皐陶曰 亦行有九德
注+書經講義云 人之才性이 中和而不偏者를 皆謂之德云云이라 禹因問九德之目何如오한대 皐陶遂悉數之說이라 凡人之寬洪者는 或流于縱弛하나니 惟寬而又能莊嚴整肅이면 則寬得其中而不過于寬이니 這是一德云云이라 謹厚者는 或過于鄙朴하나니 惟愿而又能恭而中禮면 則愿得其中而不失之野니 這又是一德이라 有治才者는 或少敬畏云云이라 馴順者는 或失之優柔하나니 惟馴而又能果毅有爲면 則馴得其中而不至于無斷이니 這又是一德이라 勁直者는 或過于峭厲하나니 惟直而又且溫和可親이면 則直得其中云云이라 簡易者는 過于坦率하나니 惟簡而又有廉隅分辨이면 則簡得其中이라하니라하니 寬而栗, 柔而立, 愿而恭, 亂而敬, 擾而毅, 直而溫, 簡而廉, 剛而塞, 彊而義
注+書蔡註에 亦은 總也니 總言德之見於行者其凡有九也라 寬而栗者는 寬弘而莊栗也요 柔而立者는 柔順而植立也요 愿而恭者는 謹愿而恭恪也요 亂而敬者는 有治才而敬畏也요 擾而毅者는 馴擾而果毅也요 直而溫者는 徑直而溫和也요 簡而廉者는 簡易而廉隅也요 剛而塞者는 剛健而篤實也요 彊而義者는 彊勇而好義也라 而는 轉語辭라 ○ 蘇氏曰 橫流而濟曰亂이라 故才過人하야 可以濟大難者를 曰亂이니 亂臣十人이 是也라 才過人者는 患於恃才而不敬이니라라하니
寬弘而莊栗則寬不至於弛요 和柔而卓立則柔不至於懦요 愿而恭則朴愿而不專尙乎質이라
亂은 治也니 亂而敬則整治而不徒事乎文이니 蓋恭著於外요 敬守於中也라
簡大者
는 或規矩之不立
이니 今有廉隅則簡不至於疎
요 剛者
는 或傷於果斷
이니 今塞實而篤厚則剛不至於虐
注+按 九德은 當從本註之釋이어늘 葉氏以植立으로 爲卓立하고 以整治爲文하고 以簡易爲簡大하니 皆未穩이라 至於剛而塞하야는 本註에 以篤實釋塞字어늘 而葉氏는 以爲不至於虐이라하야 大失本意하니라이요 彊力者
는 或徇血氣之勇
이니 今有勇而義則彊不至於暴
라
其生人也에 有氣稟之拘하니 自非聖人至淸至厚至中至正하야 渾然天理하야 無所偏雜이면 蓋自中人以下로 未有不滯於一偏者라
惟能就其氣質之偏하야 窮理克己하야 矯揉以歸于正이면 則偏者可全矣니 是知問學之道 在唐虞之際하야 其論德이 已如是之密矣로다
19.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구덕九德이 가장 좋다.”
《
서경書經》에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행실을 총괄하여 말할진댄 아홉 가지
덕德이 있으니,
注+《서경강의書經講義》에 말하였다. “사람의 재성才性이 중화中和하여 편벽되지 않는 것을 모두 덕德이라 이른다. 우禹임금이 인하여 구덕九德의 조목이 어떠하냐고 묻자, 고요皐陶가 마침내 다 세어서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너그럽고 넓은 자는 혹 방종하고 해이함에 흐르니, 오직 너그러우면서도 또 장엄莊嚴하고 정숙整肅하면 너그러움이 알맞음을 얻어서 너그러움에 지나치지 않는 바, 이것이 한 가지 덕德이다. 근후謹厚한 자는 혹 비루하고 질박함에 지나치니, 오직 근후하면서도 또 공손하고 예禮에 맞으면 공손함이 알맞음을 얻어 촌스러움에 잃지 않는 바, 이것이 또 한 가지 덕德이다. 다스리는 재주가 있는 자는 혹 경외심敬畏心이 부족하다. 순한 자는 혹 우유優柔함에 잃으니, 오직 순하면서도 과단성이 있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으면 순함이 알맞음을 얻어서 결단력이 없음에 이르지 않는 바, 이것이 또 한 가지 덕德이다. 경직勁直한 자는 혹 초려峭厲(엄하고 사나움)에 지나치니, 오직 정직하면서도 또 온화하여 친애親愛할 수 있으면 정직함이 알맞음을 얻는다. 간이簡易한 자는 탄솔坦率함에 지나치니 오직 간략하면서도 또 염우廉隅와 분변分辨이 있으면 간략함이 알맞음을 얻는다.” 너그러우면서도 장엄하며 유순하면서도 꼿꼿이 서며 삼가면서도 공손하며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며 익숙하면서도 굳세며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간략(소탈)하면서도 모나며
강건剛健하면서도 독실하며
강强(용맹)하면서도
의義를 좋아하는 것이다.”
注+《서경書經》의 채침蔡沈 주註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역亦은 총괄總括함이니, 덕德이 행실에 나타나는 것이 모두 아홉 가지가 있음을 총괄總括하여 말한 것이다. 관이율寬而栗은 너그러우면서도 장중〔莊栗〕한 것이요, 유이립柔而立은 유순하면서도 꼿꼿이 서는 것이요, 원이공愿而恭은 삼가면서도 공손한 것이요, 난이경亂而敬은 다스리는 재주가 있으면서도 경외敬畏하는 것이요, 요이의擾而毅는 길들어 익숙하면서도 과감한 것이요, 직이온直而溫은 곧으면서도 온화한 것이요, 간이렴簡而廉은 간이簡易하면서도 모가 나는 것이요, 강이색剛而塞은 강건하면서도 독실한 것이요, 강이의彊而義는 용감하면서도 의義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而는 전어사轉語辭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을 난亂이라 한다. 그러므로 재주가 보통사람보다 뛰어나서 큰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을 난亂이라 하니, 《논어論語》에 ‘난신亂臣 열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재주가 남보다 뛰어난 자는 공경하지 않는 병폐가 있다.” 하였다.
너그러우면서도 장엄하면 너그러움이 해이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온화하고 유순하면서도 꼿꼿이 서면 유순함이 나약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삼가면서도 공손하면 질박하고 삼가면서도 오로지 질質만 숭상하지 않을 것이다.
난亂은 다스림이니,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면 정돈되고 다스리면서도 한갓 문文만 숭상하지 않을 것이니, 공恭은 외면에 나타나고 경敬은 마음속에 지키는 것이다.
길들어 익숙하면서도 굳세면 익숙함이 남을 따름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곧으면서도 온화하면 곧음이 남의 잘못을 들추어냄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간략(소탈)하고 도량이 큰 자는 혹
규구規矩(법도)가 서지 못하니 이제
염우廉隅(모난 것으로 법도를 가리킴)가 있으면 간략함이 소략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강건剛健한 자는 혹 과단함에 상하니 이제 진실하고
독후篤厚하면
강건剛健함이 사나움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注+살펴보건대 구덕九德은 마땅히 본주本註(蔡沈의 주註)의 해석을 따라야 하는데, 섭씨葉氏는 식립植立을 탁립卓立이라 하고 정치整治를 문文이라 하고 간이簡易를 간대簡大라 하였으니, 모두 온당치 못하다. 강이색剛而塞에 이르러서는 본주本註에 독실篤實로 새자塞字를 해석하였는데, 섭씨葉氏는 “사나움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하여 본의本意를 크게 잃었다. 힘이
강强한 자는 혹
혈기血氣의 용맹을 따르니 이제 용맹하면서도 의로우면
강强함이 사나움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기운이 어지러워 만 가지 똑같지 않음이 있다.
그리하여 사람을 낳을 때에 기품에 구애됨이 있으니, 만일 성인聖人으로서 지극히 맑고 지극히 후하고 지극히 중정中正하여 완전히 천리天理여서 편벽되고 섞인 바가 없는 자가 아니면 중인中人으로부터 이하는 한쪽의 편벽됨에 막히지 않는 자가 있지 않다.
오직 기질氣質의 편벽됨에 나아가 이치를 연구하고 사욕私慾을 이겨서 바로잡아 바름에 돌아가게 하면 편벽된 것이 온전해질 수 있으니, 이는 학문學問하는 도道가 당우시대唐虞時代에 있어 덕德을 논함이 이미 이와 같이 치밀함을 알 수 있다.