註에서 漢官儀를 인용하면서 “騶騎는 王家에서는 官騎라고 하니 廐馬와 함께 모두 太僕에 속한다.[騶騎王家名官騎與廐馬皆屬太僕]” 하였다.
역주9(達)[違] :
저본에는 ‘達’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違’로 바로잡았다.
역주10壽春을……6년째인데 :
壽春에서 諸葛誕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한 이후를 말한다. 이 사건은 高貴鄕公 甘露 3년(258)에 일어났으므로 실제로는 5년이 된다.
역주11長江의……형세 :
蜀 지방이 長江의 上流이므로 蜀漢을 멸망시키고 上流에서 강물을 따라 下流 지역인 吳나라를 공격한다는 말이다.
역주12春秋……것이다 :
春秋時代에 晉 獻公이 虞나라에 길을 빌려 虢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虞나라까지 멸망시킨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