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擢將於行伍之中하시고 取士於凡庸之末하시며 遠夷單使注+⑧ 使:去聲. 一見不忘하시고 小臣之名 未嘗再問하시며 箭穿七札注+⑨ 未嘗再問 箭穿七札:札, 甲也. 養由基射穿七札.하시고 弓貫六注+⑩ 弓貫六勻:左傳定公八年, 魯伐齊, 士皆列, 顔高之弓六勻.이라
加以留情墳典하시고 屬意篇什注+⑪ 屬意篇什:屬, 音囑.하시며 筆邁鍾張注+⑫ 筆邁鍾張:見師傅篇註.하시고 詞窮賈馬注+⑬ 詞窮賈馬:漢賈誼‧司馬相如, 皆文人.하시니 文鋒旣振하면 則宮徵自諧注+⑭ 則宮徵自諧:徵, 音止.하고 輕翰暫飛 則花葩競發이라
萬姓以慈하시고 遇群臣以禮하시며 褒秋毫之善하시고 하시며 逆耳之諫必聽하시고 膚受之愬斯絶注+⑮ 膚受之愬斯絶:論語曰 “膚受之愬不行焉, 可謂明也已矣.”이라
好生之德注+⑯ 好生之德:好, 去聲. 禁障塞於江湖하시고 惡殺之仁 息鼓刀於屠肆하시니 注+⑰ 鳬鶴荷稻粱之惠:荷, 去聲.하고 이라
降尊吮思摩之瘡注+⑱ 降尊吮思摩之瘡:貞觀十九年, 太宗征遼, 攻白巖城. 右衛大將軍李思摩爲流矢所中, 太宗親爲之吮血.하시고 登堂臨魏徵之柩注+⑲ 登堂臨魏徵之柩:臨, 去聲. 十七年正月, 魏徵卒, 太宗臨哭之慟.하시며 哭戰亡之卒하시니 則哀動六軍注+⑳ 則哀動六軍:十九年, 太宗征高麗, 至營州, 詔遼東戰亡士卒骸骨, 竝集柳城東南, 命有司設太牢, 上自作文祭之, 臨哭盡哀.하며 負塡道之薪하시니 則情感天地注+㉑ 負塡道之薪 則情感天地:十九年, 太宗渡遼, 遼澤泥潦, 車馬不通, 命長孫無忌將萬人剪草塡道, 水深處, 以車爲梁, 上自繫薪於馬鞘以助役.하고 重黔黎之大命하사 特盡心於庶獄이라


군대 대열에서 장수를 발탁하시고,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인재를 선발하시며, 먼 오랑캐 지역의 사신을注+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한 번 보고는 잊지 않으시고, 하찮은 신하의 이름을 두 번 물어본 적이 없으시며, 화살로는 7겹의 갑옷을 뚫을 수 있고注+은 갑옷이다. 양유기養由基는 활을 쏘아 7겹의 갑옷을 뚫었다., 활로는 6 강궁强弓을 당겨 관통할 수 있습니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정공定公 8년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였는데, 병사들이 줄지어 앉아서 안고顔高의 활은 6(180)이나 된다고 하였다.
게다가 고대의 전적典籍에 마음을 두고, 시문詩文에 뜻을 두시며注+(이어지다)은 이다., 서법書法종요鍾繇장지張芝를 뛰어넘고注+논존경사부論尊敬師傅편주篇註에 보인다., 사부辭賦가의賈誼사마상여司馬相如를 연구하시니注+나라의 가의賈誼사마상여司馬相如는 모두 문인文人이다., 문세文勢를 떨치면 음률이 절로 조화를 이루고注+(음률 이름)는 이다., 가벼운 붓을 잠시 휘두르면 아름다운 꽃이 다투어 피는 듯합니다.
인자함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지시고, 예의로 여러 신하들을 대우하시며, 작은 선행도 포상하시고, 법망法網을 관대하게 베푸시며,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반드시 들으시고, 피부에 절박하게 와 닿는 참소를 끊어버리십니다.注+논어論語》 〈안연顔淵〉에 이르기를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면 명철하다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미덕은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강호江湖를 막아 고기잡이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진 마음은 도살장에서 칼 놀려 살육하는 것을 그치게 하셨으니, 오리와 학도 벼나 조를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고注+(메다)는 거성去聲이다., 개와 말도 죽으면 휘장이나 덮개를 덮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존至尊을 낮추어 이사마李思摩의 등창을 빨아주시고注+정관貞觀 19년(645)에 태종太宗요동遼東을 정벌하여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하였다.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이사마李思摩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았는데, 태종이 친히 피를 빨아주었다., 에 올라 위징魏徵의 널 앞에서 곡을 하셨으며注+(곡을 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정관貞觀 17년(643) 정월에 위징魏徵이 죽자, 태종太宗이 애통해하며 곡을 하였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을 위해 곡을 하시니 슬픔이 6군을 감동시켰고注+정관貞觀 19년에 태종太宗고구려高句麗 정벌에 나섰을 때, 영주營州에 이르러 명을 내려 요동遼東의 전투에서 전사한 병졸들의 유골을 모두 유성柳城의 동남쪽에 모으게 하고는, 유사有司에게 태뢰太牢를 진설하라고 명하고 태종이 직접 글을 지어 제사를 올리고 통곡하여 몹시 슬퍼하였다., 〈진흙탕이 된〉 길을 메꾸는 섶을 져 나르시니 그 마음이 천지를 감동시켰으며注+정관貞觀 19년에 태종太宗요수遼水를 건널 적에 요택遼澤이 진창이어서 수레와 말이 건너지 못하자,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명을 내려 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풀을 베어 길을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였으며, 태종이 직접 말안장 끈에 섶을 매어 도왔다., 백성들의 목숨을 중시하여 특별히 형옥刑獄에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역주
역주1 : 中國本은 모두 ‘鈞’인데, 朝鮮 宣祖의 初諱 ‘鈞’을 忌諱하여 ‘勻’으로 한 것이다.
역주2 解呑舟之網 : 형법이 관대함을 말한다. 《史記》 권122 〈酷吏列傳序〉의 “漢이 흥기하여……법망은 배를 삼킬 만한 큰 고기도 빠져나갈 수 있었고 관리의 다스림이 진척되어 간사함에 이르지 않았고 백성들이 다스려져 편안하였다.[漢興……網漏於呑舟之魚 而吏治烝烝 不至於姦 黎民艾安]”에서 변용한 것이다.
역주3 鳬鶴荷稻粱之惠 : 《韓詩外傳》 권2의 “黃鵠이 한번 날아올라 천 리를 가는데 임금의 園池에 머물고 임금의 魚鼈을 먹으며 임금의 黍粱을 쪼아 먹습니다.[夫黃鵠一擧千里 止君園池 食君魚鼈 啄君黍粱]”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4 犬馬蒙帷蓋之恩 : 《禮記》 〈檀弓 下〉의 “孔子가 기르던 개가 죽자 子貢에게 묻어주게 하며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묻어주기 위해서이며, 해진 수레의 차일을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묻어주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가난해서 덮어줄 차일이 없으니, 묻을 때 자리로 덮어주어서 그 머리가 흙 속에 빠지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다. 임금의 말이 죽으면 휘장으로 덮는다.[仲尼之畜狗死 使子貢埋之曰 吾聞之也 敝帷不弃 爲埋馬也 敝盖不弃 爲埋狗也 丘也貧無盖 於其封也 亦予之席 毋使其首陷焉 路馬死 埋之以帷]”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