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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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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六年 太宗謂侍臣曰 北狄代爲寇亂이러니 今延陁倔彊注+① 今延陁倔彊:倔, 渠勿切. 延, 鐵勒諸部之姓. 倔彊, 不柔服也.하니 須早爲之所
朕熟思之하니 惟有二策이라 選徒十萬하여 擊而虜之하여 滌除兇醜 百年無患이리니 此一策也 若遂하면 與之爲婚媾
朕爲蒼生父母 苟可利之인댄 豈惜一女리오 北狄風俗 多由內政하니 亦旣生子 則我外孫이라 不侵中國 斷可知矣 以此而言하면 邊境足得三十年來無事하리니 擧此二策 何者爲先
司空房玄齡對曰 遭隋室大亂之後 戸口太半未復하고 兵凶戰危 이니 和親之策 實天下幸甚注+② 貞觀十六年……實天下幸甚:按通鑑, 卽命兵部侍郞崔敦禮持節使薛延陀, 以新興公主妻之.이니이다
【集論】胡氏寅曰 人各有偶하니 天子之女 非外夷所當偶 昏世愚主 則何較焉이리오
漢高祖唐太宗 不世出之英主로되 而皆 人君見有不及하면 則藉群臣而正之어늘 房公狃於漢故하여 不知遠稽先王하니 豈非可歎之甚邪
夫薛延陀之未服也 無乃吾德猶有所闕 增修仁義而하여 來則接之하고 不至不强也 何必於服己乎
此上策也어늘 舍而不用하고 乃嫁女以結其心하니 是爲非策이니 而太宗君臣正爾 不亦鄙歟
愚按 上古帝王之御四夷也 服則懷之以德하고 叛則震之以威하니 未聞與爲婚姻也
漢高帝時 冒頓數苦北邊이어늘 高帝從劉敬之請而結親하고 唐武德中 突厥遣使請昏이어늘 高祖從裴矩之議而許昏이라 然則和親之策 漢高帝啓之於漢하고 唐高祖啓之於唐하니 皆非所以示子孫也
劉敬 固不必議하고 裴矩 亦毋足責이로되 房玄齡 太宗之良相也어늘 乃曰 兵戰 聖人所愼이라 和親 實天下幸甚이라하니 何不思之甚邪
惟當勉其君曰 兵戰則勞하고 和親則辱하니 皆不足以安百姓威四夷也 君能行帝王之道하여 以修其德敎하고 明其政刑하면 則中國安而邊圉固하리니 來賓率服 自有不期然而然者矣
嗚呼 君行之而不以爲恥하고 臣亦不以爲非하니 惜哉로다


정관貞觀 16년(642)에 태종太宗근신近臣들에게 말하였다. “북적北狄이 대대로 침략을 하고 소란을 일으켰는데, 지금 설연타薛延陀注+(고집하다)은 의 반절이다. 연타延陀철륵鐵勒에 있는 여러 부족의 이다. 굴강倔彊은 온순히 복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온순히 복종하지 않으니 일찍 대책을 세워야 하오.
짐이 깊이 생각을 해보니, 오직 두 가지 계책이 있소.10만의 병사를 선발하여 그들을 공격하여 사로잡아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면 백 년 동안 근심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한 가지 계책이오. 만일 그들이 와서 요청하는 것에 부응하자면 그들과 혼인을 맺어야 할 것이오.
짐은 백성들의 부모이니 만일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어찌 딸 하나를 아까워하겠소. 북적北狄의 풍속이 대부분 아내 주장을 따르니, 역시 아들을 낳으면 나의 외손자이므로, 중원을 침략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소. 이러한 점을 가지고 말하면 변방에 30년간은 사변이 없을 것이니, 이 두 계책을 거론해볼 때 어떤 것이 우선이오?”
사공司空 방현령房玄齡이 대답하였다. “나라의 큰 난리를 겪은 뒤라 호구戸口의 태반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고, 병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위험한 일이라 성인이 신중히 여겼으니, 화친의 계책이 실로 천하를 위해서 아주 다행스런 일입니다.”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6년에 “즉시 병부시랑兵部侍郞 최돈례崔敦禮에게 명을 내려 부절을 가지고 설연타薛延陀에 사신으로 보내어 신흥공주新興公主를 시집보냈다.”라고 하였다.
호인胡寅이 말하였다. “사람은 제각기 짝이 있어, 천자의 딸은 변방 오랑캐의 배우자로 마땅하지 않으니, 혼탁한 세상의 어두운 군주와 비교해서 무엇하겠는가.
한 고조漢 高祖당 태종唐 太宗은 불세출의 뛰어난 군주이지만, 모두 변방의 오랑캐를 사위로 맞이하였다. 군주가 식견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여러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바로잡아야 하는데, 방현령房玄齡나라의 고사故事에 익숙하여 선왕들의 일을 멀리 상고할 줄 몰랐으니, 어찌 깊이 탄식할 만한 일이 아닌가.
설연타薛延陀가 복종을 하지 않은 것은 우리 쪽의 덕이 오히려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인의仁義를 더욱 닦아서 정형政刑을 밝혀 그들이 오면 맞이하고 오지 않으면 강요할 것이 아니니, 어찌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기필할 것인가.
이것이 상책이거늘 버려두어 쓰지 않고 공주를 시집보내어 마음을 결탁하였으니,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니다. 태종의 군신君臣 사이에 바로 의기투합한 것이 역시 비루하지 않은가.”
내가 살펴보건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제왕이 사이四夷를 다스릴 적에 복종하면 덕으로 감싸 안아주고 배반하면 위엄으로 두렵게 하였지, 그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 고제漢 高帝 때에 묵특冒頓이 자주 북쪽 변방을 괴롭히자, 고제高帝유경劉敬의 요청에 따라 화친을 맺었고, 나라 무덕武德 연간에 돌궐이 사신을 보내와 혼인을 요청하자, 당 고조唐 高祖배구裴矩의 논의에 따라 혼인을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화친의 계책은 한나라에서는 한 고제가 시작하였고, 당나라에서는 당 고조가 시작하였으니, 모두 자손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다.
유경은 진실로 논할 필요가 없고, 배구 역시 책망하기에 부족하지만, 방현령房玄齡은 태종의 훌륭한 신하인데도 “전쟁은 성인이 신중히 여긴 일이어서 화친이 실로 천하를 위해 아주 다행스런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생각이 짧은가.
마땅히 군주를 면려하여 “전쟁은 고생스런 일이고 화친은 모욕적인 일이니, 모두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사이四夷에게 위엄을 보이기에는 부족합니다. 군주께서 제왕의 도를 행하여 덕의 교화를 닦고 정형政刑을 밝히면 중국이 편안하고 변방은 굳건해질 것이니, 그들이 와서 조공을 바치며 복종하는 것은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해야 했다.
아, 군주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신하 역시 잘못된 일이라 여기지 않았으니, 애석하도다.


역주
역주1 其來請 : 이때 薛延陁의 眞珠可汗 夷南이 唐나라에 와서 청혼을 했다. 설연타는 투르크계 유목민족의 하나이다. 설연타는 鐵勒의 한 씨족인데, 鐵勒이 바로 투르크의 음사이다. 突厥 역시 투르크의 음사이다. 투르크는 지금의 터키 민족이다.
역주2 聖人所愼 : 《論語》 〈述而)에 “孔子가 삼가신 것은 재계와 전쟁과 질병이었다.[子之所愼 齊戰疾]”라고 하였다.
역주3 : 본문에는 ‘陁’로 되어 있으며, ‘陁’와 ‘陀’는 통용한다.
역주4 以外夷爲子壻 : 漢 高祖 때 흉노와 혼인한 일은 《史記》 〈匈奴列傳〉에 “高帝가 劉敬을 사신 보내 宗室의 딸을 받들어 公主(고제의 딸)로 삼아 單于(선우)의 閼氏(연지, 황후 호칭)로 삼았다.[高帝乃使劉敬奉宗室女公主 爲單于閼氏]”라고 하였다.
역주5 明其政刑 : 《孟子》 〈公孫丑 上〉에 보인다.
역주6 都兪 :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합쳐서 서로 토론한다는 뜻으로, 都兪吁咈의 준말이다. 都와 兪는 찬성하는 말이고, 吁와 咈은 반대하는 말이다. 《書經 虞書 堯典》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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