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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3)

자치통감강목(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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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年(298)
八年이라 秋九月 荊, 豫, 徐, 揚, 冀州大水하다
略陽巴氐李特 庠, 流 皆有材武하여 善騎射하고 性任俠하니 州黨 多附之注+初, 張魯在漢中, 賨人李氏, 自巴西宕渠往依之. 魏武帝克漢中, 李氏將五百餘家歸之, 拜爲將軍, 遷于略陽北土, 號曰巴氐. 庠‧流, 李特二弟名.
及齊萬年反 關中 荐饑하니 略陽, 天水等六郡民 流移入漢川者 數萬家注+漢川, 卽漢中郡之地.
道路 有疾病窮乏者하면 特兄弟振救之하니 由是 得衆心하여
流民 至漢中하여 上書求寄食巴, 蜀하니 朝議遣侍御史李苾하여 持節慰勞하고 且監察之하여 不令入劍閣하다
受流民賂하고 表言流民十萬餘口 非漢中一郡所能賑贍이라 蜀有倉儲하니 宜令就食이라하니 從之하다
由是 散在梁, 益하여 不可禁止 至劍閣하여 太息曰 劉禪 有如此地하여 面縛於人하니 豈非庸才邪아하니라
遣將軍孟觀하여 討齊萬年하다
張華 薦觀沈毅有文武材用하여 使討齊萬年하니 身當矢石하고 大戰十數하여 皆破之하다


戊午年(298)
[] 나라 孝惠皇帝 元康 8년이다. 가을 9월에 荊州, 豫州, 徐州, 揚州, 冀州에서 큰 홍수가 졌다.
[] 侍御史 李苾을 보내어 漢川(漢中)의 流民들을 위로하게 하였다.
[] 略陽巴氐李特李庠, 李流가 모두 재주와 무예가 있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성품이 豪俠하니, 州黨들이 대부분 그에게 붙었다.注+처음에 張魯漢中에 있을 적에 (종) 땅 사람 李氏巴西宕渠(탕거)에서 한중으로 가 장로에게 의지하였다. 나라 武帝(曹操)가 한중을 점령하니, 이씨가 5백여 가호를 거느리고 그에게 귀순하였으므로 그를 장군으로 제수하여 略陽의 북쪽 지역으로 옮기고 이들을 이름하여 ‘巴氐’라 하였다. 李庠李流李特의 두 아우의 이름이다.
齊萬年이 배반할 적에 關中 지역이 거듭 기근이 드니, 略陽天水 등 6개 에서 流離하여 漢川으로 들어간 백성이 수만 가호였다.注+漢川은 바로 漢中郡의 지역이다.
流民들이 도로에서 질병을 앓거나 궁핍한 자가 있으면 李特의 형제가 이들을 구휼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니,
유민들이 漢中에 이르러 조정에 글을 올려 , 에서 寄食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조정에서는 의논하여 侍御史 李苾을 보내어 을 잡고 가서 유민들을 위로하고 또 이들을 감찰하여 劍閣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필은 유민들에게 뇌물을 받아먹고는 表文을 올려 “유민 10여만 명은 漢中의 한 이 능히 구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에는 저축된 창고가 있으니, 마땅히 그리로 가서 먹게 하여야 합니다.” 하자, 조정에서는 그 말을 따랐다.
이로 말미암아 유민들이 梁州益州로 흩어지게 되어 금지할 수가 없었다. 이특은 검각에 이르러 크게 탄식하기를 “劉禪이 이와 같이 험한 지형을 가지고도 손을 뒤로 묶고 얼굴을 든 채 남에게 항복하였으니, 어찌 용렬한 재주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 將軍 孟觀을 보내어 齊萬年을 토벌하게 하였다.
[] 張華孟觀이 침착하고 굳세며 文武의 재주가 있다고 천거해서 그로 하여금 齊萬年을 토벌하게 하니, 맹관은 몸소 화살과 砲石을 맞으며 십여 차례 크게 싸워서 모두 격파하였다.


역주
역주1 遣侍御史李苾 慰勞漢川流民 : “晉나라가 蜀 지역을 잃은 것이 李苾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삼가 쓴 것이다.[晉之失蜀 自苾始 故謹書之]” ≪書法≫

자치통감강목(13)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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