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伊川先生
이 答張閎中書
注+易傳未傳이로라 自量精力未衰하니 尙覬有少進爾라 然亦不必直待身後요 覺耄則傳矣리라 書雖未出이나 學未嘗不傳也로되 第患無受之者爾라 來書云 易之義本起於數라하니 謂義起於數則非也라 有理而後有象이요 有象而後有數니 易은 因象以明理하고 由象而知數니 得其義則象數在其中矣라 必欲窮象之隱微하고 盡數之毫忽인댄 乃尋流逐末이니 術家之所尙이요 非儒者之所務也니 管輅, 郭璞之徒是也니라曰
有理而後有象하고 有象而後有數하니 易은 因象以明理하고 由象以知數하나니 得其義면 則象數在其中矣니라
理無形也라 故因象以明理요 理旣見乎辭矣면 則可由辭以觀象이라 故曰得其義則象數在其中矣라하니라
易之理寓於象하고 象必有數하니 知其理則象與數皆在其中하니 此學易之要也니라
50-2 必欲窮象之隱微
하고 盡數之毫忽
注+蠶之吐絲에 其細無比하니 一蠶爲忽이요 十忽爲絲요 十絲爲毫요 十毫爲釐요 十釐爲分이요 十分爲寸也라이면 乃尋流逐末
이니 術家之所尙
이요 非儒者之所務也
니라
理者
는 象數之本也
니 不務求其本而徒欲窮其末
은 如
是也
니라
50-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장굉중張閎中에게 답한 편지
注+편지의 원문原文을 다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역전易傳》을 아직 전주傳註(註釋)하지 않았으니,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정력精力이 아직 쇠하지 아니하여 행여 다소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그러나 또한 굳이 곧바로 사후死後(身後)를 기다리지 않고 노쇠하면 전주傳註하려 한다. 책은 비록 나오지 않았으나 학문을 일찍이 전하지 않으려 한 적이 없는데, 다만 전수받으려는 자가 없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보내온 편지에 ‘역易의 뜻이 본래 수數에서 생겨났다.’고 하였는데, 뜻이 수數에서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理가 있은 뒤에 상象이 있고 상象이 있은 뒤에 수數가 있으니, 역易은 상象을 통하여 이理를 밝히고 상象을 말미암아 수數를 아는 것이니, 그 뜻을 알면 상象과 수數는 이 가운데에 들어 있는 것이다. 반드시 상象의 은미한 것을 연구하고 수數의 세미한 것을 다하고자 한다면 바로 말류末流를 찾고 지엽을 좇는 것이니, 술가術家들이 숭상하는 것이요 유자儒者들이 힘쓸 바가 아닌 바, 관로管輅와 곽박郭璞 같은 무리가 이것이다.”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역전易傳》을 아직 전주傳註(註釋)하지 않았으니, 이는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정력精力이 아직 쇠하지 아니하여 행여 다소라도 진전進展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보내온 편지에 ‘역易의 뜻이 본래 수數에서 생겨났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理가 있은 뒤에 상象이 있고 상象이 있은 뒤에 수數가 있으니, 역易은 상象을 통하여 이理를 밝히고 상象을 말미암아 수數를 아는 것이니, 그 뜻을 알면 상象과 수數가 이 가운데에 들어 있다.
“이理는 형체가 없으므로 상象을 통하여 이理를 밝히는 것이요, 이理가 이미 말(글)에 나타나면 말로 말미암아 상象을 볼 수 있으므로 ‘그 뜻을 알면 상象과 수數가 이 가운데에 들어 있다.’고 한 것이다.”
○ 장굉중張閎中은 《정씨문인록程氏門人錄》에 보인다.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음은 형이상形而上의 이理이다.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은 뒤에 상象과 수數가 나타나니, 이것이 역易을 지은 근본根本이다.
역易의 이理는 상象에 붙여 있고 상象은 반드시 수數가 있으니, 이 이理를 알면 상象과 수數가 모두 이 가운데에 들어 있으니, 이것이 역易을 배우는 요점이다.
50-2 반드시
상象의 은미한 것을 연구하고
수數의 세미한 것
注+누에가 실을 토해낼 적에 비길 데 없이 가는데, 한 누에가 토해낸 것을 홀忽이라 하고 십홀十忽을 사絲라 하고 십사十絲를 호毫라 하고 십호十毫를 이釐라 하고 십리十釐를 분分이라 하고 십분十分을 촌寸이라 한다.을 다하고자 한다면 바로
말류末流를 찾고 지엽을 좇는 것이니,
술가術家들이 숭상하는 것이요
유자儒者들이 힘쓸 바가 아니다.”
이理는 상象‧수數의 근본根本이니, 그 근본根本을 찾으려고 힘쓰지 않고 한갓 그 지엽만 연구하고자 함은 경방京房과 곽박郭璞 같은 무리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