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편 논행행論行幸 임금의 행차를 논하다 이 편에서는 임금의 행차에 대한 태종太宗의 견해와 행적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정관貞觀 초에 태종이 근신近臣에게 수 양제隋 煬帝의 예를 보고 궁실을 넓히거나 행차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결국 아무 이득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정관 11년(737)에는 낙양궁洛陽宮에 행차하여 극심하게 사치를 부렸던 수 양제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아첨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렸던 우문술宇文述 등의 과오를 논하며 자신과 신하들을 경계하였다. 정관 12년(740)에 태종이 동쪽으로 순행할 적에 현인궁顯仁宮에 머물렀는데, 궁원宮苑 관리官吏 중에 처벌을 받는 자들의 수가 많아지자, 위징魏徵이 태종의 사치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간언하였다. 정관 13년(739)에 태종이 위징 등에게 자신이 과오를 범하였을 때 서슴없이 간언을 하라고 명하였고, 간언을 들으면 비록 당시에 곧바로 따르지 않더라도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살펴서 반드시 좋은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