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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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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房玄齡注+名喬, 以字顯. 父彦謙, 仕隋, 歷刺史. 玄齡少警敏, 通經史, 善屬文. 開皇中, 隋方盛, 密白父曰 “上無功德, 徒以周近親, 妄誅殺, 亂嫡庶, 競僭侈, 終當滅亡.” 父驚曰 “無妄言.” 年十八, 擧進士, 授羽騎尉校讐秘省. 侍郞高孝基曰 “此郞當爲國器, 恨不見其聳壑昻霄耳.” 中原方亂, 慨然有憂天下之志. 旣事秦王, 王曰 “漢光武得鄧禹, 今我得玄齡, 猶也.” 餘見下文. 齊州臨淄人也注+齊州, 今濟南路, 隷山東. 臨淄, 縣名, 今屬益都路.
방현령房玄齡注+방현령房玄齡이〉 이름은 인데, 로 알려졌다. 부친 방언겸房彦謙나라에 출사하여 자사刺史를 지냈다. 방현령房玄齡은 어릴 적에 신중하고 민첩하여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문장을 잘 지었다.
개황開皇(581~600) 연간에 나라가 한창 강성해지자 은밀하게 부친에게 아뢰기를 “임금이 공덕功德이 없어 다만 근친들과 어울리고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며, 적자嫡子서자庶子를 혼동하고 다투어 과분한 사치를 일삼으니, 결국에는 멸망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부친이 놀라 “망언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18세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우기위羽騎尉 겸비서성兼秘書省 교수校讐에 임명되었는데, 시랑侍郞 고효기高孝基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것인데, 그가 계곡을 뛰어넘고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구나.”라고 하였다.
중원中原이 한창 어지러울 때, 강개하여 천하를 근심하는 뜻이 있었다. 진왕秦王을 섬기게 되자 진왕이 말하기를 “나라 광무제光武帝등우鄧禹를 얻었는데, 지금 내가 방현령房玄齡을 얻은 것은 등우를 얻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
제주齊州 임치현臨淄縣 사람이다.注+제주齊州는 지금의 제남로濟南路이니, 산동山東에 속한다. 임치臨淄의 이름이니, 지금의 익도로益都路에 속한다.
初仕隋할새 爲隰城尉注+隰, 音習. 隰城, 今隰州, 隷河東. 唐制, 縣置尉, 掌親理庶務, 分判衆曹, 割斷追催, 收率課調, 令之佐也.라가 坐事除名하여 徙上郡이라
처음에 나라에 출사하여 습성현隰城縣현위縣尉가 되었다가注+은 음이 이다. 습성隰城은 지금의 습주隰州이니, 하동河東에 속한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에는 를 두는데, 직접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여러 부서의 일을 나누어 판결하며, 결단하여 환수를 재촉하고, 과세를 부과하여 거두어들이는 일을 관장하니, 현령의 보좌관이다. 뒤에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제명을 당해 상군上郡으로 옮겨갔다.
太宗徇地渭北注+渭水之北, 今陝西之地.할새 玄齡杖策謁於軍門이어늘 太宗一見 便如舊識하고 署渭北道行軍記室參軍注+唐制, 掌軍府表啓書疏之職.이라
태종太宗위수渭水 북쪽 지역을 순행할 적에注+위북渭北은〉 위수渭水의 북쪽이니, 지금의 섬서陝西 지역이다. 방현령이 말채찍을 잡고 군문軍門 앞에서 태종太宗을 뵈었는데, 태종이 한 번 보고서 마치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대하고 위북도渭北道행군기실참군行軍記室參軍으로 임명했다.注+나라 제도에 의하면 군부軍府에서 , , , 를 관장하는 직책이다.
玄齡旣遇知己하여 遂罄竭心力이라
방현령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 마침내 태종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房玄齡房玄齡
역주
역주1 : 鄧禹로, 光武帝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제일의 개국공신이다. 24세 때 광무제가 즉위하자 三公의 하나인 大司徒에 임명되고 高密侯에 봉해졌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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