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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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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五年 康國注+① 康國:卽漢康居國, 一曰薩末鞬, 亦曰颯秣建, 元魏所謂悉萬斤者. 在那密水南, 君姓溫, 本月氏(지), 爲突厥所破. 稍南, 依葱嶺, 其王屈木支.請歸附어늘 時太宗謂侍臣曰 前代帝王 大有務廣土地하여 以求身後之虛名이나 無益於身이요 其人甚困하니
정관貞觀 5년(631)에 강국康國注+강국康國은〉 나라 때 강거국康居國으로, 살말건薩末鞬이라고도 하고, 삽말건颯秣建이라고도 하니, 원위元魏(북위北魏)에서 실만근悉萬斤이라고 하던 곳이다. 나밀수那密水 남쪽에 있었고 군주의 으로, 본래는 월씨국月氏國이었는데, 돌궐에게 격파되었다. 그 후 점차 남쪽으로 내려가 총령葱嶺 아래에 거주하였는데, 그 왕이 굴목지屈木支이다. 귀의하기를 원하자, 당시에 태종太宗근신近臣들에게 말하였다. “역대 제왕들이 크게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죽은 뒤에 헛된 명성을 구했으나, 자신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백성들은 매우 곤액을 겪었소.
假令注+② 令:平聲.於身有益이라도 於百姓有損이면 朕必不爲어든 況求虛名而損百姓乎
가령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자신에게 유익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짐이 결코 하지 않는데, 하물며 헛된 명성을 구하고 백성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康國旣來歸朝하면 有急難 不得不救注+③ 有急難不得不救:難, 去聲. 兵行萬里 豈得無勞於人이리오 若勞人求名 非朕所欲이니 所請歸附 不須納也라하다
강국康國이 와서 우리 조정에 귀의하게 되면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구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注+(환난)은 거성去聲이다., 군대가 만 리 먼 곳까지 출정하고서 어찌 백성들을 고달프지 않을 수 있겠소. 이렇게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면서 명예를 구하는 일은 짐이 원하는 일이 아니니, 강국의 귀의 요청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소.”
【集論】范氏祖禹曰 太宗知招來絶域之弊하여 有所不爲 然以兵克者 則以爲己有而郡縣置之하니 其爲疲勞百姓一也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폐단을 알고서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하여 승리한 곳은 자신의 영토로 여겨 군현郡縣을 설치하였으니 백성들을 피로하게 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어찌 말할 것을 먼저 행하고 그런 뒤에 말을 하는 자라 하겠는가.
然其不受康國 足以爲後世法矣 使其行事每如此 其盛德可少貶哉
그러나 강국康國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후세의 법이 될 만하니, 만일 일을 행할 때마다 늘 이와 같이 했다면 성대한 덕을 조금이라도 폄하할 수 있겠는가.”
唐氏仲友曰 古之待荒服之外 正如此耳 太宗推所以待康國而推之它夷하고 不求臣服이면 不亦善乎 惜哉로다 其未盡如此也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옛날에 황복荒服의 밖을 대우하던 것이 바로 이와 같았으니, 태종太宗강국康國을 대우하던 방법을 미루어나가서 다른 오랑캐에도 미루어나가고, 신하로 복종하기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이 안타깝도다.”
愚按 闢四夷之境하고 款殊俗之附 三代未之聞也
내가 살펴보건대 사방 오랑캐 땅을 개척하고, 풍속이 다른 나라가 귀의할 경우에 관대하게 받아주었다는 것은 삼대시대三代時代에도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蓋遐荒遠夷 不足關中國之重輕하여 得之 適足以勞民而不爲益하고 棄之 斯足以安民而不爲損하니 其利害豈不甚明哉
변방 먼 지역의 오랑캐는 중국의 경중輕重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얻으면 다만 백성들을 고생시켜서 이득이 되지 못하고, 버리면 백성들을 편안히 하여 손해가 되지 않으니, 그 이득과 폐해가 어찌 분명하지 않겠는가.
漢建武中 西域求內屬이어늘 光武以天下初定 未遑外事하여 而竟不許하고 唐貞觀初 康國請歸附어늘 太宗謂求虛名損百姓이라하여 而竟不納이라
후한後漢 건무建武(광무제光武帝 연호) 연간에 서역西域내속內屬(중국 조정에 귀속함)하기를 청하였는데, 광무제가 천하가 처음 평정된 후여서 외적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결국에는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라 정관貞觀 연간 초기에 강국康國이 귀의하기를 청하였는데, 태종太宗이 헛된 명성을 구하고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 하여 마침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二君柔遠之道 可謂無愧於古하니 宜乎爲開基之明主也로다
두 군주가 먼 곳의 오랑캐를 회유懷柔하는 방법이 옛날의 군주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만하니, 국가의 기틀을 개척한 명철한 군주가 되기에 마땅하다.
詩云 惠此中國하여 以綏四方이라하니 二君之謂矣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로民勞〉에 “이 중국을 사랑하여 사방을 편안히 한다.” 라고 하였으니, 두 군주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
역주1 豈先行其言 而後從之者歟 : 《論語》 〈爲政〉에 子貢이 君子에 대해서 묻자 孔子가 “군자는 말할 것을 먼저 행하고 그런 뒤에 말을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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