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學者
는 優柔厭
하야 有先後次序
러니 今之學者
는 却只做一場話說
하야 務高而已
니라
古之爲學者는 有序하야 隨時隨事하야 各盡其力하야 優柔而不迫하고 厭飫而有餘라
故其用功也實而自得也深이러니 後之學者는 躐等務高하야 徒資口耳之末而已니라
49-2 常愛杜元凱語
注+左傳序本註에 以寬舒學者之心하야 使自求索其高意하고 以飽足學者之好하야 使自奔趨其深致니 如江海 以水深之故로 所浸者遠이요 如膏澤이 以雨多之故로 所潤者博이라 江海之浸과 膏澤之潤은 以喩傳之廣記備言이요 亦欲浸潤經文하야 使義理通透也니라의 若江海之浸
하고 膏澤之潤
하야 渙然氷釋
하고 怡然理順然後
에야 爲得也
注+左傳杜預序曰 優而柔之하야 使自求之하고 饜而飫之하야 使自趨之하야 若江海之浸하고 膏澤之潤하야 渙然冰釋하고 怡然理順이니 然後爲得也라하니라하노라
江海之浸
은 則漸漬而深博
이요 膏澤之潤
은 則優柔而豊腴
이니 此皆言涵養有漸
注+按 序註所論所謂浸潤은 非謂涵養有漸也라 然言之於涵養도 亦好라而周徧融液也
라
至於所見者明徹而無滓면 則渙然而氷釋하고 所存者安裕而莫逆이면 則怡然而理順이니 學至於是면 其深造而自得也를 可知矣로다
[張伯行 註] 此引杜預之言하야 以證古人之優游厭飫也라
冰釋者는 融解無痕之謂요 理順者는 曉暢條達之謂라
元凱有言호되 讀書를 當若江海之浸하야 淵涵渟蓄하고 膏澤之潤하야 漸濡黙化라
久之면 便能道理融徹하야 渙然如冰澌之紛解하고 節目疏通하야 怡然見條理之直達하리니 然後爲深造而自得也라
49-3 今之學者는 往往에 以游夏爲小하야 不足學이라하나 然游夏는 一言一事 却摠是實이러니 後之學者는 好高하야 如人游心於千里之外나 然自身은 却只在此니라
言偃의 字子游요 卜商의 字子夏니 二子在孔門에 固非顔曾比나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우유염어優柔厭飫(오랜 시간을 두고 빠져들며 충분히 맛봄)하여 선후先後의 차서次序가 있었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다만 일장一場(한바탕)의 설화說話만 하여 높은 것을 힘쓸 뿐이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순서가 있어서 때에 따르고 일을 따라 각각 그 힘을 다해서 우유優柔하여 급박急迫하지 않고 염어厭飫하여 여유가 있었다.
그러므로 공력을 씀이 진실眞實하고 자득自得함이 깊었는데, 후세에 배우는 자들은 등급等級을 건너뛰고 높은 것을 힘써서 한갓 구이口耳의 지엽적인 것을 자뢰할 뿐이다.
나는 일찍이
두원개杜元凱(杜預)의 말에
注+《좌전左傳》 서문序文의 본주本註에 “배우는 자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서 스스로 높은 뜻을 찾게 하고, 배우는 자의 좋아함을 충족시켜서 스스로 깊은 경지에 달려가게 하는 것이니, 강해江海가 물이 깊기 때문에 담금이 먼 것과 같으며 고택膏澤이 비가 많기 때문에 적셔줌이 넓은 것과 같다. 강해江海의 담금과 고택膏澤의 적셔줌은 《전문傳文(左氏傳)》에 널리 기록하고 갖추어 말함을 비유한 것이고, 또한 경문經文에 흠뻑 빠져들어가서 의리義理에 통투通透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江海가
침관浸灌(침식)하듯 하고
고택膏澤(빗물)이 적셔주듯 하여
환연渙然히 얼음이 풀리듯 하고
이연怡然히 이치가 순한 것과 같게 한 뒤에야 얻는다.’고 한 말을 좋아한다.
注+《좌전左傳》의 두예杜預 서문序文에 말하였다. “우유優柔하여 스스로 구하게 하고 실컷 충족하여 스스로 달려가게 해서 강해江海가 담그듯이 하고 고택膏澤이 적셔주듯 하여 환연渙然히 얼음이 풀리는 듯하고 이연怡然히 이치가 순해져야 하니, 그런 뒤에야 얻음이 된다.”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를 지었으니, 이 내용은 서문序文에 있는 말이다.
강해江海가 침식하는 것은 담가서 적셔줌이 깊고 너른 것이요,
고택膏澤이 적셔주는 것은
우유優柔하여 풍부한 것이니, 이는 모두
함양涵養함이 점점함이 있어서
注+살펴보건대 서문序文의 주註에 말한 이른바 침윤浸潤이라는 것은 함양涵養함에 점점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함양에 말해도 좋다. 두루하고
융액融液(완전히 풀림)함을 말한 것이다.
보는 바가 명철明徹하여 찌꺼기가 없음에 이르면 환연渙然하여 얼음이 풀리듯 하고, 보존한 바가 편안하고 여유가 있어 거슬리지 않음에 이르면 이연怡然히 이치가 순하게 되니, 학문學問이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깊이 나아가고 자득自得함을 알 수 있다.
[張伯行 註] 이것은 두예杜預의 말을 인용하여 옛사람의 우유優游하고 염어厭飫함을 증명한 것이다.
강해지침江海之浸은 담그기를 깊게 하는 것이요, 고택지륜膏澤之潤은 적시기를 점점하는 것이다.
얼음이 풀린다는 것은 깨끗이 풀려서 흔적이 없음을 이르고, 이치가 순하다는 것은 밝게 통하여 조리條理가 통달함을 이른다.
원개元凱가 말하기를 ‘책을 읽을 때에는 마땅히 강해江海가 담그듯이 깊이 담그고 많이 쌓을 것이요, 고택膏澤이 적셔주듯이 점점 적셔주고 묵묵히 화化해야 한다.
오래하면 곧 도리가 융철融徹하여 얼음이 풀리듯 환해지고, 절목節目이 소통하여 조리條理가 곧바로 통달함을 볼 것이니, 이런 뒤에야 깊이 나아가 자득함이 된다.
옛사람이 학문하는 것이 이와 같았으니, 그 공력이 깊어서 얻는 것이 진실함이 당연하다.’ 하였다.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왕왕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를 하찮게 여겨서 배울 것이 못된다고 말하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는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일이 모두 진실하였는데, 후세에 배우는 자들은 높은 것을 좋아하여 마치 사람이 마음은 천리千里 밖에 놀고 있으나 자기 몸은 다만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언언言偃의 자字가 자유子游이고 복상卜商의 자字가 자하子夏이니, 두 사람은 공자孔子의 문하門下에 있어서 진실로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게 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말한 바와 일삼은 바가 모두 밝게 분별하고 힘써 행하였으니, 진실함 아님이 없었다.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한갓 높은 것만 좋아하고 진실한 얻음이 없으니, 또한 어디에 이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