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東平王 司馬楙가 兗州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조세를 징수하니, 郡縣들이 그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司馬虓가 苟晞(구희)를 연주로 돌려보내고 사마무를 靑州로 옮기니, 사마무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劉喬와 연합하였다.
司馬顒은 山東 지역에서 군대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두려워하여 표문을 올려 成都王 司馬穎을 都督河北諸軍事로 삼아 다시 鄴城에 진주하게 하고, 司馬越 등에게 詔令을 내려 각각 封國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사마월 등은 그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사마옹은 劉喬가 올린 일을 보고는 조령을 내리기를 “劉輿가 사마효를 협박하여 역모를 꾸몄으니, 鎭南將軍 劉弘과 征東將軍 劉準으로 하여금 유교와 힘을 합하게 하고,
張方을
都督으로 삼아서 함께
許昌에 모여 유여
兄弟를 주벌하라.”
注+劉弘은 荊州를 都督하고 劉準은 揚州를 도독하였다. 하고, 사마영으로 하여금
石超 等과 함께
河橋를 점거하여 유교의 후원이 되게 하였다.
劉弘이 유교와 사마월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여금 원한을 풀고 군대를 해산하여 함께 왕실을 돕자고 말하였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