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
이 往在隋朝
에 曾聞有盜發
注+ 曾聞有盜發:曾, 音層.이어늘 煬帝
가 令於士澄
注+ 令於士澄:令, 平聲. 後同. 於, 如字, 姓也. 士澄, 名, 爲隋將, 以魏郡降唐.으로 捕逐
한대
但有疑似면 苦加拷掠하니 枉承賊者가 二千餘人이라
竝令同日斬決
한대 大理丞
注+ 大理丞:隋獄官之貳職.張元濟
가 怪之
하여 試尋其狀
하니
乃有六七人
이 盜發之日
에 先禁他所
하여 被放纔出
이라가 亦遭推勘
하여 不勝苦痛
注+ 不勝苦痛:勝, 平聲.하고 自誣行盜
라
元濟因此
하여 更事究尋
하니 二千人內
에 惟九人
이 逗遛不明
注+ 逗遛不明:逗, 音豆. 遛, 音留, 遷延也.이라
有司는 以煬帝已令斬決이라하여 遂不執奏하고 竝殺之하니이다
須相匡諫
하여 不避誅戮
이니 豈得惟行
佞
하여 苟求悅譽
注+ 苟求悅譽:譽, 平聲.리오
朕賴公等의 共相輔佐하여 遂令囹圄空虛하니 願公等은 善始克終하여 恒如今日하라
注
【集論】愚按 大學曰爲人君止於仁하고 爲人臣止於敬이라하니 此言君臣各盡其道也라
各盡其道는 所以明上下之分이요 更相責難은 所以明上下之交也라
今觀前章하면 太宗自以煬帝爲戒하고 欲群臣以世基爲戒하니 此君臣各盡其道者也라
此章論隋世濫刑에 則魏徵歸過於君하고 太宗歸過於臣하니 此君臣更相責難者也라
二章之旨는 實相爲用하니 史臣以此居鑑戒之首가 豈非貞觀致治之本歟아
정관貞觀 4년(630)에 태종太宗이 수隋나라 시대를 논의할 때에 위징魏徵이 대답하였다.
“신이 지난 수 왕조에서 일찍이 도적이 발생한 일을 들었는데
注+증曾(일찍이)은 음이 층層이다. 수 양제隋 煬帝가
오사징於士澄을 시켜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어於(오)는 본래 음의音義대로 독해하는 글자이니, 성姓이다. 사징士澄은 이름이니, 수隋나라 장군이 되어 위군魏郡을 가지고 당唐나라에 항복하였다. 쫓아가서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의심되어 비슷하기만 하면 괴롭게 고문을 가하니 억울하게 시인하여 도적이 된 자가 2천여 명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날에 참수하게 하자
대리승大理丞注+수隋나라 옥관獄官의 부관이다. 장원제張元濟가 괴이하게 생각하고 그 상황을 조사해보니,
6, 7명이 도적이 발생한 날에 먼저 다른 곳에 감금되어 있다가 풀려나 막 나갔는데 또 문초를 받게 되어 고문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注+승勝(감당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스스로 도적질을 했다고 거짓 자백한 것이었습니다.
장원제가 이 일로 인하여 다시 사건을 조사하니, 2천 명 중에서 9명만이 조사가 지연되어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注+두逗는 음이 두豆이고, 유遛는 음이 유留이니, 지연한다는 뜻이다.
관리들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9명 중에 4명은 도적이 아니었습니다.
담당관은 양제가 이미 참수 처결을 명령했다고 하여 드디어 사건을 상주하지 않고 모두 죽였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이는 양제가 무도할 뿐만 아니라, 신하도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이요.
반드시 바르게 간언하여 죽음을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니 어찌 오직 아첨을 행하여 구차하게 임금을 기쁘게 하고 칭찬을 구할 것인가.
注+예譽(칭찬하다)는 평성平聲이다.
임금과 신하가 이와 같으니,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소.
짐은 공들이 서로 함께 보좌함에 힘입어 드디어 감옥이 비워졌으니, 원하건대 공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여 항상 오늘과 같게 하시오.”
注
내가 살펴보건대, 《대학大學》 전傳3장章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을 유지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을 유지한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과 신하가 각각 그 도를 다함을 말한 것이다.
순임금의 조정에서 이어 이루어 노래할 적에 제순帝舜은 먼저 고굉股肱(신하)을 말하였고, 고요皐陶는 먼저 원수元首(임금)를 말하였으니 이것은 임금과 신하가 다시 서로 어려운 일을 권함을 말한 것이다.
각각 그 도를 다하는 것은 상하의 분수를 밝히는 것이고, 다시 서로 어려운 일을 권함은 상하의 사귐을 밝히는 것이다.
지금 앞 장章을 살펴보면 태종太宗은 스스로 양제로 경계하였고, 여러 신하들에게 우세기虞世基로 경계하게 하였으니, 이는 임금과 신하가 각각 그 도리를 다한 것이다.
이 장은 수隋나라 시대에 형벌을 함부로 시행했음을 논의하면서 위징魏徵은 과실을 임금에게 돌렸고 태종太宗은 과실을 신하에게 돌렸으니, 이는 임금과 신하가 다시 서로 어려운 일을 권한 것이다.
두 장의 뜻은 실로 서로 쓰이니 사신史臣이 이것을 감계鑑戒의 맨 앞에 둔 것이 어찌 정관貞觀의 치적을 이룬 근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