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集論】愚按
하니 古者臣弑其君
과 子弑其父
는 人皆得而誅之
라
高麗爲唐之藩臣하여 其君爲莫離支所弑하니 太宗擧兵討之는 其亦異乎帝無名之師矣로되 但不當鑾輿自行耳라
尉遲敬德請委之良將하면 自可摧滅이라하니 其說是已라
然嘗論之컨대 高麗以蕞尒小國으로 四拒隋師하고 五拒唐師하니 非有謀臣良將이면 能如是乎아
當時李靖嘗言호대 莫離支自謂知兵이라 故輕中國이라하여늘 太宗亦嘗諷靖하니 使伐高麗에 靖欣然請行이런들 太宗不能從也리라
異時
에 無功而歸
하여 問於靖曰 吾以天下之力
으로 屈於小夷
는 何也
오하니 靖曰 玆事道宗知之
리이다하니 라
由此論之컨대 太宗若用李靖爲帥면 其平高麗必矣리라
太宗不能用靖
하고 而用李勣爲將
하니 勣違惠眞延壽之言
하여 舍烏骨而不攻
하고 昧
之計
하여 守安市而不置
라가 卒之師老糧少
하여 無功而返
하니
注
내가 살펴보건대, 진항陳恒이 군주를 시해하자 공자孔子가 목욕을 하고 〈노 애공魯 哀公에게〉 토벌하라고 청하였으니, 옛날에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두 주벌할 수 있었다.
고구려高句麗가 당唐나라의 번신藩臣이 되어 그 군주가 막리지莫離支에게 시해되었으니, 태종太宗이 병력을 일으켜 토벌하는 것은 황제로서 명분이 없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황제가 직접 출정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청컨대 훌륭한 장수에게 맡기면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그의 주장이 옳다.
그러나 일찍이 생각해보건대, 고구려는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인데도 네 차례 수隋나라의 군사를 막아내고, 다섯 차례 당唐나라의 군사를 막아내었으니, 뛰어난 지략을 지닌 신하와 훌륭한 장수가 있지 않다면 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당시에 이정李靖이 “고구려 막리지莫離支가 자신이 병법을 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중국을 경시한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태종 역시 이정의 말을 비평하였으니, 가령 고구려를 정벌할 때에 이정이 흔쾌히 함께 나서기를 청했어도 태종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에 아무런 공이 없이 돌아와 이정에게 묻기를 “내가 천하의 병력을 가지고 작은 오랑캐 나라에게 패배한 것은 무엇 때문이오?” 라고 하자, 이정이 말하기를 “이 일은 이도종李道宗이 알 것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주필산駐蹕山 전투에서 병력을 나누어 평양平壤을 습격하자고 청한 일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논해보건대, 태종이 만약 이정을 장수로 기용하였다면 필시 고구려를 평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종이 이정을 기용하지 않고 이적李勣을 기용하여 장수로 삼았는데, 이적이 고혜진高惠眞과 고연수高延壽의 말을 듣지 않고서 오골성烏骨城을 버려두고 공격하지 않고, ‘공략해서는 안 되는 성이 있다.’는 계책에 어두워 안시성安市城 공략을 고수하여 그만두지 않다가 결국에 병사들이 지치고 군량미가 모자라 아무런 공이 없이 돌아왔으니,
이는 이정을 장수로 기용하지 않고, 이적을 장수로 기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