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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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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六年 授左光祿大夫陳叔達注+ 授左光祿大夫陳叔達:陳叔達, 字子聰, 陳宣帝子也. 武德初, 判納言. 始建成兄弟鬩間太宗, 帝惑之, 叔達極意救辨. 及建成誅, 高祖謂裴寂等曰 “不圖今日, 乃見此事. 當如之何.” 蕭瑀陳叔達曰 “建成元吉本不預義謀, 又無功於天下, 疾秦王功高望重, 共爲姦謀, 今秦王已討而誅之. 秦王功盖宇宙, 率土歸心, 陛下若處以元良, 委之國務, 無復事矣.” 上曰 “善, 此吾之夙心也.”禮部尙書하고 因謂曰
武德中 公曾進直言於太上皇注+ 公曾進直言於太上皇:曾, 音層.하여 明朕有克定大功하여 不可黜退云하니
朕本性剛烈하여 若有抑挫 恐不勝憂憤注+ 恐不勝憂憤:勝, 平聲.하여 以致疾斃之危
今賞公忠謇하여 有此遷授하노라
叔達 對曰 臣 以隋氏父子 自相誅戮하여 以致滅亡하니 豈容目睹하고 不改前轍이리잇가
臣所以竭誠進諫이니이다
太宗 曰 朕 知公 非獨爲朕一人注+ 朕知公 非獨爲朕一人:爲, 去聲. 後同.이라 實爲社稷之計로다
【集論】胡氏寅曰 人臣之義 無私交어늘 而況藩王與太子有隙之時乎
言所左右 疑所集也어늘 而陳叔達 無是心하여
特以秦王有功不可黜이요 恐生後悔하니
是皆天下之公論이요 亦初無贊高祖廢立之意 於秦王 非私交也
以叔達端良으로 自宜在親近之地 苟欲敍遷이면 何患無名이리오
而太宗 乃擧武德中直言 是以危疑向背 誘臣下하여 爲後日計 豈君道哉리오
愚按 時平先長嫡이요 世亂先有功이라
陳叔達當時之直言 意固有在矣 誠公論이요 非私計也
太宗 於是臨御已六年矣 揚其忠謇而遷秩之 雖用得其人 而心若私也
言者 心之聲이니 可不愼哉


정관貞觀 6년(632)에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 진숙달陳叔達注+진숙달陳叔達자총子聰이며 진 선제陳 宣帝의 아들이다. 무덕武德 초기에 판납언判納言을 역임했다. 애초에 이건성李建成 형제가 태종을 헐뜯어 고조가 현혹되자 진숙달이 마음을 다하여 구원해 변호했다. 이건성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고조가 배적裴寂 등에게 이르기를 “오늘날 이런 일을 당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어찌 해야겠는가?”라고 하자, 소우蕭瑀와 진숙달이 말하기를 “이건성과 이원길李元吉은 본디 의병의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또 천하에 공로가 없어서, 공이 높고 신망이 두터운 진왕秦王(태종太宗)을 질시하여 함께 간악한 모의를 획책하다가 지금 진왕이 성토해서 죽였습니다. 진왕은 공로가 우주를 덮어 온 누리가 귀의했으니, 폐하께서 원량元良(태자太子)으로 처우하여 국가의 업무를 맡기신다면 다시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고조가 말하기를 “좋다. 이것이 나의 오래된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임명하고 나서 말하였다.
무덕武德 연간에 공이 일찍이 태상황太上皇께 직언을 아뢰어注+(일찍이)은 음이 이다., 짐이 큰 공을 세웠으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천명해주었소.
짐은 본성이 강렬해서 꺾임을 당하면 걱정과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注+(견디다, 감내하다)은 평성平聲이다.병나서 죽을 위험에 이르게 되오.
지금 공의 충성과 정직을 가상히 여겨 이와 같이 승진시키는 것이오.”
진숙달이 대답했다. “신은 수씨隋氏(나라) 집안의 부자父子가 서로 죽임을 일삼아 멸망에 이르렀다고 여기니, 어떻게 전복된 수레를 목도하고서 앞 수레가 지나간 길을 바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신이 정성을 다해 간언을 올린 이유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공을 알아주는 것은 다만 짐 한 사람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실로 사직을 위한 계책이오.”
호인胡寅이 말하였다. “신하의 의리는 사적 교감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더구나 번왕藩王태자太子가 틈이 발생한 즈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말이 좌나 우로 나뉘는 것은 의심이 모이는 것이거늘, 진숙달陳叔達은 이러한 마음이 없어서,
다만 ‘진왕秦王이 공로가 있으니 내쳐서는 안 되며, 훗날 후회가 생길까 염려된다.’고 한 것은
세상이 공통적인 평판이었고, 또한 애초에 고조가 현재의 태자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태자를 옹립하는 것을 찬동하고픈 마음도 없었으니, 진왕에게 사사로운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진숙달처럼 단정하고 곧은 사람이라면 임금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마땅하며, 정말 승진시키고 싶다면 명분 없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태종이 무덕武德 연간의 직언을 거론한 것은 위기에 처했을 때 취하는 태도를 들어 신하를 유인하여 훗날에 대한 계책으로 삼으려는 것이니, 어찌 임금의 도리라 하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평화로운 시대에는 장자長子적자嫡子를 우선시하지만 혼란스러울 때는 공이 있는 자를 우선시한다.
당시 진숙달의 직언은 본디 원칙이 존재한 것으로서, 진정 공론公論이요 사사로운 계책이 아니다.
태종이 제위에 오른 지 이미 6년째인데, 그 충성스럽고 정직한 것을 선양하여 승진시킨 것이 비록 제대로 된 인물을 얻기는 했으나 속마음은 사사로운 생각이 있는 듯하다.
말은 마음의 소리인데 신중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역주
역주1 覆車 : 전 사람의 실패를 보고 경계함을 말한다. 《漢書》 〈賈誼傳〉에 “속담에 ‘앞수레가 뒤집히면 뒷수레가 조심한다.’ 하였습니다. 秦나라가 빨리 망하게 된 그 자취를 볼 수 있는데 피하지 않으니, 뒷수레가 또 장차 뒤집힐 것입니다.[鄙諺曰 前車覆後車戒 秦氏所以亟絶者 其轍跡可見 然而不避 是後車又將覆也]”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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