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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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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魏徵注+字玄成. 孤貧落拓, 有大志, 不事生業, 出家爲道士, 好讀書, 尤屬意. 大業末, 李密見徵所爲文, 召之. 徵進十策, 密奇之, 而不能用. 後竇建德攻陷黎陽, 獲徵, 署爲起居舍人. 及竇建德就擒, 與裵矩西入關. 隱太子聞其名, 引直洗馬, 甚禮之. 餘見下文. 鉅鹿人也注+鉅鹿, 郡名, 今順德路, 鉅鹿縣, 隷河東. 近徙家相州之內黃注+相, 去聲. 相州, 今彰德路, 隷腹裏. 内黄, 縣名, 今屬滑州.이라
武德末 爲太子洗馬注+洗, 音跣. , 漢有是職, 太子出則當直者前驅淸道. 唐制, 東宮左春坊司經局置洗馬, 掌經史子集四庫圖籍刋緝之事. 凡天下之圖書上東宮者, 皆受而藏之.
見太宗與隱太子陰相傾奪하고 每勸建成早爲之謀
太宗旣誅隱太子하고 召徵責之曰 汝離間我兄弟 何也注+間, 去聲.오하니 衆皆爲之危懼어늘
徵慷慨自若하여 從容對曰注+從, 卽容切. 皇太子若從臣言이면 必無今日之禍니이다하니
太宗爲之斂容하고 厚加禮異
擢拜諫議大夫하여數引之臥內注+數, 音朔.하여 訪以政術이라


위징魏徵注+위징魏徵은〉 현성玄成이다. 어려서 가난하고 불우하였으나 큰 뜻을 품고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출가出家하여 도사道士가 되었으며, 독서를 좋아하였고 종횡가縱橫家에 더욱 뜻을 두었다. 대업大業(605~616) 말년에 이밀李密이 위징이 지은 글을 보고 불렀다. 위징이 열 가지 계책을 올리자, 이밀이 기특하게 여겼으나 등용하지 못했다. 그 후에 두건덕竇建德여양黎陽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위징을 얻어 기거사인起居舍人의 벼슬에 임명하였다. 두건덕이 사로잡히고 나서는 배구裵矩와 함께 서쪽으로 가서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갔다. 은태자隱太子가 그 명성을 듣고는 데려다 세마洗馬로 임명하고 몹시 예우하였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거록鉅鹿사람으로,注+거록鉅鹿의 이름이니, 지금의 순덕로順德路이며, 거록현鉅鹿縣하동河東에 속한다. 근래 상주相州내황內黃으로 집을 이사하였다.注+거성去聲이다. 상주相州는 지금의 창덕로彰德路이니, 에 속한다. 내황内黄의 이름이니, 지금의 활주滑州에 속한다.
무덕武德(618~626) 말기에 태자세마太子洗馬注+은 음이 이다. 세마洗馬나라 때 이 관직이 있었으니, 태자가 외출하면 당직자가 앞으로 달려가서 길을 깨끗이 하였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동궁東宮좌춘방左春坊 사경국司經局세마洗馬를 두었는데, 경사자집經史子集 사고四庫도적圖籍을 간행하고 엮는 일을 관장하였다. 천하의 도서 중에 동궁으로 진상되는 것을 모두 받아서 보관하였다. 되었다.
태종太宗은태자隱太子(李建成)가 서로 은밀히 겨루는 것을 보고, 늘 이건성에게 조기에 일을 도모하라고 권했다.
태종이 은태자를 주살하고 나서 위징을 불러 질책하기를 “네가 우리 형제를 이간질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니,注+(이간질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위징은 강개하고 태연자약하여 침착하게 대답하기를注+(차분하다)은 의 반절이다. “황태자께서 만약 신의 말을 들었다면, 필시 오늘의 재앙은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은 숙연한 태도로 경의를 표하고 특별히 예우하였다.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발탁하고서 자주 그를 내실로 불러注+(자주)은 음이 이다. 정치의 방법을 자문하였다.
魏徵魏徵


역주
역주1 縱横之說 : 合從連橫에 관한 이론이다. 戰國시대에 蘇秦이 합종을 주장하여 6국이 秦나라에 대항하였고, 張儀가 연횡을 주장하여 6국이 秦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역주2 腹裏 : 山東ㆍ山西ㆍ河北을 말한다. 內地라는 말과 같다. 《元史 地理志》
역주3 洗馬 : 洗馬는 태자가 행차할 때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관원이다. 본래 ‘先馬’라고 썼고 뒤에 ‘洗馬’라고 하였는데 洗은 先과 통용으로 ‘앞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洗은 蘇와 典의 반절이다. 洗이라는 말은 先이니 太子가 외출하면 앞서서 인도한다.[洗 蘇典反 洗之言 先也 太子出則前導也]”(《小學 善行》)라고 하였고, 《增解》에서는 “汲黯이 景帝 시기에 太子洗馬가 되었다.[汲黯景帝時 爲太子洗馬]”라고 설명되었다. 이에 의하면 洗은 ‘앞선다’는 뜻으로 음이 ‘선’이지만, 선조판ㆍ영조판 《小學諺解》에는 모두 ‘셰’라고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언해를 따라 ‘세’로 독음하고 있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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