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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主虎議立太子한대 太尉張舉曰 燕公斌은 有武略하고 彭城公遵은 有文德하니 惟陛下所擇이니이다
虎之拔上邽也에 將軍張豺 獲前趙主曜幼女하니 有殊色이라 納於虎하니 虎嬖之하여 生齊公世러니
豺乃説虎曰 陛下再立太子에 其母皆賤故로 禍亂相尋하니이다 今宜擇母貴子孝者하여 立之니이다
虎納其言하여 令公卿上疏請之하니 大司農曹莫이 不肯署名이어늘 虎問其故한대 莫이 頓首曰 天下는 重器니 不宜立少라 故不敢署니이다
虎稱其忠이로되 而不能用하여 遂立世爲太子하고 以劉昭儀爲后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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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8월에 양배楊杯 등이 석도石韜를 죽이니, 석호石虎가 슬프고 놀라서 기절하였다가 오랜 뒤에야 비로소 소생하였다. 장차 그 상喪에 나아가 곡하려 하였는데, 사공司空 이농李農이 간하기를 “진공秦公을 해친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 대가大駕가 가볍게 나가서는 안 됩니다.” 하니, 석호가 마침내 중지하였다.
이윽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석호가 석선을 옥에 가두었다가 그를
업성鄴城 북쪽에서 죽였는데, 참혹한 형벌을 총동원하였고 그런 뒤에 불을 놓아 시체를 태웠다. 석호가
중대中臺에 올라가 이 광경을 구경하였으며 시신을 태우고 남은 재를 가져다가 각 성문으로 통하는 길거리의 중앙에 나누어 두었고
注+① 中臺는 三臺의 중대이니, 바로 銅雀臺이다. 交道는 午道이니, 두 개의 길이 종횡으로 교차하는 도로를 午道라 한다. 그의 처자식 9명을 죽였다.
석선의 어린 아들이 겨우 대여섯 살이었는데, 석호가 평소 그를 사랑하였다. 석호가 그 아이를 안고 울면서 용서하려고 하자, 대신이 따르지 않고 데려다 죽이려 하니, 아이가 석호의 옷을 잡아당기며 크게 울부짖어 띠가 끊어졌다. 석호가 이로 인하여 병이 났다.
동궁東宮의 호위병 10여만 명이 모두
양주涼州로
注+② 趙나라는 아직 涼州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양주를 金城에 둔 것이다. 귀양 가서
수戍자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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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조주趙主 석호石虎가 태자를 세울 것을 의논하자, 태위太尉 장거張舉가 말하기를 “연공燕公 석빈石斌(석빈)은 무략이 있고 팽성공彭城公 석준石遵은 문덕이 있으니, 오직 폐하께서 선택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옛날 석호가 상규上邽를 함락할 적에 장군 장시張豺가 전조前趙의 군주 유요劉曜의 어린 딸을 사로잡았는데, 용모가 절색絶色이었다. 그녀를 석호에게 바치니, 석호가 그녀를 몹시 총애해서 제공齊公 석세石世를 낳았다.
장시가 마침내 석호를 설득하기를 “폐하가 태자를 두 번(석수石邃와 석선石宣) 세웠는데 그 어미가 모두 천하였기 때문에 화란禍亂이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지금 마땅히 귀한 어미를 둔 효성스러운 자식을 가려서 세워야 합니다.” 하니,
석호가 그의 말을 받아들여 공경公卿으로 하여금 상소하여 청하게 하였는데, 대사농大司農 조막曹莫이 상소문에 서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석호가 그 까닭을 묻자, 조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국가를 다스리는 자리는 중요한 지위이니, 나이 어린 사람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감히 서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석호는 그의 충성스러움을 칭찬하였으나 그의 말을 따르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석세를 세워 태자로 삼고 유소의劉昭儀를 황후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