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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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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手勅魏王泰曰
태종太宗이 직접 조서를 써서 위왕魏王 이태李泰에게 말하였다.
虞世南於我 猶一體也
우세남虞世南은 나에게 있어 한 몸과 같은 존재이다.
拾遺補闕하여 無日暫忘하니 實當代名臣이요 人倫準的이라
내가 빠트린 것을 채워주고 잘못을 보완하여 날마다 잠시도 잊는 일이 없었으니, 실로 시대의 명신이고 인륜의 표준이다.
吾有小善이면 必將順而成之하고 吾有小失이면 必犯顏而諫之
내게 조그만 선행이 있으면 반드시 잘 유도해 이루게 하고, 내게 작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엄정한 자세로 직간을 하였다.
今其云亡하니 石渠東觀之中 無復人矣注+觀, 去聲. 漢置石渠閣東觀, 皆藏圖籍‧秘書之所. 痛惜 豈可言耶아하다
지금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석거각石渠閣동관東觀에 다시 그런 인물이 없으니注+(누각)은 거성去聲이다. 나라 때 석거각石渠閣동관東觀을 두었으니, 모두 도적圖籍비서秘書를 보관한 곳이다. 그 애통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褚遂良褚遂良
未幾注+平聲. 太宗爲詩一篇하여 追思往古理亂之道라가 旣而嘆曰
얼마 뒤에注+(시기)는〉 평성平聲이다. 태종이 시 한 수를 지어 지나간 치세와 난세의 이치를 추념追念하다가 마침내 탄식하였다.
鍾子期死 伯牙不復鼓琴注+列子曰 “鍾子期與伯牙爲友, 伯牙鼓琴, 子期善聽. 子期死, 伯牙絶絃, 以世無知音者.”하니 朕之此篇 將何所示오하다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백아伯牙가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으니,注+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이르기를 “종자기鍾子期백아伯牙는 벗인데,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종자기가 잘 들어주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으니, 세상에서 자기의 연주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짐의 이 시를 누구에게 보여준단 말인가.”
因令注+平聲, 後同.起居注+官名. 唐制, 門下省置起居郞, 中書省置起居舍人, 掌錄天子之動作法度, 以修記事之史書, 以授之于國史焉.褚遂良注+字登善, 杭州人. 博渉經史, 工楷隷. 累遷起居郞. 十五年, 拜諫議大夫, . 後授太子賓客. 高宗時, 拜僕射. 因沮立武后, 后立, 被貶卒.으로 詣其靈帳하여 讀訖焚之하니 其悲悼也若此
그리고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기거랑起居郞注+기거起居는〉 관직명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문하성門下省에는 기거랑起居郞을 두고, 중서성中書省에는 기거사인起居舍人을 두어 천자의 행적과 법도를 기록하여 그 사실을 기록한 사서史書를 정리하고 이를 국사관國史館에 전하는 일을 담당한다.저수량褚遂良에게注+저수량褚遂良은〉 등선登善이니, 항주杭州 사람이다.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고, 해서楷書예서隷書에 뛰어났다. 여러 차례 승진하여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정관貞觀 15년(641)에 간의대부諫議大夫 겸기거사兼起居事에 임명되고 뒤에 태자빈객太子賓客이 되었다. 고종高宗 때에 복야僕射에 임명되었는데, 무소의武昭儀(則天武后)가 황후에 즉위하는 것을 막은 일로 인해, 무후武后가 즉위하고 나서 좌천되어 세상을 떠났다. 우세남의 영전에 가서 시를 읽은 후 태워버리라고 하였으니, 태종의 슬픔이 이와 같았다.
又令與房玄齡長孫無忌杜如晦李靖等二十四人으로 圖形於凌煙閣注+, 十七年, 詔趙國公長孫無忌‧河間元王孝恭‧萊國成公杜如晦‧鄭國文貞公魏徵‧梁國公房玄齡‧鄂國公尉遲敬德‧衛國公李靖‧宋國公蕭瑀‧褒忠壯公段志玄‧䕫國公劉弘基‧蔣忠公屈突通‧鄖節公殷開山‧譙襄公柴紹‧邳襄公長孫順德‧鄖國公張亮‧陳國公侯君集‧郯襄公張公謹‧盧國公程知節‧永興文懿公虞世南‧渝襄公劉政會‧莒國公唐儉‧英國公李勣‧胡壯公秦叔寳二十四人, 可竝圖畵於凌煙閣.하다
또 우세남을 방현령房玄齡장손무기長孫無忌두여회杜如晦이정李靖 등 24인과 함께 모습을 그려 능연각凌煙閣에 안치하게 하였다.注+사전史傳을 살펴보면, 정관貞觀 17년(643)에 조칙을 내려 조국공趙國公 장손무기長孫無忌, 하간원왕河間元王 이효공李孝恭, 내국萊國 성공成公 두여회杜如晦, 정국鄭國 문정공文貞公 위징魏徵, 양국공梁國公 방현령房玄齡, 악국공鄂國公 울지경덕尉遲敬德,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 송국공宋國公 소우蕭瑀, 포충장공褒忠壯公 단지현段志玄, 䕫國公 유홍기劉弘基, 장충공蔣忠公 굴돌통屈突通, 운절공鄖節公 은개산殷開山, 초양공譙襄公 시소柴紹, 비양공邳襄公 장손순덕長孫順德, 운국공鄖國公 장량張亮, 진국공陳國公 후군집侯君集, 담양공郯襄公 장공근張公謹, 노국공盧國公 정지절程知節, 영흥永興 문의공文懿公 우세남虞世南, 투양공渝襄公 유정회劉政會, 거국공莒國公 당검唐儉,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 호장공胡壯公 진숙보秦叔寳 24인의 그림을 그려 능연각凌煙閣에 안치하게 하였다.
【集論】張氏九成曰
【集論】張九成이 말하였다.
世南始以文翰馳譽陳隋間하니 兄弟長安方之二陸이라
우세남虞世南이 처음에 문장으로 나라와 나라 무렵에 명성을 드날리니, 장안에서 그 형제를 이륙二陸(陸機‧육운陸雲)에 견주었다.
在唐以五絶見稱하고 而論議規諷하여 固多忠稱하고 補過弼違하되 하여 上贊明聖之德하고 下植生民之利
나라 때에는 다섯 가지 뛰어난 점으로 칭송을 받았고, 논의를 펼칠 때 바른 도리로 간언하여 충성스럽다는 칭송이 본디 많았으며,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 구제하되 바른말로 간함은 있고 은미하게 간함은 없어서 위로는 명철한 군주의 덕을 돕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이익을 배양하였다.
하니 君臣之情 何其厚哉
그리워하여 꿈속에 나타난 것이 당연하니, 군신의 정이 어찌 그토록 두터운가.”
愚按 世南 信爲德行忠直文章之士 唐興之儒臣也
내가 살펴보건대, 우세남虞世南은 참으로 덕행과 충직함과 문장을 갖춘 인물이니, 나라를 융성하게 한 유신儒臣이다.
終身以正事君하여 將順匡救 其弘多矣
일생 동안 올바른 도리로 임금을 섬겨 임금의 좋은 점을 받들어 따르고 나쁜 점을 바로잡아 구제한 것이 매우 많았다.
雖君臣相得之深이나 而未臻大用하고 太宗止嘆息以石渠東觀之中 無復人이라하니 亦可惜也夫로다
비록 임금과 신하가 마음이 잘 맞았으나 크게 중용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고, 태종太宗석거각石渠閣동관東觀에 더 이상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는 데 그치고 말았으니, 또한 애석하다 하겠다.
역주
역주1 兼起居事 : 《舊唐書》 권80 〈褚遂良傳〉에는 ‘兼知起居事’로 되어 있다.
역주2 史傳 : 《舊唐書》 권3 〈太宗本紀〉에 보인다.
역주3 有犯無隱 : 임금을 섬기는 도리의 한 가지이다. 《禮記》 〈檀弓 上〉에 “임금을 섬길 때 바른말로 간언함은 있으나 은미하게 간언함은 없다. 좌우로 나아가 봉양할 때 일정한 장소가 있으며, 힘든 일을 맡아 하되 죽음에 이르도록 하며, 方喪(부모상에 비유되는 거상)을 3년 한다.[事君有犯而無隱 左右就養有方 服勤至死 方喪三年]”라고 하였다.
역주4 宜其眷眷勤密而見於夢想 : 우세남이 죽고 몇 년 뒤에 太宗이 꿈을 꾸고 내린 制書에서 “어제 꿈에서 우세남을 보았는데 바른말을 아울러 올리는 것이 평소 때와 같았다. 남겨준 아름다움을 떠올리니 참으로 비탄이 깊다.[昨因夜夢 忽覩其人 兼進讜言 有如平生之日 追懐遺美 良増悲歎]”라고 하였다. 《舊唐書 권72 虞世南列傳》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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