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略陽巴氐李特
과 庠, 流 皆有材武
하여 善騎射
하고 性任俠
하니 州黨
이 多附之
注+初, 張魯在漢中, 賨人李氏, 自巴西宕渠往依之. 魏武帝克漢中, 李氏將五百餘家歸之, 拜爲將軍, 遷于略陽北土, 號曰巴氐. 庠‧流, 李特二弟名.라
及齊萬年反
에 關中
이 荐饑
하니 略陽, 天水等六郡民
이 流移入漢川者 數萬家
注+漢川, 卽漢中郡之地.라
道路에 有疾病窮乏者하면 特兄弟振救之하니 由是로 得衆心하여
流民이 至漢中하여 上書求寄食巴, 蜀하니 朝議遣侍御史李苾하여 持節慰勞하고 且監察之하여 不令入劍閣하다
苾이 受流民賂하고 表言流民十萬餘口는 非漢中一郡所能賑贍이라 蜀有倉儲하니 宜令就食이라하니 從之하다
由是로 散在梁, 益하여 不可禁止라 特이 至劍閣하여 太息曰 劉禪이 有如此地하여 面縛於人하니 豈非庸才邪아하니라
目
[
目]
略陽의
巴氐인
李特과
李庠,
李流가 모두 재주와 무예가 있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성품이
豪俠하니,
州黨들이 대부분 그에게 붙었다.
注+처음에 張魯가 漢中에 있을 적에 賨(종) 땅 사람 李氏가 巴西의 宕渠(탕거)에서 한중으로 가 장로에게 의지하였다. 魏나라 武帝(曹操)가 한중을 점령하니, 이씨가 5백여 가호를 거느리고 그에게 귀순하였으므로 그를 장군으로 제수하여 略陽의 북쪽 지역으로 옮기고 이들을 이름하여 ‘巴氐’라 하였다. 李庠과 李流는 李特의 두 아우의 이름이다.
齊萬年이 배반할 적에
關中 지역이 거듭 기근이 드니,
略陽과
天水 등 6개
郡에서
流離하여
漢川으로 들어간 백성이 수만 가호였다.
注+漢川은 바로 漢中郡의 지역이다.
流民들이 도로에서 질병을 앓거나 궁핍한 자가 있으면 李特의 형제가 이들을 구휼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니,
유민들이 漢中에 이르러 조정에 글을 올려 巴, 蜀에서 寄食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조정에서는 의논하여 侍御史 李苾을 보내어 節을 잡고 가서 유민들을 위로하고 또 이들을 감찰하여 劍閣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필은 유민들에게 뇌물을 받아먹고는 表文을 올려 “유민 10여만 명은 漢中의 한 郡이 능히 구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蜀 지방에는 저축된 창고가 있으니, 마땅히 그리로 가서 먹게 하여야 합니다.” 하자, 조정에서는 그 말을 따랐다.
이로 말미암아 유민들이 梁州와 益州로 흩어지게 되어 금지할 수가 없었다. 이특은 검각에 이르러 크게 탄식하기를 “劉禪이 이와 같이 험한 지형을 가지고도 손을 뒤로 묶고 얼굴을 든 채 남에게 항복하였으니, 어찌 용렬한 재주가 아니겠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