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北魏 世祖 拓跋燾가 景穆太子(拓跋晃)를 追悼하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宗愛가 주살될까 두려워하여,
2월에 세조를 시해하였다. 僕射 蘭延, 和疋(화아)
注+① 疋(바르다)는 雅의 古字이다. 和疋는 姓名이다., 薛提 등이 비밀에 부치고 國喪을 발표하지 않았다.
난연․화아는 拓跋濬이 어려서 장성한 임금을 세워야 한다고 하여 秦王 拓跋翰을 불러서 밀실에
注+② “秘室”은 비밀스런 방이다. 두었는데, 설제는 탁발준이 嫡孫이어서 廢黜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오랫동안 의논하였으나 결정하지 못하였다.
종애는 이것을 알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경목태자에게 죄를 지었으며, 평소에 탁발한과 사이가 좋지 못하고 南安王 拓跋余와 좋다고 여겼다.
이에 비밀리에 탁발여를 맞이하고자 하여 皇后의 詔令을 위조하여 난연 등을 불렀다. 그리고 환관을 시켜서 무기를 가지고 대궐에 매복하였다가 들어오는 차례로 잡아 포박하여 참수하게 하였다.
탁발한을 죽이고 탁발여를 세우니 탁발여는 종애를 大司馬 大將軍으로 삼았다. 탁발한․탁발여는 모두 세조의 아들이다.
目
[目] 王鸚鵡는 이전부터 陣天與와 사통하고 있던 터라, 사실이 누설될까 두려워하여 유소에게 아뢰어 진천여를 몰래 죽이게 하였다. 이에 陣慶國이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巫蠱의 일은 오직 나와 진천여만이 전달하며 왕래하였는데 지금 진천여가 죽었으니, 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하고, 그 사건을 宋主에게 아뢰었다.
宋主가 크게 놀라서 즉시 사람을 보내 왕앵무를 체포하고 그 집안의 재물을 조사하고 몰수하게 하여 유소․유준의 편지 및 매장한 옥인형을 찾아내었는데, 有司에게 명하여 그 사건을 끝까지 추궁하도록 하였다. 엄도육은 망명하여 그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宋主가 종일토록 비통해 있다가 中使를 보내어 유소․유준을 매우 꾸짖자 유소․유준이 두려워하여 사죄를 하니, 宋主가 비록 크게 분노하였으나 차마 죄를 주지는 못하였다.
目
[目] 〈宋나라의〉 여러 군대가 碻磝를 공격하였으나 수십 일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8월에 北魏의 군사들이 밤에 지하도에서 몰래 나와서 〈宋나라〉 군영과 무기를 불태웠는데, 張永이 밤에 포위를 풀고서 군사를 후퇴시키면서 여러 장군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졸들이 놀라 소란이 일자, 北魏 군사들이 그 기회를 틈타 공격하니 사상자들이 길에 깔렸다.
蕭思話가 직접 가서 병력을 늘려 힘써 공격하였으나 십여 일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靑州와 徐州는 곡식이 여물지 않아 군량이 모자랐으므로, 소사화는 여러 군대에 명하여 모두 歴城으로 물러나 주둔하게 하였다.
魯爽이 長社에 이르니, 수비를 맡은 北魏의 主將이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臧質이 司馬 柳元景을 보내어 參軍 薛安都 등을 거느리고 潼關으로 향하게 하고, 梁州刺史 劉秀之와 司馬 馬汪을 보내어 參軍 蕭道成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長安으로 향하게 하였다. 소도성은 蕭承之의 아들이다.
北魏의 將軍 封禮는 浢津에서
注+① 浢는 음이 豆이다. ≪水經註≫에 “門水는 鴻關에서 동북쪽으로 흐르고 또 북쪽으로 가서 弘農縣 故城 동쪽을 지난다. 故城은 바로 옛 函谷關이다. 그 물길은 성의 측면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서 황하로 들어간다. 황하가 여기에서 浢津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다.”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황하를 건너가서 弘農에 도착하였다.
9월에 노상이 북위의 拓跋僕蘭과 함께 大索에서
注+② 索은 음이 冊이고, 또 음이 求索(여기저기 찾다)의 索이기도 하니, 물 이름인데, 滎陽에 있다. 漢 高帝가 項羽와 京과 索 사이에서 싸웠으니 바로 이 京縣이다. 大索亭과 小索亭이 있는데, 大索氏와 小索氏 兄弟가 살았으므로 大小의 호칭이 있게 되었다. 전투를 치러 탁발복란을 격파하고, 虎牢로 진격하다가 碻磝에서 패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유원경 등과 함께 모두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目
[目] 劉尼는 宗愛가 변고를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몰래 殿中尙書 源賀에게 고하였는데, 원하는 당시 유니와 함께 병사를 거느리고 궁중을 宿衞하고 있었다.
마침내 尙書 陸麗와 도모하기를 “종애가 이미 南安王을 황제로 세우고 나서, 도리어 다시 그를 죽였다. 지금 또 皇孫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社稷에 이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모의를 확정하여 함께 拓跋濬을 세우기로 하였다. 陸麗는 陸俟의 아들이다.
원하는 尙書 長孫渇侯와 함께 병사들을 엄히 단속하여 궁성을 지키고 유니와 육려를 보내 탁발준을 苑中에서
注+① 北魏는 平城에 도읍하여 鹿苑이 있었다. 맞이해오게 하였는데,
유니가 말을 달려 東廟로 돌아가서 크게 소리치기를 “종애가 南安王을 시해하였으니, 大逆不道한 죄인이다. 皇孫께서 이미 帝位에 등극하시어 조서를 내려 宿衞하는 군사들은 모두 궁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라고 하자,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마침내 宗愛와 賈周 등을 체포하고 병력을 지휘하여 皇孫 탁발준을 받들어 즉위하게 하고서 종애와 가주를 죽였는데, 五刑을 모두 받게 하고 三族을 멸하였다. 景穆太子를 추존하여 皇帝로 하고, 乳母 常氏를 세워서 保太后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