狄人
이 殺衛懿公
注+ 狄人 殺衛懿公:衛懿公, 名赤.하여 盡食其肉
하고 獨留其肝
한대
懿公之臣
이 呼天大哭
하고 自出其肝
하여 而內懿公之肝於其腹中
注+ 內懿公之肝於其腹中:內, 讀曰納.하니
特進魏徵
이 對曰 昔
注+ 昔豫讓 爲智伯報仇:爲, 去聲. 後同. 豫讓, 智伯之臣. 智伯, 名瑤, 號襄子, 晉智宣子之後, 爲韓趙魏所滅.하여 欲刺趙襄子
注+ 欲刺趙襄子:趙襄子, 名無恤, 晉趙簡子之後.한대 襄子
가 執而獲之
하여 謂之曰
子昔事范中行氏乎
注+ 中行氏乎:春秋之世, 晉有范氏中行氏, 與智氏韓氏魏氏趙氏, 爲六卿. 春秋之末, 晉公室卑, 六卿强, 各據采地, 更相攻伐. 貞定王十一年, 智氏魏氏趙氏韓氏, 共伐范氏中行氏滅之, 而分其地.아 智伯
이 盡滅之
어늘 子乃委質智伯
하여 不爲報仇
하고 今卽爲智伯報仇
는 何也
오
讓
이 答曰 臣
이 昔事范中行
할새 范中行
이 以衆人遇我
하니 我以衆人報之
하고 智伯
이 以國士遇我
어늘 我以國士報之
注+ 我以國士報之:事見史記趙世家.라
注
大槪忠臣義士가 何代無之리오마는 在上之人이 有以感召之하면 則在下之人이 興起矣라
太宗이 嘉古之忠臣하여 以爲今覓此人하면 恐不可得이라하니
而謂世無其人이면 則不可니 宜魏徵引智伯豫讓之事하여 以爲譬也라
雖然이나 爲人臣者之分은 君之待我者가 或有未至라도 而我之所以事君者를 其可不盡心乎아
정관貞觀 11년(637)에 태종太宗이 시신侍臣에게 말하였다.
“
이적夷狄이
위 의공衛 懿公을
注+위 의공衛 懿公은 이름이 적赤이다. 살해한 뒤 그 살을 모두 먹고 간만 남겨두었는데,
위 의공의 신하
홍연弘演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크게 통곡을 한 뒤 자신의 간을 적출하고 그 뱃속에 위 의공의 간을 집어넣었소.
注+내內(들이다)은 읽기를 납納으로 한다.
지금 이런 사람을 찾는다면 아마 만날 수 없지 않을까 싶소.”
특진特進 위징魏徵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예양豫讓이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 위해
注+위爲(위하다, 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예양豫讓은 지백智伯의 신하이다. 지백智伯은 이름이 요瑤이며 양자襄子라 불린다. 진晉나라 지선자智宣子의 후예인데, 한韓‧조趙‧위魏에게 멸망당했다.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려 했는데
注+조양자趙襄子는 이름이 무휼無恤이며, 진晉나라 조간자趙簡子의 후예이다.,
조양자趙襄子가 그를 붙잡은 뒤 이르기를,
‘그대가 지난날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기지 않았는가.
注+춘추시대春秋時代에 진晉나라에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가 있었는데 지씨智氏‧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와 함께 육경六卿이 되었다. 춘추 말기에 진晉나라의 공실公室은 힘이 약해지고 육경은 힘이 강해져서 제각기 채지采地를 근거로 삼아 서로 공격했다. 정정왕貞定王 11년(B.C.458)에 지씨智氏‧한씨韓氏‧조씨趙氏‧위씨魏氏가 함께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눠 가졌다.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는데, 그대가 지백에게 몸을 바쳐서는 그들의 원수를 갚지 않고, 지금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자,
예양이 대답하기를, ‘신이 지난날 범씨와 중항씨를 모실 때 범씨와 중항씨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해서 나도 보통 사람으로 보답한 것이고, 지백은
국사國士로 나를 대우해서 나도 국사로 보답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注+관련 내용이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에 보인다.
임금의 예우에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사람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注
내가 살펴보건대, 공자孔子께서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예禮로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 라고 하고,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수족처럼 대하면 신하는 임금을 복심腹心처럼 대한다.” 라고 했으니,
공자의 말은 함축적이고 맹자의 말은 격렬하며 절실하다.
충신忠臣과 의사義士가 어느 시대인들 없으랴마는 위에 있는 사람이 감동으로 부르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게 된다.
태종이 “옛 충신을 가상히 여기며, 지금 이런 사람을 찾으면 아마 만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본디 세상에 충성스럽고 의로운 인물을 격려하고 권장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안 되니, 위징魏徵이 지백智伯과 예양豫讓의 고사를 인용하여 비유로 든 것은 마땅한 것이다.
비록 그러나 신하의 분수에 있어서는 임금이 나를 대한 것이 더러 미진한 바가 있다고 해도 내가 임금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는 마음을 극진히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