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政要者는 唐太宗文皇帝之嘉言善行과 良法美政을 而史臣吳兢이 編類之書也라
自唐世子孫
으로 旣已書之屏帷
하며 銘之几案
하여 之矣
요 至於後世之君
하여도 亦莫不列之講讀
하며 形之論議
하여 景仰而傚法焉
하니라
夫二帝三王之事는 尙矣요 兩漢之賢君六七作이어늘 何貞觀之政이 獨赫然耳目之間哉리오
蓋兩漢之時는 世已遠하고 貞觀之去今은 猶近하며 遷固之文은 高古爾雅而所紀之事略하고 吳氏之文은 質樸該贍而所紀之事詳이라
是則太宗之事가 章章較著於天下後世者가 豈非此書之力哉아
夫太宗之於正心修身之道와 齊家明倫之方에 誠有愧於二帝三王之事矣라
然其屈己而納諫하며 任賢而使能하고 恭儉而節用하며 寛厚而愛民은 亦三代而下에 絶無而僅有者也니
後之人君이 擇其善者而從之하고 其不善者而改之면 豈不交有所益乎아
惜乎라 是書傳寫謬誤일새 竊嘗會萃衆本하여 參互考訂하고
而其義之難明과 音之難通을 字爲之釋하며 句爲之述하고 章之不當分者合之하며 不當合者分之하여
自唐以來로 諸儒之論을 莫不采而輯之하고 間亦斷以己意하여 附於其後然後에
雖於先儒窮理之學에 不敢妄議나 然於國家致治之方에 未必無小補云이라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唐나라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의 가언嘉言과 선행善行, 양법良法과 미정美政을 사신史臣 오긍吳兢이 부류별로 편찬한 책이다.
당唐나라 때로부터 자자손손이 이미 병풍과 휘장에 쓰고 안석과 책상에 새겨서 이어받아 법으로 삼았고, 후세의 임금에 이르러서도 진강하여 읽는 책에 넣고 의론에 부쳐 우러러 본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제二帝 삼왕三王의 일은 오래되었고,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에도 현명한 임금이 예닐곱이나 있었는데 어찌하여 정관貞觀의 정치가 유독 보고 듣는 가운데에 빛나는가.
전한과 후한의 시기는 시대가 너무 먼 반면 정관貞觀 시대와 지금은 오히려 가까우며,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글은 고상하고 우아하면서 기록한 일이 소략한 반면 오긍吳兢의 글은 질박하고 풍부하면서 기록한 일이 자세하다.
그렇다면 태종의 일이 천하 후세에 밝게 드러난 것이 어찌 이 책의 힘이 아니겠는가.
태종이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닦는[正心修身]도道와 집안을 다스리고 인륜을 밝히는[齊家明倫] 방법에는 참으로 이제 삼왕의 일에 못 미치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태종이 자신을 굽혀 간언을 받아들이며, 현인을 임용하여 능력 있는 이를 부리며, 공손하고 검소하여 물자를 아껴 쓰며, 관대하고 온후하여 백성을 아끼는 것은 역시 삼대三代 이후에 전혀 없다가 겨우 있게 된 일이다.
후세의 군주들이 훌륭한 것을 가려서 따르고 훌륭하지 않은 것을 고친다면 어찌 서로 유익한 것이 없겠는가.
애석하게도 이 책은 전사轉寫 과정에 오류가 있으므로, 내가 여러 본을 모아 참고하여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 뜻을 밝히기 어려운 것과 음音을 통하기 어려운 것은, 글자는 풀이하고 구절은 서술하였으며, 문장이 부적절하게 나누어진 것은 합하고 부적절하게 합해진 것은 나누었다.
그리고 당唐나라 이래로 여러 유학자들의 논의를 채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간간이 나의 의견으로 판단하여 그 뒤에 첨부하였다.
그런 뒤에야 이 책의 취지가 제법 명백하게 되었다.
비록 선배 유학자들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에 대해서는 함부로 논의하지 못하였으나 국가의 치적을 이루는 방도에는 작은 도움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