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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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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九年 太宗將親征高麗할새 開府儀同三司尉遲敬德奏言호대 車駕若自往遼左하고 皇太子又注+① 皇太子又監國:監, 平聲.定州 府庫所在 雖有鎭守 終是空虛
정관貞觀 19년(645)에 태종太宗이 직접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려 할 적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아뢰었다. “황제께서 만일 직접 요좌遼左(요동遼東)로 가시고 황태자가 또 정주定州감국監國하게注+(감독하다)은 평성平聲이다. 되면 동서東西 두 수도의 창고에 있는 〈재화와 무기는〉 비록 지키는 사람이 있더라도 결국 텅 비게 됩니다.
遼東路遙하니 恐有玄感之變注+② 恐有玄感之變:隋煬帝親征高麗, 楊玄感遂起兵圍東都.이요 且邊隅小國 不足親勞萬乘하니 若克勝이라도 不足爲武 儻不勝이면 翻爲所笑하리니
요동遼東은 길이 멀어 양현감楊玄感의 변고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염려되고注+수 양제隋 煬帝가 직접 고구려高句麗 정벌을 나섰을 때, 양현감楊玄感이 드디어 군대를 일으켜 동도東都를 포위하였다., 또 변방 모퉁이의 작은 나라는 황제께서 직접 정벌하기에 부족하니, 만약 승리를 거두더라도 무공武功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혹시라도 승리하지 못하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伏請委之良將注+③ 將:去聲.하면 自可應時摧滅하리이다하니 太宗雖不從其諫이나 而議者是之注+④ 貞觀十九年……而議者是之:按通鑑 “上不從, 以敬德爲左一馬軍總管, 使從行.”러라
삼가 청컨대 훌륭한 장수에게 맡기면注+(장수)은〉 거성去聲이다. 절로 때에 응하여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태종이 비록 그 간언을 따르지 않았으나, 논의하는 자들은 옳다고 여겼다.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9년에 “태종이 〈위지경덕尉遲敬德의 간언을〉 따르지 않고, 위지경덕을 좌일마군총관左一馬軍總管에 임명하여 따르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集論】愚按 하니 古者臣弑其君 子弑其父 人皆得而誅之
내가 살펴보건대, 진항陳恒이 군주를 시해하자 공자孔子가 목욕을 하고 〈노 애공魯 哀公에게〉 토벌하라고 청하였으니, 옛날에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두 주벌할 수 있었다.
高麗爲唐之藩臣하여 其君爲莫離支所弑하니 太宗擧兵討之 其亦異乎帝無名之師矣로되 但不當鑾輿自行耳
고구려高句麗나라의 번신藩臣이 되어 그 군주가 막리지莫離支에게 시해되었으니, 태종太宗이 병력을 일으켜 토벌하는 것은 황제로서 명분이 없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황제가 직접 출정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尉遲敬德請委之良將하면 自可摧滅이라하니 其說是已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청컨대 훌륭한 장수에게 맡기면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그의 주장이 옳다.
然嘗論之컨대 高麗以蕞尒小國으로 四拒隋師하고 五拒唐師하니 非有謀臣良將이면 能如是乎
그러나 일찍이 생각해보건대, 고구려는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인데도 네 차례 나라의 군사를 막아내고, 다섯 차례 나라의 군사를 막아내었으니, 뛰어난 지략을 지닌 신하와 훌륭한 장수가 있지 않다면 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當時李靖嘗言호대 莫離支自謂知兵이라 故輕中國이라하여늘 太宗亦嘗諷靖하니 使伐高麗 靖欣然請行이런들 太宗不能從也리라
당시에 이정李靖이 “고구려 막리지莫離支가 자신이 병법을 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중국을 경시한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태종 역시 이정의 말을 비평하였으니, 가령 고구려를 정벌할 때에 이정이 흔쾌히 함께 나서기를 청했어도 태종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異時 無功而歸하여 問於靖曰 吾以天下之力으로 屈於小夷 何也오하니 靖曰 玆事道宗知之리이다하니
그 후에 아무런 공이 없이 돌아와 이정에게 묻기를 “내가 천하의 병력을 가지고 작은 오랑캐 나라에게 패배한 것은 무엇 때문이오?” 라고 하자, 이정이 말하기를 “이 일은 이도종李道宗이 알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주필산駐蹕山 전투에서 병력을 나누어 평양平壤을 습격하자고 청한 일을 가리킨다.
由此論之컨대 太宗若用李靖爲帥 其平高麗必矣리라
이를 통해 논해보건대, 태종이 만약 이정을 장수로 기용하였다면 필시 고구려를 평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太宗不能用靖하고 而用李勣爲將하니 勣違惠眞延壽之言하여 舍烏骨而不攻하고之計하여 守安市而不置라가 卒之師老糧少하여 無功而返하니
태종이 이정을 기용하지 않고 이적李勣을 기용하여 장수로 삼았는데, 이적이 고혜진高惠眞고연수高延壽의 말을 듣지 않고서 오골성烏骨城을 버려두고 공격하지 않고, ‘공략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는 계책에 어두워 안시성安市城 공략을 고수하여 그만두지 않다가 결국에 병사들이 지치고 군량미가 모자라 아무런 공이 없이 돌아왔으니,
由不用靖而用勣也
이는 이정을 장수로 기용하지 않고, 이적을 장수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監國 : 국사를 주관한다는 뜻으로, 太子가 임금을 대신해서 국정을 행하거나 임금의 有故 때 權臣이나 近親이 섭정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역주2 東西二京 : 東京 洛陽과 西京 長安이다.
역주3 陳恒弑其君 孔子沐浴請討 : 《論語》 〈憲問〉에 보인다.
역주4 蓋指駐蹕之戰 請分軍襲平壤之事也 : 唐나라가 遼河를 건넌 뒤에 고구려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군사회의를 열어 새로 진군할 길을 의논하였는데, 江夏王 李道宗은 먼저 烏骨城을 쳐서 얻고 나서 곧바로 평양을 습격하자고 하였으며, 李勣과 長孫無忌는 安市城부터 먼저 치자고 하였다. 그러나 隋 煬帝가 일찍이 宇文述 등으로 하여금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다가 패배한 일을 唐 太宗이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도종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이적의 말을 따라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였다. 《舊唐書 江夏王道宗列傳》
역주5 城有不攻 : 《孫子》 〈九變〉에 “공략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城有所不攻]”라는 말이 보인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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