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편 논예악論禮樂 예악禮樂을 논하다 이 편에서는 예악禮樂에 대한 태종太宗의 견해와 행적을 논하고 있다. 태종은 시속時俗 중에 번다한 것은 고례古禮에 의거하여 간략하게 하고자 힘썼다. 당시 태종은 자신의 이름자인 세世와 민民을 피휘하여 민간에 불편함이 많자 세민世民으로 쓰는 경우 이외에는 피휘하지 않게 하였으며, 자신의 형제들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답배答拜하는 것은 예에 어긋나므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정관貞觀 시기는 건국 초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황제의 권위와 황실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였다. 기존 명문가문으로 인식된 산동山東 귀족의 권위를 억제하고 황실과 공신들(당唐나라 건국세력인 관롱집단關隴集團)의 가격家格을 높인 《씨족지氏族志》를 편찬하였으며, 귀족들 간의 혼인에 있어서도 그 가격家格을 다시 정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