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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8)

자치통감강목(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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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大明六年이요 魏和平三年이라
◑宋策孝秀于中堂注+孝․秀, 孝廉․秀才也.하다
揚州秀才顧法 對策曰 源淸則流潔이요 神聖則形全하나니注+聖, 當作王, 于況切. 躬化易於上風하고 體訓速於草偃하니이다 上惡其諒하여 投策於地注+宋主閨門無禮, 而法欲其端本, 故惡之.하다
二月 宋復百官祿하다 하다
侍中沈懐文素與顔竣周朗善하고 數以直諫忤旨하니 宋主謂曰 竣若知我殺之런들 亦當不敢如此러라
嘗出射雉할새 風雨驟至 懐文與王彧江智淵으로 約相與諫이러니
懐文曰 風雨如此하니 非聖躬所宜冒니이다 彧曰 懐文所啓 宜從이니이다
智淵未及言 宋主注弩作色曰 卿欲效顔竣邪
宋主毎燕集 在坐者 皆令沈醉하고 嘲謔無度注+嘲, 言相調也. 謔, 戱也.하니 懐文素不飲하고 又不好戯嘲
宋主謂故欲異己라하여 出爲廣陵太守러니 至是하여 朝正事畢當還 以女病求申期注+朝正, 謂赴元正朝會也. 申, 重也. 申期, 重爲之期也.라가 爲有司所糾하여 免官禁錮十年이라
懐文賣宅欲還東注+懷文, 吳興人, 吳興在建康東.이어늘 上大怒賜死하니 三子澹淵沖 行哭請命이어늘
柳元景 爲之言曰 懐文三子塗炭 不可見이니 願陛下速正其罪하소서하니 宋主竟殺之注+言速正其罪者, 婉而導之, 謂若正其罪, 當不至於死也.하다
宋主 以殷氏卒 痛悼不已하여 精神罔罔하여 頗廢政事注+罔罔, 失志也, 若有若無也.하다 塟於龍山 民不堪役하여 死亡甚衆하니 自江南塟埋之盛 未之有也注+九域志 “江寧府有龍山, 山形似龍.” 江寧府卽建康. 亡, 逃亡也.러라 又爲之别立廟注+古者, 宗廟之制, 妾祔於妾祖姑. 漢氏以來, 薄太后生文帝, 鉤弋夫人生昭帝, 皆就園置寢廟, 未嘗別立廟也. 史言帝溺於女寵, 縱情敗禮.하다
秋九月 하다
晉庾氷 議使沙門敬王者어늘 不果行이러니
至是하여 有司奏曰 浮圖爲教 經蔽道하여 屈膝四軰而簡禮二親하고 稽顙耆臘而直體萬乗注+釋氏以自西天竺來者爲經, 中國沙門譯而演其義者爲傳. 四輩, 釋書所謂四部大衆也, 謂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一說 “釋氏有所謂戒外四聖. 佛, 一也. 菩薩, 二也. 圓覺, 三也. 聲聞, 四也. 亦謂之四輩.” 二親, 謂父․母也. 耆, 老. 臘, 年也. 耆臘, 謂高年之僧. 僧家不序齒而序臘, 以捨俗爲僧之年爲始. 禪林結制, 有以十二月爲坐臘, 如云僧臘若干, 謂爲僧若干年也. 直體, 謂不屈身也.하니 臣等參議호되 以爲沙門接見 比當盡虔하노이다 從之注+比, 竝也, 總也.러니 及廢帝即位 復舊하다
宋祖沖之請更造新曆한대 不報하다
南徐州從事史祖沖之上言注+自漢以來, 諸州皆有從事史․假佐.何承天元嘉曆 疏舛猶多하니 更造新曆하여 以爲舊法 冬至日有定處하니 未盈百載 輒差二度
今令冬至日度 歲歲微差 將來久用하여 無煩屢改 又子爲辰首하여 位在正北하고 虛爲北方列宿之中하니 今曆 上元日度 發自虛一하고 日辰之號 甲子爲先하니
今曆上元 歲在甲子하고 又承天法日月五星 各自有元이나 今法 交會遅疾 悉以上元歲首爲始注+所謂今曆今法, 皆祖沖之更造者也. 曆家分上元․中元․下元甲子, 各六十年, 凡一百八十年, 而下元甲子終矣, 復於上元甲子.라한대
宋主令善曆者難之하니 不能屈이러니 會宋主晏駕하여 不果施行하다


나라 세조世祖 효무제孝武帝 유준劉駿 대명大明 6년이고, 북위北魏 고종高宗 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 화평和平 3년이다.
[] 봄 정월에 나라가 처음으로 명당明堂에서 오제五帝를 제사 지냈다.
[] 나라가 중당中堂에서 효렴孝廉수재秀才에게注+① “孝秀”는 孝廉과 秀才이다. 책문策問하였다.
[] 양주揚州수재秀才 고법顧法대책對策하기를 “샘이 맑으면 흐르는 물이 맑고 정신이 왕성하면注+① 聖은 王(왕성하다)으로 써야 하니 于況의 切이다. 몸이 건전해집니다. 성상께서 자신을 바꾸는 것이 위에서 바람이 불 듯이 백성에게 교화를 베푸는 것보다 쉽고 몸소 모범을 보이는 것이 풀이 바람에 눕는 것보다 교화가 빠를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나, (효무제孝武帝)은 그의 진실함을 싫어하여 대책문을 땅에 던져버렸다.注+② 宋主(孝武帝)는 閨門에 예절이 없어서, 顧法이 근본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므로 미워한 것이다.
[] 2월에 나라가 광릉태수廣陵太守 심회문沈懐文을 죽였다.
[] 시중侍中 심회문沈懐文은 평소 안준顔竣주랑周朗과 잘 지냈고 자주 바른 간언으로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의 뜻을 어겼다. 송주宋主가 말하기를 “안준이 만약 내가 그를 죽일 줄을 알았더라면 또한 감이 이처럼 방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송주宋主가 일찍이 밖에 나가 꿩을 쏘아 잡을 적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심회문이 왕욱王彧강지연江智淵과 약속하여 서로 함께 간언을 올리기로 하였다.
심회문이 말하기를 “비바람이 이와 같으니 성상께서 몸소 무릅쓸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왕욱이 말하기를 “심회문이 아뢴 것을 마땅히 따라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강지연이 미처 말하기 전에 송주宋主가 쇠뇌를 주시하면서 안색이 변하며 말하기를 “은 안준을 본받으려 하는가.”라고 하였다.
송주宋主는 늘 연회를 열 적에 자리에 있은 이들을 모두 실컷 취하게 하고 조롱하는注+① 嘲는 서로 조롱함을 말한다. 謔은 희롱함이다. 데 절도가 없었다. 심회문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고 또 조롱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송주宋主가 일부러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려 한다고 여겨서 외방으로 보내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삼았다. 이때에 원단元旦의 조회에 나아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게 되었을 적에 딸이 병든 것으로 거듭 돌아갈 기일을 연기할 것을注+② “朝正”은 元旦의 조회에 나아감을 말한다. 申은 거듭함이니, “申期”는 거듭 기일을 잡음을 말한다. 청하였다가 유사有司에게 탄핵을 받아 관직이 파면되고 금고禁錮 10년에 처해졌다.
심회문이 집을 팔고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하자注+③ 沈懷文은 吳興 사람이고, 吳興은 建康 동쪽에 있다. 송주宋主가 매우 노하여 죽음을 내렸다. 세 아들인 심담沈澹심연沈淵심충沈沖이 곡을 하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청하자
유원경柳元景이 심회문을 위해 말하기를 “심회문의 세 아들들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폐하陛下께서는 속히 심회문의 죄를 판정하소서.”라고注+④ 그의 죄를 속히 결정하라고 말한 것은 완곡하게 인도하는 것이니, 만약 그의 죄를 판정하면 당연히 죽음에 이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하니 송주宋主는 마침내 심회문을 죽였다.
[] 여름 4월에 나라 숙의淑儀 은씨殷氏하였다.
[]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가 은씨殷氏한 것으로 애통해하기가 그지없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注+① “罔罔”은 정신을 잃음이니, 오락가락함이다. 자못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용산龍山에 장사 지냈는데 백성들이 부역을 감당하지 못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았는데注+에 “江寧府에 龍山이 있는데, 산 모양이 龍과 비슷하다.” 하였다. 江寧府는 바로 建康이다. 亡은 逃亡함이다., 나라 강남江南으로 내려온 이래로 매장의 성대함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또 은씨를 위하여 별도 사당을 세웠다.注+ 漢나라 이래로 薄太后가 文帝를 낳았고, 鉤弋夫人이 昭帝를 낳았는데, 모두 園에다가 寢廟를 두었지 별도로 廟를 세운 적이 없었다. 이는 史家가 “황제가 총애하는 여자에 빠져 욕정을 멋대로 하여 예를 무너뜨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 가을 9월에 나라가 제명制命을 내려 사문沙門들이 임금에게 공경을 표하도록 하였다.
[] 예전에 동진東晉 사람 유빙庾氷이 건의하여 사문沙門에게 제왕을 공경하도록 하였는데 끝내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와서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부도浮圖(부처)의 가르침이 〈유교의〉 경전에 위배되고 도의道義를 가려서 사배四輩에게 무릎 꿇고 절하면서 부모에게 예의를 소홀히 하고, 기렵耆臘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천자에게 몸을 곧추세우니注+① 釋氏가 西天竺에서 온 것은 經이고, 中國 沙門이 번역하여 그 뜻을 부연한 것은 傳이다. 四輩는 釋書(佛書)에서 말하는 四部大衆이니, 比丘, 比丘尼, 優婆塞(남자 佛信徒), 優婆夷(여자 불신도)를 말한다. 일설에 “釋氏가 말하는 戒外四聖이 있는데, 佛이 첫째이고, 菩薩이 둘째이고, 圓覺(큰 깨우침)이 셋째이고, 聲聞[羅漢]이 넷째이니, 또한 四輩라고도 한다.” 하였다. “二親”은 父母를 말한다. 耆는 늙는다는 뜻이고, 臘은 나이라는 뜻이니, 耆臘은 나이 높은 스님을 말한다. 佛家에서는 나이로 서열을 따지지 않고 臘으로 서열을 따져서 속세를 버리고 스님이 된 나이를 시작을 삼는다. 禪林(寺院) 結制(夏安居)는 12월을 坐臘(하안거를 거친 횟수)으로 하는데 “僧臘若干”이라는 말과 같으니, 스님이 된지 몇 년이라는 말이다. “直體”는 몸을 굽히지 않음을 말한다. 신 등이 서로 의논하건대 사문이 천자를 알현할 적에는 모두注+② 比는 아울러이며, 모두이다. 경건함을 다해야 한다고 여깁니다.”라고 하니,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가 이를 따랐는데, 폐제廢帝(유자업劉子業)가 즉위해서는 옛 것을 회복하였다.
[] 나라 조충지祖沖之가 새 책력을 만들 것을 청하였는데 회답하지 않았다.
[] 남서주종사사南徐州從事史注+① 漢나라 이래로 여러 州에는 모두 從事史․假佐가 있다. 조충지祖沖之가 말을 올려서 이 엉성하고 잘못된 것이 여전히 많으니 새로운 책력을 다시 만들자고 상언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구법舊法동지冬至는 태양의 도수度數가 고정되니, 1백 년이 되지 않아 바로 2의 차이가 납니다.
지금 새 책력은 동지冬至 때 태양 도수로 하여금 해마다 조금 차이 나게 한다면 장래에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번잡하게 자주 고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또 는 12의 첫 번째 자리가 되어 위치가 정북방正北方에 있고 지금 새 책력에는 상원갑자일上元甲子日의 태양 도수가 허수虛宿 1부터 시작하고, 일진日辰의 호칭에 갑자甲子가 제일이 됩니다.
지금 새 책력의 상원上元세차歲次갑자년甲子年에 있습니다. 또 하승천의 역법은 오성五星이 각기 본래의 역원曆元(역법에서 역일曆日을 계산한 최초의 시각)을 갖고 있으나 지금 새 역법에는 해와 달이 만나는 것과 달의 운행이 늦고 빠른 것을 모두 상원上元세수歲首로 시작을 삼았습니다.”라고注+② 말한 “今曆”․“今法”은 모두 祖沖之가 다시 만든 것이다. 曆家에서는 上元甲子, 中元甲子, 下元甲子로 나누는데, 각각 60년이어서 모두 180년에 下元甲子가 끝나고 上元甲子로 되돌아간다. 하였다.
송주宋主(효무제孝武帝)는 역법을 잘 다루는 이를 시켜서 힐난하게 하였으나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마침 송주宋主가 죽어서 시행하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春正月宋始祀五帝於明堂 : “‘始(처음)’라고 기록한 것은 어째서인가. 늦었다는 말이다. 宋나라가 국가를 세운 지 40여 년인데 明堂의 제사를 이때에 처음 거행하였으니 宋나라가 郊 제사와 廟 제사에 나태한 것을 이루 다 죄줄 수 있는가. 그러므로 郊 제사와 廟 제사에 음악이 갖추어지면 ‘始’라고 기록하고(文帝 元嘉 22년(445)) 음악이 設備되었으면 ‘初(처음)’라고 기록하고(孝武帝 孝建 3년(456)) 五帝에게 제사 지냈으면 ‘始’라고 기록하였으니(이해(460)) 모두 나무란 것이다.”[書始 何 緩辭也 宋氏有國四十餘年矣 明堂之祀 於是始擧 宋之慢於郊廟 可勝罪哉 故郊廟備樂則書始(文帝元嘉二十二年) 設備樂則書初(孝武帝孝建三年) 祀五帝則又書始(是年) 皆譏之也]” ≪書法≫
역주2 宋나라가……회복시켰다 : 宋 文帝 元嘉 27년(450) 3월에 北魏의 침략으로 백관의 녹봉을 1/3씩 감소시켰다가 12년 만에 정상으로 회복시킨 것이다.
역주3 宋殺其廣陵太守沈懐文 : “앞에서 ‘殺東揚州刺史顔竣(東揚州刺史 顔竣을 죽였다.)’을 기록하고, 또 ‘殺廬陵内史周朗(廬陵内史 周朗을 죽였다.)’을 기록하고, 여기에 또 ‘殺廣陵太守沈懐文’을 기록하였으니, 宋主(孝武帝)는 모두 세 번 신하를 죽인 것이다.[前書殺東揚州刺史顔竣矣 又書殺廬陵内史周朗矣 於是又書殺廣陵太守沈懐文 宋主凡三殺臣矣]” ≪書法≫
역주4 夏四月宋淑儀殷氏卒 : “妃妾을 ‘卒’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직 없었는데 殷氏를 ‘卒’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후하게 장례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妃妾을 卒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서 시작하였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妃妾을 卒이라고 한 것은 4번이고(宋나라 孝武帝 殷氏, 唐나라 玄宗 武氏․肅宗 韋氏․代宗 獨孤氏) 오직 武惠妃(唐 玄宗의 妃)만은 ‘薨’이라고 기록하였다.[妃妾未有書卒者 卒殷氏何 譏厚塟也 卒妃妾始此 終綱目 卒妃妾四(宋武帝殷氏 唐玄宗武氏 肅宗韋氏 代宗獨孤氏) 惟武惠妃書薨]” ≪書法≫“淑儀는 품계가 낮은데 어째서 ‘卒’이라고 기록하였는가. 미혹된 잘못과 매장의 성대함을 드러낸 것이다.[淑儀品卑 何以書卒 著其惑溺之失 塟埋之盛也]” ≪發明≫
역주5 九域志 : 王存이 지은 ≪元豐九域志≫를 말한다. 宋나라 神宗의 명에 따라 元豐 3년(1080)에 편찬하여 8년에 반포된 지리서이다. 편찬 작업은 王存의 주관하에 曾鞏․李德 등이 참여하였다. 당시의 행정 구획에 따라 4京․23路․省廢州郡․化外州․羈縻州의 순서로 엮었으며, 내용의 편집은 舊志에 따라 府州의 沿革․戶口․土貢 등의 순서로 수록하였는데 구지의 氏族 항목은 삭제하였다. 전체적으로 서술이 簡明하며 당시의 상황은 상세하고 옛것은 간략하게 기술하였다.(≪四庫全書總目提要≫ 권68 史部24 地理類1)
역주6 옛날에……祔하였다 :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2권 상 漢 靈帝 熹平 원년(172) 조 訓義에 “祔는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를 먼저 죽은 자의 사당에 모셔 제사함을 이르니, 부인은 남편에 祔하고, 祔해야 할 妃妾은 妾祖姑에 祔한다.[祔 謂新死之主 祔於先死者之廟 婦祔於其夫 所祔之妃妾 祔於妾祖姑也]”라 하였다. 妃妾은 신분이 미천하여 夫君의 사당에 祔할 수가 없으므로 죽은 妾祖姑(첩인 시할머니)에게 祔하고 없으면 다시 한 대를 건너 뛰어 妾高祖姑에게 祔한다. 祔廟한 神位는 제사 때에 配食한다.
역주7 宋制沙門致敬人主 : “어째서 이를 기록하였는가. 나무란 것이다. 曇標가 반란하고 나서 일찍이 沙門을 정리하고 또 엄히 제도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임금이 근신들에게 이끌려서 끝내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에 유독 구차하게 사문에게 공경을 표할 것을 요구하였으니, 삼년상도 제대로 못하면서 緦麻(3개월복)․小功(5개월복)을 따진다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 宋나라에서 ‘制沙門致敬人主’라고 기록하고(이해(462)) 唐나라에서 ‘詔僧道致拜父母(조령을 내려서 僧侶와 道士에게 부모께 절을 올리도록 하였다.)’를 기록한 것은(唐 太宗 貞觀 5년(631)) 모두 나무란 것이다.[何以書 譏也 曇標之反 嘗欲沙汰沙門 且嚴爲之制矣 牽於近習 竟不能行 乃獨區區責其致敬 不能三年之喪 而緦小功之察 此之謂矣 宋書制沙門致敬人主(是年) 唐書詔僧道致拜父母(太宗貞觀五年) 皆譏之也]” ≪書法≫ 曇標는 沙門으로서 宋 大明 2년(458)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복주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31쪽에 보인다.
역주8 (十)[反] : 저본에는 ‘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何承天의 元嘉曆 : 何承天(370~447)은 南朝 宋나라의 대신으로, 저명한 천문학자이다. 그가 당시 사용하던 乾象曆을 고쳐 만든 원가력을 만들었는데 그 이후로 梁나라 天監(502~519) 중엽까지 통행되었다.
역주10 虛宿는……있습니다 : 虛宿는 28宿 중 북방 玄武 7宿의 4宿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자치통감강목(18)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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