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書
는 却有次第
어니와 尙書
는 只合下便大
하니 如堯典
에 克明俊德以親九族
으로 至黎民於變時雍
은 展開是大小大
며 分命羲和
注+書註에 羲仲, 羲叔과 和仲, 和叔也라하야 定四時成歲
는 便是心中
에 包一箇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底天
이라야 方見得恁地
니 若不得一箇大底心胸
이면 如何看得
이리오
73.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상서尙書》는 보기 어려우니, 가슴속이 이처럼 큰 사람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뜻만 알려고 한다면 이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다른 책은 차례가 있으나 《
상서尙書》는 다만 본래부터 크니, 예컨대 〈
요전堯典〉에 큰
덕德을 밝혀
구족九族을 친함으로부터
여민黎民이
변變하여 이에
화和함에 이름은 전개한 것이 이처럼 크며,
희羲‧
화和를 나누어 명하여
注+희화羲和는 《서경書經》의 주註에 “희중羲仲과 희숙羲叔, 화중和仲과 화숙和叔이다.” 하였다.사시四時를 정해서 해를 이룸은 곧 마음속에 하나의 365
도度 4
분分의 1
도度인 하늘을 포함하여야 비로소 이와 같음을 볼 수 있으니, 만약 하나의 큰 마음과 가슴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것을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