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四年
에 詔發卒修洛陽之乾元殿
注+洛陽, 古成周之地, 今河南路. 乾元殿, 隋所建.하여 以備巡狩
注+한대 給事中
注+唐制, 掌侍左右分判省事之官, 察弘文館繕寫校讐之課. 大事覆奏, 小事署而行之.張玄素
注+蒲州人, 仕隋爲景城縣戶曹. 竇建德陷景城, 將殺之, 邑人號泣曰 “此淸吏, 殺之是無天也.” 遂釋之. 貞觀初, 召問以政道, 歷太子詹事, 遷左庶子. 會東宮廢, 坐罪爲民. 頃之, 召授刺史. 麟德初卒.가 上書諫曰
陛下智周萬物하고 囊括四海하사 令之所行에 何往不應이며 志之所欲에 何事不從이리잇가
微臣竊思
호니 秦始皇之爲君也
에 藉周室之餘
하고 因六國之盛
하여 將貽之萬葉
이나 及其子而亡
注+周之季世, 天下大亂, 秦幷吞之. 六國, 齊‧楚‧燕‧韓‧趙‧魏也. 始皇曰 “.” 始皇歿, 二世立, 而趙高弑之. 子嬰立, 而遂降于漢.은 諒由逞嗜奔慾
하여 逆天害人者也
니
是知天下는 不可以力勝이요 神祇는 不可以親恃니이다
惟當弘儉約
하고 薄賦斂
注+去聲.하고 愼終始
라야 可以永固
니이다
정관貞觀 4년(630)에 조칙을 내려 군졸을 징발하여
낙양洛陽의
건원전乾元殿을 수리하여
注+낙양洛陽은 옛 성주成周의 땅이니, 지금의 하남로河南路이다. 건원전乾元殿은 수隋나라 때 세운 것이다.순수巡狩에 대비토록 하자,
注+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천자天子가 제후諸侯에게 찾아가는 것을 순수巡狩라고 하니, 순수는 관리하고 있는 곳을 순시巡視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급사중給事中注+〈급사중給事中은〉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황제의 좌우左右에서 시중하며 문하성門下省의 업무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일을 맡은 관직으로, 홍문관弘文館의 도서를 베껴 쓰며 교정하는 업무를 살펴서 큰 사건은 복주覆奏(다른 관아에서 보내온 문서를 검토하여 상주함)하고 작은 사건은 서명하여 실행하였다.장현소張玄素注+〈장현소張玄素는〉 포주蒲州 사람이니, 수隋나라에 벼슬하여 경성현호조景城縣戶曹를 지냈다. 두건덕竇建德이 경성현景城縣을 함락하고 장현소를 죽이려 하자, 그 고을 사람들이 울며 호소하기를 “이분은 청백리인데 죽인다면 이는 천리天理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자, 결국 풀어주었다. 정관貞觀 초기에 임금이 그를 불러 정치에 대해서 물었고,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역임한 뒤 좌서자左庶子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동궁이 폐위당할 때 연좌되어 평민이 되었으나, 얼마 뒤 임금의 부름을 받고 자사刺史에 임명되었다. 인덕麟德(664~665) 초기에 세상을 떠났다.가 글을 올려 간언하였다.
“폐하께서는 지혜가 만물을 두루 아우르고 사해를 모두 감싸 안아서, 명령이 시행되는 곳이라면 어디를 간들 호응하지 않겠으며 의지가 바라는 곳이라면 어떤 일이든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미천한
신臣이 생각해보니
진秦 시황始皇이 임금이 됐을 때
주周나라 왕실이 남긴 것을 의지하고
육국六國(戰國)의 성대함을 이용하여 자손만대까지 전하리라 생각했으나, 아들 대에 가서 멸망한 것은
注+주周나라 말기에 천하天下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진秦나라가 모두 차지했다. 육국六國은 제齊‧초楚‧연燕‧한韓‧조趙‧위魏이다. 진秦 시황始皇이 “짐이 시황제始皇帝(첫 황제)가 된다. 후세에는 군주들이 숫자로 계산하여 2세世, 3세世로 만세萬世까지 끝없이 전하라.”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세상을 떠난 뒤 이세二世가 제위에 올랐으나 조고趙高가 시해하였고, 이세二世의 아들 자영子嬰이 제위에 올랐으나 마침내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 참으로 제멋대로 욕심을 부리며 하늘을 거역하고 사람을 해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천하天下는 힘으로 이길 수 없고 신령神靈은 가깝다고 하여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근검과 절약을 중시하고 세금을 적게 걷고
注+〈염斂(부세)은〉 거성去聲이다. 처음과 끝을 신중히 해야만 영원히 견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